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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사람이지만 '개처럼' 사랑할 수 없을까? 본문

예능과 다큐멘터리

우리는 사람이지만 '개처럼' 사랑할 수 없을까?

빛무리~ 2010. 6. 19. 08: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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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드라마 중에는 유난히 복수극이 많고 배신자도 많습니다. 그리고 복수의 대상은 항상 돈과 권력을 지닌 강자입니다. 우리는 억울한 일을 당했던 주인공이 파렴치한 강자들의 것을 야금야금 빼앗으며 복수해가는 과정에서 일종의 쾌감을 느낍니다.
그런데 어떤 신문의 칼럼을 읽으니 이러한 현상은 '자기 힘으로는 성공할 수 없다'는 부정적 사회 인식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의견이 있더군요. 자기의 힘으로는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없으니, 가진 자의 것을 빼앗아서라도 이루고자 하는 욕망의 발로이며, 그 욕망에 정당성을 부여하기 위해서 '복수'라는 설정이 필요했다는 것이지요. 생각해 보니 아주 틀린 말은 아닌지도 모르겠습니다. 복수극의 내면에는 자신도 나쁜 놈이지만 상대방을 '더 나쁜 놈'으로 만듦으로써 자기의 욕망을 합리화하려는 의식이 깔려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배신자는 항상 주변에 가까이 있습니다. 이러한 설정의 대표적인 경우는 요즘 월드컵 관계로 결방 폭격을 맞고 있는 S방송사의 '나쁜 남자'와 '자이언트'를 들 수 있겠습니다. '나쁜 남자'의 심건욱(김남길)은 어렸을 때 재벌가에서 파양당한 아픔을 평생 곱씹으며 복수를 꿈꾸어 왔습니다. 이제 그의 복수극이 막을 올리며 그를 버렸던 '신화그룹'의 사람들은 모두 어느 사이엔가 가장 가까운 곳으로 다가온 심건욱에게 말려들고 있는 중입니다.

'자이언트'의 이성모(박상민)는 아버지를 죽인 원수 조필연(정보석)의 최측근에서 10년간이나 그를 보좌하며 결정적인 복수의 한 방을 노리고 있습니다. 이강모(이범수) 또한 자기가 모시고 있는 황태섭(이덕화) 회장이 자기의 원수라는 것을 지금은 모르고 있지만, 이제 알게 되면 역시 황회장의 턱 밑에서 그를 노리는 배신자가 될 것입니다.


'황금물고기'의 이태영(이태곤)은 어려서부터 자기를 친자식처럼 돌봐 준 한경산(김용건)의 집안을 향해 복수를 시작했습니다. 한경산의 아내 윤여정이 자기를 학대해 왔을 뿐 아니라 사실은 자기의 생모를 죽게 만든 원수임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태영의 복수 또한 자기 자신만의 힘으로 진행되지는 않습니다. 그는 오랜 연인이었던 한경산의 딸 지민(조윤희)을 매몰차게 뿌리치고, 자기를 짝사랑하던 재벌가의 딸 문현진(소유진)과 결혼해버린 것입니다.

양상이 좀 다르긴 하지만 '제빵왕 김탁구'의 서인숙(전인화)은 아들을 낳지 못한다는 이유로 부당하게 자기를 냉대하고 억압하던 남편과 시어머니의 바로 곁에서, 비서실장 한승재(정성모)와 불륜을 저지르고 그 씨앗인 아들을 집안의 후계자로 삼아 모든 것을 빼앗으려는 복수를 계획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가장 가까운 곳에서 배신을 계획하며 복수를 꿈꾸는 사람들의 이야기는, 긴박감이 넘치고 흥미진진하기는 하지만 한편으로는 마음을 메마르고 쓸쓸하게 만듭니다. 그들의 분노와 욕망 앞에서 사랑이나 믿음 따위는 무력하기 이를 데 없습니다. 그들은 아무도 진심으로 대하지 않습니다.


저는 드라마를 통해 이러한 '사람들의' 사랑을 보다가, 주말이면 'TV동물농장'을 시청하며 메마른 마음을 적십니다. 'TV동물농장'에는 주인을 잃었거나, 주인에게서 버림받은 개들이 자주 등장합니다. 그런데 어쩌면 그리도 한결같이 주인을 그리워하고 기다리는지, 그 모습이 너무도 애처롭고 감동적이어서 걷잡을 수 없이 눈물을 쏟을 때가 한두번이 아닙니다.

주인이었던 할머니가 갑자기 쓰러져서 돌아가신 이후로 무려 5년간이나 그 작은 집을 지키며 혼자 살아왔던 다루의 모습을 기억합니다. 할머니가 돌아가신 줄도 모르고, 다루는 하염없이 할머니가 오실 때만을 기다리고 있었던 것입니다. 녀석을 불쌍히 여긴 동네 사람들이 거두어 주려고 아무리 다가서 보아도, 다루는 완강히 그 집을 지키며 떠나지 않았습니다. 동네 사람들의 인정으로 근근이 살아가고는 있었으나, 밥그릇에 몇 알갱이 밖에 남지 않은 사료를 무심한 듯 먹는 모습이 얼마나 가슴아팠는지 모릅니다.


다루가 집을 지키는 것과 마찬가지로, 주인을 잃은 개들은 주인과 함께 있던 장소를 떠나지 않고 언제까지나 기다렸습니다. 인적 없는 황량한 국도 한복판에 버려졌어도, 자기 살 길을 찾아가는 것이 아니라 계속 그 길 주변만을 맴돌며 주인을 기다리는 것입니다. 그러다가 차에 치어 죽기도 하고 불구가 되기도 했습니다. 산에 버려졌으면 산 꼭대기에서 내려다보며 언제 주인이 올라오나 기다리고, 섬에 버려졌으면 매일매일 바다를 바라보며 언제 주인이 배를 타고 자기를 데리러 올까 기다립니다. 몇 개월이 지나도 몇 년이 지나도 개들은 오지 않을 주인을 하염없이 그렇게 기다렸습니다.

전문가의 말을 들으니 개는 절대로 "주인이 자기를 버렸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더군요. 어쩌다 보니 떨어져 있게 된 것뿐이지, 주인이 자기를 버렸을 거라고는 아예 생각조차 하지 않고 완벽한 믿음으로 기다린다는 것입니다.


최근에는 마라도의 갯바위에서 살아가는 누렁이의 이야기를 보았습니다. 함께 살던 주인 내외는 건강이 악화되어 치료를 받기 위해 육지로 이사를 갔으나, 미처 누렁이를 데려가지 못했습니다. 나중에 취재팀이 찾아가서 만나보니 그 주인 내외의 입장도 이해가 되는 상황이었습니다. 몹시 가난한 데다가 두 분 다 몸을 제대로 움직이기도 힘들 만큼 건강이 나빠져 있는 상태였거든요. 어쩌면 마을 사람들과 친하게 지냈으니 누렁이를 남겨두어도 잘 돌봐 줄 거라 믿고 떠났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아무리 동네 사람들이 보살펴 주려 해도 누렁이는 위험한 갯바위를 떠나지 않았습니다. 맑게 개인 날이면 언제나 주인 아저씨는 언제나 그 자리에서 낚시를 즐겼고, 누렁이는 그 곁에 앉아 있었다고 합니다. 누렁이에게는 그 장소가 주인과 함께 했던 유일한 추억이며 기다림의 장소였던 것입니다. 왜냐하면 주인 내외가 이사를 간 후에, 그들의 집은 헐려서 폐허가 되었거든요.

누렁이의 기다림은 파도가 몰아치고 비바람이 불어도 눈보라가 쳐도 계속되었습니다. 언제나 갯바위에 앉아서 파도를 맞고 눈과 비를 맞으며 1년 넘게 지내 온 것입니다. 한 동네 주민은 누렁이를 가리키며 "목숨이 붙어 있는 한은 저 자리에 있다고 보면 된다." 고 말했습니다.

개들의 사회에서도 강자와 약자는 구별이 되는 터라, 주인 없는 누렁이는 마치 부모 없는 어린아이처럼 동네 개들에게 따돌림을 당했습니다. 동네 개들은 괜시리 갯바위로 찾아가 누렁이를 집단으로 공격하곤 하더군요. 그런 모습은 어쩌면 인간의 사회와 그토록 비슷한지... 그러나 다른 것이 있다면 한 번 마음을 준 사람에게는 아무런 의심도 품지 않고 완벽한 믿음과 사랑을 준다는 것이었습니다.


다행히 누렁이는 구조되어 병든 몸을 치료도 받고 새 주인도 만나고 '사랑이'라는 예쁜 이름도 얻었습니다. 새 주인은 동네 주민으로서 항상 갯바위의 누렁이를 안타까운 마음으로 바라보던 착한 아저씨였습니다. 그는 나중에 누렁이가 건강해지면 육지에 있는 옛 주인에게 꼭 한 번 데려가서 만나게 해주겠노라 하더군요.

감히 인간의 사랑을 개의 사랑보다 못하다고 말할 수야 없겠지요. 하지만 때로는 개들의 그 무조건적인 믿음과 애정이 부러울 때가 있습니다. 어쩌면 현실은 드라마보다 더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사람들 사이에서 진정한 믿음이란, 기대하기 어려울지도 모를 일이지요. 하지만 그래도 가끔은 기대하고 싶어집니다. 우리도 '개처럼' 사랑할 수 없을까? 살아있기 때문에 차마 희망을 버릴 수 없는 어리석은 마음인지도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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