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무리의 유리벽 열기
'송곳' 불편함보다는 차라리 슬픔이다 본문
드라마 '송곳'은 매우 흥미롭다. 어둡고 무거운 주제를 지극히 현실적으로 다루고 있는데, 뜻밖에도 극 자체의 분위기가 반드시 어둡거나 무겁지만은 않다. 결코 웃을 수 없는 슬픈 이야기를 하고 있지만, 그 와중에도 간간이 웃음을 터뜨릴 수 있을 만큼 재미있다는 뜻이다. 지루함이라곤 느낄 틈도 없이 빠르게 전개되지만, 그 와중에도 가슴에 콕콕 새겨지는 명대사들이 무수히 쏟아져 나온다. 나는 평소 웹툰을 즐기지 않기 때문에 최규석 작가의 존재를 몰랐었는데, 이렇게 드라마를 통해서나마 접하고 보니 실로 대단한 그 능력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다. 지현우와 안내상을 비롯한 배우들의 연기도 흠잡을 데 없이 훌륭하다.
하지만 나는 이 드라마에 대해 입을 열기가 조심스러웠다. 재미있게 시청하고 있지만, 매우 높이 평가하고도 있지만, 내가 무어라 말해야 좋을지는 알 수가 없었다. 그런데 오늘 한 평론가의 칼럼을 읽고 나서 약간의 깨달음을 얻을 수 있었다. "당신은 '송곳'이 통쾌한가 아니면 불편한가?" 라는 제목의 칼럼이었다. 제목에서부터 나는 생각에 잠기지 않을 수 없었다. 나는 '송곳'이 통쾌한 것일까, 불편한 것일까? 그런데 놀랍게도 내 안에는 두 가지의 상반된 감정이 공존하고 있었다. 한편으로는 통쾌하면서도 한편으로는 거북했다. 통쾌한 이유는 더없이 명확했지만, 불편한 이유는 뚜렷히 잡히지 않았다.
"반드시 사측의 위치에 있는 시청자가 아니더라도 시스템 안에서 적응하며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주인공 이수인(지현우)의 송곳처럼 튀어나오는 행동이 불편하게 느껴질 수 있다. 하지만 시스템에서 방출되었거나 그 바깥에서 아예 진입조차 해보지 못한 이들에게 이수인의 행동은 대단히 통쾌하게 느껴질 것이다." 칼럼의 핵심 내용은 이처럼 명료한 두 문장으로 압축되는데, 상당한 설득력과 타당성을 지닌 주장이었다. 이는 곧 '싸움은 경계를 확인하는 것' 이라고 정의했던 구고신(안내상)의 주장과도 일맥상통한다. 경계선을 사이에 두고 서로가 '이쪽 사람'인지 '저쪽 사람'인지를 확인하는 것, 그것이 바로 싸움(전쟁)의 시작이다.
그런데 나는 스스로의 정체를 확신할 수가 없었다. 나는 이제껏 단 한 번도 '갑'이라든가 '사측'의 위치에 있어 본 적이 없는 사람이다. 직장 생활을 하는 동안에는 항상 힘없는 노동자였고, 1년 정도는 아웃소싱 업체 소속 파견직으로 콜센터 근무를 해 본 적도 있다. 굳이 따진다면 파견직은 '을'도 못 되는 '병'이라고나 해야 할까? 말단 위치에서라도 조직 사회에 긍정적으로 녹아들 수 있었다면 다행이겠지만, 나는 태생 자체가 조직이나 단체 등과는 맞지 않는 인종이었다. 결국 나는 혼자 일하면서 돈을 벌 수 있는 직업 중에 나와 잘 맞는 분야의 일을 뒤늦게나마 찾아냈고, 수입이 많지는 않아도 그럭저럭 만족하며 살아가는 중이다.
조직 사회에서 언제나 왕따였다는 사실은 '송곳'의 주인공 이수인과 나의 공통점이다. 융통성 없는 원칙주의자라는 것도 똑같다. 워낙 뻣뻣해서 남들과 자연스레 쉽게 친해지지 못하고, 애써 가까워지려 하면 할수록 점점 더 어색해지는, 그런 대인관계의 요령 없음까지도 신기할 만큼 닮았다. 그런데 두 가지 면에서 이수인과 나는 큰 차이점이 있었다. 첫째, 이수인은 내면적으로 강한 사람이었지만 나는 매우 약한 유리멘탈의 소유자였다. 둘째, 이수인은 '노조'라는 것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백지 상태였지만, 나는 불행히도 '노조'의 긍정적인 모습보다는 최악의 부정적인 모습을 먼저 보고 말았다.
첫번째 이유에 대해서는 길게 할 말이 없다. 내가 조직 사회의 부당함을 접했을 때 맞서지 않고 번번이 스스로 떨어져 나왔던 이유는 소속감이나 애착이 없어서이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굳건하지도 용감하지도 끈질기지도 못한 나약한 기질 때문이기도 했다. 눈앞에서 벌어지는 상급자의 치사한 만행에도 겁 먹거나 기 죽거나 혐오감에 치를 떨며 그만두기는 커녕 "난 아무래도 왕따가 체질인 듯... 어디 날 치워봐라! "하고 중얼거리며 씨익 웃는 이수인의 냉철함과 강인함은 실로 경이롭고 부러웠다. 감정에 휘둘리고 쉽게 상처받고 툭하면 눈물부터 글썽이는 나도 혹시 그만큼 냉정하고 강인했다면 현재와는 좀 다른 인생을 살고 있었을까?
두번째 이유에 대해서는 제법 할 말이 길다. 내가 이 글의 제목을 '불편함보다 차라리 슬픔'이라고 써넣은 이유도 여기에 있다. 내가 가장 오랫동안 (7년 가량) 근무했던 직장은 명동 성당 옆의 가톨릭 회관 내부에 있는 작은 출판사였다. 아주 작은 사무실에 직원이라고는 나 혼자였고, 신부님께서 원고를 집필해 보내시면 그것을 매킨토시 컴퓨터로 편집하여 책으로 만드는 것까지가 내 업무였다. 인쇄와 제본은 다른 곳에 맡겨 처리했으며, 출판된 책은 모두 천주교 내부에서만 소비되는 종교 서적으로서 대중적 유통이나 수익과는 거리가 멀었다. 수익을 목적으로 하는 회사가 아니었기에 월급은 아주 적었다. 어쩌면 직장보다는 유급 봉사에 가까웠다고 해도 좋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7년이나 꾸준히 다닐 수 있었던 이유는 깊은 애정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 때는 내 인생을 통틀어 신앙심이 가장 깊었던 시절이라 천주교 서적을 만드는 일 자체가 큰 기쁨과 자부심이었고, 직원이 나 혼자였기 때문에 조직 생활이 아니어서 적성에도 맞았다. 신부님도 워낙 좋은 분이라 결코 아랫 사람을 힘들게 하지 않으셨다. 그런데 명동 성당 옆 건물로 출퇴근하는 것이 무척 힘들어지는 시기가 있었다. 바로 '거대 노조'가 명동 성당 앞에 빽빽이 들어서서 장기 농성을 벌일 때였다. 온통 외국인 관광객으로 득실거리는 현재의 명동에서는 상상하기 어려운 광경이지만, 그 때만 해도 명동 성당 앞은 각종 노조의 것이나 다름없었다.
진짜 목구멍에 풀칠이라도 하고 싶은 절박한 심정으로 모였던 소규모 노조의 이야기를 하려는 것이 아니다. 그 당시 내가 직접 목격했던 '거대 노조'의 실체는 참으로 무섭고 역겨운 것이었다. 2000년 당시 무려 한 달 이상이나 명동 성당 앞과 가톨릭 회관 앞을 점령했던 H노조의 만행을 나는 지금도 잊지 못한다. 그 넓은 광장에 빼곡히 드러누운 사람들 때문에 발디딜 틈조차 없었는데, 밤새 술을 퍼마신 남자들은 아침이 되어 가톨릭 회관으로 출근하는 여직원들을 향해 "어이, 아가씨~" 하며 벌개진 눈으로 추파를 던지기 일쑤였다. 그들 틈새를 아슬아슬하게 스쳐지나가야 하는 출근길이 얼마나 멀고도 소름끼쳤던지! 하지만 그 정도는 약과였다.
언제부턴가 가톨릭 회관으로 통하는 길목에는 머리 위에서부터 검은 두건을 덮어쓰고 손에는 길다란 각목을 든 정체 불명의 남자들이 줄지어 보초를 서기 시작했다. 멀리서 봐도 너무나 섬뜩한 모습인데, 우리는 매일 출퇴근할 때마다 그들의 코앞을 지나가며 괜한 두려움에 떨어야만 했다. 당최 그들의 정체가 뭔가 했더니, 이탈자를 막기 위해 노조 지도부에서 배치한 용역들이라고 했다. 고생스런 농성이 한없이 길어지니 노조원들 중에도 이탈자가 발생하는 것은 몹시 당연한 일이었는데, 그 사람들을 배신자와 도망자로 간주하여 몽둥이로 때려 잡는다는 것이었다. 이것은 꾸며낸 이야기가 아니라 내 눈으로 본 사실이다. 물론 모든 노조가 그랬을 거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또한 직접 본 것은 아니지만 친하게 지내던 옆 사무실 직원을 통해 들은 말은 더욱 충격적이었다. 자리를 이탈하려던 노조원 한 명이 결국은 각목으로 폭행을 당했는데, 마침 그 옆을 지나던 신부님 한 분이 뜯어 말리다가 함께 폭행을 당하셨다는 이야기였다. 우리는 분노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들은 천막을 친답시고 명동 성당 외벽 수백 군데에 쾅쾅 못을 박아 백여 년 전통의 한국 천주교 문화재를 훼손했으며, 성당 건물 옆이나 광장 구석에 거침없이 똥오줌을 싸질러 더럽혔다. 담배를 피우고는 꽁초를 아무데나 버리니 천막 등에 불이 붙을까봐 가톨릭 회관 경비 아저씨가 "꽁초 버리지 말라"고 했다가 욕 먹고 폭행 당했다는 이야기도 들려왔다. 그런데 이제 신부님까지 때렸다고?
내가 본 그들은 오갈 데 없는 깡패였다. 듣자 하니 그들은 다른 직장에 비해 월급을 적게 받는 사람들도 아니라고 했다. 다만 자기들 성에 차지 않아서 좀 더 많이 달라며 농성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백 번 양보해서 그들이 '생존'을 위해 모였다 치더라도 용서받을 수 없는 행위를 너무 많이 저질렀다. 자신들의 권익이 그토록 소중하다면 마땅히 타인의 권익도 존중해야 하는 것 아니겠는가? 애먼 타인들을 그토록 무참히 짓밟으면서 도대체 무슨 권리 주장을 하겠다는 말인가? 한달 여의 악몽같은 시간이 흐른 후 그들이 떠나간 자리는 거대한 오물통이었다. 귀족 노조였던 그들은 무려 9천만원의 비용을 들여 청소 용역업체를 사서 자기들 대신 청소를 시켰다.
나의 경험과 기억이 매우 편향된 것임을 인정한다. 그런 일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다. 몇몇 부정적인 예로 인해 전부를 폄하하는 것은 옳지 않음도 알고 있다. 하지만 직접 눈으로 보고 체험한 일들은, 단지 머릿속으로만 알고 있는 것과는 차원이 다르게 강력한 힘으로 인간의 뇌를 지배한다. 더욱이 나는 감정에 휘둘리는 인간이라, 바로 눈 앞에서 내 소중한 가치가 망가지고 훼손되고 폭행당했던 충격적인 기억을 떨쳐내지 못하였다. 그래서 누군가 노동 운동의 필요성을 역설할 때, 나는 늘 입을 닫고 가만히 있었다. 굳이 내 의견을 물어오면 "네, 물론 필요하죠. 그런데 방법이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이 정도로 대답하곤 했다.
나는 사측이거나 관리자였던 적도 없고, 조직 사회에 무난히 적응하며 살아가는 사람도 아닌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노조'에 대해 부정적인 감정을 갖고 있는 이유는 개인적 경험 때문이다. 하지만 내게도 일말의 객관성은 존재하기 때문에, 현실적으로 비참한 대우를 받는 노동자들이 얼마나 많은지, 부당 해고로 밥줄이 끊긴 사람은 얼마나 많은지, 절박함에 맞서 보았지만 계란으로 바위치기라 오히려 더 다치고 죽어나간 사람은 얼마나 많은지, 모르는 바는 아니다. 그래서 '송곳'을 보며 나 역시 통쾌함을 느낀다. 나와 비슷한 성향을 지녔으나 훨씬 강하고 단단한 이수인이 한 발씩 앞으로 전진하는 모습을 보며, 내가 느끼는 감정은 70% 가량이 통쾌함이다.
그리고 나머지 30% 가량의 불편함은, 차라리 슬픔이라 표현하고 싶다. 슬픔의 이유는 구고신의 대사에서 찾을 수 있다. "우리는 선한 약자를 위해 악한 강자와 싸우는 게 아니야. 시시한 약자를 위해 시시한 강자와 싸우는 거지!" 말하자면 인간 본연의 한계다. 약자가 곧 선한 자는 아니라는 것이 나는 이상하게도 슬펐다. 정당한 권리를 주장하는 애달픈 목소리가 그 자체 내부의 악함으로 인해 변질될 수 있다는 것, 그 변질된 악함으로 애꿎은 외부에 상처를 입힐 수 있다는 것, 그래서 편이 될 수 있었던 사람들을 멀어지게 할 수도 있다는 것... 나는 그게 슬펐다. 결코 단순하지 않은, 결코 하나될 수 없는 이 세상과 인간들의 복잡함이.
그런 복잡한 심경으로 나는 '송곳'을 시청한다. 지금은 경계선 이쪽에도 저쪽에도 서지 못한 채 옆에서 지켜보고 있지만, 언젠가는 악몽같던 과거 기억의 올무를 떨쳐내고 보다 홀가분한 마음으로 약자의 편에 설 수 있는 날이 오기를 기원하며, 부디 '송곳'이라는 훌륭한 드라마가 나의 방황을 끝내는 데 조금이나마 도움 주기를 기원하며 끝까지 시청해 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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