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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덕여왕' 비담, 너는 그녀를 믿어야 했다 본문

종영 드라마 분류/선덕여왕

'선덕여왕' 비담, 너는 그녀를 믿어야 했다

빛무리~ 2009. 12. 16. 14: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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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는 믿어야 했다. 세상에 오해보다 더 처량한 것이 있더냐? 너의 불행한 운명을 극복하기 위해서라도 너는 믿어야만 했다. 너를 따뜻한 눈으로 지켜보는 이 많은 사람들을 위해서라도 너는 믿어야 했다.

스승 문노가 너를 사랑하지 않았다는 것도 너의 오해였다. 비록 타고난 너의 그릇이 세상을 품을만한 크기가 되지 못함을 깨닫고 실망하기는 했지만, 그는 너를 버리지 않았다. 삼한지세를 김유신에게 넘기려 하였지만, 그가 생각한 '대의'를 위해서였을 뿐, 너를 버리려는 것이 아니었다. 비록 엄하고 냉정하게 대했으나 그는 끝까지 너와 함께 가려 결심하고 있었다. 수차례나 그가 말하지 않았더냐? "너는 나와 함께 떠나자." 고 말이다.


문노 또한 어쩔 수 없는 사람이었기에, 여리디 여린 사람의 마음을 지녔기에, 그 한계를 극복하지 못하여 너에게 충분한 사랑을 표현하지 못했을 뿐이다. 너를 어루만지며 "미안하다. 누가 뭐래도 너는 나의 제자다." 라는 마지막 인사를 남기고 떠나던 그와의 마지막 순간을 너는 잊었느냐? 그를 품에 안고 오열하던 기억보다, 잠든 사이에 어린 너의 손을 뿌리치던 그 서운함의 기억이 네 머리에는 더 깊게 남아 있었더란 말이냐?

너의 사랑을 아름답게 완성하기 위해서라도 너는 믿어야 했다. 문노를 떠난 이후로 네가 한결같이 바라보던 그녀가, 드디어 너의 마음을 받아들이고 너를 믿어준 것이다. 네 손에 반지를 쥐어 주며 "나를 믿느냐?"고 묻던 그녀의 눈빛을 기억하지 못하느냐? 설령 그녀가 정말 너를 죽이려 했다 해도, 너는 그녀에게 분노하기보다는 끝까지 그녀를 사랑해야 했다. 사랑은 계산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오해로 인해, 버림받는 것이 두려워, 배신에 대한 분노로, 사랑하는 사람을 향해 칼을 빼어든다면, 그 오랜 세월 동안 네가 조금도 성장하지 못했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 옛날 감히 스승을 향해 칼을 빼어드는 순간에도 그런 것이 아니었더냐? 네 마음속에는 여전히 그를 향한 사랑이 가득하면서, 버림받음에 대한 분노를 이기지 못한 것이 아니었더냐? 제자인 너와 칼을 겨누고 피말리는 대결에 집중하고 있던 사이에, 문노는 난데없이 날아든 독침을 피하지 못하였는데, 스승의 죽음에 대한 죄책감과 회한이 벌써 네 마음속에서는 희미해졌더란 말이냐?

이제 네가 얕은 마음으로 그녀를 오해하고 원망한다면, 그래서 문노에게 그랬듯이 사랑하는 그녀를 향해 또 한 번 칼을 겨눈다면, 그래서 그녀가 상처받고 죽음을 재촉하게 된다면 그 회한을 어찌할 것이냐? 일생을 달려온 너의 가엾은 사랑은 또 어찌할 것이냐?


차라리 버림받느니만 못하리라. 차갑게 너를 버리고 배신한 그녀를 향해, 네가 믿음을 저버리지 않고 마지막까지 애끓는 사랑을 보여주었더라면 슬퍼도 아름다운 대단원이 되었으련만, 분노로 가득찬 너의 눈빛은 비극적인 엇갈림을 예고하고 있구나. 이 일을 어찌한다는 말이냐? 너는 믿어야 했다. 비담, 너는 네 사랑을 믿어야 했다. 

*******

종영으로 치닫는 '선덕여왕'의 행보를 보며 저는 적지않은 의아심을 품습니다. 이제껏 오직 비담의 해바라기 외사랑으로만 표현되어 왔던 선덕여왕과의 관계가 갑작스레 급진전되었을 때부터 그러했습니다. 그녀의 마음속에 남자라고는 오직 김유신뿐인 것처럼, 이제껏 그렇게 표현되어 왔으니까요. 극의 전개가 자연스럽게 이어지려면 그녀가 비담에게 진실한 사랑을 주어서는 안되는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정말 뜬금없이, 선덕은 비담에게 '천상 여자'의 모습으로 안기며 사랑을 표현하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그것을 일종의 팬서비스라고만 생각했습니다. 비담을 사랑하는 팬들이 워낙 많으니, 그들을 위해서라도 비담이 '한번쯤은' 그녀의 사랑을 받도록 해주려는 배려 말이지요. (선덕여왕, 달콤한 팬서비스를 만끽하다)

그 글에 한 분의 이웃께서 댓글을 남겨주셨었지요. 원래 작가는 선덕과 유신과 비담의 삼각관계를 조성했었는데, 감독과의 의견 불일치로 인하여 비담과의 멜로 장면이 대폭 삭제되었다고 말입니다. 생뚱맞은 폭풍멜로가 된 이유는 그 때문이라고 하시더군요. 제가 몰랐던 내막인데 알게 되어서 궁금증은 해소되었습니다. 그러나 기왕 여기까지 오는 동안 그렇게 표현되었던 것을 이제와서 뒤집는다면 역시 작품성에는 해가 될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도 저는 결국 선덕이 비담을 버리게 되리라고 생각했습니다. 오우선 사건으로 인해 비담을 오해할 거라고 말이지요. 그런데 뜻밖에도 선덕은 비담에 대해 흔들리지 않는 확고한 믿음을 보여주더군요. 물론 저도 비담팬으로서 일면 흐뭇하기는 했지만, 도대체 선덕의 마음이 언제부터 그랬던 것인지 알 수 없어 공감되지 않았습니다. 늘상 비담에 대해 그녀가 보여주었던 것은 믿음보다는 경계심이 아니었던가요?

하여튼 그렇게 해서 선덕여왕은 '어떤 일이 있어도 자기의 사람을 버리지 않으려 하는' 아름다운 성군의 이미지로 다시 태어났습니다. 드라마 내내 여성적 이미지보다는 남성적 이미지로 어필해왔던 덕만공주가, 이제 막판에 와서 숨겨져 있던 여성성을 한꺼번에 드러내고 있는 듯 합니다. 뭐, 그건 좋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되면 '비담의 난'은 결국 비담의 선택으로 이루어져야 합니다. 아무리 주변 사람들의 음모가 그렇게 몰아갔다고는 하지만, 비담이 끝까지 그 역모에 동참하지 않는다면 '비담의 난'이 될 수는 없습니다. '미실의 난'이 '칠숙과 석품의 난'으로 둔갑했던 것은 선덕여왕의 뜻이었습니다. 그러나 지금처럼 선덕이 비담을 믿고 사랑하는 상황이라면, 절대 다른 사람들이 주동하여 일으킨 난을 '비담의 난'으로 몰아갈 리는 없습니다. 필연적으로 일어나야 할 '비담의 난'은 이제 비담 본인의 의지로만 일어날 수가 있습니다.

차라리 선덕에게 버림받고 일으키는 난이라면, 비담의 모양새가 이렇게 초라해지지는 않을 것입니다. 선덕이 비담에게 흔들리지 않는 믿음과 굳은 사랑을 보여줌으로써, 좀 억지스럽긴 하지만 그래도 선덕여왕의 캐릭터는 매우 아름답고 성스럽게 포장되었습니다. 그에 반해 비담은 이제 그야말로 갈 곳 없는 '못난이'가 되고 말았습니다. 그토록 그녀를 사랑한다면서, 이처럼 단순한 속임수에 놀아나 그녀를 오해하고 분노하며 난을 일으키다니... 문노가 늘상 그에게 질책하던 목소리가 귓가에 들리는군요. "어찌 그렇게도 못났느냐!!!"


비담이라는 캐릭터에 깊은 애정을 갖고 있는 한 사람으로서, 지금 '선덕여왕'의 전개는 상당히 의아스러울 뿐 아니라 안타깝기까지 합니다. 비극적 종말을 맞이하더라도 끝내 멋있는 모습을 유지할 수 있기를 바랬거든요. 미실이 그랬듯이 말입니다. 하여튼 이제는 기다리는 것 외에 달리 할 수 있는 일은 없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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