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록뿌리깊은 나무 (24)
빛무리의 유리벽 열기
어쩌면 태종 이방원(유아인)을 주인공으로 한 '육룡이 나르샤'는 처음부터 내가 몰입하기 힘든 작품이었던 것 같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김영현 작가의 사극이기 때문에 방영 전부터 큰 기대를 걸었지만, 높은 시청률과 대중의 호평에도 불구하고 나는 별다른 감흥을 느끼지 못하였다. 작품 전체에 담긴 근본적 메시지는 훌륭했지만, 주인공 이방원의 캐릭터는 지독히 잔인하고 냉정하며 자기중심적인 욕망으로 가득찬 인물이었다. 그러니 심약한 나로서는 이방원을 중심으로 흘러가는 스토리에 호흡을 맞추며 몰입하기가 버거웠다. 드라마에 푹 빠져있던 혹자들은 이방원의 캐릭터를 두고 '겉으로만 잔인할 뿐 속마음은 여리다'고 생각하는 모양이지만, 내가 보기에 이방원이 흘린 모든 눈물은 악어의 그것에 지나지 않았다. '대장금'의 장금(..
'대장금'과 '서동요' 이후 김영현 작가의 사극에 매료된 나는 '선덕여왕'과 '뿌리깊은 나무'를 시청하며 그녀의 필력을 극도로 존경하기에 이르렀다. 역사적 사실과는 다른 부분이 적지 않았으나, 다큐멘터리가 아니라 엄연한 창작물이기에 그 정도는 충분히 용인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이 부분에 있어서는 사람마다 의견이 다르겠지만 요즘 시대에 영화나 드라마의 내용을 철석같이 믿는 사람이 있다면 그게 오히려 이상한 일이고, 작품을 감상하다가 실제 역사에 대한 궁금증이 생긴다면 다른 경로를 통해서 공부하면 된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외국에 수출될 경우는 좀 더 오해의 소지가 많겠으나, 방영 전에 자막으로 '이 작품은 허구와 상상력이 가미된 창작물로서 역사적 사실과는 차이가 있음'을 분명히 밝힌다면 큰 문제는 되지 ..
현재 tvn에서 방송중인 '삼총사'는 인조(김명수)와 소현세자(이진욱)의 이야기를, sbs에서 방송중인 '비밀의 문'은 영조(한석규)와 사도세자(이제훈)의 이야기를 다루는 드라마이다. 특히 '비밀의 문'은 '뿌리깊은 나무'의 세종 이후 3년만에 영조로 변신한 한석규의 귀환으로 화제를 모았던 2014년 하반기 최대 기대작이었다. 그러나 한석규의 명품 연기에도 불구하고 '비밀의 문'은 대본과 연출의 미흡함으로 대중의 혹평과 시청률 하락에 시달리고 있으며, 반면 '삼총사'는 제법 탄탄한 구성과 신선한 재미를 선보이고 있음에도 케이블의 한계와 주 1회 방송의 핸디캡 때문인지 작품 수준에 적합한 주목을 받지 못하고 있어서 안타까울 따름이다. '비밀의 문'에는 '의궤 살인사건'이라는 부제가 붙어 있다. 극 초반 세..
아찔하도록 매력적이었던 '뿌리깊은 나무'의 세종 이후 3년만에 임금의 모습으로 다시 돌아온 한석규를 브라운관에서 볼 수 있다는 감사한 사실만으로도 '비밀의 문'을 향한 기대는 한껏 높을 수밖에 없었다. 더욱이 월화드라마 라인의 폭망으로 지루함에 시달려 온지가 벌써 수개월째라 '믿고 보는 한석규'의 귀환은 더욱 반가울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아무래도 기대가 지나치게 컸던 모양이다. 나는 원래 김영현 작가의 사극 매니아이며 상대적으로 윤선주 작가의 작품을 선호하지는 않는 편이지만, 그래도 '불멸의 이순신' 등 높이 평가받는 작품을 많이 쓴 작가이니 한석규와의 호흡을 기대할만 하겠다 생각했는데 뚜껑을 열고 보니 솔직히 기대에는 못 미친 느낌이었다. '비밀의 문' 초반 전개는 영조의 즉위와 관련된 비밀 문서 '..
'상속자들' 후속으로 방송될 '별에서 온 그대'(이하 '별그대')에 대중의 관심과 기대가 크다. 단연 화제의 중심에는 '해를 품은 달' 이후 명실상부한 최고의 대세남으로 떠오른 김수현의 이름이 있다. 최근 '도둑들'과 '베를린'의 연이은 흥행에 힘입어 스크린의 여왕으로 화려하게 복귀한 전지현의 이름도 그 곁에 있다. '넝쿨째 굴러 온 당신'의 박지은 작가와 '뿌리깊은 나무'의 장태유 감독이 뭉쳤다는 사실도 기대감을 더하는데, '별에서 온 그대'라는 제목은 또 얼마나 로맨틱하고 달콤한가? 별에서 온 사람과 사랑에 빠진다는 몽환적 스토리는 어린 시절 탐닉했던 순정만화의 낭만적 향수를 불러 일으킨다. 온통 하얀 눈으로 뒤덮인 이 추운 겨울 날, 따뜻한 코코아 한 잔을 마시는 듯한 기분으로 볼 수 있는 드라마가..
"우리의 경쟁작은 동시간대의 타사 프로그램이 아니라 전작인 '아이리스1'이다!" 라고 야심차게 밝혔던 출연진들의 인터뷰가 무색할 만큼, '아이리스2'의 출발은 별로 산뜻하지 못했습니다. 몰입을 방해하는 산만한 전개, 초반부터 과도한 남녀 주인공의 러브라인, NSS 정예요원이라는 설정이 창피할 만큼 기본적인 총기 사용법도 모르는 배우들의 모습 등, 작정하고 꼬집어 내자면 정말 수없이 많은 헛점을 드러내고 있었거든요. '아이리스1'은 평소 액션이나 첩보물을 즐기지 않는 저같은 시청자도 몰입해서 볼 수 있을만큼 초반부터 강렬한 포스를 뿜어내는 작품이었는데, '아이리스2'의 초반 전개는 솔직히 실망스러웠습니다. 좀 심하게 말하면, 전작을 따라잡기는 고사하고 전작의 명성에 누를 끼치지나 않으면 다행이겠다 싶을 정..
초반의 기대는 제법 컸으나 갈수록 흥미를 잃어가고 있는 드라마입니다. 혹자는 '마의'의 시청률이 대박을 치지 못하고 어정쩡한 20% 언저리에서 머뭇거리는 이유가 이병훈 감독 특유의 클리세[사전적 의미는 Cliché(불) : 판에 박힌 듯한 문구, 진부한 표현(생각, 행동)이다. 클리세라는 단어는 드라마에서 늘 같은 이야기 또는 같은 대사 등이 반복될 때 사용된다.]에 시청자들도 이제는 지쳤기 때문이라고 하더군요. 아무것도 가진 것 없는 주인공('이산'의 정조는 예외)이 스스로의 놀라운 능력과 용기와 성실성으로 최고의 자리에 오르기까지, 그 입지전적인 일대기를 그렸다는 점에서 '마의'는 벌써 수많은 전작들의 발자취를 따르고 있긴 합니다. 하지만 제가 개인적으로 이 드라마에 끌리지 않는 이유는 따로 있습니다..
첫 회부터 제 눈을 사로잡은 김윤후(박해수)가 2회부터 거의 나오지도 않는 단역 수준으로 전락하면서 (물론 훗날에는 승려 장군이 되어 큰 활약을 한다지만 아직은 그럴 때가 아님) 저는 조금씩 '무신'에 대한 관심을 잃어갔습니다. 무엇보다 주인공 김준(김주혁)의 캐릭터에 별다른 공감이나 몰입이 되지 않았거든요. 게다가 무슨 격구시합 이야기를 그렇게 오랫동안 질질 끄는지, 이환경 사극 특유의 지루함이 초반부터 느껴지더군요. 결투 장면이 길게 이어지는 것은 전적으로 남성들 취향일 뿐, 그런 걸 좋아하는 여성은 드물거든요. 예를 들어 유난히 전투씬이 많았던 '반지의 제왕2'를 극장에서 볼 때, 저는 그 시끄러운 와중에도 쿨쿨 자고 있었다죠. 하지만 그래도 포기하긴 아쉬워서 띄엄띄엄 보고 있었는데, 드디어 격구시..
오랜만에 '해를 품은 달'을 보았습니다. 7회부터 9회까지 한가인의 발연기를 꾹 참고 보았지만, 10회부터는 더 이상 참을 수 없게 되었던 것입니다. 포기하기는 아까운 드라마라는 생각에 어떻게든 몰입하려고 노력도 해보았지만, 어느 순간부터는 보다가 저절로 잠들어 버리거나 중간에 채널을 돌리게 되곤 했습니다. 아역 김유정이 연기할 때 그토록 아름답고 총명하고 분위기 있던 여주인공 허연우가 그토록 멍하고 뻣뻣하고 품위없는 여자로 성장했다는 사실을 도저히 인정할 수가 없었지요. 그 두 사람이 동일인물임을 인식하는 데만도 온 힘을 쏟아야 할 지경이니, 이훤(김수현)과의 애절한 로맨스에도 전혀 몰입이 되지 않았습니다. 이름뿐인 궁중 로맨스... 이제 아무런 의미도 찾을 수 없는 드라마가 되어버린 거죠. 안 보는 ..
세자 이훤(여진구)에게 자칫 염문이 날까 우려한 성조대왕(안내상)은 서둘러 금혼령을 내리고 세자의 혼례를 추진하기 시작합니다. 혼인 적령기에 달한 사대부가의 처녀들에게는 모두 처녀단자를 올릴 의무가 주어졌으나, 사실상 이미 세자빈은 내정되어 있는 상태였습니다. 왕가의 혼례는 내명부에서 주관하는 것이고 내명부의 최고 권위자는 대비 윤씨(김영애)였기에, 허울뿐인 간택의 절차를 거쳐서 결국은 이조판서의 딸 윤보경(김소현)이 뽑힐 것임을 누구나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홍문관 대제학의 딸 허연우(김유정)를 마음에 품고 있던 세자 이훤은 과감히 기존의 질서에 도전하며 자신의 사랑을 지키려 합니다. 대제학 허영재(선우재덕)의 집안에서도 갈등이 시작됩니다. 세자빈 간택 과정에서 최종 3인의 후보에까지 오른 처녀들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