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판타스틱한 장례식' 외로운 현대인들의 간절한 소망

추석 특집으로 기획된 2부작 드라마 '나의 판타스틱한 장례식'은 특이하게도 아침 8시 20분에 편성되었다. 아침 시간과는 썩 어울리지 않는 진지하고 무거운 느낌의 멜로였는데 아침에 편성된 것을 보면, 방송사에서는 이 작품에 큰 기대를 걸고 있지 않았던 것도 같다. 그러나 방송 후 시청자의 반응은 상당히 좋은 편이었다. 이른 아침부터 생각지도 않은 눈물바람을 일으키며 감동과 카타르시스를 자아냈다는 호평이 이어졌다. 과연 이 드라마의 어떤 점이 시청자를 사로잡았던 것일까? 

죽음을 소재로 만들어졌기에 기본적 무게감은 피할 수 없었지만 '나의 판타스틱한 장례식'은 최대한 가볍고 따스한 터치로 죽음의 무게를 한층 덜어내는 데 성공했다. 스물 일곱, 인생의 봄날 한가운데서 뇌종양으로 3개월 시한부 선고를 받은 장미수(경수진)는 거대한 벽 앞에 홀로 선 것처럼 외롭고 막막한 현대인을 상징하는 인물이다. 미수가 어릴 때 부모는 이혼했고, 엄마는 재혼하면서 가차없이 소식을 끊었다. 아빠가 사고로 세상을 떠난 후 미수는 고모에게 맡겨졌지만, 고모는 미수를 냉대하며 아빠의 유산만을 탐냈다. 

어린 미수를 사랑하고 지켜주어야 했던 사람들이 오히려 매정하게 버리거나 탐욕스럽게 이용하려고만 들면서, 미수는 지극히 냉소적인 성품의 어른으로 자라난다. 당연한 일이었다. 미수에게 세상은 차갑고 어두운 곳이었으며, 사람은 믿을만한 존재가 못 되었다. 사랑하거나 애정을 쏟을 이유가 전혀 없었다. 미수는 그렇게 자신을 혼자만의 벽에 가두었고, 현재 그녀에게 애인은 커녕 친구조차도 없다. 이쯤이면 괜찮다 싶은 남자와 연애라는 것도 해보았지만, 그 역시 미수의 마음속에 불신의 벽만 높여준 채 떠나고 말았다. 

너무 빨리 죽어야 한다는 사실은 못내 억울했지만 별 수 없는 일이었다. 어차피 세상은 미수에게 호의를 베풀어 준 적이 없었고, 미수 역시 이토록 잔인한 세상과 인생에 미련 따위는 없었다. 하지만 장례식 만큼은 제대로 치르고 싶었다. 그 이유는 단 하나, 그녀를 버리고 떠난 엄마 때문이었다. 그래도 자식이 죽었다는데 장례식에는 와 보겠지, 엄마 없이도 예쁘고 똑똑하게 잘 컸는데 어린 나이에 죽어버린 것을 알면 조금은 슬퍼하고 안타까워하겠지... 미수는 엄마의 마음에 가능한 한 상처와 후회를 남겨주고 싶었다. 

엄마의 슬픔과 안타까움을 더해주기 위해서는 좀 더 잘난 자식이어야 할 것 같아서, 미수는 죽기 전에 어떻게든 박사 학위를 따려고 노력하는 중이었다. 어처구니 없도록 차갑고 비꼬인 생각이지만, 그것이 지금껏 장미수가 세상과 타인과 공존해 온 방식이었다. 아무도 그녀에게 진심어린 사랑을 주지 않았고, 그녀 역시 아무도 진심으로 사랑하지 않았다. 세상 모든 것은 허식과 겉치레이며, 인간의 모든 행동은 거짓과 연극일 뿐이라고 그녀는 믿어 의심치 않았다. 

자신이 죽은 후 장례를 치러 줄 사람을 미수는 직접 찾으러 다녔다. 애초에 진심 따위는 원치도 않았지만, 너무 심하게 탐욕스런 사람들의 모습에는 역겨워서 견딜 수 없었다. 소식 끊고 지내던 고모에게도 연락해 보고, 헤어졌던 옛 연인에게까지 부탁해 보았지만, 그들은 다만 미수가 죽은 후 유산의 행방에만 눈빛을 번득일 뿐 장례식에는 일말의 관심도 보이지 않았다. 상조 회사에도 찾아가 보았지만, 본인의 장례식을 스스로 의뢰하는 경우는 약관에 없는 특별 사항이므로 추가 요금을 지불해야 한다는 말에 미수는 돌아서고 만다. 

차라리 모두 태워버리고 말지, 더러운 탐욕으로 가득찬 너희들의 아가리에는 단 한 푼도 던져주고 싶지 않아! 시시각각으로 닥쳐오는 죽음 앞에서도 미수는 세상과 타인을 향한 적개심을 누그러뜨리지 않았다. 그런데 박동수(최우식)라는 인물이 그녀 앞에 불쑥 나타나면서, 장미수의 생애 마지막 3개월은 그 이전까지와는 전혀 다른 색깔로 채워지게 된다. 고교 시절, 감히 전교 1등 장미수를 사랑한다면서 무턱대고 쫓아다니던 전교 꼴찌 박동수, 마냥 우습고 한심하고 희떱게만 보였던 그 미친놈이 10년만에 다시 나타났다. 

스토커처럼 쫓아다니던 놈이 갑자기 사라졌을 때, 미수도 약간 궁금하기는 했었다. 알고 보니 동수는 심장병으로 죽을 날만 기다리던 중 기적처럼 심장 이식 수술을 받게 되어 새 생명을 얻었고, 그 이후 학업은 포기한 채 가난한 노동자로 살아가는 중이었다. 박사 학위 취득을 코앞에 두고 있는 시간강사 장미수와 중졸의 막노동 일꾼 박동수... 하지만 전교 1등 앞에서도 당당했던 전교 꼴찌의 사랑은 거침없이 또 시작된다. 동수에게 중요한 것은 오직 미수의 마음일 뿐, 조건 따위는 아무 상관 없었다. 

"네가 싫다면 부담스럽게 하거나 귀찮게 굴지는 않을게. 네 마음은 네 것이니까 나를 싫어해도 괜찮아. 하지만 내 마음은 내 것이니까, 난 계속 너를 좋아할 거야!" 그냥 미친놈이라고만 생각했다. 감히 분수에 맞지도 않는 상대를 탐내는 멍청이라고만 생각했다. 어떻게든 옆에서 알짱거리다가 부스러기라도 받아먹을 심산이겠지, 그렇게만 생각했다. 설마 진심일 거라고는 추호도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더욱이 그녀에게 닥쳐오는 죽음을 알면서도, 그녀의 마지막 삶을 위해 남몰래 자신을 희생하는 남자의 그런 마음이 존재할 거라고는 한 번도 상상해 본 적이 없었다. 

우연처럼 운명처럼 동수의 진심을 알게 된 미수의 심경에는 급격한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한다. 오직 단 한 사람의 존재로 인해, 세상과 인생을 바라보는 그녀의 눈이 바뀌게 된 것이다. 사람의 내면에는 거짓과 탐욕만 있는 것이 아니라 결코 믿지 못했던 진실한 사랑도 분명 존재한다는 것을, 세상에는 차가운 어둠만 있는 것이 아니라 따스한 밝은 빛도 존재한다는 것을, 미수는 이제야 알게 되었다. 동수의 눈으로 세상을 보고, 동수의 마음으로 타인을 바라보던 미수는 또 다른 고통에 빠져든다. 

아무 미련없이 죽음을 담담히 받아들이려 했는데, 어느 덧 세상과 사람을 사랑하게 되어버린 미수의 마음속에 살고 싶다는 욕망이 싹트기 시작한 것이다. 사랑하는 동수 곁에서 좀 더 오래 살고 싶은데, 이토록 아름다운 세상을 좀 더 오래 보고 싶은데, 애석하게도 허락된 시간은 너무 짧았다. 미수는 눈물을 흘리며 동수에게 자신의 장례식을 부탁하고, 동수는 꼭 멋진 장례식을 준비해서 그녀를 잘 보내주겠다고 약속하는데, 정작 동수의 마지막 선물인 그 장례식을 자기는 볼 수 없다는 생각 때문에 미수는 안타까워한다. 

그래서 동수는 아주 특별하고 판타스틱한 장례식을 마련한다. 자신의 장례식에 꼭 참석하고 싶어하는 미수를 위해, 그녀가 살아있는 동안 미리 장례식을 치르기로 한 것이다. 스스로 한 명의 친구도 없다고 생각했던 미수의 장례식에는 놀랍게도 수많은 사람이 찾아와 주었다. 스쳐지나는 인연이라고 생각했던 병실 동기들과 약국 할아버지는 물론, 그녀에게 상처를 주고 떠났던 옛 애인 유세호(유하준)까지 찾아와 미수의 마지막 길을 진심으로 축복했던 것이다. 물론 가장 미워했던 엄마(김청)의 모습도 그들 속에 있었다. 

한없이 울며 미안하다고 말하는 엄마에게 미수는 웃으며 말했다. "아니에요, 엄마... 나를 보러 와 줘서 고마워요!" 원망과 복수심이 깨끗이 사라진 눈빛은 편안한 사랑으로 채워져 있었다. 얼마 후 미수는 평화롭게 세상을 떠나고, 재발한 심장병으로 목숨이 위태로웠던 동수는 미수의 심장을 이식받아 또 한 번의 새 삶을 찾게 된다. (전이되지 않은 뇌종양 환자의 경우는 장기 이식이 가능하다고 함) 원래는 이식을 포기하고 미수를 따라가려 했던 동수였지만, 미수의 간절한 부탁으로 이루어진 일이었다. 그래서 두 사람은 영원히 함께 할 수 있게 되었다. 

어쩌면 '나의 판타스틱한 장례식'에는 외로운 현대인들의 간절한 소망이 담겨있는 듯하다. 단 한 명의 진실한 친구조차 갖기 힘들어진 외로운 시대, 식당에서도 혼자 밥을 먹는 '혼밥족'이 늘어가고, 연애나 결혼은 비즈니스 또는 사치라고 여겨지는 시대, 타인에게 마음을 기대고 싶지만 더 큰 상처를 입게 될까 두려워, 힘겹게 몸을 꼿꼿이 세우고 혼자 버텨내며 살아가는 사람들... 그들이 원하는 것은 어쩌면 오직 단 한 사람인지도 모르겠다. 추호의 의심이나 두려움 없이, 아주 잠시라도 편안히 마음을 기대어 쉴 수 있는 단 한 사람, 그 한 사람의 진심. 

박동수라는 캐릭터는 그처럼 외로운 현대인들의 간절한 소망을 담아 형상화된 존재라고 볼 수 있다. 미수가 죽은 친구에 관한 이야기를 하면서 "별로 안 친했어. 그냥 죽었다는 소식을 들으면 장례식에나 가는 정도였을 뿐이야." 라고 말하자, 동수는 대답한다. "그 정도면 굉장히 친한 거야. 장례식은 주인공이 참석하지 않는 유일한 행사잖아. 유족들과의 관계 때문이 아니라 오직 죽은 사람과의 인연 때문에 장례식에 참석한다면, 그건 아주 많이 친한 사이라고 생각해!" 

'정승집 개가 죽으면 사람들로 문전성시를 이루지만, 정승이 죽으면 개 한마리 얼씬거리지 않는다'는 유명한 속담이 있다. 죽은 사람과의 인연을 더 이상 소중히 돌보지 않는 비정한 마음은 예로부터 당연히 여겨졌던 것일까? 하긴 날마다 먹고 살기도 힘든 세상인데, 죽은 사람한테까지 마음쓸 여유는 예나 지금이나 없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니 내가 죽고 없어도, 애써 먼 길을 달려와 봤자 더 이상 나를 볼 수 없다는 사실을 잘 알면서도, 기꺼이 나의 마지막 길을 배웅하러 찾아와 주는 친구가 있다면 얼마나 고마운 일이겠는가. 

'나의 판타스틱한 장례식'에 수많은 시청자가 공감하며 눈물을 흘렸다는 사실은, 현대인의 외로움이 얼마나 극심한 지경에 이르렀는가를 증명하는 듯하다. 마음 기댈 수 있는 단 한 명의 진실한 친구를 간절히 원하지만, 머리를 굴려 봐도 선뜻 자신있게 외칠 수 있는 이름 하나조차 떠올리기가 쉽지 않은 삭막한 인생... 그래도 그 안에서 끝까지 희망을 찾으려는 사람들의 애타는 노력이 비교적 훌륭한 표현력으로 잘 담겨진 드라마였다. 모처럼 괜찮은 작품 하나를 발견했음에 뿌듯함을 느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