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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무리의 유리벽 열기
비가 오십니다. 언제나 정겨운 비님이 오십니다. 어머니... 오늘도 이렇게 저를 찾아와 주시는군요. 마지막 인사도 없이 그토록 황망하게 떠나가신 후, 저는 비가 올 때마다 어머니를 뵙는 마음으로 하늘을 우러러 봅니다. 어머니와 더불어 맨발로 젖은 풀잎을 밟으며 쏟아지는 빗줄기 속에 몸을 맡기던 그 날, 저는 딱딱한 체면과 함께 두려움도 훌훌 벗어 던졌습니다. 어머니는 그렇게 저를 가르치셨지요. 허울좋은 말이 아니라 거침없이 몸을 던지는 실천으로, 과감한 용기와 편견에 얽매이지 않는 자유로움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어머님과 저는 한 나라의 중전이고 세자인데 나막신도 우산도 없이, 아무런 준비도 없이 어찌 빗속에 뛰어들 수 있느냐고 제가 물었을 때 어머님은 반문하셨습니다. "왜 꼭 그래야만 합니까? 중전은, ..
어머니의 죽음 앞에서 한없이 나약한 모습만을 보이셨을 때, 그 날부터 저는 마음의 문을 걸어 잠근 채 아버님을 뵈었지요. 아버님도 저와 마찬가지로 태어나 보니 왕의 아들이요 이 삭막한 궁궐이 집이었을 뿐, 스스로 선택한 인생이 아님을 알면서도 아버님을 원망했습니다. 운명일 뿐이라 해도 한 나라의 왕이 되었다면, 그토록 겁쟁이여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왕이 무력할 수는 있지만 비겁할 수는 없다고 여겼기에, 아버님은 왕의 자격이 없다고 저는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이제야 조금은 알 것 같습니다. 그토록 오만할 수 있었던 것은 아직 어렸기 때문이고, 세상을 잘 몰랐기 때문이었지요. 제법 영리하고 세상 이치를 잘 안다고 스스로 자부해 왔지만 모두 헛된 일이었습니다. 아버님께서는 처음으로 제 앞에서 눈물을 흘..
'응답하라 1988'에서 천재 바둑기사 '최택' 역할을 맡아 연기하는 박보검을 보며 '살아 움직이는 다이아몬드' 같다는 생각을 했었다. (관련포스팅 : 응답하라 1988 최택에게 빠지다) 그 때는 단지 '최택'이라는 캐릭터가 매력있어서 그런 줄만 알았는데 '응팔'이 종영한 후 '꽃청춘', '구르미 그린 달빛', '1박2일' 등을 통해서 박보검의 모습을 꾸준히 지켜보니, 다이아몬드처럼 빛나는 느낌은 최택 캐릭터뿐만 아니라 박보검이라는 배우 자체에서 비롯된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보통 배우들은 한 작품에서 반짝이는 모습을 보이다가도 다른 작품으로 옮겨가면 빛이 바래거나 확 깨는 경우가 많고, 특히 신인들은 경력과 적응력 부족의 문제로 더욱 그런 경우가 많은데 박보검은 예외였다. 첫 사극에 첫 주연을 맡은 ..
프로그램을 시청하지 않고 쓰는 글이기에 '리뷰'라는 표현은 쓰지 않겠다. 이 글은 리뷰가 아니라 오직 뉴스를 통해 접한 해당 프로그램의 한 가지 문제와 그에 관한 내 생각을 서술한 글이다. 글을 쓰기 위해서라도 해당 프로그램을 시청할까 고민했지만, 보고 싶은 마음이 전혀 생기지 않아서 안 보기로 결정했다. 생면부지의 이성 친구와 전화 통화를 하며 설레고 위로받는다는 설정 자체가 나는 썩 마음에 들지 않았다. 첫째는 허무하다 생각했고, 둘째는 위험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실제 만남에도 얼마든지 거짓이 침투할 수 있지만, 자기 실체를 완벽히 숨길 수 있는 전화 통화에서는 그 가능성이 훨씬 더 높아진다. '내 귀에 캔디'는 시작되자 마자 장근석과 유인나라는 출연자를 통해 큰 반향을 불러 일으켰다. 그들의 통화와..
한여름의 지상파 수목드라마 전쟁에서 내가 '질투의 화신'을 선택하게 되리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못했는데 결국 이렇게 되고 말았다. '태양의 후예' 못지 않게 기대해 왔던 이경희 작가의 '함부로 애틋하게'는 도저히 21세기 작품이라고는 믿을 수 없을 만큼 진부한 설정에다가, 아예 대놓고 "자, 슬프잖아! 펑펑 울어! 울란 말야! 이래도 안 울어?" 라고 외치는 듯한 느낌이 처음부터 너무 강하게 들어서 1회를 보고 나니 2회를 보기가 싫어졌다. 내가 아무리 애틋하고 절절한 드라마를 좋아한다지만, 너무 노골적으로 강요하면 좋던 것도 싫어지고 금세 질리는 법이다. 한 때 시트콤의 거장 김병욱 PD와 콤비를 이루어 정말 소름끼치도록 멋진 여러 작품을 선사해 주었던 송재정 작가의 '더블유(W)' 역시 엄청난 기대작이..
효명세자라는 역사 속 인물에 퍽이나 관심과 호감을 품고 있던 중, 그를 주인공 삼은 사극이 방송된다 하여 제법 기대를 품어 왔다. 웹소설 원작이라 하니 실제 역사와는 많이 동떨어진 내용일 터라 너무 큰 기대는 하지 않으려고 애써 왔지만, 하필 효명세자 역을 맡은 배우가 '응답하라 1988' 이후로 역시 큰 관심과 호감을 품게 된 박보검인지라 저절로 샘솟는 기대감을 억누르기란 쉽지 않은 일이었다. 절반은 효명세자 때문에, 또 절반은 박보검 때문에 설레며 기다려 온 '구르미 그린 달빛'이 드디어 전파를 타기 시작했다. '구르미 그린 달빛' 1회를 시청한 결과, 스토리는 다소 어설프고 무리수에 오글거리지만 화사한 꿈결처럼 예쁜 화면과 배우들의 상큼한 비주얼이 마음을 사로잡으니 썩 나쁘지는 않다는 느낌을 받았다..
슈퍼 또는 마트에 가면 보통 사람들은 원하는 상품의 진열대 앞에 서서 한동안 고민하며 물건을 고른다. 품질이나 모양도 중요하지만 그 못지 않게 중요한 것은 가격이다. 여러모로 비슷해 보인다면 조금이라도 저렴한 상품을 집어드는 것이 일반 서민들의 선택일 것이다. 나 역시 그런 평범한 사람들 중 1인이기에 늘 상품의 가격을 눈여겨 본다. 주의 깊게 고른 상품들을 바구니에 담아 들고 계산대로 걸어갈 때는 머릿속으로 대충 금액을 맞춰 본다. 하지만 나보다 좀 느슨한 성격의 사람이라면 피곤한 머릿속 계산 없이 그냥 캐셔가 부르는 대로 의심없이 값을 치른 후 구입한 물건을 싸들고 나올 것이다. 조금이라도 꼼꼼한 성격이라면 나중에라도 영수증을 확인하겠지만, 그렇지 않다면 영수증 역시 대충 쓰레기통에 버려질 것이다. ..
내 남편은 중증 약시 환자로서 2급 시각장애인이다. 운전이 불가능한 것은 물론, 버스 번호가 잘 보이지 않기 때문에 혼자서는 대중 교통 이용도 쉽지 않다. 지하철은 그래도 천천히 방향을 확인하면서 가면 되니까 좀 나은데, 현재 거주 지역에는 걸어서 갈 수 있는 지하철역이 없어서 꼭 버스를 타고 이동해야만 지하철도 탈 수 있다. 그래서 부부 동반 외출이 아니라 혼자 나가야 할 때는 어쩔 수 없이 장애인 콜택시를 이용하게 된다. 그런데 이용자 수에 비해 운행 차량 대수가 적다 보니 예약을 해도 시간 맞춰서 오는 경우가 거의 없다. 보통 1시간~2시간 정도를 맥놓고 기다려야 하기 때문에 몹시 불편하고 난감한 경우가 많지만, 다른 방법이 없으니 그저 꾹 참고 이용해 왔다. 그런데 최근 남편이 새벽에 나갈 일이 ..
하정우 배두나 주연의 '터널'을 관람했다. 설정상으로는 실베스타 스텔론의 1996년작 '데이라잇(Daylight)'과 비슷했다. 그런데 '데이라잇'은 터널 안에 갇힌 사람이 여러 명이었기에 다채로운 캐릭터를 감상할 수 있었던 반면, '터널'은 어두컴컴하고 좁은 공간에서 오직 하정우만이 원맨쇼를 벌이는지라 비교적 단조롭고 지루한 느낌을 부인할 수 없었다. 게다가 주인공 이정수(하정우)라는 캐릭터를 지나치게 영웅적인 인물로 설정해 놓은 탓에 몰입도가 떨어졌다. 거의 성자 수준의 희생 정신과 더불어 터미네이터를 연상케 하는 강철 체력과 정신력이 너무 비현실적으로 느껴졌던 탓이다. 무너진 터널 안에 갇힌지 무려 30일을 넘긴 상황에서도 이정수는 꽤나 멀쩡한 육체와 정신을 지니고 있었다. 몸의 상처에서는 피고름이..
리우 올림픽의 여자 양궁 금메달리스트인 기보배 선수를 향해 연예인 최여진의 모친인 정모씨가 SNS로 욕설을 하여 파문이 일고 있다. 수년 전 기보배 선수의 아버지가 인터뷰를 하면서 "딸에겐 보신탕이 잘 맞는 것 같다. 보신탕을 먹으면 성적이 잘 나온다."고 말했던 것을 빌미삼아 "국가대표가 한국의 이미지를 실추시켰다." 고 주장하며 욕설을 퍼부은 것이다. 해당 SNS에는 원색적인 욕 단어가 수차례 등장할 뿐 아니라 "잘 맞으면 네 부모도 처먹어라"는 식의 패륜적 표현까지 사용하고 있어 매우 충격적이다. 무엇보다 이해할 수 없는 것은 기보배 선수의 아버지가 그 인터뷰를 한 것이 2010년인데 느닷없이 지금에 와서, 그것도 리우 올림픽 기간에 딱 맞추어 무려 6년 전의 인터뷰 내용을 물고 늘어지며 공공연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