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록종영 드라마 분류/선덕여왕 (29)
빛무리의 유리벽 열기
저는 원래 '특집을 가장한 하이라이트 방송'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관계로 그냥 틀어만 놓고 다른 일을 하고 있었습니다. 방송을 꾸준히 못 보고 띄엄띄엄 보신 분들로서는 일목요연하게 정리할 수 있는 하이라이트 방송도 환영하실 법 하지만, 저는 일단 정해놓고 보는 프로그램에 대해서는 충성을 하는 편이므로, 하이라이트는 거의 보나마나거든요. 역시 예상과 크게 다르지는 않았습니다. 중간중간에 제작진의 인터뷰가 생각보다 좀 길게 들어갔고, 그들이 원래 만들려고 했던 드라마가 어떤 것이었는지를 참고삼아 알 수 있게 되었다는 점은 일종의 수확이라 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크게 구애받지 않았습니다. 원래 모든 예술이란, 예술가의 손을 떠나게 되는 순간 이미 그들의 것이 아니거든요. 드라마 '선덕여왕' 역시, 원..
드라마 '선덕여왕'이 드디어 62회를 끝으로 막을 내렸습니다. 예상하고 있던 것보다 훨씬 더 깊은 허전함이 밀려드네요. 지난 7월, 처음 블로그 활동을 시작하면서부터 '선덕여왕'은 항상 단짝 친구처럼 제 곁에 있었습니다. 이제껏 다른 드라마를 시청할 때에는 이토록 깊이, 적극적으로, 한 사람 한 사람마다에게 몰입해 본 적이 없는 것 같습니다. 저에게 '선덕여왕'은 그토록 특별한 드라마였습니다. 그러다보니 점점 더 애정이 쌓여 갔고, 주인공만이 아니라 다른 인물들조차도 모두 친밀하게 느껴졌습니다. 그 중 한 캐릭터는 이제껏 한 번도 눈길을 주지 않았던 인물이었는데, 최종회에서야 비로소 제 눈에 들어오더군요. 언제나 소중함은 떠난 이후에야 깨닫게 되는 걸까요? 이렇게 말해놓고 나니 왠지 또 슬퍼지려고 합니다..
너는 믿어야 했다. 세상에 오해보다 더 처량한 것이 있더냐? 너의 불행한 운명을 극복하기 위해서라도 너는 믿어야만 했다. 너를 따뜻한 눈으로 지켜보는 이 많은 사람들을 위해서라도 너는 믿어야 했다. 스승 문노가 너를 사랑하지 않았다는 것도 너의 오해였다. 비록 타고난 너의 그릇이 세상을 품을만한 크기가 되지 못함을 깨닫고 실망하기는 했지만, 그는 너를 버리지 않았다. 삼한지세를 김유신에게 넘기려 하였지만, 그가 생각한 '대의'를 위해서였을 뿐, 너를 버리려는 것이 아니었다. 비록 엄하고 냉정하게 대했으나 그는 끝까지 너와 함께 가려 결심하고 있었다. 수차례나 그가 말하지 않았더냐? "너는 나와 함께 떠나자." 고 말이다. 문노 또한 어쩔 수 없는 사람이었기에, 여리디 여린 사람의 마음을 지녔기에, 그 한..
월요일 방송된 '선덕여왕' 57회에서 비담과 선덕여왕의 멜로가 예상치 못한 급진전을 보이면서 수많은 시청자들을 당혹스럽게 했습니다. 하지만 저는 그다지 당혹스럽다고 느끼지 않았습니다. 제가 어제 올렸던 '비담에게 보내는 선덕여왕의 편지' 에서 이미 저의 견해를 간접적으로 언급했듯이, 비담을 향한 여왕의 마음은 결코 진실한 사랑이 아니라고 저는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사실 이제껏 덕만은 한 번도 비담에게 이성적으로 끌리는 모습을 보여준 적이 없습니다. 노오란 들꽃을 건네며 수줍게 웃는 비담에게 화답하듯 미소를 보이며 "너는 나를 여자로 대해 주는구나" 하고 기뻐하기도 했고, 미실의 죽음 후 방황하는 비담의 뒤를 쫓아가 어미 잃은 새를 감싸듯이 그를 포근히 안아주기도 했지만, 그것은 인간으로서의 자연스러운 감..
'선덕여왕' 55회에서도 김유신은 변함없이 우직한 충성심을 보여주었습니다. 자기 일신의 안위는 안중에도 없이 오직 신국의 안위만을 염려하는 김유신의 모습은 그야말로 애국선열의 풍모를 보여주었다 하겠습니다. 그런데 도무지 그 충성심에 공감하거나 몰입할 수 없더군요. 엄태웅은 나무랄 데 없이 좋은 연기를 보여주었건만, 예쁜 유모차 안에 귀여운 아기 대신 통조림 깡통이 잔뜩 들어차 있는 것처럼 그 충성심이 생뚱맞아 보이니 참으로 난감했습니다. 무릇 애국심이라 함은 철저한 체험과 교육에 의하여 고취되는 것입니다. 한 번이라도 나라를 잃어 보았던 백성들은, 나라 잃은 핍박과 설움이 어떤 것인지를 알기에 그 설움을 당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애국심을 가지게 됩니다. 그런 체험이 없는 어린아이들에게는 꾸준한 교육을 통해..
미실(고현정)이 하차한 후로 서서히 바람이 빠져가는 풍선처럼 안타까운 드라마 '선덕여왕'... 그 중에서도 제가 보기에 가장 안타까운 인물은 설원랑(전노민)입니다. 물론 시위부령이라는 직책을 가졌으면서도 억울하게 꿀먹은 벙어리가 되어야 했던 알천랑(이승효)도 있지만, 적어도 그는 '덤으로 사는 인생' 같아 보이지는 않습니다. 그리고 앞으로 '비담의 난'이 일어나면 유신의 편에 서서 듬직한 역할을 해줄 거라는 기대감도 있습니다. 하지만 현재 설원랑의 모습은 간신히 숨이 붙어있는 임종 직전의 상태로 수십년을 연명하는 것처럼 답답합니다. 아무리 다시 생각해 봐도 설원은 미실과 함께 떠났어야 했습니다. 후사를 돌보아 달라는 미실의 당부를 거역하지 못해 일시적으로 살아남았다 해도, 머지않아 미실의 뒤를 따라갔어야..
드라마 '선덕여왕'이 미실(고현정)의 죽음을 전환점으로 하여 제3부로 접어들었습니다. 제1부는 덕만(이요원)의 탄생과 어린시절 및 자아찾기에 골몰하던 낭도 시절까지였다면, 제2부는 공주의 신분을 회복한 덕만이 미실과 본격적으로 대결을 벌이는 시기였습니다. 이제 최대 강적이었던 미실이 사라지고 덕만은 목표였던 '왕'의 꿈을 일단 이루었습니다. 제3부는 왕위에 오르면서 새로이 시작된 덕만의 삶이라고 해야 할 것입니다. 드라마의 흐름을 보면 분명히 주인공인 덕만 중심으로 스토리가 흘러가고 있기는 합니다. 며칠 전, 한 독자분께서 저에게 이런 제안을 해주셨습니다. "드라마 '선덕여왕'이 애초의 의도와는 달리 서브 캐릭터였던 미실이 너무 크게 부각되면서 주객이 전도된 양상이므로, 이제 미실이 사라지고 나서는 차츰..
'선덕여왕' 43회에서 보여준 유승호의 연기력은 그의 인기에 '거품이 많이 끼어 있다'는 논란을 충분히 잠재울만 했습니다. 물론 연기를 잘한다고 해서 누구나 '국민남동생' 이며 '누나들의 로망' 이 될수야 없겠지만, 그의 폭발적인 인기가 다만 귀엽고도 훤칠한 외모 때문만이 아니라는 점은 여실히 입증하고도 남음이 있었습니다. 연기자로서 유승호가 가진 커다란 장점 중 하나는 어린 나이답지 않게 어딘가 비극적 분위기를 풍긴다는 데에 있습니다. 물론 슬픈 연기를 잘하는 아역들은 많습니다만 보통은 단지 슬픈 장면을 연기할 때만 눈물을 자아낼 뿐, 담담한 표정을 짓고 있거나 심지어는 웃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슬픈 분위기를 자아내는 아역은 별로 없습니다. 아무래도 어린아이의 특성은 슬픔보다는 밝음과 해맑음, 쾌활함의 ..
선덕여왕 41회의 주인공은 명실상부하게 어린 김춘추(유승호)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지요. 그 아이는 종횡무진 대단한 활약을 했습니다. 천하의 미실(고현정)에게 보기좋게 한 방을 먹였고, 모든 사람들의 허를 찌르며 간담을 서늘하게 했습니다. 놀라운 지략과 대담한 배포는 그야말로 범상치 않은 기운을 타고난 인물임을 증명하고 있더군요. 어차피 하늘의 뜻이 미실을 떠나 덕만과 춘추에게로 향하고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모두 알고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41회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대사는 춘추가 야릇한 미소를 띠며 말하던 "제가... 미실보다는... 오래 살지 않겠습니까?" 라는 대사였습니다. 별 것 아닌 듯 하지만, 생각해보면 정말 무서운 말이기도 합니다. 세월을 이겨낼 수 있는 사람은 그 누구도 없지요. 아무리 대..
원래는 오늘 '천명공주의 편지'를 다듬어 올릴 생각이었으나, 어제 예고편을 보니 오늘 방송분에서 춘추 공자가 새로운 모습을 보여줄 것 같더군요. 아들의 변화된 모습을 보고 나서 어머니의 편지를 다듬는 편이 낫겠다 싶어 내일로 미루었습니다. 하여 오늘은 어제 39회 방송을 보며 가슴 깊이 느꼈던 서러움에 대해 가볍게 풀어 볼까 합니다. 어제의 주인공은 단연 덕만공주였습니다. 물론 미실이 차지하는 비중도 적다고는 할 수 없었지만, 무엇보다 덕만공주가 마지막 순간에 보여준 충격적인 결단으로써 그녀의 존재감은 기존의 배 이상으로 불어났다는 것이 저의 판단입니다. 손에 피를 한 방울도 묻히지 않고 왕이 된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할 것입니다. 이제 그 하얗기만 하던 손에 스스로 피를 묻혔으니, 그녀는 스스로 왕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