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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무리의 유리벽 열기
좋게 생각하면 그런 게 바로 한국인 특유의 끈끈한 정이며, 사람 사는 재미라고 이해해 줄 수도 있겠지요. 그리고 줄리엔은 워낙 성격이 쿨하고 착하니, 어쩌면 자기 고향에서의 딱딱하고 합리적인 생활보다 여기 한국에서의 인정 넘치는 생활이 더 좋다고 생각할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설령 그렇다 하더라도, 저는 그 동안 안내상이 줄리엔에게 끼치는 민폐 행각을 보면서 무척이나 창피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툭하면 본인이 싫다는데도 이것 저것 떠넘기고 강요해서 그 착한 줄리엔이 "내상~ 나 이거 왜 해야 되는지 모르겠어요~" 라고 말하게 하는 모습을 볼 때마다 괜시리 제가 다 미안해지더군요. 게다가 혈액형이 자기와 똑같은 RH-AB 형이라는 이유로 번번이 사람을 '비상 혈액주머니' 취급하는 것도 참 보기 흉했습니다...
세상엔 참 많은 종류의 사람들이 있습니다. 마음이 약해서 남의 부탁을 거절하지 못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아무렇지 않게 거절을 잘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후자의 관점에서 보면 전자의 태도가 무척이나 이해되지 않지만, 현실적으로는 그러한 사람이 의외로 많습니다. 그리고 어려서부터 자기 주관을 뚜렷이 세우도록 교육받는 남성들에 비해, 타인에게 순종하고 봉사하며 살아갈 것을 교육받아 온 여성들에게서 그런 경향이 더 많이 나타납니다. 시대가 변했다고는 하지만, 아직도 찾아보면 그런 사람이 은근히 적지 않아요. 이른바 '착한여자 콤플렉스'입니다. '하이킥3'의 박하선 캐릭터는 '착한여자 콤플렉스'의 전형적인 성향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타인이 아무 이유 없이 무리한 부탁을 하거나 자신의 일을 떠넘겨도, 박하선은 ..
박하선을 사랑하는 두 남자, 윤지석(서지석)과 고영욱은 둘 다 연애에는 별 소질이 없어 보입니다. 특히 윤지석은 너무 순진한 편이라 아직 자신의 감정조차 확실히 깨닫지 못하고 있습니다. 어떻게든 그녀와 좀 더 많은 시간을 함께 하고 싶고, 그녀의 생일도 챙겨주고 싶고, 취미 활동도 함께 즐기고 싶지만, 그게 바로 사랑이라는 데까지는 생각이 미치지 못하니 참으로 안타까운 상황입니다. 더구나 윤지석의 다혈질적이고 급한 성격 또한 만만찮은 장애물이 되고 있습니다. 억수같이 쏟아지는 빗속에서 그녀와 단둘이 우산을 쓰고 집에까지 올 수 있는 절호의 찬스가 주어졌건만, 쉽게 펴지지 않는 우산 때문에 순간적으로 욱한 윤지석은 박하선의 빨간 우산을 바닥에 내던지고 수차례 짓밟아서 망가뜨리고 맙니다. 그녀 앞에서 힘자랑..
'지붕뚫고 하이킥' 82회는 언제나처럼 두 갈래의 에피소드를 보여주었지만, 묘하게도 그 안에서 보여준 감정은 하나였습니다. 바로 '질투'였지요. 머리부터 발끝까지 온통 멋지기만 한 그 남자, 신애의 첫사랑인 '발냄새 왕자님' 줄리엔 아저씨가 그만 악동 해리의 눈에 제대로 꽂히고 말았습니다. 하교길에 우연히 만난 신애에게 목마를 태워주는 줄리엔을 보자 해리는 자기도 목마를 타고 싶은 욕망에 불타게 되지요. 집에 와서 자기 아버지 정보석에게 목마를 시도해 보지만 허약한 보석은 일어나지도 못합니다. 어쩌면 보석이 너끈히 해리를 어깨 위에 태우고 일어섰더라도 해리의 허전한 마음은 채워지지 않았을 겁니다. 이미 키 크고 건장하고 멋진 서양 출신 우등 말(馬) 줄리엔을 목격한 이후였는걸요. 자기가 시험에서 100점..
'지붕뚫고 하이킥' 71회에서 황정음과 신세경은 앞으로 그들이 불가피하게 직면하게 될 대결 구도를 상징적으로 보여주었습니다. 세경이 사랑하는 지훈(최다니엘)의 마음은 정음에게로 향해 있고, 정음이 좋아하는 준혁(윤시윤)의 마음은 세경에게로 향해 있으니, 그들이 서로를 고운 눈으로 바라볼 날이 그리 오래 남지는 않은 듯 하거든요. 시비의 발단은 역시 민폐 캐릭터 정음에게서 비롯되었습니다. 악의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주변에 끊임없이 민폐를 끼치고, 그러면서도 스스로 별로 잘못이라 생각하지 않는 그 기묘한 당당함이 바로 정음 캐릭터의 한 특징이지요. 사람에게는 저마다 소중하게 생각하는 물건이 있고,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들이 있는데, 자기가 보기에 별 것 아니라고 해서 당연히 상대방에게도 별 것 아니라고 단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