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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무리의 유리벽 열기
'역적 : 백성을 훔친 도적'의 초반 전개를 강력하게 이끌었던 아모개(김상중)가 14회에서 죽음으로 하차했다. 그의 최후가 잔잔하고 평화로웠던 것은 황진영 작가에게 참으로 고맙고도 다행스러웠던 부분이다. 아모개는 너무도 강인하고 자상하며 존경스런 아버지였다. 만약 그가 고문을 이기지 못해 옥중에서 피투성이 모양새로 비참하게 최후를 맞이했더라면, 홍길동(윤균상)의 감정에 몰입하고 있던 시청자들의 가슴에는 꽤나 깊은 생채기가 패이고 말았을 것이다. "참말로 고생하셨어라. 아부지... 다음 생에도 우리 아버지 아들 합시다. 다음엔 아부지가 제 아들로 태어나소. 내가 울 아부지 글공부도 시켜드리고, 꿀엿도 사드리고, 비단옷도 입혀드리고... 우리 식구들 뿔뿔이 헤어지지 않게 꼭 지켜드리겄어라. 참말로 고생하셨소..
'말씨'란 명사로서 '말하는 태도나 버릇'을 뜻한다. 선택하는 어휘나 단어도 물론 말씨에 해당되며, 어떤 표현을 사용해야 할지에 관해 고민하는 것 또한 넒은 의미에서는 말씨에 해당된다고 나는 생각한다. 최근 '신서유기'를 시청하면서 개인적으로는 규현에게 늘 감탄하고 있다. 예능 베테랑인 나영석 PD와 제작진은 그에게 '비관적 아이돌'이라는 코믹한 별명을 붙여 주었지만, 사실 그렇게 고민이 많고 생각이 많아서 비통함(?)에 잠긴 표정을 지을 때가 많은 것은 모두 배려심이 지나친 탓이었다. 첫 모임에서는 이상할 만큼 게임을 잘 해서 문제가 되었다. 요괴들(출연자들)이 절대 성공할 수 없을 거라고 확신했던 나PD는 경솔하게도 "이 게임에 한 명이라도 성공할 경우 곧바로 차후 일정을 취소하고 퇴근시켜 주겠다."..
'신혼일기'에 등장하는 구혜선과 안재현 부부의 모습은 예쁘고 사랑스럽다. 다른 말은 필요 없이 그냥 '예쁘다'와 '사랑스럽다'라는 두 단어만 있으면 그들의 모습을 표현하기에 부족함이 없을 듯하다. 30대 초반이면 어린 나이는 아니지만 아직은 그리 성숙한 나이도 아니라고 볼 수 있는데, 달콤한 신혼을 즐기는 와중에도 끝없이 서로를 배려하고 상대를 먼저 위하며 세심하게 챙기는 그들의 모습은 무척이나 어른스러웠다. 섬세한 면에서는 남편 안재현이 한 수 위다. 구혜선은 참하고 예쁘장한 외모와 달리 성격이 무척이나 털털해서, 모든 행동이 살짝 터프하고 선이 굵은 느낌이다. 그에 비해 안재현은 여린 외모 만큼이나 가늘고 섬세한 감성으로 아내를 챙긴다. 물론 구혜선도 남편을 다정하게 챙기지만, 어딘가 안재현이 하는 ..
나에겐 좀 이상한 증세(?)가 있었다. 왠지 전화가 올 것 같다는 느낌이 들어서 물끄러미 휴대폰을 보고 있으면, 10초쯤 후에 정말로 전화가 온다든가 뭐 그런 식의 일들이 반복되는 것이다. 아무 소리도 안 들렸는데 누군가 내 이름을 부를 것만 같아서 정신을 차리고 있다 보면, 정말로 누군가 저 멀리서 내 이름을 부르곤 했다. 그 외에도 '오늘은 그 친구를 만나면 안 좋은 일이 있을 것 같다'는 느낌이 들어서 어떻게든 피하려 했는데, 어쩔 수 없이 만나게 된 날은 꼭 불미스런 일이 일어나곤 했다. 일종의 신기(神氣)인지 뭔지, 한창 예민할 때는 하루에도 몇 번씩 그런 일이 있었는데, 요즘은 예전보다 많이 무디어져서 그런 기억이 언제였는지 가물가물하다. 아무튼 '우리 결혼했어요'(우결) 라는 프로그램에 대해..
처음부터 범상한 느낌은 아니었다. 처음 만난 덩치 큰 사내에게 다짜고짜 반말을 하고, 뭔가 신경에 거슬린다 싶으면 거침없이 뺨까지 올려붙이는 조선시대 여자아이라니! 신분 높은 공주나 양가댁 규수도 아니고, 기생도 천대받던 시절인데 하물며 기생의 몸종에 불과했으니. 가령(채수빈)은 천한 중에도 가장 천한 신분이었다. 더욱이 조선시대에 여성의 지위가 어떠했는가를 생각한다면, 그 사회의 일반적인 기준에서 볼 때 가령의 존재는 벌레보다 나을 것이 없었다. 그 누구든 마음껏 짓밟을 수 있고, 설령 죽인다 해도 별 책임을 지지 않아도 되는, 그만큼 하찮은 존재로 취급받았을 거라는 얘기다. 그러한 신분의 가령이가 어찌 그토록 당돌한 성품으로 자라날 수 있었는지는 의문이다. 어려서부터 천대받고 짓밟히며 성장했다면, 티..
'역적 : 백성을 훔친 도적' 2회의 엔딩을 볼 때까지만 해도 노비 부부인 아모개(김상중)와 금옥(신은정)의 운명에는 비극 외에 남은 것이 없을 줄만 알았다. 과연 금옥은 만삭의 몸으로 조생원의 희롱에 저항하다 태중에 상처를 입고는 피비린내 가득한 난산 끝에 세상을 떠났다. 이에 누구보다 아내를 사랑했던 아모개는 정신줄을 놓고 말았다. 게다가 주인 조참봉(손종학)과 그의 숙부인 조생원이 자기의 재산을 가로채려 의도적으로 꾸민 일임을 알게 된 아모개는 끝내 주인을 살해하기로 결심한다. 스스로 삶을 포기하지 않고서는 내릴 수 없는 결단이었다. 2회 엔딩까지는 정말 그런 줄만 알았다. 그런데 3회의 전개는 예상과 전혀 다르게 흘러갔다. 조참봉을 살해한 후 즉시 체포되거나 아니면 도망치다가 체포되어 형장의 이슬..
'비정상회담'에서 오헬리엉은 프랑스의 '전국민 자동 장기기증법'을 토론 주제로 건의했다. 살아있는 동안 명확한 거부 의사를 증거로 남기지 않았다면 프랑스의 모든 국민은 사망 후 자동적으로 장기기증자가 된다는 것이다. (일명 까이아베 법) 1976년부터 약 40년 동안은 이 법이 비교적 약하게 적용되어 수술 전 유족의 동의라도 받게 했었는데, 2017년 들어 더욱 강력하게 통과된 법안에 따르면 유족의 동의조차도 확인할 필요가 없게 되었다고 한다. 장기기증을 원하지 않는 사람은 거부 의사에 대한 명확한 증거를 남겨야만 한다. 온라인으로 장기기증 거부 등록을 하든지, 장기기증을 거부한다는 서류라도 써서 남겨야 하는 것이다. 그렇지 못하면 본인의 의사와 상관없이, 사망 후 그의 몸에 있던 장기들은 자동으로 적출..
최근 '소사이어티 게임'이라는 예능 프로그램을 즐겨 시청하고 있다. '더 지니어스' 시리즈와 상당히 비슷하지만, 14일 동안 폐쇄된 공간에서 합숙을 하며 진행되기 때문에 긴장감이 한층 고조된다. 매일 한 명씩은 반드시 탈락자가 발생해야 한다는 점에서는 '더 지니어스'와 같은 형식이지만, 양 진영 리더의 권한이 매우 막강하여 탈락자를 자기 뜻대로 지명할 수 있기 때문에 더욱 더 정치적(?)인 측면이 강조된 프로그램이라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정치란 과연 무엇일까? 이쯤에서 먼저 이 글을 쓰고 있는 '나'라는 인간의 어리석은 착각 한 가지를 고백해볼까 한다. 결코 적은 나이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나는 불과 몇 년 전까지 '정치'라는 개념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했었다. '정치'라는 단어를 네*버 국어사전에서 검색..
'월계수 양복점 신사들'을 시청하다 보면 저절로 입가에 웃음이 지어진다. 대부분의 등장인물이 매우 착하고 솔직한 데다가, 악역의 포지션에 있는 사람들조차 어설프고 귀여운 수준이라서 가볍고 유쾌한 마음으로 볼 수 있다. 요즘 그러잖아도 시국이 뒤숭숭하고 현실이 답답한데, 이 와중에 '퍽퍽한 고구마를 목구멍에 마구 쑤셔넣는' 드라마는 솔직히 별로 매력 없는게 사실이다. 가끔씩 사이다를 먹여준다고 해도 기본적으로 고구마가 많은 드라마는 당기질 않는다는 뜻이다. 그런 의미에서 순수하고 따뜻한 사람들의 이야기인 '월계수 양복점 신사들'은 마음을 편하게 해주는 매력적인 작품이라고 볼 수 있다. 오히려 그래서 비현실적이기도 하지만. 솔직 순수해서 예쁜 인물들 중에도 가장 눈에 띄는 인물은 돌직구 짝사랑녀 민효원(이세..
우리 한국인들의 입장에서 볼 때 일본인들의 혐한(嫌韓) 감정이란 도통 이해하기 힘든 것이지만, 아무튼 요즘 일본에는 혐한 분위기가 매우 고조되어 있다고 한다. 오사카에서는 그 유명한 '와사비 테러' 사건이 있었고, 최근에는 야스쿠니 폭발 사건의 유력 용의자가 한국인임이 밝혀지면서 더욱 불붙었다고도 한다. 그런데 역사적 정치적으로 아직 풀리지 않은 앙금들이 쌓여 있기는 하지만, 그로 인해 두 나라 국민들이 감정적으로까지 서로를 미워하게 된다는 것은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지난 21일 유튜브에 2분 30초 분량의 동영상이 공개되었다. 시내 거리에서 반한시위가 벌어지고 있는 가운데, 곱게 한복을 차려입은 한 여성이 두 눈을 가린 채 프리허그를 기다리고 있는 모습이었다. 그 여성의 발치에는 일본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