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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룡이 나르샤' 역사 속 인물들의 이름이 바뀐 이유 본문

드라마를 보다

'육룡이 나르샤' 역사 속 인물들의 이름이 바뀐 이유

빛무리~ 2015. 10. 6. 10: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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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장금'과 '서동요' 이후 김영현 작가의 사극에 매료된 나는 '선덕여왕'과 '뿌리깊은 나무'를 시청하며 그녀의 필력을 극도로 존경하기에 이르렀다. 역사적 사실과는 다른 부분이 적지 않았으나, 다큐멘터리가 아니라 엄연한 창작물이기에 그 정도는 충분히 용인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이 부분에 있어서는 사람마다 의견이 다르겠지만 요즘 시대에 영화나 드라마의 내용을 철석같이 믿는 사람이 있다면 그게 오히려 이상한 일이고, 작품을 감상하다가 실제 역사에 대한 궁금증이 생긴다면 다른 경로를 통해서 공부하면 된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외국에 수출될 경우는 좀 더 오해의 소지가 많겠으나, 방영 전에 자막으로 '이 작품은 허구와 상상력이 가미된 창작물로서 역사적 사실과는 차이가 있음'을 분명히 밝힌다면 큰 문제는 되지 않을 거라고 생각한다. 



큰 감동을 주었던 '뿌리깊은 나무'의 프리퀄로서 큰 관심을 모으던 '육룡이 나르샤'가 드디어 베일을 벗었다. 김영현 작가의 차기작을 손꼽아 기다려 온 내게도 정말 기쁜 소식이었는데, 다만 제목은 무척 못마땅했다. 물론 원래 의도는 '용비어천가'의 구절을 인용하여 조선 초기 여섯 영웅의 이야기를 풀어내 보고자 함이겠으나, 현실적으로는 웅장한 사극에 전혀 어울리지 않는 걸그룹 여가수의 이미지를 떠올리게 한다는 점에서 큰 아쉬움을 남긴다. '용비어천가'에서 일컫는 육룡은 이성계의 네 명 조상을 비롯하여 태조 이성계와 태종 이방원을 의미하지만 '육룡이 나르샤'에서는 실존과 허구의 인물을 조합하여 새로운 육룡을 완성했다. 실존 인물로는 이성계와 이방원에 이어 정도전이 합류했고, 허구의 인물로는 '뿌리깊은 나무'에 등장했던 이방지와 무휼 그리고 여주인공 분이가 포함되었다.  


그런데 아무래도 홍일점 분이(신세경)가 마음에 걸린다. 한글 창제에 큰 역할을 담당했던 '뿌리깊은 나무'의 소이 정도라면 육룡에 포함시켜도 괜찮겠으나, 이방원의 정인으로서 원경왕후(공승연)와 삼각관계를 이룬다는 분이가 과연 비련의 여주인공에 그치지 않고 조선 건국에 큰 역할을 담당할 수 있을까? 정통 사극이 아니라 '팩션 사극'을 표방하는 '육룡이 나르샤'에는 무협적인 요소가 많이 삽입될 것으로 보이기에 삼한제일검 이방지와 최강 호위무사 무휼의 캐릭터는 나름 적절하다고 생각된다. 묵직한 정치인인 실존 인물들 사이에서 이방지와 무휼의 존재는 역동적인 흥미 요소를 더해줄 것이며, 무협 영웅의 이미지는 '육룡'에 끼워넣어도 제법 잘 어울린다. 다만 분이가 어떤 방면의 특출한 재능을 지녔는지, 과연 유일한 여성 영웅으로서 빛을 발할 수 있을지는 좀 더 지켜봐야 할 것 같다. 



'육룡이 나르샤' 1회의 솔직한 감상을 말하자면, 산만하고도 지루했기 때문에 적잖이 실망스러웠다. 아마도 기대가 너무 컸던 모양이다. 육룡 중 첫번째 용인 이성계(천호진)는 아직 변방에서 몸을 웅크린 채 일어서기도 전이었으며, 대업의 동반자인 정도전(김명민)과의 만남도 아직 성사되지 않았다. 나이 순서대로라면 두번째 용은 정도전일 듯한데, 그는 야심찬 본색을 숨긴 채 허술한 모양새로 돌아다니며 기회를 엿보는 중이다. 실질적 주인공인 이방원과 이방지, 분이는 아직 어린아이들인데, 남다름과 이레 등 아역 배우들의 연기 대결이 귀엽기는 했지만 내용 전개는 지루했다. 첫 장면에 잠시 얼굴을 비추고 사라진 유아인과 변요한이 빨리 다시 나왔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들의 반짝이는 젊은 패기와 김명민의 원숙한 카리스마가 어우러지면 비로소 볼만한 사극이 될 것 같았다. 


이성계의 부친 이자춘 역할에는 원로배우 이순재가 잠시 모습을 드러냈으며, 고려 말의 반역자 조소생 역할에는 '선덕여왕'의 칠숙으로 인기를 끌었던 안길강이 특별 출연했다. 두 배우는 지극히 짧은 분량 속에도 거대한 존재감을 드러내며 깊은 여운을 남겼다. 역사의 기록을 살펴보면 조소생의 증조부 조휘가 화주 이북의 땅을 가지고 몽골에 투항함으로써 화주에 쌍성총관부가 설치된 후, 조씨 일가는 총관으로서 그 지역을 통치하며 자손 대대로 부와 권력을 세습했다. 조소생의 대에 이르러 고려 정부가 그들을 회유하려 했으나 조소생은 거절하고 다시 원나라와 결탁하여 고려의 동북변 지역을 침략했다가 이성계에 의해 격파당했다고 한다. 최후에 조소생을 살해한 것은 이성계가 아니라 여진족인 다루가치였다.



 

그런데 '육룡이 나르샤'는 조소생을 이성계가 살해한 것으로 각색했다. 북방의 장수 이자춘은 오랫동안 조씨 일가의 신세를 졌고, 조소생과 이성계는 서로를 형 아우라 부르며 각별히 지냈던 것으로 묘사된다. 하지만 조소생이 고려 정부의 공격을 받기 시작하면서 이자춘은 배신을 결심한다. 바로 이 때 고려와 편을 먹고 조소생을 죽이면 조소생의 부와 세력을 쉽게 빼앗을 수 있을 뿐 아니라, 반역자를 척살하는 큰 공을 세웠으니 고려의 중심부에서도 세력을 확보할 수 있다고 판단했던 것이다. 아버지의 강요에 항복한 이성계는 평소 형님으로 모시던 조소생을 마지못해 살해했으나 극심한 죄책감에 시달렸다. 그 후 이성계는 세상의 모든 악행 중에서도 배신을 가장 증오하는 대쪽같은 북방의 장수로 이름을 날리게 된다. 


원나라와의 화친을 막아달라는 정몽주(김의성)의 요청을 받아들인 이성계는 마침내 북방을 벗어나 고려의 수도인 개경에 입성한다. 어쩌면 조소생을 배신할 때부터 남몰래 꿈꾸어 온 중앙 정부로의 진출이었다. 조정에서 권세를 휘두르고 있던 친원파 권신들은 그런 이성계를 날카롭게 경계한다. 친원파의 수장이며 수시중으로서 권력의 정점에 서 있는 이인겸(최종원)은 개경에 도착한 이성계를 자신의 집으로 불러들여 큰 잔치를 벌이는데, 재미삼아 구경하자며 마련한 연극은 바로 이성계가 가장 부끄럽게 여기는 조소생과의 일화(이성계의 배신에 분노한 조소생은 그의 집안을 초주지가, 즉 주인을 문 개의 가문이라 조롱함)를 소재로 만든 것이었다. 이성계는 피가 거꾸로 치솟을 만큼 분개하지만 겉으로는 내색하지 않고 이인겸에게 고개를 숙이며 절치부심하는데, 그 모습을 멀찌감치서 지켜 본 이방원은 최고의 영웅으로 존경하는 아버지의 그런 모습에 눈물을 삼킨다. 



이인겸은 새끼돼지에게 사람의 젖을 먹여 기르면 고기의 맛이 좋아진다는 속설 때문에, 백성들 중 갓 출산한 여인들을 납치해서 감금하고는 돼지에게 젖을 먹이도록 강요한다. 어미가 그렇게 끌려가서 붙잡혀 있는 동안 가난한 백성의 아기들은 젖을 먹지 못해 굶어 죽는 일도 다반사였다. 이인겸은 자신의 사소한 즐거움을 위해 백성을 죽음에 이르도록 괴롭히는 천하의 탐관오리요 간신인 셈이다. 그런데 수시중이라는 벼슬도 그렇고 아무래도 그 포지션은 고려 말의 권신 이인임의 자리가 맞는 것 같은데, 어째서 이인겸이라는 이름으로 등장하는 것일까? 정통 사극으로 인기를 끌었던 드라마 '정도전'의 이인임(박영규)을 아직 생생히 기억하기에, 비슷하면서도 낯설게 느껴지는 이인겸이라는 이름이 좀 의아하다. 


제작진은 '상상력을 극대화시켜 창작의 자유를 최대한 확보하기 위해서'라고 그 이유를 설명한다. 드라마의 특성상 주인공인 조선 건국의 주역들은 한껏 미화되지만 상대적으로 고려 말의 권신들은 악역을 맡을 수밖에 없는데, 실존 인물의 이름을 그대로 인용했다가는 후손들에 의해 명예훼손 등의 명목으로 소송을 당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영화 '명량'의 제작진은 등장 인물인 배설 장군의 후손들로부터 소송을 당해 적잖은 고생을 하기도 했다. 그리고 몇 년 전 드라마 '추노'에서는 실존 인물 김자점을 모델로 삼은 듯한 캐릭터가 전혀 다른 '이경식'이라는 이름으로 등장했었는데, 역시 그런 문제 발생을 염려해서가 아니었을까 싶다. 



'육룡이 나르샤'에서는 이인임만 이인겸으로 바뀐 것이 아니다. 그의 측근이었던 임견미와 염흥방은 각각 길태미(박혁권)와 홍인방(전노민)으로 개명되어 등장한다. 역사에도 별로 충신으로 기록된 인물들은 아니었지만, 드라마에서는 좀 더 악하게 표현될 수 있으므로 혹시 모를 사태를 대비하여 그런 것 같다. 나름 현명한 선택이라고 본다. 어차피 허구가 가미된 이야기인데 이름을 살짝 바꾼다 해서 몰입에 방해될 일도 없고, 후손들 입장에서도 조상의 이름을 콕 집어 명시하지 않으면 불쾌감이 덜할 테니까 말이다. 첫회의 전개는 다소 지루했지만 차후의 전개를 기대해 본다. 김영현 작가의 필력은 이번에도 나를 실망시키지 않을 거라 믿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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