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록종영 드라마 분류 (722)
빛무리의 유리벽 열기
"뭍이라고 이곳보다 나을 건 없단다. 중요한건 마음이지... 마음의 응어리가 풀어지지 않는 한 몸뚱이가 어디엘 가 있어도 다 똑같을 뿐이다." 윌리엄과 박규를 떠나보내고 하루하루 시름에 잠겨 뭍으로 따라갈 생각뿐인 버진에게 미치광이 노인으로 위장한 광해군 할아버지가 타이르십니다. 아직 어려서 그 말을 이해하지도 못하는 버진이를 보고는 껄껄 웃으며 수염을 날리시는 임금 할아버지는 약간 신선같아 보이더군요. 모든 것을 다 가졌다가 모든 것을 다 잃어 본 적이 있는, 그 이후 마음을 비워버린 자의 가벼운 웃음이었습니다. 그런데 "꼭 그 푸른 눈 소나이 때문인가? 또 다른 이유가 있는 건 아니고?" 라는 질문을 받자 펄쩍 뛰면서까지 박규에 대해 끌리는 감정을 극구부인하는 버진이의 마음은 알쏭달쏭하더군요. 푸른 ..
"이건 말 그대로 그물이야, 그물... 어부가 고기를 잡듯이 화랑 낭도들이 신라의 그물이 되어서 백제 놈이고 고구려 놈이고 싹 다 잡아들이라는 거지." 놀랍습니다. 입에 담기조차 두려워할만한 엄청난 대업(大業)이요, 당대의 내노라하는 두뇌들이 단체로 골머리를 썩고 있으며, 미실이 장담하기를 그 누구도 맞히지 못할 거라 했던 그 문제의 답을 우리의 죽방 형님께서는 아무렇지도 않게 맞혀 버리시는군요. 신라(新羅)라는 국호의 세번째 뜻 말입니다. 덕업일신(德業日新) 망라사방(網羅四方) 덕업일신(德業日新)에서 신(新)을 취하고, 망라사방(網羅四方)에서 라(羅)를 취하여 만들어진 이름이라 하니(삼국사기) '새로운 그물'이라, 알고 나서 보니 매우 노골적인 국호로군요. 첫째 무력을 증진하고, 둘째 신흥세력을 키워서..
기다리고 있던 '지붕뚫고 하이킥' 첫방송이 전파를 탔다. 이순재 옹을 제외하고는 그간 시트콤을 통해 낯익은 얼굴들이 거의 등장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이미 알고있는 터라 약간 허전한 마음을 안고 시청했는데, 의외로 1회에서 낯익은 얼굴들을 많이 볼 수 있어서 반가운 마음을 금할 수가 없었다. 물론 카메오였지만 말이다. 반가운 얼굴 첫번째는 '똑바로 살아라'에서 노주현의 머리 나쁜 아들로 나왔던 노형욱 군이었다. 그 당시 내가 알고 있던 이름은 김형욱이었는데, 워낙 노형욱이라는 이름으로 인지도가 생기다보니 아예 이름을 노형욱으로(예명) 바꾼 것인지도 모르겠다. 이 친구도 85년생이니까 벌써 25세의 어른인데 아직도 집안의 골칫덩이였던 막내 형욱이의 모습이 그대로 남아 있다. 맨날 샐샐거리고 웃기만 하던 둘째누..
'탐나는도다' 9회는 온통 애절한 눈물로 얼룩졌습니다. "암행어사 출두요~!" 시원스런 외침소리와 함께 죽음의 위기에 처했던 버진과 윌리엄은 극적으로 살아났고, 언제나 멋진 박규 도련님은 구원자로서 더욱 환한 빛을 내뿜었지만, 기쁨은 잠시뿐이고 뒤이어 찾아온 것은 애간장 끊어지는 이별의 슬픔이었습니다. 버진과 윌리엄과 박규, 그들은 모두 얼마나 많이 울었는지 모릅니다. 그들의 눈물을 보면서 저 또한 무의식중에 눈물이 흐르던 것은, 아마도 그들과의 이별이 너무 빨리 찾아오리라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저토록 사랑스런 그들이 한동안 우리 곁에 더 있을 줄 알았는데, 조기종영이라니... 너무 때 이르게 찾아오는 이별은 견디기 힘들 만큼 아프니까요. 제주목사에게 왕패(마패)를 전달하러 갔던 두 명의 심..
'선덕여왕' 30회에서 보여준 고현정의 출중한 연기력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던 것일까? '하얀거탑'의 장준혁을 연기하던 김명민의 흡입력은 많은 사람들의 감정을 걷잡을 수 없이 빨아들이면서 가치관의 혼란까지 초래했다. 이번에 미실의 눈물을 보며 사람들이 느낀 감정은 장준혁의 몸부림을 애처롭게 바라보던 그 마음들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 같다. 혹자는 미실의 야망을 꿈이라고 말한다. 남들과는 좀 다른 꿈, 남들보다 더 큰 꿈을 가졌을 뿐이라고... 그런데 충분한 능력을 가졌고 평생을 노력해 왔음에도 불공평한 태생적 한계에 부딪혀 그 꿈을 이룰 수 없게 되었으니 그녀는 불쌍하다고 말한다. 그래서 나도 다시 생각해 보았다. 불공평하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었다. 그러나 여전히 나는 미실이 ..
"왕이 될 사람은 미안하다는 말, 고맙다는 말 쉽게 하는 거 아니다." 어쩐지 심상치 않다. 아무래도 비담은 공주를 사랑하게 된 것 같다. 그 자유분방한 눈빛 속에 진지함이 깃들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불쌍해서 도와주고 싶다고 스승에게 말했었다. 그러나 반드시 연민 때문이었다고 할 수 있을까? 스스로 인식하지 못했을 뿐 운명적으로 끌리고 있었던 게 아닐까? 이제와 생각하니 소화에게 안겨 피신해 온 아기 덕만을 신기한 듯 바라보며 고사리 손으로 아기의 이마를 쓰다듬던 어린 비담의 모습부터가 그리 범상치는 않았었다. 그리고 마침내 삶과 죽음의 기로에 놓인 그 순간 일식이 일어나면서, 덕만공주의 엄청난 존재감은 비담의 머리와 가슴을 온통 뒤덮고 말았다. 완전히 반해버린 거다. 타인의 놀라운 능력이나 매력을 보았..
'선덕여왕' 29회에서 첨성대의 건립 문제를 놓고 벌인 덕만과 미실의 불꽃튀는 설전은 섣불리 그 시시비비를 판가름할 수 없을 만큼 심오했다. 어떻게 생각하면 미실의 말대로 백성에게 있어 '진실'은 중요하지 않을 수도 있다. 꽤 많은 경우에 진실은 사람들을 불편하게 하고 힘들게 하니까. 그래서 어쩌면 백성들은 덕만이 주겠다는 '희망'보다는 미실이 주겠다는 '환상'을 더 원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다만 그 환상으로 인해 자신들의 삶이 편안하기만 하다면. 그럼에도 덕만공주가 반드시 왕이 되어야만 했던 이유는 무엇일까? 김영현 작가의 또 다른 사극 '서동요'를 나는 무척이나 흥미롭게 보았었다. 서동요의 주인공인 백제 무왕 '장'과 선덕여왕 '덕만'에게는 공통점이 있다. 왕의 혈육이면서도 왕실의 사정으로 버려져 자..
나는 시트콤을 매우 좋아한다. 일반 드라마보다도 예능 프로그램보다도 더 좋아하는 장르가 시트콤이다. 그런데 시트콤이라는 장르는 자칫 잘못 만들면 웃기지도 못하고 감동도 주지 못한 채 딱한 모양새로 주저앉기가 일쑤이다. 하지만 김병욱 PD의 작품은 한 번도 실망을 준 적이 없다. 김병욱의 시트콤은 언제나 꽉 짜여진 구성과 독특한 인물들의 확실한 캐릭터로 시선을 사로잡는다. 그리고 일부러 웃기려고 하지도 않는다. 각각의 캐릭터가 성공적으로 구현되니까 자연스럽게 웃음이 발생한다. 또 김병욱 시트콤의 특징 중 하나는 웃음과 동시에 슬픔과 감동이 있다는 것이다. 특히 방송 내내 유쾌하게 진행되던 시트콤을 몇 번씩이나 새드엔딩으로 마무리함으로써 충격을 주기도 했다. 1. 순풍 산부인과 (SBS 1998~2000) ..
* 선비는 자기를 알아주는 이를 위해 목숨을 바친다(士爲知己者死). - 사마천의 '사기(史記)' 중에서 * 종자기(鍾子期)는 중국 춘추시대 거문고의 명인이었던 백아(伯牙)의 친구로서 백아의 음악 을 제대로 알아들을 줄 아는 유일한 지기였다. 종자기가 병들어 죽자 백아는 자기의 음악을 이해해 주는 이가 없음을 한탄하며 거문고 줄을 끊고 다시는 거문고를 타지 않았다. 어제 '선덕여왕, 월천대사는 제갈량과 닮았다' 라는 포스트를 올리면서부터 나는 월천대사가 덕만의 협조 요청을 받아들일 것인지, 만약 그렇게 된다면 덕만은 과연 '월천대사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어떻게 알아내고 그에게 줄 수 있을 것인지 궁금히 여겼다. 선덕여왕 28회에서 얼핏 드러난 첨성대의 그림... 덕만이 월천대사를 설득한 방법은 첨성대..
잠시도 긴장을 늦출 새 없이 긴박하게 진행된 '선덕여왕' 28회가 안겨준 즐거움은 상상 그 이상이었다. 아예 드러내놓고 미실에게 게임을 제안하는 덕만, 비담의 입을 통해 자신이 덕만에게 들려주었던 말들이 고스란히 되돌아오자 눈빛이 흔들리는 미실, 덕만의 수에 말려들어가는가 싶더니 김유신의 올곧음과 도망치려는 비담의 행동으로 덕만의 허패를 간파하는 미실, 그러나 마지막에 일어나는 일식의 반전... 덕만이 쥔 패는 허패가 아니라 진패였던 것이다. 이렇게 드라마의 초반부터 강력한 포스를 발산하며 절대지존의 자리를 유지하던 미실은 덕만이라는 애송이에 의해 처음으로 처참한 패배를 맛본다. 참으로 오랫동안 울기, 소리지르기, 넋놓고 멍때리기 이외에는 하는 게 없던 한심한 히로인 덕만이 갑자기 이렇게 변화된 이유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