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록드라마를 보다 (259)
빛무리의 유리벽 열기
'월계수 양복점 신사들'을 시청하다 보면 저절로 입가에 웃음이 지어진다. 대부분의 등장인물이 매우 착하고 솔직한 데다가, 악역의 포지션에 있는 사람들조차 어설프고 귀여운 수준이라서 가볍고 유쾌한 마음으로 볼 수 있다. 요즘 그러잖아도 시국이 뒤숭숭하고 현실이 답답한데, 이 와중에 '퍽퍽한 고구마를 목구멍에 마구 쑤셔넣는' 드라마는 솔직히 별로 매력 없는게 사실이다. 가끔씩 사이다를 먹여준다고 해도 기본적으로 고구마가 많은 드라마는 당기질 않는다는 뜻이다. 그런 의미에서 순수하고 따뜻한 사람들의 이야기인 '월계수 양복점 신사들'은 마음을 편하게 해주는 매력적인 작품이라고 볼 수 있다. 오히려 그래서 비현실적이기도 하지만. 솔직 순수해서 예쁜 인물들 중에도 가장 눈에 띄는 인물은 돌직구 짝사랑녀 민효원(이세..
한여름의 지상파 수목드라마 전쟁에서 내가 '질투의 화신'을 선택하게 되리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못했는데 결국 이렇게 되고 말았다. '태양의 후예' 못지 않게 기대해 왔던 이경희 작가의 '함부로 애틋하게'는 도저히 21세기 작품이라고는 믿을 수 없을 만큼 진부한 설정에다가, 아예 대놓고 "자, 슬프잖아! 펑펑 울어! 울란 말야! 이래도 안 울어?" 라고 외치는 듯한 느낌이 처음부터 너무 강하게 들어서 1회를 보고 나니 2회를 보기가 싫어졌다. 내가 아무리 애틋하고 절절한 드라마를 좋아한다지만, 너무 노골적으로 강요하면 좋던 것도 싫어지고 금세 질리는 법이다. 한 때 시트콤의 거장 김병욱 PD와 콤비를 이루어 정말 소름끼치도록 멋진 여러 작품을 선사해 주었던 송재정 작가의 '더블유(W)' 역시 엄청난 기대작이..
셰어하우스 '벨 에포크'에는 다섯 명의 청춘 여성들이 함께 생활하고 있다. 생활고와 동생의 병원비 때문에 아르바이트와 휴학을 반복하느라 28세가 되도록 대학을 졸업하지 못한 윤진명(한예리), 첫사랑이자 현재의 남자친구인 고두영(지일주)에게 헌신을 바치지만 그 대가로 헌신짝 취급을 받고 있는 22세의 순정파 여대생 정예은(한승연), 유부남을 포함해서 돈 많은 세 명의 애인 사이를 오가며 한 달에 800만원 가량을 물쓰듯 사용하는 24세의 꽃뱀(?) 강이나(류화영), 예쁘고 똑똑하고 성격 좋지만 당최 남자가 붙질 않아 모태솔로임을 한탄하는 22세 여대생 송지원(박은빈), 그리고 갓 스무 살의 신입생으로 아직은 모든 것이 낯설고 수줍은 유은재(박혜수). '청춘시대'는 제각각 다른 개성을 지닌 이 여성들의 캐릭..
'칸의 여인' 전도연이 오랜만에 브라운관 복귀를 선언하며 화제를 모은 드라마 '굿와이프'의 첫방송이 전파를 탔다. 전도연 뿐만 아니라 유지태, 김태우, 윤계상, 김서형 등 함께 출연하는 배우들의 묵직한 이름만으로도 '굿와이프'는 관심이 끌리는 작품이었다. 더욱이 최근 인기리에 방송되었던 미드(미국 드라마)의 한국판 리메이크작이라는 점에서도 궁금증이 일었다. '굿와이프'는 15년 동안 남편 이태준(유지태)의 그늘에서 살아왔던 김혜경(전도연)이 갑작스레 남편의 그늘 밖으로 밀려나와 홀로서기를 하게 되는 과정부터 시작되었다. 강직하고 실력있는 검사로서 장래가 촉망되던 이태준은 금품 비리와 성상납 혐의로 구속되었고, 설상가상 매춘부와의 은밀한 관계가 찍힌 동영상까지 외부로 유출되며, 가정주부 김혜경의 평화롭던 ..
예전에는 예쁜 오해영(전혜빈)을 사랑하다가 이제는 그냥 오해영(서현진)을 사랑하게 되어버린 남자 박도경(에릭)에게 그의 친구 이진상(김지석)은 물었다. "너 혹시 오해영이라는 이름만 들으면 흥분하는 거냐? 어떻게 '또 오해영'이야?" 참 얄궂은 인연으로 만나게 된 박도경과 그냥 오해영의 사랑은 그렇게 누구에게도 이해받기 어려운 것이었다. 얼마나 힘든 사랑이 될지를 처음부터 알고 있었던 박도경은 그래서 끌리는 마음을 애써 억제하며 시작하지 않으려 했지만, 한없이 순수한 열정으로 다가서는 오해영의 사랑스러움을 끝내 거부할 수 없었다. 그렇게 사랑의 달콤한 나날은 시작되었지만 야속하게도 너무나 짧았다. 언젠가는 터질 줄 알면서도 박도경이 차마 터뜨리지 못하고 망설이던 폭탄을 가차없이 터뜨린 사람은 한태진(이재..
'디어 마이 프렌즈' 한 회 한 회 등장인물들의 모습과 대사들을 가슴에 새기듯 깊은 마음으로 시청하면서도 의외로 할 말이 많지 않은 이유는 내가 너무 어려서일 것이다. 최근 몇 년 동안 나는 스스로 꽤 나이 많다고 생각해 왔는데, 이 드라마를 보면서 느낀 것은 아직도 내가 까마득한 어린애라는 점이었다. 평균 연령 70대의 '디마프' 등장인물들이 보여주는 세상을 내가 어찌 감히 이해한다거나 공감한다고 말할 수 있을까? 마치 그랜드캐년과 같은 거대한 협곡을 마주한 것처럼, 도저히 가늠할 수 없는 깊이에 압도되어 숙연함과 경외심만 느낄 뿐이었다. 오히려 37세의 청춘(?) 박완(고현정)의 입장에 훨씬 공감과 몰입이 잘 되는 걸 보면, 역시 나는 아직 어린 모양이다. 물론 박완의 모든 선택과 행동에 공감하는 것..
tvN월화드라마 '또 오해영'의 인기가 심상치 않다. '또 오해영'은 방송 5회만에 케이블 드라마로서는 초대박이라 할 수 있는 5%의 시청률을 넘기며 뜨거운 화제를 불러일으키고 있는데, 그 화제의 중심에 선 인물은 여주인공 오해영 역을 맡은 서현진이다. 이 드라마에는 동명이인으로서 두 명의 오해영이 등장하는데 서현진의 (흙)오해영은 명랑하고 긍정적인 성격의 평범한 여성이고, 전혜빈이 맡은 (금)오해영은 눈부신 미모와 출중한 능력을 겸비해 어딜 가나 주목받는 여성이다. 얄궂게도 동갑내기인 두 사람은 같은 학교를 다니며 늘상 비교되는 운명에 처하는데, 결국 (흙)오해영은 (금)오해영의 그림자처럼 취급되며 억울한 인생을 살아가게 된다. 특히 '예쁜 오해영'과 구별하기 위해 '그냥 오해영'으로 불려야 했던 기억..
'욱씨남정기' 후속 드라마 '마녀보감', 동시간대에 함께 출발한 '디어 마이 프렌즈' 쪽으로 일찌감치 마음을 굳힌 터라 큰 관심은 없었지만, 방송 후 내 블로그에 '흑주술'이라는 키워드로 유입량이 급증했기에 검색하다가 이유를 알게 되었다. 해당 포스팅은 드라마 '해를 품은 달'과 관련하여 4년 전에 썼던 것인데, '마녀보감' 1회에 흑주술이라는 소재가 다뤄짐으로써 대중의 관심이 다시 집중되었던 모양이다. 갑자기 궁금해져서 시청해 보았는데, 무녀 홍주 역을 맡은 염정아의 열연과 더불어 흑주술 부분은 제법 임팩트 있게 표현된 것 같지만 차후의 내용 전개에는 크게 끌리지 않는 터라 계속 시청할지 어떨지는 잘 모르겠다. 시대 배경은 조선 명종 때이다. 실록에 따르면 명종의 유일한 아들이었던 순회세자가 13세라는..
노희경 작가의 새 드라마 '디어 마이 프렌즈'의 첫 방송을 앞두고 기대가 몹시 크다. 마음 끌리는 드라마가 거의 없는 요즘, '디마프'는 메마른 가슴에 촉촉한 비를 내려주리라는 믿음이 생긴다. 김영옥, 김혜자, 나문희, 윤여정, 고두심, 박원숙, 신구, 주현... 그들의 이름만으로도 벌써 가슴이 벅차온다. 평균 연령 70여세, 평균 연기 경력 50여년... 젊은 주인공들의 뒷배경으로 물러선지도 어언 수십년인 그들이 이번에는 당당히 주인공으로 앞에 나섰다. "받아주지 않으니까, 이들은 돈이 되지 않으니까, 이들은 사람들이 좋아하지 않으니까... 실제 캐스팅을 하면서도 어른들 이야기를 보겠어? 했지만... 그런데 이제 문득, 진짜 그런가? 진짜 안 보나? 한 번 해보자, 저질러 보자 하는 생각이 첫번째였고,..
'옥중화'의 옥녀(진세연, 아역 정다빈)는 매우 특별하다. 필자의 개인적 체험으로는 이제껏 그 어떤 드라마에서도 본 적 없는 여주인공이다. 특히 '대장금'을 비롯한 이병훈 감독의 전작들에 어떤 여성들이 주인공으로 등장했는지를 돌이켜 보면 더욱 놀랍지 않을 수 없다. 이것은 새롭고도 흥미진진한 실험이다. 사실 '옥녀'와 같은 캐릭터는 착하고 올곧은 여주인공의 대척점에서 끈질기게 괴롭히는 악녀의 포지션에 훨씬 적합하기 때문이다. '옥중화' 1~2회를 시청한 후 옥녀에게서 떠오른 이미지는 장금(이영애)이 아니라 금영(홍리나) 또는 최상궁(견미리)이었다. 고작 열 다섯 살의 어린 소녀임에도 옥녀는 매우 영악스럽고 정치적인 기질을 지녔다. 그녀는 절대 속마음을 겉으로 내뱉지 않고, 상대방의 귀에 꿀처럼 달게 느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