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록줄리엔 (15)
빛무리의 유리벽 열기
"회자정리 거자필반(會者定離 去者必返)"이란 법화경의 한 구절로서 "만난 사람은 반드시 헤어지고 떠난 사람은 반드시 돌아온다"는 뜻을 지니고 있다. 어느 정도 인생을 알아갈 때쯤이 되면 '회자정리'의 먹먹한 슬픔에는 누구나 공감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에 비해 '거자필반'에는 공감하기가 쉽지 않다. 떠났다가 돌아오는 것은 떠나기보다 훨씬 어렵고, 헤어졌다가 다시 만나는 것 또한 헤어지기보다 훨씬 어렵기 때문이다. 따라서 '거자필반'까지는 도달하지 못하고 '회자정리'에서 끝나는 경우가 많다. 짐작컨대 '거자필반'을 '회자정리' 뒤에 붙여둔 것은 중생의 애달픔을 불쌍히 여긴 성현들의 위로가 아니었을까 싶다. (물론 아주 가끔씩은 '거자필반'의 기적이 이루어지는 경우도 있다..^^) 작년 가을부터 소소한..
지나치다 싶을 만큼 순조로운 진행이 오히려 불안감을 가중시키는 현재, '하이킥3'는 마지막 3회만을 남겨두고 있습니다. 원래 마지막회가 될 뻔했던 120회의 내용 또한 순조로운 진행에서 벗어남이 없더군요. 강승윤과 안수정의 러브라인은 승윤의 생일을 맞이하여 큰 보폭으로 한 걸음 전진하였고, 백진희는 그토록 원하던 광고회사에 합격하여 정든 보건소와 박하선네 집을 떠났습니다. 현재까지 '짧은 다리의 역습'이라는 제목에 가장 걸맞는 행보를 보여주는 인물은 바로 백진희가 되겠군요. 드디어 경제적인 독립을 시작했을 뿐 아니라, 정신적으로도 누군가에게 얽매이지 않고 지극히 자유로우며 자율적인 마음가짐을 갖게 되었으니 말입니다. 충분히 사람을 오해하게 만들 법한 윤계상의 오버스런 친절 행각은 오늘도 계속되었습니다. ..
박지선, 이제 보니 생각보다 참 속깊고 괜찮은 여자였군요. 툭하면 햇빛 알러지 등을 핑계삼아 자기 일을 박하선에게 떠넘기던 얌체에다가, 남의 입장을 배려하지 않고 윤지석(서지석)을 자기가 찼다면서 SNS로 동네방네 떠들어대는 무매너에다가, 자조적인 듯하면서 은근히 오버하는 도끼병 환자에다가... 그 동안 박지선 캐릭터는 별로 좋아 보였던 적이 없는데, 갑자기 너무 어른스럽고 배려심 있는 사람으로 변하니까 좀 이상하긴 하네요. 어쩌면 일관성 없는 캐릭터 연출이라고 볼 수도 있겠지만, 109회에서의 박지선은 확실히 멋있었습니다. 특히 유치하게 다투고 있는 윤지석과 박하선을 붙잡아 놓고 학생들 가르치듯 훈계하면서 시원스레 화해시키던 장면에서의 카리스마는 정말 짱이었네요. "됐네, 이제 화해한 거지? 둘이 듀엣..
한 편의 공포영화처럼 스릴 넘치게 만들어진 105회는 나름 수작이라 할만했습니다. 짧은 분량 속에서 어쩌면 그토록 탄탄한 짜임새를 구축할 수 있는지, 새삼 김병욱 사단의 역량에 놀랄 수밖에 없는 회차였지요. 한 장면도 놓칠 수 없고 버릴 것도 없었던, 모든 장면이 암시와 복선으로 이루어졌던 24분이었습니다. 리뷰를 쓰면서 줄거리를 자세히 늘어놓는 것은 원래 제 스타일이 아니지만, 이번에는 그 섬세한 연출에 경외심을 느끼며 재미삼아 한 번 정리해 보았습니다. 조목조목 써놓고 보니 좀 길어지기는 했네요..ㅎㅎ 1. 박지선은 특별활동 영화부 지도를 맡아 자료를 검토하느라 어두운 학교 강당에서 스크린으로 영화를 보던 중, 갑자기 불쑥 나타난 박하선 때문에 깜짝 놀란다. 서류를 찾으러 왔던 김에 박하선도 영화 관..
저는 언제나 윤지석(서지석)과 박하선 커플의 해피엔딩을 확신했지만, 그래도 결혼은 엔딩 무렵이 되어야 가능하지 않을까 했습니다. 워낙 속도가 느려서 말이죠. 그런데 박하선이 마음을 열자마자, 언제 머뭇거렸냐는 듯 일사천리로 진행되는 지금의 연애전선을 보면, 의외로 결혼이 빨라질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드는군요. 게다가 애써 주변에 숨긴다고 숨기는데, 둘 다 어설프기 짝이 없습니다. 교무실에 마주 앉아 티나게 띵동띵동 문자를 주고받고... 수시로 둘이 눈 마주치며 웃고... 하물며 모든 이의 시선이 집중된 시상식장에서 보란듯이 수신호로 사랑의 밀어를 속삭이고... 이러면서 남들이 눈치 못 채길 바랍니까?;; 제가 보기에 이건 차라리 동네방네 광고하는 수준이에요. 동굴 속에서 데이트하며 시시덕거리는 모습이 양쪽..
저는 안내상과 윤유선을 볼 때마다 자주 마음이 불편해집니다. 결혼 22년차... 티격태격하면서 정으로 살아가는 그들이 어쩌면 가장 현실적인 부부의 모습일지도 모르지만, 그래서 더 불편합니다. 이상주의자이며 동시에 현실주의자인 김병욱은 이들을 통해서 가장 거북한 진실을 적나라하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어디까지나 저의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인생의 가장 큰 고통은 갑자기 찾아오는 죽음이나 비극이 아닙니다. 날마다 변함없이 계속되는 구질구질한 일상입니다. 제가 여기서 말하는 구질구질함이란 결코 경제적인 이유로 찾아오는 것이 아닙니다. 믿을 수 있는 사람과 함께라면 아무리 가난해도 행복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믿을 수 없는 사람을 한평생 견디며 살아가야 한다면, 아무리 돈이 많아도 그 삶은 구질구질하다고밖에 표현할..
이렇게 편안해도 되는 걸까? 나는 이제 어른이 되었고, 어른이 된다는 것은 자기 앞에 닥치는 모든 일들을 혼자서 감당해내야 한다는 거다. 어렸을 때처럼 누군가에게 기대거나 투정을 부리거나 징징거리고 울음을 터뜨리는 것은 어른답지 못한 일이다. 더욱이 나는 아이들을 가르치는 교사가 아닌가? 아무리 힘겨워도 나는 강해져야만 했다. 어른이 된다는 것은 그런 거였다. 사기를 당해서 줄리엔 선생님의 전세금을 몽땅 날렸을 때도, 너무 억울하고 속상했지만 아무에게도 하소연할 수 없었다. 다행히 지원이가 착해서 남자 선생님과의 불편한 동거(?)를 군말없이 허락해 주었지만, 나는 언니로서 그런 동생을 대하기가 너무 민망했다. 나중에 줄리엔 선생님께 돌려드릴 전세금을 마련하기 위해서, 나는 지금도 꾸준히 월급의 일부를 떼..
74회의 내용은 꽤 복잡했습니다. 윤계상, 김지원, 윤지석(서지석), 박하선, 안종석까지 무려 5명의 서로 다른 감정이 불과 23분이라는 짧은 시간 내에 섬세하게 녹아들어가 있더군요. 무능한 제작진이라면 한 두 명의 감정을 담아내기에도 벅찬 시간인데, 정말 대단합니다. 제가 보기에는 누구 하나 미워할 수 없는 사람들이고, 그 캐릭터에 감정을 몰입하다 보면 저마다의 아픔이 느껴져서 가슴이 짠해 올 뿐인데, 묘하게도 방송 후에 뜬 기사에서는 박하선이 어장관리녀가 되었다는 식으로 표현해 놓았더군요. (해당 기사 링크) 기사의 댓글들을 보니, 박하선은 물론이거니와 더 심한 어장관리를 하고 있는 것은 윤계상이라는 의견도 많이 눈에 띄었습니다. 그러나 사람의 관계라는 것이 어떻게 자로 잰 듯 칼로 자른 듯 분명하기..
최근 윤계상을 향한 백진희의 짝사랑이 절정에 이르면서, 그녀의 꿈이나 상상을 현실처럼 표현한 장면들이 자주 나옵니다. 지난 70회와 71회에서 연달아 그와 같은 장면이 방송되었군요. 하지만 그 내포된 의미는 천양지차로 달랐습니다. 70회에서의 상상씬들은 모두 귀여운 해프닝 정도로 단순히 생각할 수 있는 것이었지만, 71회에서 진희가 꾸는 꿈은 그녀의 짝사랑이 절대 이루어질 수 없음을 의미합니다. 70회의 상상씬에서 윤계상은 백진희에게 느닷없이 터프한 사랑 고백을 하고, 온 가족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당당히 결혼 선포까지 합니다. 더 이상 그를 난처하게 할 수 없었던 백진희는 '사랑하기 때문에' 멀리 떠나지만, 윤계상은 머나먼 파리까지 쫓아와서 변치 않는 사랑을 다짐했죠..ㅎㅎ 그 유치하기 짝이 없는 내용은..
제가 워낙 김병욱 시트콤의 광팬이기 때문에, 그리고 이번에는 특별히 결심한 바가 있어 되도록 불평이나 쓴소리를 안 하려고 노력하는 중입니다. '지붕킥' 리뷰를 쓸 때는 불평도 엄청 많이 쏟아냈었지만, 종영하고 나니까 후회스럽더라고요. 마치 사랑하는 사람을 떠나보낸 것처럼 허전한 마음이었죠. 그래서 어차피 함께 할 수 있는 시간이 길지도 않을텐데, 불평을 늘어놓기보다는 되도록 좋은 점만 보아 주자고 결심했던 겁니다. 하지만 제가 이제껏 시청했던 김병욱 시트콤들에 순위를 매겨 본다면 '하이킥3'는 최하위권에 해당될 것입니다. 물론 개별적인 회차나 장면으로만 따지면 그 어떤 작품에서도 발견하지 못했던 아름다움과 감동을 느낀 적도 있습니다. 이를테면 윤계상과 김지원이 함께 돌보아 드리던 독거노인 할머니가 세상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