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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무리의 유리벽 열기
백진희의 취중 고백을 받은 윤계상이 과연 어떤 방식으로 그녀의 마음을 거절할지, 사실은 그것이 궁금했었습니다. 상처를 주지 않으면서 거절한다는 것은 받아들이기보다 훨씬 더 어려운 일이니까요. 그런데 윤계상이 어떤 제스처를 취하기도 전에, 백진희 본인이 먼저 나서서 모든 상황을 정리해 버렸군요. 이렇게 될 거라는 생각은 못했었는데... 조금은 씁쓸하고 서글픈 생각이 듭니다. "저는 원래 아무나 쉽게 좋아하고, 아무한테나 쉽게 고백해 버리는 사람이니까, 그러니까 부담 갖지 마세요" 라고 진희는 계상에게 말하는군요. 자기의 사랑이 얼마나 깊고 진심어린 것이었는지를, 왜 그녀는 끝내 들키지 않으려고 했던 걸까요? 이제 와서 무슨 자존심 때문에 그런 것 같지는 않습니다. 아마도 머지않아 먼 길을 떠나야 하는 그 ..
92회에서 매우 중요한 에피소드가 방송되었죠. 결국 윤계상의 르완다행이 3월말로 확정되었음을 알게 된 백진희가 괴로운 마음에 박하선과 함께 진탕 술을 마시다가, 취중에 갖가지 방법으로 윤계상에게 사랑 고백을 해버린 것입니다. 맨정신으로 고백한 게 아니니 그냥 짝사랑을 들켜버렸다는 표현이 더 맞을지도 모르지만, 어쨌든 앞으로의 진행이 무척 궁금해집니다. 저는 계상이 예전부터 진희의 마음을 알고 있었던 것 같지만, 그 문제가 표면으로 드러나버린 지금은 어떤 식으로든 답을 해줘야 한다는 의무감이 생겼을 테니까요. 계상이 진료실로 들어가기 전에 진희가 인형을 밟지만 않았어도, 그래서 한 공간에 둘이 함께 있는 상태에서 고백하는 목소리가 울려퍼지지만 않았어도, 윤계상은 그냥 모른 척 덮어두고 지나가려 했을 겁니다..
이제껏 윤계상이 눈물을 흘리는 장면이 많지는 않았죠. 몇 번이었는지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일단 제 머릿속에 생각나는 장면들만 이야기해 보겠습니다. 첫번째는 김지원과 함께 돌보아 드리던 독거노인 할머니가 돌아가셨을 때였습니다. 두번째는 김지원이 어린 시절에 자신과 비슷한 아픔을 겪었다는 사실을 알고 나서, 그녀를 닮은 그림 속의 여자를 보았을 때였죠. 그리고 이번에 91회에서 김지원에게 자신의 어린시절 기억을 털어놓으며 흘리는 눈물이 세번째입니다. 이처럼 윤계상의 눈물은 모두 김지원과 연결되어 있는데, 기본적으로 눈물은 슬픔을 의미하며, 인간의 감정 중에 가장 순도 높은 감정이 바로 슬픔이라고 하지요. 드라마 '49일'에서 죽은 사람을 다시 살아나게 하는 매개체도 역시 눈물이었습니다. 언젠가부터 김지원은 ..
저는 언제나 윤지석(서지석)과 박하선 커플의 해피엔딩을 확신했지만, 그래도 결혼은 엔딩 무렵이 되어야 가능하지 않을까 했습니다. 워낙 속도가 느려서 말이죠. 그런데 박하선이 마음을 열자마자, 언제 머뭇거렸냐는 듯 일사천리로 진행되는 지금의 연애전선을 보면, 의외로 결혼이 빨라질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드는군요. 게다가 애써 주변에 숨긴다고 숨기는데, 둘 다 어설프기 짝이 없습니다. 교무실에 마주 앉아 티나게 띵동띵동 문자를 주고받고... 수시로 둘이 눈 마주치며 웃고... 하물며 모든 이의 시선이 집중된 시상식장에서 보란듯이 수신호로 사랑의 밀어를 속삭이고... 이러면서 남들이 눈치 못 채길 바랍니까?;; 제가 보기에 이건 차라리 동네방네 광고하는 수준이에요. 동굴 속에서 데이트하며 시시덕거리는 모습이 양쪽..
저는 안내상과 윤유선을 볼 때마다 자주 마음이 불편해집니다. 결혼 22년차... 티격태격하면서 정으로 살아가는 그들이 어쩌면 가장 현실적인 부부의 모습일지도 모르지만, 그래서 더 불편합니다. 이상주의자이며 동시에 현실주의자인 김병욱은 이들을 통해서 가장 거북한 진실을 적나라하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어디까지나 저의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인생의 가장 큰 고통은 갑자기 찾아오는 죽음이나 비극이 아닙니다. 날마다 변함없이 계속되는 구질구질한 일상입니다. 제가 여기서 말하는 구질구질함이란 결코 경제적인 이유로 찾아오는 것이 아닙니다. 믿을 수 있는 사람과 함께라면 아무리 가난해도 행복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믿을 수 없는 사람을 한평생 견디며 살아가야 한다면, 아무리 돈이 많아도 그 삶은 구질구질하다고밖에 표현할..
윤시윤의 특별 출연이 예고되며 기대를 모으던 88회가 드디어 방송되었습니다. 지금껏 등장한 모든 카메오들 중, 윤시윤의 존재감은 단연 압도적이었군요. 다른 카메오들의 출연은 모두 극의 흐름과 직접적 연관이 없는 독립 에피소드로 마련되었던 것에 비해, 오직 윤시윤은 주요 여성 캐릭터인 박하선의 첫사랑으로 등장하여 '지하커플'의 미래에 청신호를 켜주는 막강한 역할을 담당했으니까요. 저는 '제빵왕 김탁구' 이후로 윤시윤의 출연작을 본 적이 없어서 몰랐는데, 이 친구의 꽃미모는 그 사이에 더욱 샤방샤방해졌군요..ㅎㅎ 마냥 수줍기만 하던 국문과 신입생 박하선이 생각지도 않은 암벽등반 동아리에 가입한 이유는, 그 동아리에 있는 선배 윤시윤을 보고 첫눈에 반했기 때문이었습니다. 항상 그의 모습을 곁눈질하며 짝사랑을 ..
윤계상의 르완다행을 2개월 가량 남겨둔 시점에서, 보건소 근무자들의 재계약 기간이 닥쳐왔습니다. 간호사들이 재계약을 했다는 말을 듣고 백진희는 또다시 살짝 희망을 품게 되는군요. "진상아, 윤쌤이 재계약을 해서 1년 더 계실 수도 있을까...?" 화분 '진상이'를 보며 이렇게 중얼거리다가도, 헛된 기대를 하지 않으려 마음을 추스르는 그녀입니다. "괜한 생각하지 말고... 있는 날까지 즐겁게~ 아자아자!" 붙잡을 수는 없지만, 남은 시간만이라도 최대한 즐겁게 지내려는 진희의 성품은 참으로 긍정적입니다. 윤계상은 보건소 동료들에게 단합대회 겸 눈썰매장 여행을 제안하는데, 두 간호사가 각자의 사정으로 참여하지 못하게 되면서 진희와 계상 둘만의 여행이 되고 말았군요. 생각지도 못했던 감미로운 시간에 백진희는 꿈..
이렇게 편안해도 되는 걸까? 나는 이제 어른이 되었고, 어른이 된다는 것은 자기 앞에 닥치는 모든 일들을 혼자서 감당해내야 한다는 거다. 어렸을 때처럼 누군가에게 기대거나 투정을 부리거나 징징거리고 울음을 터뜨리는 것은 어른답지 못한 일이다. 더욱이 나는 아이들을 가르치는 교사가 아닌가? 아무리 힘겨워도 나는 강해져야만 했다. 어른이 된다는 것은 그런 거였다. 사기를 당해서 줄리엔 선생님의 전세금을 몽땅 날렸을 때도, 너무 억울하고 속상했지만 아무에게도 하소연할 수 없었다. 다행히 지원이가 착해서 남자 선생님과의 불편한 동거(?)를 군말없이 허락해 주었지만, 나는 언니로서 그런 동생을 대하기가 너무 민망했다. 나중에 줄리엔 선생님께 돌려드릴 전세금을 마련하기 위해서, 나는 지금도 꾸준히 월급의 일부를 떼..
유난히 춥던 어느 겨울 날, 백진희는 치매에 걸려서 길을 잃고 헤메는 할아버지 한 분을 도와드린 적이 있었죠. 그 할아버지는 헤어질 때 그녀의 손에 씨앗을 쥐어 주며 환하게 웃었습니다. "잘 키워 봐..." 그 선물은 할아버지가 진희에게 주신 것이었습니다. 그녀 혼자 힘으로는 할아버지의 집을 찾아드릴 수가 없어서 윤계상의 도움을 받긴 했지만, 그래서 두 사람은 그 씨앗 화분을 자기들의 공동 소유라 생각하고 이름 한 글자씩을 따서 '진상'이라고 이름 붙였지만, 사실 그것은 백진희 혼자만의 것이었습니다. 씨앗이 너무 오래된 것 같아서 싹을 틔울 수 있을까 염려했었지만 다행히 화분에서는 싹이 움텄고, 진희는 그것을 계상과 자기의 사랑의 새싹이라 여기고 무척이나 기뻐합니다. 하루하루 조금씩 자라나는 새싹을 볼 ..
81회에서 제가 주목한 인물은 윤지석(서지석)이었습니다. 그의 캐릭터는 자연스럽게 형 윤계상과 비교하면서 보게 되는데, 예전부터 조금씩 의아하다고 생각하며 주목해 온 부분이 있었지요. 그 의문이 이번의 세뱃돈 에피소드를 통해 약간은 정리가 되는 것 같습니다. 본론에 들어가기 앞서 백진희 에피소드에 관한 저의 의견을 잠깐 말해 본다면, 그녀의 순진한 망상과 도끼병이 좀 어이없기는 하지만 비난받을 이유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타인에게 피해를 끼친 부분은 전혀 없으니까요. 윤계상이 특별히 자기의 생일을 기억하거나 챙겨줄 이유가 없는데도 혼자 망상에 빠져서 기대하고 또 기대하는 것은, 눈먼 짝사랑에 판단력이 흐려져서이기도 하지만, 평소 지나치게 친절하고 모든 사람을 잘 챙기는 윤계상의 성품에도 원인이 있을 겁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