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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를 품은 달' 16회, 이훤의 슬픔에 공감되지 않는 이유 본문

종영 드라마 분류/해를 품은 달

'해를 품은 달' 16회, 이훤의 슬픔에 공감되지 않는 이유

빛무리~ 2012. 2. 24. 0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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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해를 품은 달'을 보았습니다. 7회부터 9회까지 한가인의 발연기를 꾹 참고 보았지만, 10회부터는 더 이상 참을 수 없게 되었던 것입니다. 포기하기는 아까운 드라마라는 생각에 어떻게든 몰입하려고 노력도 해보았지만, 어느 순간부터는 보다가 저절로 잠들어 버리거나 중간에 채널을 돌리게 되곤 했습니다. 아역 김유정이 연기할 때 그토록 아름답고 총명하고 분위기 있던 여주인공 허연우가 그토록 멍하고 뻣뻣하고 품위없는 여자로 성장했다는 사실을 도저히 인정할 수가 없었지요. 그 두 사람이 동일인물임을 인식하는 데만도 온 힘을 쏟아야 할 지경이니, 이훤(김수현)과의 애절한 로맨스에도 전혀 몰입이 되지 않았습니다. 이름뿐인 궁중 로맨스... 이제 아무런 의미도 찾을 수 없는 드라마가 되어버린 거죠.

안 보는 동안에도 수없이 떠도는 줄거리와 리뷰 등을 통해 내용은 모두 알고 있었습니다. 발연기도 여전하고 지지부진한 전개도 여전하다 하길래, 역시 안 보길 잘했다 싶은 생각만 들었지요. 심지어 고문당하는 연기를 대역 없이 소화한 후에도 너무 화사한 얼굴과 멀쩡한 걸음걸이 등의 문제로 인해 줄기차게 욕을 먹는 한가인을 보며 배부르겠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시청자의 평판은 한결같이 최악인데, 각종 인터넷 신문기사에서는 찬양 일색인 것을 보며 코미디가 따로 없다는 생각도 했습니다. 그러던 와중에 14회에서 허연우의 기억이 돌아왔음을 알게 되었지요. 기억상실증의 지독한 굴레에서 드디어 빠져나왔고 동시에 한가인의 연기도 일취월장했다 하길래, 이제부터는 다시 시청해도 되겠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몰입이 되지 않는 것은 여전했습니다. 막판이 다 되어가는 시점에서도 여전히 전개는 지지부진하게 느껴졌고 한가인의 연기도 별로 크게 나아진 것 같지는 않더군요. 어쨌든 16회에서는 드디어 무녀 월과 허연우가 동일인물임을 이훤이 알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최후의 장면에 가슴을 쥐어뜯으며 오열하는 이훤을 보면서도 제 눈에서는 한 방울 눈물도 흐르질 않네요. 6회 후반 처음 등장하자마자 이훤의 고통을 생생히 표현함으로써 저를 울렸던 김수현인데, 더 애절해진 그의 연기를 보면서 어쩌면 이리도 멀뚱할 수가 있을까요?

허연우를 죽음 직전까지 몰고 갔던 흑주술에 민화공주(남보라)가 연관되어 있다는 사실은 이미 원작을 통해 알고 있었기에 충격적이지 않았습니다. 다만 사람을 죽이는 흑주술에 어린 손녀를 제물로 삼으면서까지 친정 집안의 권력을 유지하려 했던 대왕대비 윤씨의 비정함이 김영애의 표정과 눈빛에서 너무 생생히 드러나는 장면은 섬찟하더군요. 하긴 민화공주를 끌어들이지 않았다면, 당시 성조대왕(안내상)이 진행하던 세자빈 살해사건 수사를 막을 수 없었겠지요. 딸을 향한 아비의 사랑은 결국 임금의 손발을 묶어 진실을 외면하게 만들었고, 한편 또 다른 아비(허영재)는 제 손으로 어린 딸을 죽인 후 스스로 목숨을 끊었는데...  

여전히 뻣뻣하고 부족한 한가인의 연기와 완전히 떨쳐내지 못한 국어책 읽는 톤의 대사 등이 여전히 몰입을 방해했지만, 드라마가 재미없게 느껴지는 이유는 그 때문만이 아니었습니다. 여주인공이 매력 없으면 남주인공의 매력이라도 철철 넘쳐야 하는데, 제가 보기에는 이훤의 캐릭터가 예전처럼 멋있지 않았어요. 무녀 월을 만나기 이전의 훤은 극심한 고통 속에서도 자신의 안위보다 백성의 삶을 걱정하던 성군이었습니다. 외척과 권신들의 압박 속에서도 언제나 의연한 태도로 왕의 본분을 잃지 않던 훤이었죠. 하지만 그 맑던 눈이, 무녀 월을 만나고 그녀에게서 허연우의 그림자를 발견하기 시작하면서 급속도로 흐려지고 말았네요.

이훤에게 있어 백성은 더 이상 일순위가 아닙니다. 이미 그의 마음은 오직 월이라는 한 여자로 가득차 있으니까요. 필부가 아닌 한 나라의 임금으로서는 정말 치명적인 일이죠. 백성보다 월의 존재가 최우선이 되면서 총명한 성군이었던 이훤은 삽시간에 못난 임금으로 전락해 버렸습니다. 양명군(정일우)은 활인서에 지급되는 쌀과 돈을 간신배들이 가로채고 있음을 알고 입궐하여 그 문제를 해결하려 하는데, 그 사실을 알게 된 이훤은 어처구니 없게도 중대 사안을 뒤로 밀쳐놓고 다른 생각을 먼저 했습니다. 양명은 무녀 월을 빼앗으려는 자신의 연적이라는 그 사실이, 훤에게는 활인서의 비리로 죽어가는 백성들보다 더 중요했던 것입니다.


양명이 호조판서를 압박하는 이유가 무엇인지를 알게 되었을 때, 예전의 이훤이라면 당연히 양명의 편을 들어 탐관오리를 먼저 단죄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제 이훤에게는 국고에서 나간 돈을 사리사욕으로 착복하는 간신배에 대한 처결보다, 자기의 연심에 상처를 입힌 이복형에 대한 단죄가 우선이 되고 말았습니다. "형님이 궐에는 어쩐 일이십니까?" 하고 물을 때부터 찬바람이 쌩쌩 돌더니만, 활인서의 비리에 관한 내용을 듣고서도 기껏 "종친은 정치적 발언을 할 수 없다는 사실을 잊으셨습니까?" 이런 소리나 하고 있군요..;;

물론 잠시 후 조정에서는 추상같은 명을 내려 그 문제를 바로잡았으나, 군왕의 대의보다 월에 대한 연심을 우선시한 훤의 권위는 이미 손상되었습니다. 예전 같으면 누락된 상소문들을 찾아 읽고, 숨은 비리를 척결하고, 백성의 삶을 살피는 데에 쓰여졌을 임금의 시간이, 이제 온통 8년 전의 허연우 살해 사건 수사에만 집중되고 있습니다. 가뜩이나 매력없는 여주인공 허연우가 멋지던 성군 이훤을 이런 못난이로 만들어 버렸으니 정말 밉고 통한스러울 뿐이군요. 그들의 사랑에라도 몰입할 수 있다면, 그저 잠시 눈먼 사랑에 휘말렸을 뿐 이제 곧 정신을 차리고 예전의 총명한 왕으로 돌아올 거라고 위안이라도 삼으련만 도무지 몰입할 수가 없으니..;;


절규하는 이훤은 소리없이 외치는 듯했습니다. "연우야, 죽은 줄만 알았던 네가 살아 있었구나. 내가 그토록 상처주고 모질게 대했던 월이가 바로 너였구나...!" 이제야 알았으니 고통스럽고 마음 아픈 것은 당연한 일인데, 그 처절한 슬픔에 전혀 공감되지 않는 것은 웬일일까요? 문득 '뿌리깊은 나무'에서 광평대군을 잃고 절규하던 세종(한석규)의 모습이 떠올랐습니다. 자식을 잃고서도 한 식경만에 눈물을 멈추고 백성을 생각하던 그 고요한 눈빛이 문득 그리워지며, 저는 이훤에게 말하고 싶었습니다. "전하, 오직 한 여자만을 위해 그 귀한 눈물을 모두 흘려 버리지는 마세요. 부디 백성을 위해 흘리실 눈물도 조금쯤은 남겨 주세요. 제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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