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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무리의 유리벽 열기
무슨 '전원일기'도 아니고 세련된 김태희가 여주인공으로 컴백하는 드라마의 제목이 왜 하필 '용팔이'인가 했더니 '용한 돌팔이' 의사가 남주인공이었다. 그걸 몰랐을 때는 진짜 촌스럽고 요령부득인 제목이라 생각했는데, 내막을 알고 나니 제법 센스있고 멋진 제목처럼 느껴진다. 최고의 실력을 지녔으나 히포크라테스 선서보다는 오직 돈의 노예로 살아가는 의사 김태현(주원), 그가 바로 용팔이다. 법의 단속을 피하느라 병원에 갈 수 없는 조폭들의 불법 수술을 도맡아 하는 것은 물론, 병원에서는 환자 보호자들에게 노골적으로 촌지를 뜯어내는가 하면, 신입 인턴들에게는 대놓고 집안 배경을 캐물으며 가진 자에게 아부하려는 속내를 드러낸다. 그 모든 파렴치함의 원인은 좀 신파스럽게도 아픈 여동생의 치료비 때문이었다. 찢어지게..
솔직히 '오 나의 귀신님'의 초반 설정은 썩 마음에 들지 않았다. 제대로 된 연애조차 못 해보고 억울한 죽음을 맞이한 처녀귀신 신순애(김슬기)가 '처녀의 한'을 풀지 못해 이승을 떠돌고 있다는 설정부터가 황당했다. 따지고 보면 젊은 나이에 죽음을 맞이한 사람들 중에는 그런 경우가 적지 않을 터인데, 처녀(또는 총각)의 한 때문에 편안히 하늘로 돌아가지도 못한다는 것은 매우 편협하고 모욕적인 발상이라 여겨졌다. 더욱이 이승을 떠돈지 3년이 되도록 그 한을 풀지 못하면 악귀가 되어 영원히 인간 세상에 해악을 끼치는 존재로 남게 된다니, 어찌 인간이 그토록이나 성(性)에만 얽매이고 종속된 존재일 수 있겠는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청을 포기하지 않은 것은 박보영의 사랑스럽고도 능청스런 연기에 반했기 때문이다. ..
최근 몇 개월 동안 썩 마음에 드는 드라마가 없어서 리뷰를 안 썼더니 감각이 무디어져 버린 것 같다. 하지만 모처럼 괜찮았던 드라마 '프로듀사'를 다 보고 나서 한 마디 언급조차 안 한 채 떠나 보내기는 아쉬우니까, 단순히 되짚어 보는 수준이라도 최종회 리뷰를 써 보고자 한다. 사실 초중반까지는 크게 끌리는 면을 발견하지 못했는데, 후반에 접어들수록 인물들의 개성이 반짝반짝 살아나고 멋진 대사들이 줄줄이 쏟아져 나오면서 포텐이 터졌다. 멋진 대사들이 참 많았는데 일일이 언급하자니 메모를 안 해놔서 어렵겠고, 내가 이 리뷰를 쓰게 된 결정적 원인을 제공한 탁예진(공효진)의 대사를 중심으로 몇 가지만 언급하도록 하겠다. 하지만 그 전에 주인공들이 대략 어떤 인물들인지부터 살펴보는 게 좋을 것 같다는 생각도 ..
홍자매의 신작드라마 '맨도롱 또똣'은 그 독특한 제목에서부터 관심이 끌리는 작품이다. 처음에는 '제주도 개츠비'라는 제목이 물망에 올랐으나, 결국은 '기분좋게 따뜻한' 이라는 뜻의 제주 방언인 '맨도롱 또똣'으로 결정되었다고 한다. 기분좋게 따뜻한... 어쩐지 그 제목만으로도 어떤 느낌의 드라마인지 알 수 있을 듯하다. 벌써 몇 주 전부터 이 작품을 기다려 온 이유는 나도 좀 '기분이 좋아지고 싶어서'였다. 꽃 피는 춘삼월 이 좋은 시절에 (양력으로는 요즘이 5월이지만 음력으로는 3월이다) 어울리지 않게, 특별히 우울할 일도 없는데 수시로 서늘한 우울감에 빠지는 요즘은 나도 좀 '기분좋게 따뜻한' 느낌에 빠져보고 싶었다. 영화나 드라마에 관한 내 취향은 원래 애틋하고 절절하고 우수어린 멜로 쪽이지만 요즘..
요즘 볼만한 드라마가 하도 없어서 그냥 무심히 틀어놓고 있었을 뿐, 초반에는 그닥 흥미롭게 느끼지 못했던 '풍문으로 들었소'(이하 '풍들소')가 최근 엄청나게 재미있어졌다. 갓 스무 살의 여주인공 서봄(고아성)의 캐릭터가 무섭도록 급격히 변화하는데, 그 변화의 과정을 지켜보는 맛이 제법 쏠쏠하다. 그런데 재미있기는 하지만 기분이 썩 유쾌하지는 않다는 것이 함정이다. 쫄깃한 긴장감 속에서 '풍들소' 14회를 숨죽이고 시청한 후, 내 마음속에 남은 것은 씁쓸한 감정과 묘한 두려움이었다. 서봄은 가난한 서민 가정의 둘째딸이며, 청소년 미혼모 출신의 중졸 여성이다. 19세가 되던 해 봄, 불장난같은 첫사랑으로 덜컥 임신을 한 후 고등학교에서는 자퇴를 해 버렸다. 그러나 만삭이 되어가던 어느 날, 기적과도 같은 ..
아씨, 울지 마세요. 내가 끝까지 곁에서 지켜주고 싶었는데, 그래서 우리 아씨가 예전처럼 환하게 웃는 모습 꼭 다시 보고 싶었는데, 이렇게 먼저 떠나려니 참 미안하게 되었네요. 그래도 아씨 곁에 무명 오라버니가 있어서 다행이에요. 내 생각엔, 무명 오라버니라면 믿어도 될 것 같아요. 아버님도 잃고, 은기 도련님도 잃고, 이제 나까지 잃어버리고 세상에 혼자 남게 된 불쌍한 우리 아씨... 무명 오라버니가 꼭 지켜줄 거라고 난 믿어요. 아씨는 어렸을 적부터 나에게 참 잘 대해 주었어요. 몸종이라기보다는 동생처럼 예뻐하며 살갑게 대해 주었죠. 그래서 난 하녀의 신분이면서도 기죽지 않고 행복하게 지낼 수 있었어요. 만약 아씨가 병판 대감 댁의 마님이나 윤옥 아씨처럼 얼음장같은 태도로 하녀들을 부렸다면 어림도 없..
비난이든 뭐든 예전처럼 폭발적 반응을 일으키지는 못하고 있음에도 임성한 작가의 '압구정 백야'는 어김없이 연장이 결정되었다. 전작 '오로라 공주' 때는 하루가 멀다 하고 시끌시끌하긴 했지만 그만큼 대중적 관심이 높다는 증거였기에 30회 연장도 그러려니 했는데, 이번에는 밋밋한 반응에도 불구하고 비슷하게 29회 연장을 결정했으니 아직도 MBC는 임성한 카드를 쉽게 포기하지 못하는 모양이다. 최근 황당스레 죽음을 맞이한 조나단(김민수) 때문에 임성한의 데스노트가 다시 화제를 일으켰다. 나 역시 개연성 없는 죽음으로써 등장인물을 너무 쉽게 하차시키는 임성한의 수법이 좋지 않다는 것을 인정한다. 하지만 굳이 비난의 어조로 언급하고 싶지는 않았다. 하루이틀의 문제도 아니고 어쩌면 이제 그 부분은 임성한 특유의 스..
현고운 작가의 원작소설을 읽지는 않았지만 '빛나거나 미치거나' (이하 '빛미') 라는 제목이 고려 제4대 임금 광종에게서 비롯된 것임은 알고 있다. 현재 '빛미'에서 장혁이 열연하고 있는 남주인공 캐릭터 '왕소'가 바로 훗날의 광종이다. 광종은 노비안검법과 과거제도 시행 및 관복 제정 등 여러가지 빛나는 업적을 세웠으나, 재위 중반부터 시작된 공신과 왕실에 대한 피의 숙청으로 인해 성군(聖君)보다는 오히려 광기(狂氣)의 왕이라 평가되곤 한다. 960년부터 975년 광종이 죽기 직전까지 무려 15년 동안이나 이어진 피의 숙청은 많은 폐단을 낳았다. 노비가 주인을 고발하고 아들이 아비를 참소하는 등 온갖 참소와 무고가 난무했으며, 감옥은 턱없이 모자라고 죄없이 살육당하는 자가 꼬리를 물었다. 숙청의 손길은 ..
불과 1회가 방송된 후 세트장에서 발생한 화재 사고로 스태프 1명이 목숨을 잃는 등 큰 피해를 입고 방송을 중단했던 JTBC 사극 '하녀들'이 슬픔과 충격을 딛고 심기일전하여 대략 한 달만에 다시 방송을 시작했다. 1회만으로도 상당히 괜찮은 작품이 될 거라는 예감이 들었는데, 워낙 비극적인 사고가 발생한지라 방송 재개 여부조차 불투명했기에 가슴 아프면서도 못내 아쉽던 터였다. 부디 제작진과 출연진이 최선을 다하고 힘을 합쳐 '하녀들'을 최고의 명작 드라마로 탄생시킬 수 있다면, 안타깝게 순직한 스태프의 영혼에도 가장 큰 위로와 선물이 되지 않을까 싶다. 리뷰에 앞서,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빈다. 어쩐지 원작 소설이 있을 듯해서 찾아보니, 극본을 쓴 조현경 작가는 드라마작가 겸 소설가라고 한다. 그래서 소설..
현고운 작가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만들어진 드라마 '빛나거나 미치거나'는 '로맨틱 코미디 사극'이라는 독특한 장르를 표방하며 출발했다. 남주인공 왕소(장혁)는 고려의 제4대 임금 광종(光宗, 925 ~ 975)이며, 여주인공 신율(오연서)은 발해의 마지막 공주로 설정되어 있는데 주요 캐릭터 중에는 거의 유일한 가상 인물이다. 왕소의 연적 왕욱(임주환)은 태조 왕건의 아들이자 광종의 이복형제이며 8대 임금 현종의 부친으로 기록된 인물이고, 신율의 연적 황보여원(이하늬)은 광종의 비(妃)인 대목왕후(大穆王后)로서 역시 실존 인물이다. 일단 묵직하고 비장한 시대적 배경에 마음이 끌리는데, 어울리지도 않는 코미디 욕심 때문에 망가질 듯하여 미리 걱정을 좀 했다. 하지만 첫방송을 보니 의외로 코믹 요소가 자연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