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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킥3' 박하선의 일기(2) - 그와 함께 있을 때 나는 어린아이가 된다 본문

종영 드라마 분류/하이킥3-짧은다리의역습

'하이킥3' 박하선의 일기(2) - 그와 함께 있을 때 나는 어린아이가 된다

빛무리~ 2012. 1. 31.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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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편안해도 되는 걸까? 나는 이제 어른이 되었고, 어른이 된다는 것은 자기 앞에 닥치는 모든 일들을 혼자서 감당해내야 한다는 거다. 어렸을 때처럼 누군가에게 기대거나 투정을 부리거나 징징거리고 울음을 터뜨리는 것은 어른답지 못한 일이다. 더욱이 나는 아이들을 가르치는 교사가 아닌가? 아무리 힘겨워도 나는 강해져야만 했다. 어른이 된다는 것은 그런 거였다.

사기를 당해서 줄리엔 선생님의 전세금을 몽땅 날렸을 때도, 너무 억울하고 속상했지만 아무에게도 하소연할 수 없었다. 다행히 지원이가 착해서 남자 선생님과의 불편한 동거(?)를 군말없이 허락해 주었지만, 나는 언니로서 그런 동생을 대하기가 너무 민망했다. 나중에 줄리엔 선생님께 돌려드릴 전세금을 마련하기 위해서, 나는 지금도 꾸준히 월급의 일부를 떼어내 저금하고 있는 중이다. 억울하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어른이라면 자기가 저지른 일에 책임을 져야 하는 거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나는 이상한 따스함과 편안함에 젖어가고 있다. 어렸을 때 집에 돌아오면 곧장 엄마한테 쪼르르 달려가 밖에서 있었던 일들을 조잘조잘 이야기했던 것처럼, 지금 나는 무슨 일만 있으면 곧장 그에게 쪼르르 달려가 모든 이야기를 털어놓곤 한다. 그 사람에게 털어놓으면 힘든 일은 별 것 아닌 것처럼 느껴지고, 기쁜 일은 두 배나 기쁘게 느껴진다. 그는 항상 귀기울여 내 말을 들어주고, 언제나 내 의견에 맞장구를 쳐 준다. 내가 억울한 일을 당하면 나보다 더 화를 내고, 해결하기 어려운 일이 생기면 자기가 책임질테니 안심하라고 나를 다독여 준다. 그러면 나는 어린아이처럼 고개를 끄덕이며 그의 어깨에 기대곤 한다.

생각해 보면 사귀기 전부터 나는 이미 그 따스함에 길들여지고 있었다. 언제부터였을까? 진짜 생일을 축하해 준답시고 내 이마에 샴페인 뚜껑을 발사하던 그 때부터였을까? 한적한 국도에서 단 둘이 첫눈을 맞던 그 때부터였을까? 아니면 설사병에 걸린 나를 위해 화장실 문을 때려부수던 그 때부터였을까? ... 하지만 불과 한 달 전까지만 해도 이렇게 될 줄은 몰랐었다. 목욕탕 바닥에 주저앉아 아이스크림을 먹으며 깔깔대고 있는 내 모습을, 그리고 동굴에서 몸을 절반만 밖으로 내민 채 나하고 아이스크림을 나눠 먹으며 내 이야기에 함께 웃거나 흥분하는 그의 모습을 그 때는 상상도 못했었다.

윤건 선생님의 음악을 칭찬한 이유는 미안해서였다. 줄리엔 선생님과 내가 한집에 산다는 이야기를 눈치없이 박지선 선생님 듣는데서 말하려는 것을 보고, 창틀에 앉아있던 그를 엉겁결에 밀어 버렸는데 그 곳이 2층이었던 것을 생각하면 지금도 식은땀이 난다. 자칫하면 정말 큰일이 날 뻔했는데, 많이 다치지 않아서 다행이었지만 줄곧 미안한 마음을 추스를 수가 없었다. 유럽 여행에서 돌아온 후에도 여전히 마음이 풀리지 않은 것 같길래 어떻게든 달래주고 싶었는데, 우연히 음악을 칭찬해 줄 기회가 생겼을 뿐이다. 물론 내가 듣기에 그의 음악이 괜찮은 것도 사실이긴 했지만, 글쎄 뭐 영혼이 울릴 정도까지는 아니었다.

그런데 아무래도 오해가 좀 있었던 모양이다. 음악을 칭찬해 준 이후로 내가 자기 머릿속에 들어와 헤집고 다니는 바람에 작곡을 할 수 없게 되었다고 윤건 선생님이 억지를 쓰기 시작한 거다. 그래서 어쩌라고? 칭찬한 것을 이제 와서 무를 수도 없고, 대놓고 나를 좋아한다고 말한 것도 아닌데 내가 먼저 넘겨짚고 오버하면서 그러지 말라고 거절할 수도 없는 일 아닌가? 정말 난감했다. 예전 같으면 이 정도의 일로도 굉장히 큰 고민에 빠졌을 거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지금은 별로 걱정이 되지 않는다. 내 이야기를 귀담아 들어주는 그 사람에게 쪼르르 달려가서 일러바치면 다 해결될 것만 같다.

"박쌤은 신경쓰지 마요. 내가 알아서 할게요!" 하더니 과연 그는 나의 문제를 한 방에 속시원히 해결해 주었다. 어쩌면 좋을까? 어른이 된 후 지금껏 나는 누구에게도 기대지 않고 혼자 힘으로 잘 버티며 살아왔는데, 점점 그럴 자신이 없어진다. 만약 이 사람이 내 곁에서 사라진다면 나는 계속 숨쉬며 살아갈 수 있을까? 그의 고백을 거절하고 오랫동안 망설였던 이유는 바로 이렇게 될까봐서였다. 한겨울 외출에서 꽁꽁 얼어붙은 몸으로 집에 돌아왔을 때, 욕실의 샤워기 온수를 틀어놓고 그 물줄기 아래에 몸을 맡기는 듯한 이 따스함과 편안함... 그가 나에게 전해주는 이 느낌에 빠져들어 다시는 헤어나올 수 없게 될까봐서였다.

이래도 되는 걸까? 나는 두렵다. 매일 아침마다 그를 만날 생각에 설레는 내가 두렵고, 오늘도 나를 보며 따스하게 미소짓는 그가 두렵다. 하지만 두려움이 무엇보다 강한 기쁨일 수 있다는 걸 예전에는 왜 몰랐을까? 나는 두려워하면서도 이 따스한 편안함에 대책없이 몸을 맡긴다. 그의 곁에서 어린아이가 될 때마다 나는 더없이 행복하니까, 죽음보다 더한 고통이 내일 닥쳐온다 해도 오늘은 더 바랄 것 없이 행복하니까... 이거면 됐다.  


*** 언제나 병풍에 머물고 있던 윤건이 드디어 한 역할 해냈군요. 생각보다 괜찮은 연기력에 놀랐다는... ㅎㅎ
      서지석의 박력있는 모습도 꽤나 멋있었고...^^;;


*** "숙제는 다 했겠지? 안했으면 꿀밤 열 대 때릴거야!" ...."하나, 둘, 셋, 넷, 다섯~!" 그녀가 다섯을 세기 전에 
      고분고분 책상에 돌아와 앉는 종석의 모습..ㅎㅎ 종석을 대할 때면 19세 여고생 김지원은 영락없이 아이 다루는
      엄마나 선생님 같은 모습이 됩니다. 술에 취해 그녀의 창밖에서 소리치며 "나를 무시하지 말라!"고 투정이나
      해대는 안종석은 상대적으로 너무 어리게만 느껴지네요. 그녀가 삼촌 윤계상을 좋아하는 걸 알고서도
      "나 이대로 쓰러지지 않아!" 하며 당돌한 결심을 되새기는 것을 보니 생각보다 탄탄한 녀석인 것 같기는 한데, 
      글쎄 아직도 갈 길은 너무나 멀어 보입니다..^^;;


관련글 : 박하선의 일기(1) - 자꾸만 그 사람 생각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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