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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녀들' 오만한 공주 정유미, 나락으로 떨어지다 본문

드라마를 보다

'하녀들' 오만한 공주 정유미, 나락으로 떨어지다

빛무리~ 2015. 1. 25. 06: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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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과 1회가 방송된 후 세트장에서 발생한 화재 사고로 스태프 1명이 목숨을 잃는 등 큰 피해를 입고 방송을 중단했던 JTBC 사극 '하녀들'이 슬픔과 충격을 딛고 심기일전하여 대략 한 달만에 다시 방송을 시작했다. 1회만으로도 상당히 괜찮은 작품이 될 거라는 예감이 들었는데, 워낙 비극적인 사고가 발생한지라 방송 재개 여부조차 불투명했기에 가슴 아프면서도 못내 아쉽던 터였다. 부디 제작진과 출연진이 최선을 다하고 힘을 합쳐 '하녀들'을 최고의 명작 드라마로 탄생시킬 수 있다면, 안타깝게 순직한 스태프의 영혼에도 가장 큰 위로와 선물이 되지 않을까 싶다. 리뷰에 앞서,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빈다. 



어쩐지 원작 소설이 있을 듯해서 찾아보니, 극본을 쓴 조현경 작가는 드라마작가 겸 소설가라고 한다. 그래서 소설같은 느낌이 들었던 모양이다. 아직은 생소한 이름이지만, '하녀들' 이후로는 조현경 작가의 차기작을 기대할 수 있게 되었으면 좋겠다. 시대 배경은 조선 초기 태종 시절로서 드라마를 통해 많이 다루어진 시기임에도 '하녀들'은 결코 식상함에 빠지지 않았다. 기존의 사극들처럼 왕족과 신하들의 이야기가 아닌, 그 격랑의 시대를 살아갔던 민초와 하녀들의 이야기를 중심으로 끌어올렸기 때문에 접근 자체가 신선하다. 그러면서도 당시의 정치적 상황과 권력 암투에 관한 이야기가 켜켜이 스며들어 있어 역동성과 무게감을 더한다. 


개국공신 국유(전노민)의 외동딸 국인엽(정유미)은 도도한 공주다. 여기서 공주라 함은 왕의 딸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그 성품이 '공주스러움'을 뜻한다. 워낙 귀히 자란 탓에 오만한 성정이 골수까지 배어 있다. 비록 절체절명의 위기에서 자기 목숨을 구해준 은인이라 해도 그 신분이 천한 종이라면, 그런 놈이 감히 자신의 귀한 몸에 손을 대었다는 생각으로 일단 분개하며 뺨을 후려친다. 장차 운명의 상대가 될 무명(오지호)과의 첫 만남은 그토록 강렬하고 짜릿했다. 무명은 병조판서 허응참(박철민) 댁의 노비로서 그 정체가 심히 미스테리한 인물인데, 홈페이지의 인물소개에 의하면 그의 본명은 '이비'로서 고려 부흥을 위해 조직된 비밀결사 '만월당'의 일원이다. 



남녀 주인공이 모두 흔해빠진 착한 인물이 아니라서 더욱 흥미롭다. 오만한 국인엽은 양반의 딸로 태어난 자기의 신분을 당연한 특권으로 여기며 하인 하녀들을 벌레보듯 무시한다. (최측근인 몸종 사월이에게만은 예외적으로 친밀한 태도를 보이지만, 그것은 개인적 친분에 의한 특별대우일 뿐 천민에 대한 인엽의 기본 의식과는 상관없는 것이다.) 무명 역시 자신의 목표 달성에만 관심이 있을 뿐, 인간애라든가 측은지심 따위는 별로 없어 보인다. 하녀 옥이가 허응참의 씨를 잉태하자 안방마님 윤씨부인(전미선)은 무명을 불러 그녀를 처리하라 명하는데, 무명은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옥이를 끌어다가 단칼에 목숨을 끊어버렸다. 


여주인공 인엽에게 일생 일대의 시련이 닥치면서 이 드라마는 시작된다. 태조 이성계의 총신이었지만 태종 이방원에게는 신임을 받지 못하고 있던 국유는 끝내 역모의 누명을 쓰고 능지처참을 당한다. 함흥에 칩거하고 있던 이성계의 밀명을 받아 만월당 세력에 접근했던 것이 꼼짝없이 역모로 둔갑한 것이다. 누군가의 음모와 배신이 있었음을 짐작할 수 있는 부분이다. 국유가 잡혀가던 날은 하필 외동딸 인엽의 혼례식 날이었다. 느닷없이 들이닥친 의금부 군사들의 습격으로 혼례식은 풍비박산이 되고, 눈부시게 꽃단장한 새신부 인엽의 미래는 시궁창에 처박혔다. 오만한 공주가 삽시간에 대역죄인의 딸로서, 그토록 벌레보듯 하던 노비가 될 운명에 처한 것이다.




새신랑 김은기(김동욱)는 호조판서 김치권(김갑수)의 막내아들이다. 그는 어려서부터 알고 지내던 인엽을 진심으로 사랑했지만 그녀의 속절없는 추락을 막을 길이 없었다. 파탄난 혼례식의 충격에 이어, 김은기에게는 재차 삼차의 시련이 기다리고 있다. 하녀 신분으로 떨어져버린 인엽은 머지않아 무명과 사랑에 빠지게 될 것이며, 짐작컨대 국유를 배신하여 죽음에 이르게 한 사람은 그의 부친 김치권일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국유는 사돈이 될 김치권에게 태조의 밀명과 만월당에 대한 자신의 계획을 털어놓으며 유사시에 증인이 되어 줄 것을 당부했는데, 순간 흔들리는 김치권의 눈빛은 그가 믿지 못할 사람임을 말하고 있었다. 


인엽을 향한 사랑에 집착하는 아들 은기를 질책하며 김치권은 말했다. "사내에게 순수는 욕이다. 순수 대신 야망을 가져라. 인엽이든 누구든 간에 세상을 가지면 원하는 여자들이 모두 네 발밑에 엎드릴 것이다." 사내에게 순수는 욕이라니... 비정하고 섬뜩한 그 말을 확신에 찬 어조로 내뱉을 때, 그가 바로 악역의 끝판왕임을 나는 느꼈다. 비록 하녀의 신분으로 추락했지만 새로운 사랑을 만나고 인생의 진정한 의미를 깨달아갈 인엽과, 비록 높은 지위와 권세를 지녔으나 부친의 혹독함에 좌절하고 잃어버린 사랑에 목말라하다가 차츰 악인으로 변해갈 은기 중에 과연 누가 더 불쌍한 캐릭터일까? 



무명에 관해 말하자면 2회까지 비춰진 모습으로 볼 때, 그는 마치 사이보그처럼 비정한 살수이며 냉혹한 스파이로 키워진 인물이다. "아씨의 신발 한 번 신어 본 죄로 그 여종은 치도곤을 당하고 있습니다. 아씨의 자존심 중요하겠지요. 하지만 사람 하나가 죽어나가도 좋을 만큼 그게 그렇게 중요하십니까?" 여종 단지(전소민)가 자기의 꽃신을 신어 보았다는 이유로 더러워서 못 신겠다며 오기를 부렸던 인엽에게 무명은 마치 노비들의 인권을 대변이라도 하는 것처럼 청산유수의 훈계를 늘어놓았지만, 영혼이라고는 담겨있지 않은 빈말이었다. 정말 노비의 인권이나 사람의 목숨을 소중히 여겼다면, 임신한 옥이를 그렇게 죽일 수는 없었을테니까. 


그런 무명이 어느 날 갑자기 사랑에 빠진다면, 필히 엄청난 혼란을 겪게 될 것이다. 거추장스런 인정이나 측은지심 따위는 깨끗이 외면한 채 목표만을 향해 달려온 그의 인생에, 여인을 사랑하는 마음이란 크나큰 걸림돌일 수밖에 없으니까. 하지만 철없이 귀히 자라서 오만했던 인엽은 차츰 따스한 인간미를 드러내며 무명을 감화시킬 것이고, 무명은 자신의 강인함과 노련함으로 의지할 곳 없는 그녀를 든든히 지켜줄 것이다. 과연 인엽은 어떻게 죽음의 유혹을 이겨내고 척박한 하녀의 삶에 적응해 나갈까? 그토록 무시하던 노비와 천민들이 사실은 자기와 똑같은 인간이었음을 깨닫고 어떻게 성숙해 나갈지, 오만한 공주 인엽의 변화 과정이 우선은 가장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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