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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무리의 유리벽 열기
이강모(이범수)와 황정연(박진희)은 사실상 원수가 아닌데, 지금은 철천지 원수가 되어 싸우고 있습니다. 이것은 우리가 원했던 속시원한 복수극과는 너무 차이가 있군요. 아직도 이강모의 앞날에 많은 고난이 남아 있을 것을 예상은 했지만, 그래도 지금의 상황은 볼수록 기막히고 안타깝습니다. 자기가 가진 힘을 총동원하여 강모를 쓰러뜨리려고 안달하는 정연의 모습을 보며 정말 답답했어요. 도대체 왜 이렇게 되어 버렸을까요? 악마 조필연(정보석)이 두 사람 사이에 '오해'라는 매개체를 삽입시켰기 때문입니다. 강모의 아버지를 죽인 것도 조필연이고, 정연의 아버지를 전신마비 상태로 만든 것도 조필연인데, 지금 젊은 두 남녀는 서로를 아버지의 원수라 여기고 있습니다. 오해란 언제나 무서운 것이지만, 이들 사이에 끼어든 오..
강모야, 나는 너를 진심으로 사랑했어. 대책없이 엄마를 찾아 나섰던 그 추운 겨울날, 낯선 길목에서 너를 처음 만났지. 그래서였을까? 이제 생각해 보니 나는 오랫동안 너를 엄마 대신으로 생각했던 것 같아. 아빠는 항상 회사 일로 바쁘셨고, 나는 집에서 새엄마와 정식이한테 벌레만도 못한 취급을 받으며 지내야만 했는데 강모야, 너를 만난 이후로는 숨이 막힐 것 같던 이 집에서의 생활도 별로 고통스럽지 않았어. 네가 언제나 내 곁에서 엄마처럼 지켜 주었기 때문에 나는 견딜 수 있었던 거야. 강모야, 언제부터 알고 있었어? 내 아버지가 네 아버지를 죽였다는 거 말이야. 설마 내가 갈래머리 땋고 여학교에 다니던 시절부터는 아니지? 최루탄 가스에 눈물 흘리며 함께 손 잡고 도망다니던 시절부터도 아니지? 그 때는 너..
이강모(이범수)의 복수극이 시원스레 진행되면서 한동안 지켜보는 마음도 즐거웠는데, 너무 빨리 고통이 찾아들고 있습니다. 악마는 더없이 뻔뻔하고 비열하고 영리합니다.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는 그의 공격에 몸이 다치고 쓰러지는 것 뿐이라면 그나마 다행이겠는데, 사랑과 믿음마저 잃게 될 터이니 이 슬픔을 어찌 감당해야 할지 모르겠군요. 주인공 이강모의 곁에서 든든한 우군이 되어 줄 수 있었던 사람들이, 악마 조필연(정보석)과 그 일가에 의해 어떻게 사랑과 믿음을 잃고 무너져 갈는지를 한 명씩 살펴 보도록 하겠습니다. 1. 황태섭 (이덕화) 이제껏 조필연과 더불어 악역이라고만 인식해 왔던 황태섭 회장은 사실상 악역이 아니었음이 드러났습니다. 악역 치고는 너무 인간적인 모습을 많이 보인다고 생각하긴 했으나, 원래..
이강모(이범수)와 이성모(박상민) 형제의 복수극은 성공 가도를 달리고 있습니다. 빠른 템포와 극적인 전개에 한시도 눈을 돌릴 수 없고 숨조차 크게 쉬어지지 않습니다. 오랫동안 고통을 참으며 준비해 온 이들은, 본격적인 복수의 궤도에 접어들자 엄청난 속도로 삽시간에 거인들을 무너뜨리는군요. 현재까지는 그야말로 유쾌 상쾌 통쾌입니다. 우선 이강모는 도로공사의 기반이 될 신기술을 거침없이 개발해 냈고, 사채업계의 대부인 백파(임혁)의 마음을 어렵지 않게 사로잡아 든든한 우군을 확보했습니다. 건대협 소속인 광명건설의 천수만 회장을 찾아가, 자신의 정체를 밝히고 신기술을 내세워 독점 계약을 맺었습니다. 그리고 서울 도시국장인 한명석(이효정)에게는 단지 몇 마디의 말을 건넴으로써 황태섭과의 오랜 우정을 깨뜨렸습니다..
드디어 이강모(이범수)가 출소하여 '한강건설'이라는 회사를 창립하고 야심찬 복수의 첫발을 내딛었습니다. 그러고 보면 이강모는 별로 운이 나쁜 편도 아니군요. 억울하게 옥살이를 하긴 했지만 형 이성모(박상민)가 정부기관 쪽에 연줄이 닿아 있어서 어느 정도 보호를 받으며 출소 시기를 앞당길 수 있었고 (아직 형기를 마친 것은 아니지만), 황태섭(이덕화)이 그의 아들 대신 누명을 써 주는 댓가로 선선히 이강모에게 넘겨 주었던 개포지구의 거대한 노른자위 땅이 모두 그의 소유로 남아 있으니, 재기의 발판은 더없이 탄탄하게 마련되어 있었던 셈입니다. 덕분에 그는 사회에 다시 발을 내딛자마자 조금도 시간을 끌지 않고 즉시 가파른 오르막길을 시원스레 오르기 시작했군요. 사채업계의 독사라 불리는 노인, 백파(임혁)를 상..
조필연(정보석)은 이성모(박상민)와 이강모(이범수) 형제의 가장 큰 원수입니다. 그들 아버지의 친구였던 황태섭(이덕화)도 깊은 연관이 있기는 하지만, 황태섭은 원래 친구를 죽일 생각이 없었으며, 그 위험한 자리에 나올 희생양이 바로 자기의 친구라는 사실조차 모르고 있었습니다. 친구를 발견하고 놀라서 머뭇거리는 사이에, 멀찌감치서 지켜보던 조필연이 망설임 없이 방아쇠를 당겨, 그들의 아버지를 죽였던 것입니다. 아버지와 함께 타고 왔던 트럭 안에서, 이성모(아역 김수현)는 똑똑히 그 장면을 목격했습니다. 이성모는 당시 19세의 소년에 불과했으나, 우연히 숨어들어간 미군부대에서 조필연과 마주쳤을 때 침착함을 잃지 않았습니다. 그의 총에 맞고 피 흘리며 죽어가던 아버지를 본 것이 겨우 며칠 전인데, 원수를 눈앞..
이강모(이범수)가 드디어 만보건설의 황태섭(이덕화) 회장이 조필연(정보석)과 함께 자기 아버지를 죽인 원수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어린시절부터 믿고 의지하며 진심으로 모셔 온 황태섭이 원수였다는 사실은 이강모에게 엄청난 충격을 안겨 주었습니다. 원래 이성모(박상민)는 동생을 복수극에 끌어들이고 싶지 않아서 혼자 모든 것을 감당하려 했지만, 동생이 결혼해서 함께 도망치려는 여자가 바로 황태섭의 딸 황정연(박진희)이라는 것을 알았기에, 잔인한 비밀을 털어놓을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이강모는 살인 누명을 쓰고 밀항을 하려다가 조민우(주상욱)의 도청장치로 인해 발각되어 경찰에 붙잡히고, 그 과정에서 형이 의심받지 않도록 하기 위해 자기를 희생합니다. 이성모는 어떻게든 동생의 체포를 막으려 했지만, 이강모는 오히..
장기 결방이라는 시련을 거쳐 왔어도 드라마 '자이언트'의 재미는 수그러들지 않았습니다. 시청률은 어떤지 잘 모르겠으나, 점점 더 흥미로워지는 전개는 차마 눈을 뗄 수 없을 지경이군요. 정계와 재계의 거물들이 자기의 필요에 따라 연합하기도 하고 배신하기도 하는 과정에서 벌어지는 그 냉혹하고도 치열한 일들이 갈수록 긴장감을 더하고 있으며, 그 사이에서 조심스레 피어나는 젊은이들의 사랑과 잃어버린 혈육에 대한 안타까움이 어우러져, 가슴 저린 그리움도 느낄 수가 있었습니다. 다만 좀 억지스러운 것은 동생들과 헤어질 당시에 이성모(박상민)는 약 19세 정도의 청년이었는데, 그 후로 외모가 아무리 변했다고 해도 어른이 되어서 다시 만난 동생들이 형을 몰라보고 오빠를 몰라본다는 설정은 말이 안되는 듯 싶습니다. 그리..
요즘 '자이언트'를 시청하면서 제가 가장 주목하고 있는 인물은 정보석이 열연하고 있는 조필연이라는 인물입니다. 이제껏 정보석은 참으로 많은 작품에서 수없이 다양한 역할들을 소화해 왔으나, 이렇게까지 냉혈한 악역을 맡은 것은 처음인 듯 하군요. 바로 전작인 '지붕뚫고 하이킥'에서 어리버리한 순수 중년남 '주얼리 정'을 연기했기 때문인지도 모르지만, 현재 그가 보여주는 조필연의 모습은 더욱 생소하고 무섭게 느껴집니다. 어제까지는 평범한 이웃 아저씨였는데, 알고 보니 악마였다는 식의 소름끼치는 반전이라고나 할까요? 한 사람의 연기자를 통해서 우리는 참 많은 것을 봅니다. 조필연은 권력욕의 화신이며, 이 드라마에서의 절대악입니다. 눈 한 번 깜박이지 않고 무표정한 얼굴로 사람을 쏘아 죽이는 그는, 자기의 심복이..
요즘 드라마 중에는 유난히 복수극이 많고 배신자도 많습니다. 그리고 복수의 대상은 항상 돈과 권력을 지닌 강자입니다. 우리는 억울한 일을 당했던 주인공이 파렴치한 강자들의 것을 야금야금 빼앗으며 복수해가는 과정에서 일종의 쾌감을 느낍니다. 그런데 어떤 신문의 칼럼을 읽으니 이러한 현상은 '자기 힘으로는 성공할 수 없다'는 부정적 사회 인식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의견이 있더군요. 자기의 힘으로는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없으니, 가진 자의 것을 빼앗아서라도 이루고자 하는 욕망의 발로이며, 그 욕망에 정당성을 부여하기 위해서 '복수'라는 설정이 필요했다는 것이지요. 생각해 보니 아주 틀린 말은 아닌지도 모르겠습니다. 복수극의 내면에는 자신도 나쁜 놈이지만 상대방을 '더 나쁜 놈'으로 만듦으로써 자기의 욕망을 합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