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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투의 화신' 병맛 속에도 마음을 사로잡는 몇 가지 포인트 본문

드라마를 보다

'질투의 화신' 병맛 속에도 마음을 사로잡는 몇 가지 포인트

빛무리~ 2016. 8. 25. 1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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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여름의 지상파 수목드라마 전쟁에서 내가 '질투의 화신'을 선택하게 되리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못했는데 결국 이렇게 되고 말았다. '태양의 후예' 못지 않게 기대해 왔던 이경희 작가의 '함부로 애틋하게'는 도저히 21세기 작품이라고는 믿을 수 없을 만큼 진부한 설정에다가, 아예 대놓고 "자, 슬프잖아! 펑펑 울어! 울란 말야! 이래도 안 울어?" 라고 외치는 듯한 느낌이 처음부터 너무 강하게 들어서 1회를 보고 나니 2회를 보기가 싫어졌다. 내가 아무리 애틋하고 절절한 드라마를 좋아한다지만, 너무 노골적으로 강요하면 좋던 것도 싫어지고 금세 질리는 법이다. 


한 때 시트콤의 거장 김병욱 PD와 콤비를 이루어 정말 소름끼치도록 멋진 여러 작품을 선사해 주었던 송재정 작가의 '더블유(W)' 역시 엄청난 기대작이었지만, 세간의 호평과는 상관없이 내 마음에는 전혀 와닿지 않아서 초반에 잠시 노력해 보다가 5회부터 시청을 포기했다. 송작가의 최근 작품들 '인현왕후의 남자'(2012), '나인 : 아홉 번의 시간 여행'(2013), '삼총사(2014)'를 모두 재미있게 보았었기 때문에 이번에도 정말 큰 기대를 했는데, 웹툰 속 주인공이 실제 사람과 똑같이 살아 움직이며 자의식을 갖고 행동한다는 설정 자체에 나는 전혀 눈꼽만큼도 공감할 수가 없었다. 


따지고 보면 '인현왕후의 남자'와 '나인'에서 등장했던 '시간 여행'이라는 소재 역시 현실적으로는 불가능한 판타지였는데, 그 때는 흥미롭게 몰입했으면서 왜 이번에는 그럴 수 없는 것일까? 스스로도 그 이유를 명확히는 모르겠으나, 아마도 종교적인 영향이 큰 것 같다. 나는 웹툰 속 등장인물이 실제로 살아있다는 가설부터가 마뜩잖았고, 주인공 강철(이종석)이 자신을 창조해낸 웹툰 작가 오성무(김의성)에게 대적하며 살해 시도까지 하는 장면에서는 지독한 불편함을 느꼈다. 복잡 미묘한 문제라서 간단히 설명할 수는 없지만, 아무튼 그렇게 '더블유(W)' 까지 포기해버린 나의 텅 빈 수목요일에 공효진 조정석 주연의 로코물 '질투의 화신'이 불쑥 들어왔다. 

원래 로코물을 좋아하지도 않고 제목도 영 끌리지 않아서 큰 기대는 없었지만, 그래도 공효진이니까 한 번쯤 보는 것도 나쁘진 않겠다 싶었다. 어차피 그 시간에 볼 것도 없으니까. 그렇게 1회를 시청한 소감은 의외로 콜~ 이었다. 첫방송 후 시청자의 반응은 썩 좋다고 볼 수 없지만, 나는 오히려 단점보다 장점에 더 집중하며 이 드라마를 즐길 수 있는 몇 가지 포인트를 발견했던 것이다. 공효진과 조정석의 연기는 예상대로 훌륭했고 그들의 연기에 힘입어 두 주인공 표나리와 이화신은 시선몰이에 성공했지만, 내 마음은 오히려 주변 인물들에게 매료되고 있었다. 로코물 특유의 다소 억지스런 전개 속에, 이 주변인들의 활약은 은은한 인간미와 따스함을 뿜어내고 있었던 것이다. 


김락(이성재)은 표나리(공효진)가 금쪽같은 남동생 표치열(김정현)을 데리고 옥탑방에 세들어 사는 '락 빌라'의 주인이다. 건물주이긴 해도 대출받아 구입한 것이라 딱히 부자라고 할 수는 없다. 1층에서 '락 파스타'를 운영하며 열심히 빚을 갚는 중인데, 오너 셰프로서 자기 요리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하다. 40대 초반의 미혼남인 그는 빌라 2층에서 친구의 아들인 오대구(안우영)를 데리고 사는데, 옥탑방의 표남매는 물론 3층에 세들어 사는 빨강이(문가영)까지도 그를 아버지처럼 의지하고 있다. 말하자면 하우스푸어에다가 노총각인 그의 인생도 만만찮게 갑갑하고 고달프련만, 그는 마치 달관한 성자처럼 남의 다 큰 아이들을 자기 아이처럼 보듬으며 살아가는 것이다. 

동갑내기 고3짜리인 표치열, 오대구, 이빨강은 아침마다 김락의 차를 타고 등교한다. 거기에 31살 된 표나리도 한 몫 꼽사리 끼어 운전석 옆자리에 타고 방송국으로 출근한다. 눈치를 보아하니 월세를 제외하고 따로 차비를 받는 것 같지는 않은데, 피곤한 아침마다 운전기사 역할을 자청하는 김락의 자상함은 친아버지라도 따르지 못할 것이다. 사실 3층 빨강이는 친아빠 이중신(윤다훈)과 함께 살고 있었는데, 사업 실패 후 알콜중독 폐인이 되어 누워있던 이중신이 뇌출혈로 사망하며 빨강이의 주변에는 거센 소용돌이가 일어날 예정이다. 친엄마 계성숙(이미숙)과 의붓엄마 방자영(박지영)이 외동딸의 엄마 자격을 두고 격돌할 것이기 때문이다. 


이중신이 쓰러지자 혈연도 무엇도 아닌 김락은 기꺼이 보호자를 자청하며 구급차에 함께 오른다. 입원수속 및 수술동의서에 사인 등 다급한 일처리를 마친 후에야 학교에 있는 빨강이를 부르러 간다. 마침 빨강이의 교실에서는 한창 시험이 진행되는 중이었는데, 아버지의 불행한 소식을 듣고 빨강이가 달려나가자 치열이와 대구도 벌떡 일어나 그녀를 따라간다. 전교 꼴찌 이빨강은 시험을 중도 포기해도 상관없지만 전교 1~2등인 치열이와 대구는 그러면 안 된다고 선생님이 만류하는데, 의리로 똘똘 뭉친 이 녀석들은 시험보다 친구가 더 소중하다며 결코 이런 때에 빨강이를 혼자 둘 수 없다며 고집스레 달려나간다. 좀 오글거리긴 하지만, 그래도 녀석들 나름 꽤 멋있었다.


 

또 하나의 인상적인 인물은 표남매의 어린 새엄마(?) 리홍단(서은수)이었다. 홈피 인물소개에 26세라고 나와 있으니, 리홍단은 표나리보다도 5살이나 어린 셈이다. 사실 불법체류자 신분으로 5살난 아들을 데리고 전전긍긍하는 홍단을 가엾이 여긴 표남매의 아버지는 불쌍한 모자를 돕기 위해 혼인신고를 해주었던 것이다. 뿐만 아니라 아들 범이까지 표씨 집안의 호적에 올려 주니, 홍단은 은혜를 갚는 마음으로 열심히 표남매를 돌보고 있다. 나리와 치열이가 차갑게 밀어내는데도 불구하고 꿋꿋이 찾아와 음식도 갖다 놓고 청소며 빨래까지 해주고 가는 홍단의 모습은 김락과는 또 다른 의미에서 인간적인 따스함을 느끼게 한다. 


'질투의 화신' 1회에서는 표나리가 이화신의 가슴을 주물럭거리는 장면이 하도 많이 나와서 논란이 되었다. 마치 일부러 이런 논란을 일으키려고 한 것처럼, 당연히 "남자가 여자 가슴 만졌으면 당장 성추행으로 고소했을 텐데, 여자가 남자 가슴 만지는 건 괜찮냐?" 라면서 시끄러워질 것을 예상 못했을 리가 없는데도 굳이 그렇게 불편한 장면을 넣은 이유를 솔직히 잘 모르겠다. 아무리 유방암에 걸렸던 자기 엄마의 가슴과 촉감이 비슷해서라지만, 그렇게 때와 장소를 불문하고 남자의 가슴을 주무르는 행동은 여주인공을 변태처럼 보이게 만들 뿐이었다. 정말 걱정된다면 솔직히 이유를 말하며 병원에 가보라고 진지하게 조언하면 될 것을.  


하지만 나는 그 부분에 집중하지 않고, 오히려 성자 같은 김락과 우렁각시 같은 리홍단과 의리있는 고딩 3인방의 인간적인 모습에 집중했기 때문에 '질투의 화신'을 좀 더 흐뭇한 마음으로 즐겁게 볼 수 있었다. 한편으로는 계성숙과 방자영의 고참 아나운서 대결도 흥미로웠고, 표나리를 비롯한 기상캐스터들이 아나운서들과 비교 차별당하며 겪는 설움도 꽤나 몰입하며 볼만했다. 차후 표나리와 이화신, 고정원 사이의 삼각관계가 본격화되면 그 멜로라인에 더 집중하게 될지 모르겠으나, 그 전까지는 주변인들의 매력적이고 인간적인 모습에 빠져보는 것도 좋은 감상의 한 방법이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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