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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무리의 유리벽 열기
스텐레스김이 예측 불허 '뒤통수 반전'의 대명사가 된 것은 '지붕뚫고 하이킥'의 결말 때문이었지요. 별로 명예로운 칭호는 아니었습니다. 아무도 전혀 예측하지 못했을 만큼 충격적인 반전이었다는 것은, 그만큼 중간 부분의 개연성이 떨어졌다는 의미일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아가사 크리스티의 추리소설 '애크로이드 살인사건'이 발표된 후, 그 범인이 너무 뜻밖의 인물이라는 이유로 논란이 일었다지요. 최소한의 복선도 깔아놓지 않고 제멋대로 이끌어낸 결말이었다며 비난하는 사람이 많았는데, 전문가들의 세심한 분석을 통해 크리스티가 곳곳에 숨겨 놓은 미묘하고 세심한 복선들이 속속 드러나며 비난은 곧 감탄으로 바뀌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지붕킥'은 그런 경우가 아니었죠. '지붕킥'의 결말 때문에 온 세상이 시끄럽던 당시,..
참 오랫동안 가슴만 졸이게 하던 윤지석(서지석)과 박하선 커플이 드디어 78~79회에서 서로의 마음을 확인하며 행복한 연인의 길로 접어들었습니다. 그 동안 김병욱 시트콤에서 중반부쯤에 결성된 커플들은 대부분 해피엔딩을 맞이하지 못했던 것이 사실이긴 합니다. 그들은 온갖 달콤한 연애 행각으로 시청자의 마음을 사로잡으며 화제의 중심에 놓이지만, 결국은 이러저러한 이유로 헤어지게 됩니다. '거침킥'의 최민용-서민정 커플이나 '지붕킥'의 이지훈(최다니엘)-황정음 커플이 그랬던 것처럼 말이죠. 하지만 제가 보기에 윤지석-박하선 커플은 무사히 해피엔딩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습니다. 김병욱의 전작에서도 모든 연인들이 쓸쓸한 결말을 맞이했던 것은 아니지요. '웬만해선 그들을 막을 수 없다'에는 청춘 커플이 2쌍 있었는..
120부 예정으로 시작되었으니, 77회까지 방송된 현재 시점에서는 43회가 남았군요. 아무래도 너무 긴 듯합니다. 100회 정도면 충분할 듯한데 말이죠. 사실 지금까지 달려오는 와중에도 쓸데없는 에피소드가 적지 않았던 것을 감안하면, 총 80부작 정도로 타이트하게 꾸며도 좋았을 것입니다. 그러면 괜히 이런저런 불필요한 사족을 끼워넣지 않아도 되었을 테니까요. 하지만 우리나라의 방송 여건상 그게 쉽지 않았겠죠. 이런 상태라면 스텐레스 김의 고집과 능력이 아무리 대단하다 해도 진정한 걸작은 탄생할 수 없을 것입니다. 어쩌면 우리는 앞으로 남은 시간의 많은 부분을 괴로움과 지루함 속에 기다려야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솔직히 76~77회를 보면서는 한숨밖에 나오지 않더군요. "아, 지붕킥의 악몽이 다시 시작되는구..
"옛날 제 친구 생각이 나요... '겨울의 짧은 황혼 앞에 서 본 적 있니?' 하고 가끔 묻던..." 윤지석(서지석)과의 짧은 데이트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차창 밖으로 하늘 가득 펼쳐진 붉은 노을을 바라보며 박하선이 중얼거린 말입니다. 가벼운 미소를 띤 채 하염없이 창 밖을 응시하는 그녀의 얼굴은 석양빛에 물들어 마치 꿈결처럼 아름다웠지만, 제 마음은 점점 슬퍼졌습니다. 그녀의 잔잔한 목소리... 왠지 서글퍼 보이는 미소... '겨울의 짧은 황혼'이라는 언어가 뿜어내는 이별의 아쉬움... 이 모든 것들이 저를 슬프게 했습니다. 현재 다른 인물들의 감정선이 비교적 뚜렷이 정리되고 있는 반면, 윤계상과 박하선 두 사람의 감정선은 오리무중입니다. 최고의 성품과 외모를 겸비한 그들은 수많은 이성의 짝사랑을 ..
예전의 리뷰에서도 언급한 적이 있지만 '하이킥3'의 백진희는 '지붕뚫고 하이킥'의 황정음을 그대로 이어받은 캐릭터입니다. 그녀들은 전형적인 88만원 세대, 가난한 청춘이지만 언제나 밝은 얼굴로 힘차게 살아가는 아가씨들이죠. 그런데 제가 '지붕킥'에 빠져있을 당시 리뷰를 읽어보신 분들이라면 누구나 아시겠지만, 저는 그 예쁘고 사랑스런 황정음을 무척이나 싫어했더랬습니다. 초반에 어필되었던 된장녀스런 이미지가 너무 강렬했기 때문입니다. 쇼핑 중독으로 인해 스스로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엄청난 씀씀이를 자랑하던 황정음은, 하다못해 신세경의 식모살이 첫 월급 50만원을 빌려다가 자기 카드값을 메꾸고는 그것을 갚지 못해서 이리저리 도망다니는 만행까지 저질렀습니다. 매달 날아오는 카드 청구서는 그녀에게 저승사자나 다..
그 동안 제가 예상한 것과는 좀 다른 방향의 러브라인이 갑자기 55회부터 급물살을 타기 시작했습니다. 제가 예상하던 커플은 윤계상-김지원이었는데, 이 둘이 따로 떨어져서 각각 윤계상-백진희, 김지원-안종석 커플로 진행될 듯한 기미를 문득 보이는 거였습니다. 하지만 저는 55회를 시청하면서, 오히려 저의 예상이 궁극적으로는 맞을 거라는 확신을 갖게 되었습니다. 윤계상은 누구에게나 친절하고 실없는 농담을 던지는 캐릭터였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그 방향이 백진희 한 사람에게로 집중되는군요. 윤계상은 백진희가 자신의 블로그에 악플을 남겼음을 다 알면서도, 일부러 기밀 자료를 빼내간 범인을 찾는다면서 짖궂게 놀려댑니다. 별로 고차원적인 수단의 장난도 아니어서 금방 눈치챌 법도 하건만, 백진희는 끝까지 눈치를 못채고..
누구인들 쉬운 길로 가고 싶지 않았을까요? 누구인들 모두가 칭찬하고 박수갈채 치는 방향으로 가고 싶지 않았을까요? 그렇게 쉬운 선택을 한 사람들을 탓할 수 없는 이유는, 나 자신부터가 그런 유혹에서 자유롭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진짜 좋은 작품과 인기 많은 작품이 꼭 같다고 볼 수는 없습니다. 또한 진정한 명작 예술품과 돈을 많이 벌 수 있는 작품이 같지 않다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는 사실입니다. 문외한도 다 아는 원칙을 그 업계에 종사하고 있는 베테랑이 모를 리가 없습니다. 어떻게 하면 대다수에게 칭찬받고 시청률을 높이는 작품을 만들 수 있는지, 김병욱 PD가 모를 리는 없습니다. '하이킥3'는 유난히 초반부터 대중의 관심이 높았고, 또 그만큼 질책도 심한 작품입니다. 김병욱은 언제나 그렇듯 자기 고집대..
김병욱 PD의 신작 '하이킥3 - 짧은 다리의 역습' 1회가 드디어 방송되었습니다. 일단 제 느낌에는 전작인 '지붕뚫고 하이킥'보다 훨씬 밝은 분위기로 출발했다는 점에서 약간 마음이 놓입니다. '지붕킥'은 제가 몹시 사랑했던 작품이긴 하지만, 솔직히 시트콤 치고는 너무나 분위기가 무겁고 마음이 아파서 보기가 조금은 힘들었거든요. 하지만 이번엔 그 정도까지는 아닐 것 같습니다. 비록 아빠(안내상)가 친구에게 사기를 당해서 잘 살던 집이 삽시간에 폭삭 망하긴 했지만, 그래도 그들은 여전히 4인 가족이 함께이고, 비록 힘을 잃은 부모지만 그래도 엄마 아빠가 아이들 곁에 있습니다. 게다가 그들은 앞으로 외삼촌(윤계상)의 집에서 살게 될 예정입니다. '지붕킥'의 출발은 이보다 훨씬 열악했지요. 갓 스무살의 신세경..
봉영규(정보석)는 지적 장애인입니다. 남들이 바보라고 놀리면, 그는 바보가 아주 좋은 것이라면서 싱글벙글 웃습니다. 그의 나이는 어느 새 50을 훌쩍 넘겼으니 지천명(知天命)이라 할 것인데, 따지고 보면 하늘의 뜻을 그만큼 잘 아는 사람도 없을 것입니다. 그는 세상 모든 것을 사랑하며, 누구에게도 앙심을 먹지 않습니다. 햇님은 환하게 세상을 비추어 주니 고맙고, 새싹은 물만 먹고도 무럭무럭 자라서 예쁜 꽃을 피워 주니 고맙습니다. 온통 눈 마주치는 것마다 예쁜 것, 고마운 것 투성이입니다. 그는 어머니(윤여정)를 좋아하고 딸 봉우리(황정음)를 아주 많이 좋아합니다. 좋아하는 사람들과 같이 살 수 있어서 봉영규는 행복합니다. 참, 깜박 잊을 뻔했는데 좋은 사람들이 또 있습니다. 어렸을 때부터 남들이 바보라..
공중파보다 비교적 자유로운 케이블 방송이기에 오히려 김병욱표 시트콤의 진가를 보여주리라 기대했던 '원스어폰어타임 인 생초리'가 벌써 13회에 이르렀는데, 지금까지의 행보는 솔직히 실망스러운 편이었습니다. 시트콤의 특성상 각 회마다 개별적 에피소드로 진행된다 해도, 그 중심이 되는 큰 줄거리는 뚜렷이 잡혀 있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해서 굉장히 산만했거든요. 멜로는 멜로대로 밍숭밍숭하니 지지부진하고, 심각한 미스테리 부분도 뭘 어쩌자는 건지 계속 떡밥만 흘릴 뿐 그닥 진전되는 것이 없었습니다. 무엇보다 주인공들의 감정이 섬세하게 표현되지 못해서 몰입도가 현저히 떨어졌습니다. 멜로의 중심에 서 있는 4명의 남녀 중, 이제까지 자신의 감정을 명확히 자각하고 있는 사람은 오직 한지민(김동윤) 밖에 없었지요. 다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