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무리의 유리벽 열기
슈퍼나 마트에서 겪을 수 있는 일 본문
슈퍼 또는 마트에 가면 보통 사람들은 원하는 상품의 진열대 앞에 서서 한동안 고민하며 물건을 고른다. 품질이나 모양도 중요하지만 그 못지 않게 중요한 것은 가격이다. 여러모로 비슷해 보인다면 조금이라도 저렴한 상품을 집어드는 것이 일반 서민들의 선택일 것이다. 나 역시 그런 평범한 사람들 중 1인이기에 늘 상품의 가격을 눈여겨 본다. 주의 깊게 고른 상품들을 바구니에 담아 들고 계산대로 걸어갈 때는 머릿속으로 대충 금액을 맞춰 본다. 하지만 나보다 좀 느슨한 성격의 사람이라면 피곤한 머릿속 계산 없이 그냥 캐셔가 부르는 대로 의심없이 값을 치른 후 구입한 물건을 싸들고 나올 것이다. 조금이라도 꼼꼼한 성격이라면 나중에라도 영수증을 확인하겠지만, 그렇지 않다면 영수증 역시 대충 쓰레기통에 버려질 것이다.
그런데 자기가 구입한 (또는 구입하려던) 물건보다 훨씬 더 비싼 값을 치르게 되는 경우가 의외로 적지 않다. 흔한 경우로는 진열대에 붙어 있는 가격 표시의 위치가 애매해서 좌우의 어떤 상품을 가리키는 것인지 확실히 모른 채로 그 중 하나를 선택했는데, 내가 집어든 것 말고 다른 쪽에 해당하는 가격이었을 수 있다. 매사에 정확한 것을 좋아하는 나는 그런 상황이 발생하는 것이 싫어서, 가격 표시의 위치가 애매하게 붙어있는 상품은 아예 사지 않고 포기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나는 분명히 가격을 보고 선택했는데, 계산대에서 찍어 본 결과 다른 금액이 찍히면 기분이 좋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번에는 그토록 꼼꼼히 확인했는데도 가격불일치의 상황이 또 발생했다.
떠먹는 요구르트 4개입 세트의 할인 가격이 1,650원이라고 했다. 할인 상품답게 요구르트 세트는 커다란 상자 안에 다량으로 수북히 담겨 있었고, 가격 표시는 바로 그 상자에 큼직하게 붙어 있었다. 아주 명확해서 다른 상품과 헛갈릴 이유는 전혀 없었다. 그런데 막상 계산하려고 보니 찍힌 금액은 2,800원이었다. 백 원 단위도 아니고 천 원 단위를 넘어서는 가격차를 보는 순간 나는 울컥했다. "적혀 있는 가격하고 왜 이렇게 차이가 많이 나죠?" 그랬더니 캐셔는 "잠시만요" 하면서 다른 직원을 불러 확인을 부탁했다. 내가 복잡한 계산대 앞에 서서 우두커니 기다리는 동안 2~3명의 사람들이 바구니 한 가득 담아 온 물건들을 모두 계산하고 나갔다. "왜 기다려야 하는 건데요?" 내가 물었다.
캐셔가 대답했다. "할인 행사가 끝나서 다시 원래 가격으로 돌아갔대요. 그래도 고객님한테는 할인 가격으로 드리려고 컴퓨터를 돌리는(?) 중이에요." 어쨌든 할인 가격으로 주겠다고 하기에 더 이상 말하지 않고 입을 다물었다. 할인 행사가 끝났는데 가격 표시를 수정하지 않고 그대로 둔 것은 잘못이지만 단순한 실수일 거라고 생각했다. 사람이면 실수도 할 수 있는 거니까 이해해야 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집에 와서 다시 생각해 보니 실수가 아니라 운영자 측의 고의였을 가능성도 매우 농후해 보였다. 대량 물품의 할인 행사는 매우 중요한 업무다. 할인 기간이 끝났으면 컴퓨터상의 가격만 조정하는 것이 아니라 소비자들의 눈에 띄는 가격 표시 또한 즉시 수정하는 것이 당연한 일이다.
그렇게 굵직한 업무까지 누락시키면서, 당최 하는 일이 뭔데? 고의성을 의심하는 이유는 명백했다. 왜냐하면 이득을 보니까! 나처럼 꼼꼼한 사람이 아니라면, 눈에 보이는 가격 표시에 속아서 그 물건을 거의 2배에 가까운 금액을 주고 구입한 사람도 적지 않을 것이었다. 보통 대형 슈퍼나 마트에 가면 여러가지 물품을 한꺼번에 구입하기 때문에, 일일이 하나 하나의 가격을 주의 깊게 확인하기가 쉽지 않다. 결국 1,650원인 줄 알고 그 상품 구입을 결정했던 수많은 사람들은 2,800원을 지불하고도 뭐가 잘못 되었는지조차 인식하지 못한 채 그냥 갔을 것이다. 언뜻 생각해 봐도 마트 주인 입장에서는 엄청난 이득일 것 같지 않은가? 만약 고의가 맞다면 이건 엄연한 사기 행위다. 캐셔를 비롯한 월급쟁이 직원들의 책임은 아니겠지만,
참 가증스런 일이다. 그런 꼼수를 쓰다가 나 같은 손님에게 발각되면 대충 실수인 척 얼버무리며 "그래도 고객님한테는 할인 가격으로 드릴게요" 하고 오히려 선심이나 쓰는 듯 대응하면 그만이다. 실수라는데 뭐, 할인 가격으로 주겠다는데 뭐, 더 이상 발끈하며 항의를 계속할 사람은 없을 테니까 말이다. 이번 일을 겪고 나니 아무리 덥고 피곤해도 역시 매사를 꼼꼼히 따져봐야 겠다는 결심이 굳어진다. 단지 내 돈 천 원을 아끼기 위해서가 아니라, 사회 정의를 어지럽히는 그런 인간들의 비열한 꼼수를 무력화시키기 위해서라도 정신 바짝 차리고 살아야 할 것 같다.
덧 : 슈퍼나 마트의 영수증을 꼭 확인해 봐야 하는 이유는 또 있다. 누구나 겪어 본 일이겠지만, 캐셔의 실수로 이전 손님의 구매 목록이 리셋되지 않고 나의 상품 구입 목록에 합쳐져서 남아있는 경우가 적지 않기 때문이다. 그건 어쨌든 실수겠지만, 가끔 직원이 아니라 주인이 계산하다가 그런 실수를 하면 좀 의심스러울 때도 있다. 어떤 뻔뻔한 캐셔는 그런 잘못을 해 놓고도 사과조차 하지 않아서 빡치게 만든 경우도 있다. 그러니 멍하게 정신 놓고 살다 보면 사지도 않은 물건 값을 잔뜩 치르고도 뭐가 잘못됐는지 모른 채 나중에 카드 청구액만 보면서 한숨짓게 될 수 있다. 우리 모두 정신 차리고 삽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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