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무리의 유리벽 열기
장애인 콜택시, 새벽 3시 40분에 걸려온 전화 본문
내 남편은 중증 약시 환자로서 2급 시각장애인이다. 운전이 불가능한 것은 물론, 버스 번호가 잘 보이지 않기 때문에 혼자서는 대중 교통 이용도 쉽지 않다. 지하철은 그래도 천천히 방향을 확인하면서 가면 되니까 좀 나은데, 현재 거주 지역에는 걸어서 갈 수 있는 지하철역이 없어서 꼭 버스를 타고 이동해야만 지하철도 탈 수 있다. 그래서 부부 동반 외출이 아니라 혼자 나가야 할 때는 어쩔 수 없이 장애인 콜택시를 이용하게 된다. 그런데 이용자 수에 비해 운행 차량 대수가 적다 보니 예약을 해도 시간 맞춰서 오는 경우가 거의 없다. 보통 1시간~2시간 정도를 맥놓고 기다려야 하기 때문에 몹시 불편하고 난감한 경우가 많지만, 다른 방법이 없으니 그저 꾹 참고 이용해 왔다.
그런데 최근 남편이 새벽에 나갈 일이 있어서 5시 40분 택시를 인터넷으로 전날 밤에 미리 예약해 두었다. 그런데 놀랍게도 우리 부부가 한창 깊이 잠들어 있던 새벽 3시 40분에 전화벨이 울렸다. 인천 장애인 콜택시 상담원 최모씨였다. 그녀는 새벽 시간에 이용자가 많아서 차를 보내 주기가 어려우니 기존 예약을 취소하고 새벽 6시 30분 차량을 다시 예약해 달라고 말했다. 언제는 뭐 예약 시간에 맞춰서 왔었나? 항상 그랬듯이 이용자가 많으면 많은대로 순번에 따라 늦게라도 그냥 보내주면 될 일인데, 굳이 취소하고 다시 예약을 하라니 이해할 수가 없었다. 더욱이 새벽 3시 40분에 남의 집에 전화를 걸어서 그런 소리를 하다니, 정말 참기 힘든 무례함이었다.
평소 순한 성격의 남편은 일단 알았다고 하면서 전화를 끊었지만 몹시 황당한 표정이었다. 덩달아 잠에서 깨어난 나 역시 황당함과 더불어 분노가 치밀었다. 도대체 우리가 왜 밤을 꼴딱 새면서 예약 취소와 재예약이라는 삽질을 해야 하는 것인지 납득할 수가 없었다. 3시 50분, 내가 직접 전화를 걸어서 최모 상담원과 통화를 했다. 이용자가 많아서 차량이 늦게 오는 것은 이해하겠지만, 도대체 왜 취소하고 다시 예약을 해야 하는 것이냐고 물었다. 그랬더니 어쩌고 저쩌고 계속 딴소리만 한다.
새벽에는 5대의 차량이 도는데 병원가시는 분들이 많아서, 인터넷 예약은 자기네가 수정할 수가 없어서, 그래서 첫차를 안내해 드렸다는 둥 어쩌고... 결국 그녀는 나의 질문에 정확한 대답을 하지 못했다. 굳이 예약을 취소하고 재예약을 해야만 하는 이유는 밝히지 못했다는 뜻이다. 꼭 그렇게 해야만 할 필연적인 이유가 없다면, 굳이 꼭두새벽에 남에게 전화를 걸어 잠도 못 자게 하고 쓸데없는 일처리(취소와 재예약)를 요구한 최모 상담원의 행위는 무례를 넘어 폭력에 가까운 것이었다.
이렇게 항의가 들어올 줄은 몰랐던 듯, 최모 상담원은 연신 사과를 했다. 그리고는 어쩌고 저쩌고 무슨 편법을 사용해서 우리가 예약한 시간에 맞춰 차량을 보내 주겠다는 식으로 말했다. 하지만 그런 식의 대응으로 넘어갈 문제는 아니라고 생각되었다. 최모 상담원의 개인적인 잘못이라면 오히려 다행이지만, 장애인 콜택시를 운영하는 인천교통공사의 시스템 문제라면 앞으로도 얼마든지 이처럼 황당한 경우가 발생할 수 있지 않겠는가? 나는최모 상담원의 이름을 확인한 후 관리자와의 상담을 요청했고, 당일 오후와 그 다음날 오전 2차례에 걸쳐 관리자라 하는 정모 대리와 통화를 했다. 한 번으로 끝낼 수 있었던 상담이 두 번으로 늘어난 까닭은 최모 상담원이 문제의 핵심을 보고하지 않고 퇴근해버린 탓이었다.
단지 차량이 예약 시간보다 늦게 도착해서 항의하는 걸로만 알고 있던 정모 대리는 새벽 3시 40분에 전화를 걸어 예약 취소와 재예약을 권유한 최모 상담원의 행위를 나와 통화하면서야 알게 되었고 적잖이 황당해하는 눈치였다. 통화 내용을 확인하고 다음날 최모 상담원이 출근하면 이유를 물어본 후 전화 드린다기에 그러라고 했다. 요즘 인천 지하철 2호선 때문에 시민들의 불만 접수가 폭주하여 고충이 심한 것 같기에 그쯤은 이해해 줘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다음날 통화에서 정모 대리는 최모 상담원의 판단 착오와 실수로 빚어진 일이었다며 정식 사과했다. 판단 착오라고 하지만, 아무래도 내 생각에는 본인의 업무 편의를 위해서 안일한 생각으로 저지른 일 같았다.
나는 통화를 마치며 앞으로는 절대 그토록 이른 시간에 전화하지 말 것과 가능한 한 예약 시간에 맞추어 차량을 보내줄 것, 이 두 가지를 당부했다. 꼭두새벽부터 전화해서 취소와 재예약을 종용하던 최모 상담원은 항의가 들어오자 그때서야 말을 바꾸며 우리가 미리 예약한 시간에 맞추어 차량을 보내 주었다. 편법을 사용했는지 어떤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최선을 다해 노력하면 가능한 일이었던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상대의 입장은 전혀 고려하지 않은 채 자기 편의만을 우선시한 최모 상담원이 무척이나 괘씸했지만, 앞으로도 장애인 콜택시를 이용할 일이 많으니 너무 독하게 굴지 말고 이쯤에서 마무리하는 것이 좋을 듯했다. 그래도 만약을 대비해 휴대폰의 통화 녹음 파일은 잘 보관해 두었다.
그 후 남편은 3~4회에 걸쳐 새벽 시간에 장애인 콜택시를 이용했고, 놀랍게도 차량은 언제나 예약 시간에 맞추어 도착했다. 예전에 1~2시간씩 기다렸을 때와는 천양지차였다. 결과적으로 우리 입장에서는 잘 된 셈이지만, 꼭 이렇게 목소리 높여 항의하고 시끄럽게 만들어야만 정당한 권리를 누릴 수 있는 사회라고 생각하니 무척 씁쓸했다. 우리가 예전처럼 그저 조용히 묵묵히 인내하고만 있었더라면 과연 이렇게 신경을 써 주었을까? 진작에 한 번쯤은 그리 만만한 상대가 아님을 보여주어야 했던 것일까? 변화와 깨달음의 계기를 제공해 준 셈이니, 어쩌면 3시 40분에 걸려왔던 최모 상담원의 무례한 전화는 오히려 고마운 일이었는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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