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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시작... 악인에게 맞서지 마라!

빛무리~ 2016.06.17 21:47

매일미사를 다니고 싶다는 생각을 벌써 1~2년 전부터 갖고 있었지만, 결혼해서 인천으로 이사를 온 후에는 좀처럼 사정이 여의치 못했다. 서울대교구에는 매일 같은 시간에 미사를 드리는 성당이 무척 많았는데, 인천교구에 속한 성당들은 절대적으로 미사 횟수가 적을 뿐 아니라 시간대도 들쑥날쑥해서 규칙적으로 매일미사를 실천하기가 너무 어려웠다. (아무래도 사제 인력 부족의 문제가 아닐까 싶은...) 그렇다고 인천에서 서울까지 매일미사를 다닌다는 것은 좀 지나친 일이 아닐까 싶었기에 늘 원하면서도 이제껏 실천하지 못하고 있었는데, 지난 주일 아침 미사 중에 문득 예전의 몇 가지 기억이 떠올랐다. 

내가 마음을 다해서 간절히 기도했을 때 주님께서는 아주 확실히, 소름돋을 만큼 정확하게 그 기도를 들어주셨다. 그렇게 이루어진 기적들... 남들은 몰라도 나만은 확실히 알고 있는 작은 기적들이 분명 있었다. 그렇다면 현재 내가 소망하는 일이 이루어지지 않고 있는 것은, 내가 진심을 다해서 간절히 기도하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결론이 내려진다. 왜 그 동안 잊고 있었을까? 내가 너무도 게으르고 무심했구나. 내 인생을 조금만 더 사랑했다면 이렇게 살지는 않았을 것을... 인천에서 서울까지가 뭐 그리 멀다고! 나는 2016년 6월 13일 월요일부터 과감히 매일미사를 시작했다. 


궁리를 거듭한 끝에, 제법 치밀한 계획이 완성되었다. 새벽미사와 저녁미사는 개인 사정으로 참석이 어려웠기에 평일 오전 10시 미사가 있는 성당을 열심히 찾았는데, 우리집과 가까운 인천교구 내의 성당 중에는 마땅한 시간대의 미사가 매일 있는 성당을 찾아낼 수가 없었다. 그래서 처음에는 서울 합정역 부근의 절두산 성지 성당에서 365일 내내 거행되는 오후 3시 미사를 선택했다. 결심만 굳게 하면 일주일 내내 인천에서 절두산까지 왕복하기도 가능할 것 같았다. 그런데 정작 13~17일까지 5일 동안 꼬박 왕복 3시간 거리를 다녀 본 결과, 아무래도 이러다가는 쉽게 지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계획을 수정하게 되었다. 


수목요일에는 집에서 가장 가까운 W동 성당에 오전 10시 미사가 있고, 금토요일에는 바로 옆 동네인 K동 성당에 오전 10시 미사가 있음을 확인했다. 하지만 월화요일에는 끝내 찾아낼 수 없었다. 그래서 월화는 절두산, 수목은 W동, 금토는 K동으로 다니게 된 것이다. 집에서 절두산까지 버스와 지하철을 타고 왕복하면 거의 1만보 가량을 걷게 된다. 5일 동안 그렇게 매일 다녔더니 힘도 들지만 몸과 마음이 한층 개운해지는 느낌도 든다. 절두산 성당은 제법 높은 지대에 있어서 땡볕 아래 끝없이 이어지는 계단과 언덕을 헉헉대며 올라가야 하는데, 할머님들이 느린 몸짓으로 열심히 오르시는 모습을 보며 경탄과 함께 아직 남아있는 나의 젊음에 감사하는 마음을 새삼 느끼기도 했다.  


내가 이 시기에 매일미사를 시작하게 된 것도 하느님의 뜻이었을까? 첫날이었던 월요일의 복음 말씀은 마치 나를 위해 준비해 두신 말씀처럼 느껴졌다. 

<나는 너희에게 말한다. 악인에게 맞서지 마라.>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5,38-42 

그 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하고 이르신 말씀을 너희는 들었다. 그러나 나는 너희에게 말한다. 악인에게 맞서지 마라. 오히려 누가 네 오른뺨을 치거든 다른 뺨마저 돌려 대어라. 또 너를 재판에 걸어 네 속옷을 가지려는 자에게는 겉옷까지 내주어라. 누가 너에게 천 걸음을 가자고 강요하거든, 그와 함께 이천 걸음을 가 주어라. 달라는 자에게 주고 꾸려는 자를 물리치지 마라." 주님의 말씀입니다. 

인간의 평범한 사고방식으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도, 받아들일 수도 없는 말씀이다. 그러나 성서의 심오한 진리를 단순한 해석으로 판단하는 것은 금물이기에, 이해가 안 되면 안 되는대로 그냥 차곡차곡 가슴에 담아 두었더랬다. 그런데 이번에는 그 말씀이 무슨 뜻인지를 아주 조금이나마 알 것도 같았다. 이제껏 내 삶이 고통스러웠던 이유는, 부단히 악인들과 맞서고 있었기 때문임을 깨달았던 것이다. 나는 소극적이고 행동력이 없는 편이기에 대놓고 맞서지는 않았지만, 마음속으로는 항상 거부하며 증오하고 있었다. 하지만 증오할수록, 맞설수록, 나는 세상과 적이 되어가고 있었다. 세상 모든 사람이 악인은 아니지만, 악인들은 언제 어느 장소에나 켜켜이 촘촘이 박혀있기 때문이다. 


평소 TV 연예 부문의 글을 쓰는 블로거로서, 나 역시 최근 성폭행 혐의로 고소당한 유명 연예인 박모씨의 일에 관심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내용이 너무 추잡해서 별로 글을 쓰고 싶지는 않았기에, 계속 올라오는 뉴스들만 스치듯 눈팅하고 있었다. 그런데 극렬한 어조로 박모씨를 옹호하는 몇 편의 기사 및 블로거 포스팅이 눈에 띄었다. 한결같이 '법적 책임'을 운운하는 내용들이었다. 박모씨에게는 법적 책임이 없는데 (또는 법적 유무죄가 아직 확정되지 않았는데) 그를 향한 세상의 비난은 가혹하고 부당하다는 주장들이다. 이쯤에서 솔직히 밝히자면, 나는 도덕과 양심으로 판단해야 할 문제에 법적 잣대를 들이대며 마치 그것이 절대 원칙인 양 목청 높이는 인간들을 가장 경멸해 왔다. 


언제나 법은 그런 사람들을 위해 최고의 방패막이 되어 준다. 법의 그물에만 걸리지 않으면 무슨 짓을 해도 괜찮다는 가증스런 인간들... 최소한의 양심과 도덕성을 지닌 인간이라면, 매사 법의 방패 뒤로 꼭꼭 숨을 이유가 어디에 있을까? 그들은 자기 자신과 같은 부류의 모든 인간들을 한결같은 논리로 감싼다. "법적으로 문제 없는데 왜?" 라고 외치며, 양심과 도덕의 기준으로 정당하게 비판하는 사람들을 오히려 '남에게 흠집내기 좋아하는 치졸한 인간들'로 규정짓고 매도한다. 그렇게 눈꼴시게 법을 내세우며 박모씨를 옹호하는 글을 몇 편 읽다 보니, 나도 모르게 울컥 화가 치밀었다. 박모씨를 성토하고 싶은 생각은 별로 없었지만, 그 사람들과는 한 번쯤 박터지게 맞서고 싶었다. 


그런 나에게 주님께서는 복음을 통해 말씀하셨다. "내가 너에게 이르노니, 악인들과 맞서지 마라." 무언가 머리를 쿵 치고 지나가며 속이 시원해지는 것 같았다. 굳이 맞설 필요도, 증오할 필요도 없는 것을, 그냥 그런 사람들도 있는가보다 하면서 마음을 비우면 나 자신부터가 편안해질 것을, 나는 이제껏 그런 모습들을 볼 때마다 일일이 증오하고 역겨워하며 나 자신을 괴롭혀 왔던 것이다. 행동으로뿐만 아니라 마음으로도 맞서지 말아야 한다는 것을 비로소 나는 깨달았다. 글쎄 뭐 오른뺨을 맞고 왼뺨마저 내어주는 경지까지는 아직 꿈도 꿀 수 없지만, 어쩌면 죽을 때까지도 그 경지에는 도달 못 할 것 같지만, 아무튼 오늘 나는 평화에 이르는 작은 한 걸음을 내딛었다. 이렇게 내일도 모레도, 소망을 이루는 그 날까지 매일미사는 계속된다, 쭈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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