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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무리의 유리벽 열기
김순옥 작가의 전작 ‘왔다 장보리’를 재미있게 보았으므로 나의 처음 선택은 ‘애인있어요’가 아닌 ‘내 딸 금사월’이었다. 막장이라도 박진감 있는 전개와 찰진 재미가 보장된다면 그저 가벼운 마음으로 주말 저녁을 즐길 수 있을 것 같아서였다. 하지만 ‘내 딸 금사월’은 도통 매력없는 캐릭터들과 최소한의 설득력조차 확보하지 못한 전개로 나의 기대를 무너뜨렸다. 여주인공 금사월(백진희) 캐릭터는 몹시 답답하고, 남주인공 강찬빈(윤현민) 캐릭터는 심히 밋밋하다. 게다가 금사월과 강찬빈은 왜 사랑에 빠지는지, 신득예(전인화)의 복수는 왜 그토록 어처구니 없는 방식으로 진행되는지, 악역인 강만후(손창민)와 오혜상(박세영)은 왜 그토록 허술하고 우스꽝스러운지, 당최 보면서 전혀 몰입할 수가 없었다. 김순옥 작가의 드라..
'응답하라 1988' 여주인공 성덕선(혜리)의 길고 길었던 남편찾기가 뜻밖에도 19회에 완결되었다. 최종회인 20회에 이르러서야 끝날 것이라고 생각했던 입장에서는 그 빠른 선택 자체가 일종의 반전이었다. 하지만 그보다 더욱 큰 반전은 줄곧 성덕선 미래의 남편을 김정환(류준열)일 거라고 예상하게끔 스토리를 끌어와 놓고서, 마지막에 급격히 최택(박보검) 쪽으로 선회해 버린 제작진의 뒤통수치기였다. 개인적으로 김정환보다 최택의 캐릭터를 훨씬 더 좋아했기 때문에 이 결말 자체에 불만은 없으나, 급선회하는 과정만 놓고 보자면 많이 어색하고 부자연스러웠음을 부인할 수 없다. 성덕선과 그 남편의 2015~2016년 현재의 모습은 배우 이미연과 김주혁을 등장시켜 보여주고 있었는데, 18회 이전까지 김주혁의 말투와 행동..
땅새야... 이제 너는 삼한제일검이 되었고 이성계 장군으로부터 이방지라는 새 이름까지 받았지만, 내 마음속에서는 언제나 이웃집 땅새였어. 한 번도 너에게 말한 적은 없었지만, 벌써 오래 전에 괴물이 되어버린 내가 한 줄기 사람의 체온이나마 간직할 수 있도록 긴 세월 동안 붙잡아 준 것은 너를 생각하는 마음뿐이었지. 화사단에 들어가 흑첩이 되고 자일색이라는 이름으로 활동하면서, 내가 어찌 사람으로서 할 수 있는 일들만 하며 살았겠니? 더 이상 추악해질 몸도 마음도 남아있지 않은 나는 오갈 데 없는 괴물이지만, 그래도 너를 생각할 때만은 다시 뜨거운 눈물이 흐르며 사람다운 마음을 느낄 수 있었어. 나는 수천 수만 번을 생각했었지. 헤어지던 날... "꼴도 보기 싫다"며 발악하듯 외치는 내 앞에서 고개를 들지..
초반에는 좀처럼 재미를 붙일 수 없었던 '응답하라 1988'에 뒤늦게 빠져들기 시작했다. 그 이유는 바로 '최택'이라는 특별한 캐릭터의 매력 때문이다. 어쩌면 '최택'이라는 캐릭터에 영혼까지 동화된 듯한 연기를 보여주고 있는 배우 '박보검'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응답하라 1988' 10회에서 비춰진 최택의 모습은 마치 살아 움직이는 다이아몬드 같았다고나 할까? 가만히 있어도 눈부신 다이아몬드가 숨쉬고 말하고 웃고 뛰어노는 모습을 본다면 그런 기분일 것 같았다. 행여 다칠까봐 (흠집이라도 생길까봐) 염려스럽지만, 한편으로는 너무나 신기하고 황홀해서 눈을 뗄 수 없는, 뭐 그런 느낌이었다. 8살 때부터 천재의 면모를 드러내기 시작한 바둑 신동 최택. 그는 겨우 18세의 약관에 세계적인 스타 바둑기사로서 대..
드라마 '송곳'은 매우 흥미롭다. 어둡고 무거운 주제를 지극히 현실적으로 다루고 있는데, 뜻밖에도 극 자체의 분위기가 반드시 어둡거나 무겁지만은 않다. 결코 웃을 수 없는 슬픈 이야기를 하고 있지만, 그 와중에도 간간이 웃음을 터뜨릴 수 있을 만큼 재미있다는 뜻이다. 지루함이라곤 느낄 틈도 없이 빠르게 전개되지만, 그 와중에도 가슴에 콕콕 새겨지는 명대사들이 무수히 쏟아져 나온다. 나는 평소 웹툰을 즐기지 않기 때문에 최규석 작가의 존재를 몰랐었는데, 이렇게 드라마를 통해서나마 접하고 보니 실로 대단한 그 능력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다. 지현우와 안내상을 비롯한 배우들의 연기도 흠잡을 데 없이 훌륭하다. 하지만 나는 이 드라마에 대해 입을 열기가 조심스러웠다. 재미있게 시청하고 있지만, 매우 높이 평가하..
'대장금'과 '서동요' 이후 김영현 작가의 사극에 매료된 나는 '선덕여왕'과 '뿌리깊은 나무'를 시청하며 그녀의 필력을 극도로 존경하기에 이르렀다. 역사적 사실과는 다른 부분이 적지 않았으나, 다큐멘터리가 아니라 엄연한 창작물이기에 그 정도는 충분히 용인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이 부분에 있어서는 사람마다 의견이 다르겠지만 요즘 시대에 영화나 드라마의 내용을 철석같이 믿는 사람이 있다면 그게 오히려 이상한 일이고, 작품을 감상하다가 실제 역사에 대한 궁금증이 생긴다면 다른 경로를 통해서 공부하면 된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외국에 수출될 경우는 좀 더 오해의 소지가 많겠으나, 방영 전에 자막으로 '이 작품은 허구와 상상력이 가미된 창작물로서 역사적 사실과는 차이가 있음'을 분명히 밝힌다면 큰 문제는 되지 ..
처음부터 끌리는 작품도 아니었고 선호하는 장르도 아니었는데 한 두 번 시청하다 보니 뜻밖에도 재미있어서 계속 보게 된 드라마이다. '그녀는 예뻤다' 라는 과거형의 제목은 여주인공 김혜진(황정음)의 외모적 변화보다도 내면적 변화를 표현하고 있는 듯 싶다. 어렸을 때는 예쁘고 똑똑한 부잣집 공주님이었던 혜진, 하지만 나이가 서른에 가까운 지금 그녀의 현실은 비참하다. 아빠의 사업이 망하면서 가세는 기울었고, 각종 알바를 전전하다 보니 성적은 형편없이 떨어졌다. 게다가 야속한 사춘기 역변으로 어릴 적 미모는 사라지고 촌스런 홍당무 아가씨로 변해버렸다. 학자금 대출에 휴학을 거듭하며 간신히 대학을 졸업했지만, 나이도 많고 성적도 외모도 출중하지 못한 그녀에게 선뜻 문을 열어주는 회사는 좀처럼 찾을 수 없었다. ..
추석 특집으로 기획된 2부작 드라마 '나의 판타스틱한 장례식'은 특이하게도 아침 8시 20분에 편성되었다. 아침 시간과는 썩 어울리지 않는 진지하고 무거운 느낌의 멜로였는데 아침에 편성된 것을 보면, 방송사에서는 이 작품에 큰 기대를 걸고 있지 않았던 것도 같다. 그러나 방송 후 시청자의 반응은 상당히 좋은 편이었다. 이른 아침부터 생각지도 않은 눈물바람을 일으키며 감동과 카타르시스를 자아냈다는 호평이 이어졌다. 과연 이 드라마의 어떤 점이 시청자를 사로잡았던 것일까? 죽음을 소재로 만들어졌기에 기본적 무게감은 피할 수 없었지만 '나의 판타스틱한 장례식'은 최대한 가볍고 따스한 터치로 죽음의 무게를 한층 덜어내는 데 성공했다. 스물 일곱, 인생의 봄날 한가운데서 뇌종양으로 3개월 시한부 선고를 받은 장미..
'아내의 유혹', '왔다 장보리'의 시청률 제조기 김순옥 작가가 '내 딸 금사월'로 돌아왔다. 김순옥 작가의 거침없는 스타일은 왠지 '막장에 대한 자부심'을 갖고 있는 듯 보이니, 이쯤되면 명실상부한 '막장의 대모'라 칭해도 좋을 것이다. 확실한지는 모르겠으나 최근 임성한 작가가 '압구정 백야'를 마지막으로 절필 선언을 했다는 소식까지 들려오고 있는 터라, 막강 라이벌조차 사라진 막장의 너른 들판을 김순옥 작가가 다시 장악할 것인지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개인적으로 '재미없는 착한 드라마'보다는 '재미있는 막장'을 선호하는 편이라, 나 역시 약간의 기대감을 품고 '내 딸 금사월'의 첫방송을 시청했다. 막장의 최고 미덕이라 할 수 있는 자극적 화면의 연출이 처음부터 작렬했다. 신득예(전인화)와 강만후(손창..
초반에는 제법 독특한 설정으로 눈길을 끌었던 '용팔이'가 갈수록 부실 대본의 한계를 드러내며 공감대 형성에 실패하고 있는 느낌이다. 그 기본적 설정의 무리수는 일찌감치 드러난 상태였지만, 너무도 급박하고 뜬금없이 전개되는 남녀 주인공의 러브라인은 꾸준히 시청해 왔음에도 불구하고 마치 1~2회분을 건너뛴 것처럼 느끼게 하는 마법을 선사했다. 듣자 하니 '용팔이'는 2013년부터 제작 기획이 시작되었다던데, 무슨 이유로 방송 초반부터 쪽대본 촬영을 하고 있는 것일까? 대본이 그래선지 스토리 전개는 황당할 만큼 듬성듬성하고, 그 와중에 시간을 때우기 위해선지 과거 회상 및 쓸데없는 장면들이 너무 길고 지루하게 삽입된다. 한여진(김태희)이 3년씩이나 인위적으로 잠들어 있게 된 이유가 8회에서 밝혀졌다. 3년 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