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ISTORY 2014 우수블로그
TISTORY 2012 우수블로그
TISTORY 2011 우수블로그
TISTORY 2010 우수블로그
Recent Posts
Recent Comments
Link
관리 메뉴

빛무리의 유리벽 열기

'하이킥3' 박하선의 일기(1) - 자꾸만 그 사람 생각이 난다 본문

종영 드라마 분류/하이킥3-짧은다리의역습

'하이킥3' 박하선의 일기(1) - 자꾸만 그 사람 생각이 난다

빛무리~ 2011. 12. 22. 13:02
반응형


 



지난 번에 윤지석 선생님을 탓하면서 막 울고 떼썼던 건 사실 말도 안되는 일이었다. 뒷수습도 못할 거면서 그 거친 여자들한테 막말로 받아친 내가 잘못일 뿐, 오밤중에 허겁지겁 내게로 달려와 준 윤선생님이 무슨 잘못일까? 그가 와 주지 않았다면, 생전 처음으로 몹시 얻어맞고 차 키까지 빼앗긴 채 넋이 나가버렸던 나는 어쩔 줄 모르고 밤새도록 혼자 울며 주저앉아 있었을 거다. 그런데 참 이상하다. 혼자 있을 때는 그냥 흐느끼는 정도였는데, 막상 나를 데리러 온 그의 얼굴을 보니까 걷잡을 수 없이 울음이 터져 나왔다.

창피한 줄도 모르고 어린애처럼 엉엉 울었다. "이게 다 윤선생님 때문이에요! 저는 막말 안하려고 했는데, 윤선생님이 해도 된다면서요? 근데 이게 뭐예요? 이제 어쩔 거예요?" 말도 안되는 떼를 쓰면서 그를 탓했지만, 그는 한 마디 변명도 없이 그저 미안하다면서 나를 달래 주었다. 그리고 어떻게든 그 여자 깡패들을 붙잡아서 나 대신 혼내주겠다고 했다. 무슨 어린 딸을 달래는 아빠처럼 그런 소리를 했다. 그런데 참 이상하게도 그 말을 듣고 나니 마음이 편해졌다. 그의 말은 무조건 믿어도 좋을 것만 같았다.


나는 이상하게 윤선생님 앞에서는 조금씩 창피한 것도 없어진다. 나한테 문자로 "생리 언제예요?" 물어봤을 때는 너무 황당해서 펄펄 뛰며 화내고 막말까지 했지만, 단순한 실수였음을 알고나니 오해한 것이 미안해졌다. 하지만 내가 그렇게 화를 냈는데도 윤선생님은 굳이 내 손에 선물을 쥐어 주면서, 오타 섞인 문자 보낸 것을 사과할 뿐이었다. 

나의 공식 남자친구인 고영욱씨는 시험이 얼마 남지 않았기 때문에 홀로 절에 들어가 공부하는 중이다. 떠나기 전에 고열이 오르고 많이 아팠었는데, 지금쯤 건강은 괜찮은 걸까? 학교로 찾아와서 작별 인사를 하고 가겠다더니, 아무 인사도 없이 훌쩍 떠나 버린 것이 조금은 마음에 걸렸다. 휴대폰도 두고 갔기 때문에 연락이 되지 않는다.

명색이 여자친구인데 공부하느라 고생하는 남친을 위해 먹을 거라도 바리바리 싸서 응원 가야 하는 거 아니냐고, 옆에서 박지선 선생님이 말한다. 아, 그래야겠구나, 그게 여친으로서의 의무겠지. 사실은 벌써부터 그래야 했는데, 이렇게 여러 날이 흐르도록 깜박 잊고 지냈다. 그가 떠난 후, 나는 그의 생각을 거의 하지 않는다. 나에게 영욱씨는 항상 안스럽고 미안한 사람이었는데, 이제는 점점 더 미안해진다.


음식을 싸들고 영욱씨가 공부하는 절을 찾아가기로 했는데, 택시를 잡으려다가 우연히 윤선생님과 마주쳤다. 무거운 짐까지 들고 혼자 먼 길을 찾아가려는 내가 딱했던 걸까? 직접 운전해서 그 곳까지 데려다 주겠다고 했다. 아무리 친한 사이지만 그렇게까지 폐를 끼칠 수는 없다 싶어서 나는 괜찮다고 했지만, 윤선생님은 고집을 부렸다. 어쩔 수 없이 차를 얻어 탔는데, 정말 이상하다. 왜 그의 옆에만 있으면 이렇게 편안한 걸까? 갑자기 주책스런 잠이 쏟아졌다. 스스로 내 뺨을 때려 봐도, 껌을 씹어 봐도 소용이 없었다. 윤선생님은 그냥 편하게 자라며 나를 보고 싱긋 웃었다. 하지만 염치도 없이 어떻게... 그냥 자 버렸다.

그가 운전하는 동안 나는 편안히 쿨쿨 자면서 절이 있는 산 입구에 도착했다. 산 위의 절까지는 걸어서 가야 했다. 양손에 든 찬합이 좀 무겁긴 했지만 나는 팔 힘이 세서 괜찮은데, 윤선생님은 굳이 내 손에서 찬합을 낚아채며 앞서 걷기 시작했다. 내 남자친구를 만나러 가는데, 어떻게 된 셈인지 나보다 윤선생님이 더 고생이다. 그렇게 한참 산을 오르던 중, 옷깃에 달아 두었던 브로치가 바닥에 떨어져서 주우려는데 수북한 낙엽 더미에 파묻혀서 잘 보이지 않았다. 낙엽을 휘저으며 브로치를 찾던 나는 뱀에 물리고 말았다. 독사인가? 손등에 선명한 이빨 자국이 아찔하다. 윤선생님이 소스라치게 놀라서 나를 업고 뛰기 시작했다.


기절했다가 깨어나니 병원이었다. 다행히 나를 문 것은 독이 없는 뱀이었다. 하룻밤 자고 나서 생각해 보니, 윤선생님 등에 업혀 가다가 굵은 나뭇가지에 머리를 세게 부딪혔던 기억이 났다. 독도 없는데 기절한 이유는 그래서였나보다. 쪼르르 윤선생님한테 달려가서 말했다. "어쨌든 나무랑 부딪혀서 저를 기절하게 하셨으니까, 저한테 꿀밤 한 대 맞으시면 덜 미안하지 않겠어요? 한 대 맞으실래요?" 나의 엉뚱한 소리에 잠시 어리둥절하던 그는 기꺼이 자기 이마를 내밀며 때리라 했고, 나는 콩 소리가 나도록 그 이마를 쥐어박았다.

하룻밤 더 자고 났더니 또 한 가지 기억이 떠올랐다. 기절한 나를 막 흔들면서 윤선생님은 "박하선, 눈 떠!" 하고 반말로 외쳤던 거다. 나는 또 곧장 그에게 달려가서 말했다. "저한테 반말하셨죠? 다 기억났어요!" 그는 당황한 얼굴로 미안하다 말했고, 나는 이렇게 대답했다. "저도 반말 한 번 할까요? 그럼 덜 미안하실텐데... ㅋㅋ 어이, 윤지석!" 그리고는 얼떨떨한 표정의 그를 남겨둔 채 잽싸게 동굴로 내려오면서 혼자 킥킥대며 신나게 웃었다. 도대체 뭐하는 짓일까? 나 때문에 고생한 사람을... 하지만 나는 왠지 그에게 자꾸만 장난을 치고 싶다. 그의 당황한 표정을 자꾸만 보고 싶다.


잠결에 어렴풋이 그의 목소리를 들었다. "박하선, 눈 떠... 이렇게 죽으면 어떡해...죽지 마, 제발... 죽지 마..." 그는 애타게 나를 부르며 울고 있었다. 그의 눈에서 흘러내리던 뜨거운 눈물... 내 얼굴을 안타깝게 어루만지던 손길... 나를 얼싸안은 채 죽으면 안된다고 소리치던 그 가슴의 세찬 박동... 아마 그건 꿈이었을 게다. 설마 윤선생님이 나 때문에 그렇게 울었을 리는 없으니까... 그런데 나는 왜 꿈 속에서마저 그와 만나는 걸까? 이상하다. 자꾸만 그 사람 생각이 난다.




반응형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