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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정상회담' 우리는 '표현하지 않을 자유'에 대하여 생각해 본 적이 있는가?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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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정상회담' 우리는 '표현하지 않을 자유'에 대하여 생각해 본 적이 있는가?

빛무리~ 2017. 1. 26. 04: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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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정상회담'에서 오헬리엉은 프랑스의 '전국민 자동 장기기증법'을 토론 주제로 건의했다. 살아있는 동안 명확한 거부 의사를 증거로 남기지 않았다면 프랑스의 모든 국민은 사망 후 자동적으로 장기기증자가 된다는 것이다. (일명 까이아베 법) 1976년부터 약 40년 동안은 이 법이 비교적 약하게 적용되어 수술 전 유족의 동의라도 받게 했었는데, 2017년 들어 더욱 강력하게 통과된 법안에 따르면 유족의 동의조차도 확인할 필요가 없게 되었다고 한다. 

장기기증을 원하지 않는 사람은 거부 의사에 대한 명확한 증거를 남겨야만 한다. 온라인으로 장기기증 거부 등록을 하든지, 장기기증을 거부한다는 서류라도 써서 남겨야 하는 것이다. 그렇지 못하면 본인의 의사와 상관없이, 사망 후 그의 몸에 있던 장기들은 자동으로 적출되어 타인의 몸에 이식될 수 있다. 이에 관해 찬반 토론이 활발하게 벌어졌다. 나는 이 법에 관해 처음 알게 되었는데, 특별히 큰 거부감이 있지는 않았다. 어차피 죽은 후의 일인데, 영혼이 떠난 후에 내 몸이 좋은 일에 쓰여진다면 좋은 일이라고 생각했다. 


아무래도 장기기증이라는 행위 자체가 지극히 선하고 숭고한 일이다 보니, 찬성하는 측의 목소리는 매우 거침없이 크고 강경했다. 캐나다의 기욤이 가장 먼저 나서서 적극 찬성을 외쳤다. "사후 장기기증은 모든 사람의 의무라고 생각한다. 죽어가는 사람을 보고도 구하지 않는 것은 살인이나 다를 바 없다. 많은 사람의 목숨을 구하는 일인 만큼, 사후 장기기증은 무조건 의무화될 필요가 있다."는 것이 기욤의 주장이었다. 파키스탄의 자히드 역시 적극 찬성했다. 필요한 환자에 비해 기증되는 장기가 절대적으로 부족하다 보니 불법 장기 매매 등의 부작용이 많이 일어나는데, 전국민 장기기증이 법적으로 의무화 된다면 그런 부작용은 줄어들 거라는 의견이었다. 

반대 측의 목소리는 비교적 신중하고 조용했다. 자칫 잘못 말했다가는 장기기증이라는 선행 자체를 반대하는 나쁜 놈으로 비춰질 수 있을테니 당연한 일이었다. 인도의 럭키는 힌두교도가 많은 나라의 특성상 종교적 문제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며, 윤회설을 믿는 힌두교도들에게는 결코 쉽지 않은 일이라고 했다. 중국의 왕심린은 '신체발부 수지부모'라는 전통적 효 사상을 내세웠다. 부모에게 받은 몸을 훼손하는 것이 큰 불효라고 여겨 왔기에, 사후의 육신일망정 기증하는 선택은 쉬운 일이 아닐 수 있다고 했다. 


미국은 세계 3위의 장기기증 선진국이지만, 미국의 마크는 '자동 장기기증법'에 반대 의사를 표명했다. 그 역시 장기기증에는 찬성하는 입장이며 고국에서 이미 사후 장기기증을 하겠다는 등록까지 마쳤지만, 전국민에게 자동 장기기증을 강제하는 법에는 찬성할 수 없다는 입장이었다. 사람은 누구나 자기 몸에 대한 권리가 있는데, 그 권리가 침해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마크는 말했다. (장기 기증을) 거부해야만 한다는 사실을 미처 몰랐거나, 거부 등록을 하기 전에 사망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장기기증은 원하는 사람이 자발적으로 신청하는 게 맞다고 주장했다.


찬성 측의 오헬리엉은 프랑스의 경우 80% 이상 대부분의 국민이 장기기증에 찬성하기 때문에, 소수의 거부자가 신청하는 것이 더욱 효과적이라고 말했다. 기증할 의사가 있어도 스스로 기부 신청과 등록까지 하는 경우는 매우 적기 때문에, 법의 힘을 빌리지 않으면 장기기증자 부족의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스위스의 알렉스 역시 찬성 쪽이었는데, 장기기증에 동의할 의사가 있어도 기증 신청 절차가 복잡해서 포기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무척 안타깝다고 말했다. 


이 때 일본의 오오기가 나섰다. "그런데 왜 선택할 수 있는 게 두 가지 밖에 없어요? 신청한다? 안 한다? 왜 이 두 가지 밖에 없는 거예요?" 평소 언제나 조용하던 그답지 않게, 다소 흥분한 듯 보일 만큼 크고 격앙된 목소리였다. 그 말의 정확한 뜻을 즉시 알아차린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오헬리엉은 웃으며 물었다. "그럼 반만 기증할거야?" 하지만 오오기는 전혀 웃지 않고 말했다. "표현할 자유도 있지만, 표현하지 않을 자유도 있는 거잖아요!" 그 말을 듣는 순간 뒤통수를 얻어맞은 듯 멍해졌다. '표현하지 않을 자유'라니! 지금껏 살면서 나는 왜 한 번도 그 생각을 하지 못했을까? 

돌이켜 보면 내성적이고 소극적인 성격의 나는 '표현하기 싫은데도 불구하고 표현하도록' 강요받았던 기억이 무척 많았다. 말하기 싫고, 나서기 싫고, 그냥 눈에 띄지 않는 구석에서 조용히 있고 싶은데, 현실은 나를 그렇게 살도록 내버려두지 않았다. 나는 그저 이것을 내 성격의 문제라고만 생각해 왔다. 인생을 살려면 말하고 나서고 표현해야 하는 것이 당연한 일인데, 그것을 싫다고 느끼는 나 자신에게만 문제가 있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하지만 오오기는 아주 분명한 어조로, 그 어느 때보다도 자신있고 당찬 어조로 말했다. "인간에겐 표현하지 않을 자유도 있는 거잖아요!" 유레카, 새로운 발견이었다. 


오오기는 일본 문화의 특성상, 만약 자동 장기기증법이 통과된다면 거부 등록자들은 나쁜 이미지로 낙인 찍히고 불이익을 당하게 될 수도 있을 거라 말했다. 물론 남들에게 알리지 않고 인터넷으로 거부 등록을 할 수도 있겠지만, 어떤 이유에서든 "선한 행동을 하지 않겠다" 고 적극적으로 의사 표현을 한 셈이니 속으로는 은근한 죄책감과 찜찜한 감정에 시달릴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다. 표현하기 싫을 때는 표현하지 않을 자유도 주어져야 한다. 오오기의 말을 듣고는 나 역시 반대 의견으로 돌아섰다. 아무리 좋은 취지에서 만들어진 법이라 해도, 개개인의 자유와 권리를 침해하고 강제하는 법이라면 옳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표현하지 않을 자유'라는 개념에는 약간의 이론이 있을 수 있다. 우리가 이 세상을 살면서 누리는 많은 것들 중에는 '표현한 사람들'이 '적극적으로 나서서 노력하며 얻어낸 것들'이 많기 때문이다. 모든 국민이 나서지 않고 표현하지 않고 침묵하며 살았더라면, 현대의 민주주의는 불가능했을 것이다. 모든 여성이 묵묵한 인내심으로 성차별을 감내하며 표현하지 않고 살았더라면, 양성평등한 현대 사회 역시 불가능했을 것이다. 더 좋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서는 누군가가, 아니 될수록 많은 사람이 나서야 하고, 표현해야 하는 게 맞다. 


하지만 그걸 인정하면서도 '표현하지 않을 자유'라는 매혹적인 어휘는 여전히 나를 사로잡는다. 소극적이고 수동적인 자세를 나쁘게 볼 수도 있겠지만 세상 사람 모두가 똑같을 수는 없는 것이고, 그런 사람들은 또 나름대로의 자리에서 자신의 역할을 다하며 살아간다. 나쁜 일을 못하게 막는 것은 강력히 법으로 규제해야 겠지만, 좋은 일을 하라고 강요하는 것까지 법의 역할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좋은 일이든 옳은 일이든 무조건 법의 명령에 따라야만 한다면 나라 전체가 군대나 다를 바 없지 않겠는가? '거부할' 권리만이 아니라 '표현하지 않을' 권리도 보장될 때, 우리는 비로소 진정한 자유를 누릴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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