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록책과 영화와 연극 (62)
빛무리의 유리벽 열기
호국의 달 6월을 맞이하여, 특별히 오늘 6월 6일 현충일을 시작으로 몇 편의 영화 리뷰를 계획하고 있는데 그 중 첫번째 작품은 2010년 개봉작인 '포화 속으로'가 선택되었다. 전쟁의 모든 것이 비극이지만 그 중에도 어린 학도병들의 희생은 더욱 깊은 슬픔과 먹먹함으로 다가온다. 대부분 채 스무살이 못 되었던 그 청춘들은 과연 무엇을 위해 죽어갔던 것일까? 외국과의 전쟁이었다면 국권을 지키기 위해서였다고 하겠지만 6.25 한국전쟁은 좀 다르다. 물론 외세의 개입이 있기는 했지만 기본적으로는 이념에서 비롯된 동족 상잔의 전쟁이었던 것이다. 어쩌면 그 출발부터가 참으로 부당한 비극이었다. 당최 이념이 무엇이기에 한 민족, 한 나라의 국민들이 서로 피를 흘려야 했다는 말인가? 그러나 인생 경험이 많아질수록 한..
이준석의 '공정한 경쟁'을 읽으면서 김웅의 '검사내전'도 번갈아 읽고 있다. 솔직히 이준석의 책보다는 김웅의 책이 훨씬 더 재미있다. '공정한 경쟁'은 인터뷰 형식으로 쓰여져선지 너무 단순하고 강렬하고 선이 굵은 느낌인데 김웅의 필치는 매우 섬세하고 맛갈스럽다. 공부도 잘 하고 글도 잘 쓰고... 좋겠다. ㅎㅎ '제1장 - 사기 공화국' 에 이어 '제2장 - 사람들, 이야기들' 을 읽는 중인데 특히 "아이에게 화해를 강요하지 말라"는 소제목으로 쓰여진 학교 폭력에 관한 이야기가 인상적이었다. 챕터의 내용을 한 마디로 요약한다면, 학교 폭력이 발생했을 때 피해 학생에게 화해를 강요하는 어른들의 태도가 얼마나 나쁜 것인지를 김웅은 주장하고 있었다. "학교폭력의 원인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나, 그 정도가 심..
나는 최근 젊은 정치인 이준석에게 큰 관심을 갖고 있다. 무엇보다 그의 등장은 신선했고, 4.7 보궐선거를 거치면서 더욱 강력해졌다. 심지어 37세에 불과한 나이로 국회의원 경력도 없는 그가 국민의힘 당권지지도 여론조사에서 큰 격차로 1위를 달리고 있는 현상은 그야말로 돌풍이라 표현하지 않을 수 없다. 여야를 막론하고 기존 정치인들은 이준석을 향해 날을 세우기 시작했다. 그와 당권을 경쟁해야 하는 야권 쪽에서 먼저 나경원, 홍준표 등이 '스포츠카' 라든가 '한 때 지나가는 바람' 등의 표현을 사용하며 경계심을 드러냈고, 급기야 여권 쪽에서조차 정세균이 나서서 '장유유서'라는 고리타분한 단어를 내세우며 그의 가치를 폄하했다. 그러나 노익장들의 그와 같은 태도는 오히려 이준석 돌풍이 예상보다 강력해서 결코 ..
어떤 문제 해결을 위한 노력에 있어 그 원인을 뚜렷이 알고 있을 때와 그렇지 못할 때는 큰 차이가 있다. 질병의 치료에 있어서나, 또 다른 어떤 종류의 고통을 극복하기 위해서도 고통의 원인을 파악하는 일은 무엇보다 중요하다. 남들보다 유난히 예민하고 민감한 성품을 타고난 사람들이 삶 속에서 직면하는 모든 문제들은 일단 그 원인을 파악하기 힘들다는 것 때문에 극복을 위한 첫걸음부터 어려움에 부딪힌다. 다행히도 요즘은 개인마다 다르게 타고난 성품에 대한 연구와 책들이 많아져서 예전보다는 문제 파악과 깨달음이 쉬워졌다. 하지만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예민한 사람들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창구는 거의 없다시피 했다. 그들은 타인의 몰이해 속에 방치되고 일상이 되어버린 비난에 시달리고 자기 자신을 탓하고 미워하..
제목 : 쓸데있는 신비한 잡학사전 저자 : 레이 해밀턴 역자 : 이종호 발행 : 도서출판 도도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 책의 내용은 수천 가지의 흥미로운 잡담거리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저자 레이 해밀턴의 엄청나게 다양하고도 방대한 지식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이 책은 지구, 역사, 문화, 수학, 과학, 우주, 정치, 스포츠, 연예 등 거의 모든 분야를 다루고 있는데, 어쩌면 너무 사소해서 아무도 주의를 기울이지 않았을만한 단편적인 지식들이 각 분야마다 뺴곡히 수록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이 책은 가볍고 유쾌하며 신비하다. 이 책에 담긴 지식들 중 특별히 관심있는 몇 가지만 기억하더라도, 만약 친구들과의 대화에서 적절한 타이밍을 포착할 수 있다면, 순식간에 감탄과 호기심으로 반짝이는 친구들의 시..
정말 오랜만에 소설 한 권을 아주 몰입해서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다. 어린 시절에는 그토록 독서를 좋아했건만, 어느 순간 인터넷과 영상 자료들이 전해주는 자극적인 재미에 빠져들면서 독서의 은근한 재미를 멀리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어렸을 때 문학의 향기를 풍긴다고 느꼈던 작품들은 이제 너무 딱딱하거나 지루하게 느껴졌고, 새로 나오는 작품들 중 대다수는 가볍거나 유치하게 느껴졌다. 아, 물론 이것은 작품들의 문제라기보다 이미 독서에 흥미를 잃어버린 나의 내면적인 문제였을 수도 있다. 하지만 무심히 집어든 소설 '정막개'는 이런 나의 심드렁한 마음을 강하게 사로잡았고, 나는 엄청난 속도와 집중력으로 이 두꺼운 책 한 권을 삽시간에 독파했다. 마치 어린시절로 돌아간 듯, 짜릿하고 즐거운 체험이었다. 그리고 이 ..
내 블로그의 오랜 독자들은 모두 아시겠지만, 나는 어려서부터 고질적인 알레르기성 비염으로 고생해 왔다. 전신마취 수술을 비롯하여 안 써 본 약과 치료 방법이 없었으나 결국은 4~5년 전부터 후각을 잃었다. 비염이 악화되며 천식이 발병했고, 환절기가 되면 종종 콧속 깊은 곳부터 심한 통증을 동반하는 인후염이 발생하여 오랫동안 고생을 해야 한다. 현재는 그저 코의 통증과 막힘이 지나치지만 않다면, 어쨌든 고통 없이 숨만 쉴 수 있다면 감사하다고 생각하며 살아가는 사람이다.최근 집을 정리하고 이사하면서 피곤했던 데다가 환절기가 겹치니 또 다시 인후염과 천식이 재발했다. 속이 뒤집힐 듯한 기침에 시달리고 짙은 가래를 수없이 뱉어내며 며칠간 독한 약을 먹었다. 이제 겨우 좀 진정이 된 듯한데 아직은 완쾌되지 않은..
이것은 어른이 되어버린, 결국은 늙어버린 피터팬의 꿈이다. 어린 아이들은 빨리 어른이 되기를 꿈꾸지만, 막상 어른이 되어 보면 머지 않아 깨닫게 된다. 어른이 되어봤자 별로 좋을 게 없다는 사실을, 어린 시절에는 당연하게 여겼던 순수한 기쁨들이 어느 순간부터는 머나먼 동화 속의 일처럼 여겨진다는 사실을, 더 이상 남아있는 삶 속에서는 순수를 기대하거나 찾아보기 어렵게 되었다는 사실을 말이다. 그래서 어른들은 돌아갈 수 없는 어린 날을 꿈꾸며, 이루어질 수 없는 꿈을 꾼다. 멈춰진 시간 속에서 혼자 어른이 되어버린 성민(강동원)의 존재는 늙어버린 피터팬을 대표한다. 몸은 늙어 버렸지만 마음만은 여전히 해맑은 소년인... 스스로를 그렇다고 생각하는 어른들의 자화상이다. 현실은 물론 그렇지 못하다. 몸이 늙은..
나의 개인적 해석으로 '죽여주는 여자'에는 두 가지 이야기가 담겨 있다. 첫째는 주인공 소영(윤여정)의 버림받은 인생이고, 둘째는 노년의 삶에 대부분 찾아오는 출구 없는 슬픔이다. 양공주 출신의 박카스 할머니 소영은 처음부터 버려진 인생이었고, 끝까지 남에게 이용만 당하다 스러져간 인생이었다. 아무도 어린 소영을 보살펴주지 않았기에, 그녀는 자신이 갖고 있는 유일한 것을 팔아서 연명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다가 혼혈아를 낳게 되었지만, 혼자 먹고 살기도 힘든 마당에 도저히 키울 수 없어서 입양을 보내게 되었다. 그 후로 수십 년 동안 버린 아들에 대한 죄책감으로 살아온 소영... 그 와중에도 매일 낯선 남자들의 육체를 어루만지며 이어가야 했던 모진 목숨... 하지만 가장 놀라운 것은 이 착한 여자 소영의 ..
필자의 개인적인 생각엔 이 영화 '밀정'이 썩 잘 만들어진 작품이라고 판단되지는 않는다. 주연배우 공유가 인터뷰 중에 "이 영화는 감독판이 꼭 나와야 하는 영화"라면서 "아까운 부분들이 너무 많이 잘려나갔다"고 주장했다던데, 과연 그 이유 때문인지는 몰라도 스토리 전개가 너무 뜬금없다 싶을 만큼 뚝뚝 끊기고 급작스레 진행되는 느낌이 강했다. 140분이라는 결코 짧지 않은 러닝타임에도 불구하고 등장인물들의 개별적 스토리는 거의 다뤄지지 않았기 때문에, 도대체 그 인물이 왜 그러한 선택을 했는지 등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 많아 몰입하는 데에도 한계가 있었다. ★ 이 영화 리뷰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송강호의 명품 연기 때문에, 결코 실망스럽다는 표현은 사용할 수 없는 영화이기도 했다. 송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