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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르미 그린 달빛' 3회, 부왕(父王)께 드리는 이영 세자의 편지 본문

종영 드라마 분류/구르미 그린 달빛

'구르미 그린 달빛' 3회, 부왕(父王)께 드리는 이영 세자의 편지

빛무리~ 2016. 9. 5.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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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의 죽음 앞에서 한없이 나약한 모습만을 보이셨을 때, 그 날부터 저는 마음의 문을 걸어 잠근 채 아버님을 뵈었지요. 아버님도 저와 마찬가지로 태어나 보니 왕의 아들이요 이 삭막한 궁궐이 집이었을 뿐, 스스로 선택한 인생이 아님을 알면서도 아버님을 원망했습니다. 운명일 뿐이라 해도 한 나라의 왕이 되었다면, 그토록 겁쟁이여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왕이 무력할 수는 있지만 비겁할 수는 없다고 여겼기에, 아버님은 왕의 자격이 없다고 저는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이제야 조금은 알 것 같습니다. 

그토록 오만할 수 있었던 것은 아직 어렸기 때문이고, 세상을 잘 몰랐기 때문이었지요. 제법 영리하고 세상 이치를 잘 안다고 스스로 자부해 왔지만 모두 헛된 일이었습니다. 아버님께서는 처음으로 제 앞에서 눈물을 흘리며 말씀하셨지요. "난 아무것도 해서는 안 돼! 그래야 네가 다치지 않는다... 내가 왕이고자 할 때 2천 명의 백성을 잃었고, 내가 왕이고자 할 때 중전을 잃었고, 나의 스승과 동무들 모두 그렇게 떠났다. 못난 내가 내 사람을 잃지 않는 방법은 그것뿐이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 

그 뜨거운 눈물을 보고서야 비로소 깨달았지요. 아버님과 제가 싸워야 할 상대가 얼마나 강하고 잔혹한지를 말입니다. 왕이신 아버님의 기세를 꺾기 위해 그들은 충성스런 신하들을 죽였고, 국모이신 어머님을 살해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의도적으로 민란을 조장하여 2천 명의 백성을 희생시키고 그들이 흘린 피로 강물을 이루게 하였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어머님의 원수이기에 용서할 수 없지만, 자신들의 권력을 지키기 위해 백성의 목숨을 초개처럼 짓밟은 그들의 죄는, 장차 이 나라를 이어받을 세자로서도 결코 용서할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애련정에서 아버님과 숙의마마가 7년만에 재회하실 때, 그 모습을 멀리서 지켜보던 제 가슴은 한없이 무너져 내렸습니다. 그토록 은혜하는 사람이 같은 궐 안에 있건만, 오랜 세월 만나지 못한 채 서로 그리워만 했던 두 분의 심정이 제 가슴으로 전해져 한없이 쓰라렸습니다. 능금식초로 쓰여진 아버님의 서신을 미처 알아보지 못하고 야속한 백지 답장에 서러워만 했던 숙의마마도 그렇거니와, 아무런 기약 없는 재회의 시간을 염원하며 7년 동안 매일 밤마다 애련정에 나와 기다리셨던 아버님의 막막한 심정은 또 어찌해야 한다는 말입니까? 

숙의마마를 지키려고 그러셨군요. 세자인 저를 지키기 위해 나약하고 정신이 온전치 못한 임금 행세를 하신 것처럼, 숙의마마를 지키기 위해서는 매정하고 무심한 지아비 행세를 하셨군요. 만약 그리하지 않으셨다면, 숙의마마는 벌써 오래 전에 이 세상 사람이 아니었을지도 모르니까요. 숙의마마를 향한 다정한 위로의 말씀을 담은 아버님의 편지가 중전의 손에 들어갔다면, 잔혹한 김헌의 딸인 중전이 어찌 숙의마마를 무사히 놓아 두었겠습니까? 아버님의 백지 서신이 실은 간절한 사랑이요 최선의 노력이었음을 이제야 알겠나이다. 

그토록 고심하신 아버님의 뜻을 미처 헤아리지 못하고 원망만 하였으니, 이 철없는 자식의 불효를 어찌하겠습니까? 하지만 저를 굽어보시는 아버님의 눈빛은 질책이 아닌 자애로 가득하니 그 따뜻한 눈빛에 힘을 얻은 소자, 용기를 내어 보려 합니다. 이제 대리청정의 명을 받든 저의 어깨에 막중한 책임이 지워졌으나, 아버님의 무거운 짐을 나눠 질 수 있게 되었다는 기쁨이 두려움보다 크고 벅차옵니다. 그러니 아바마마, 아직은 어린 제가 약해지고 두려워질 때 기댈 수 있도록 늘 그 자리를 지켜 주시옵소서. 감히 청하는 소원은 그것 뿐이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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