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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킥3' 백척간두에 놓인 윤계상의 운명 본문

종영 드라마 분류/하이킥3-짧은다리의역습

'하이킥3' 백척간두에 놓인 윤계상의 운명

빛무리~ 2012. 3. 27. 06: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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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나치다 싶을 만큼 순조로운 진행이 오히려 불안감을 가중시키는 현재, '하이킥3'는 마지막 3회만을 남겨두고 있습니다. 원래 마지막회가 될 뻔했던 120회의 내용 또한 순조로운 진행에서 벗어남이 없더군요. 강승윤과 안수정의 러브라인은 승윤의 생일을 맞이하여 큰 보폭으로 한 걸음 전진하였고, 백진희는 그토록 원하던 광고회사에 합격하여 정든 보건소와 박하선네 집을 떠났습니다. 현재까지 '짧은 다리의 역습'이라는 제목에 가장 걸맞는 행보를 보여주는 인물은 바로 백진희가 되겠군요. 드디어 경제적인 독립을 시작했을 뿐 아니라, 정신적으로도 누군가에게 얽매이지 않고 지극히 자유로우며 자율적인 마음가짐을 갖게 되었으니 말입니다.

충분히 사람을 오해하게 만들 법한 윤계상의 오버스런 친절 행각은 오늘도 계속되었습니다. 하루 종일 띠링띠링 문자를 보내면서 헤어짐을 아쉬워하니, 백진희가 마음을 비운 상태가 아니었다면 또 사단이 날 뻔했지요. 하지만 다행히도 백진희는 이제 그가 원래 그런 사람임을 알고 있기에 오해하지 않고 순수한 마음만을 고맙게 받아들입니다. 윤계상은 삶 속에서 부딪히는 수많은 사람들과의 관계에, 모든 만남과 헤어짐에 일일이 끝까지 최선을 다하는 그런 사람이었어요.

화분 '진상이'를 가져오기 위해 한밤중에 다시 들른 보건소에서, 진희는 다시 계상과 마주칩니다. 둘만의 작은 환송회를 위해 찾았던 포장마차에서, 생각지도 않은 진상이의 정체가 밝혀졌네요. 하필 그 포장마차 주인 아주머니가 제주도 출신이라서, 한 눈에 토마토가 아니라 낑깡임을 알아보았던 것입니다. 이제껏 철석같이 방울토마토라고만 믿었던 진상이가 낑깡이었다는 사실에 진희는 살짝 충격을 받습니다.

한치 앞도 알 수 없는 세상이, 그런 세상을 헤치고 나아가야 할 자신의 인생이 새삼스레 두려워지고 말았던 거죠. 두려움을 솔직히 털어놓는 백진희에게 윤계상은 두려워하지 말라고, 오히려 앞으로 일어날 일을 알 수 없기에 삶은 더 희망이 있고 설레는 거라고 대답해 줍니다. 두려움에 가려 희망을 보지 못할 뻔했던 진희에게, 윤계상은 반드시 토마토가 아니더라도 낑깡 또한 얼마든지 새로운 희망일 수 있음을 알려준 것입니다.
 

"실패한 사랑은 인생에서 무슨 의미일까 생각해 보았다. 끝나버리고 나면 아무것도 남지 않는 건 아닐까? 하지만 그 순간, 나는 이 사람을 좋아하길 잘했다고 생각했다. 이렇게 따뜻하고 아름다운 사람을 좋아한 걸, 후회하지 않는다고..." 진희의 나레이션은 직설적인 화법으로 이 시트콤의 주제 일부를 표현해 주었습니다. 요즘 들어 '하이킥3'는 매우 정직하고 고전적인 방식으로, 모든 것을 말로써 해결하려는 경향이 좀 엿보이네요. 어쨌든 백진희의 독백을 듣는 순간, 문득 머리에 떠오른 것은 박효신의 노래 '좋은 사람' 이었습니다.

"준비 없이 비를 만난 것처럼 / 아무 말 못한 채 너를 보낸 뒤에 / 한동안 취한 새벽에 잠을 청하며 / 너를 그렇게 잊어보려 했어... / 시간이 가도 잊혀지지 않는 널 / 생각하면서 깨달은게 있어 / 좋은 사람 사랑했었다면 헤어져도 슬픈 게 아니야... / 이별이 내게 준 것은 곁에 있을 때보다 / 너를 더욱 사랑하는 마음..." 좋은 사람 사랑했었다면 헤어져도 슬픈 게 아니야~ 라는 가사에 이보다 더 잘 맞아떨어지는 상황이 있을까요? 어쩌면 이것은 이루지 못한 사랑에 있어, 가장 아름답고 이상적인 이별의 방식일 것입니다.

이렇게 주변인들은 모두 제자리를 찾아갑니다. 가장 염려했던 안종석까지도 김지원과의 과외를 그만둔 후, 더 이상 방황하거나 고통스러워하지 않고 꿋꿋한 홀로서기를 잘 해나가는 중입니다. 이런 식이라면 훗날 또 다른 어떤 인연을 만나든 안 만나든 중요하지 않을 것 같군요. 제 마음을 추스를 수 있을 정도로 성숙해졌다는 것만으로 충분한 해피엔딩이 될 테니까요.

백진희의 경우는 포장마차 아주머니가 낑깡 화분을 보며 "3년은 있어야 열매가 열리겠다"고 말했으니, 앞으로 대략 3년 정도의 시간을 두고 천천히 이적과의 관계가 진전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이제 겨우 꿈꾸던 회사에 취직했으니까 마음껏 일도 해봐야 하잖아요. 너무 빨리 결혼해버리는 것보다는 3년 후쯤이 좋겠네요. (노총각 이적이 좀 딱하긴 하지만..ㅎㅎ)

복권 당첨이라는 약간 허무한 형식을 취하긴 했지만 안내상 일가의 경제적 형편도 재기의 발판을 마련했고, 윤지석(서지석)과 박하선에겐 결혼이라는 관문이 남았을 뿐이고, 외롭던 박지선도 줄리엔을 만나 생애 최고의 나날을 보내는 중이며, 승윤과 수정의 풋풋한 연애도 점차 무르익어 갑니다. 그런데 윤계상과 김지원은?

어차피 해피엔딩의 역습이라면 이 두 사람도 그 안에 포함시켜 줄 수 있지 않을까, 아주 잠시나마 헛된 희망을 품었지만, 김병욱은 이번에도 고집을 꺾을 생각이 없어 보이네요. 지원이 종석을 뻥 차버리고 계상을 좋아한다는 사실을 알게 된 강승윤은 한동안 계상 삼촌을 미워했지만, 모두가 옮을까봐 피하는 자신의 무좀 걸린 발을 정성껏 주무르며 치료해 주는 윤계상의 인품에 감동하여 그의 열혈 신봉자가 되고 맙니다. 윤계상의 모습을 우러러볼 때면, 마치 그의 머리 위에 후광이 비치는 것처럼 착각할 지경이 되고 만 것이죠. 그런데 그 후광을 보는 순간의 느낌이 영 좋지 않았습니다.

뭔가 분명히 잡히지 않던 그 찜찜하고 불길한 느낌의 실체가, 윤계상과 헤어지는 순간 백진희의 독백을 듣고서야 확실해졌습니다. "그 순간, 나는 이 사람을 좋아하길 잘했다고 생각했다. 이렇게 따뜻하고 아름다운 사람을 좋아한 걸, 후회하지 않는다고..."

왠지 영원한 이별을 뜻하는 듯한 그 어조... 세상을 떠난 성인들의 초상화에 그려넣는 후광... 100년 후의 사람들이 강승윤의 기록을 통해 윤계상의 행적을 알게 되는 내용... 이 모든 것이 연결되면서, 윤계상의 현실적인 해피엔딩은 어렵겠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시트콤의 특성상 우스꽝스럽게 그려졌지만, 정작 승윤이 기록한 주된 내용은 타인을 위한 살신성인으로 젊은 목숨을 바친 윤계상의 일대기였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예나 지금이나 계상이는 참 눈치가 없다..."라는 이적의 나레이션이 함정이긴 하지만, 그것은 상징적인 의미일 수도 있고, 또 전혀 다른 의미일 수도 있습니다. 이를테면 이적과 백진희가 결혼해서 낳은 아들의 이름을 계상이라고 지었을지도 모르는 거잖아요? 이 모든 내용이 이적의 자서전과도 같은 소설책에서 비롯되었음을 미루어 볼 때, 백진희가 이적의 아내가 맞다면, 윤계상을 향한 그녀의 짝사랑을 이토록 절절히 표현해 놓은 이적의 마음은 이미 질투심 따위에 초연해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앞으로의 3년 동안 진희와의 사랑을 통해 성숙해진 이적은, 아내가 지난 날 품었던 순수한 사랑의 가치를 최대한 인정해 주고 소중한 추억으로 간직할 수 있도록 배려해 주는 멋진 남자로 변하지 않았을까 싶어요.

어쩌면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나버린, 참으로 아름다웠던 후배 윤계상을 기억하며, 이적 자신도 기꺼이 그 추억의 일부가 되기를 자청했을 수도 있습니다. 또한 자신들의 아이가 윤계상의 훌륭한 성품을 닮았으면 하는 소망으로 그 이름을 지어 주었을 수도 있겠죠. 우리나라에는 그런 경우가 별로 없지만 외국에는 흔한 일이니까요. '해리 포터'의 아들들만 해도, 첫째는 할아버지의 이름을 이어받아 '제임스 포터'지만, 둘째는 아버지의 스승이었던 두 분 교장의 이름을 본따서 '알버스 세베루스 포터'가 아니겠습니까? 그렇다면 이적의 아들이 '이계상'이 되지 말란 법도 없다는, 참 황당하고도 뜬금없는 상상의 한 줄기였습니다.. 푸힛..ㅎㅎ

한편 르완다행을 만류하는 사촌언니 박하선의 간곡한 애원을 못 이긴 김지원이 "알았어, 다시 잘 생각해 볼게" 라고 유동적인 답변을 내놓았다는 사실도 주목해야 합니다. 끝내 그 대답을 하지 않고 고집스레 침묵으로 버텼을 경우와는 아주 많이 다른 상황이거든요. 짐작컨대 김지원의 르완다행은 당분간 이루어지지 않을 것입니다. 어차피 현재로서 윤계상과 함께가 아니라면 그녀의 르완다행은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아마도 김지원은 예정대로 의대에 진학하여 의사가 될 것이며, 한 걸음 두 걸음 순차적으로 윤계상의 발자취를 따라가게 될 것입니다. 자기가 인생에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가장 즐거울 수 있는 일은 어떤 것인지, 이번처럼 충동적인 결정이 아니라 긴 시간을 두고 충분히 생각하고 준비한 끝에, 김지원은 결국 르완다행을 선택하겠죠.  과연 그 동안 윤계상은 어디에 있게 될까요? 지원의 곁에서 그녀가 성장하는 모습을 따뜻한 시선으로 지켜보아 줄 수 있을까요? 아니면, 르완다에서 홀로 봉사하며 그녀를 기다리고 있을까요? 아니면 조금 더 높은 곳에서 그녀를 내려다보고 있을까요?


물론 이 모든 것은 빛무리의 헛발질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제 생각엔, 아무래도 현재 윤계상의 운명은 백척간두(百尺竿頭 : 백 자나 되는 높은 장대 위에 올라섰다는 뜻으로, 위태로움이 극도에 달함)에 놓여 있는 듯하군요. 그래서 깊은 숨을 들이마시고 가슴을 천천히 쓸어내리며... 머지 않아 닥쳐올 충격에 대비하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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