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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를 품은 달' 9회, 기억상실증의 함정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본문

종영 드라마 분류/해를 품은 달

'해를 품은 달' 9회, 기억상실증의 함정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빛무리~ 2012. 2. 2. 0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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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8회에 걸쳐 많은 사람을 경악과 분노의 늪에 빠뜨렸던 한가인의 연기가 9회에서는 한결 나아진 듯하니 정말 다행입니다. 아직도 중간중간 국어책 읽는 듯한 대사가 튀어나오기는 하지만, 그래도 지난 주에 비해서는 기본적인 발성과 말투 등이 훨씬 사극톤에 가까워져 있더군요. 정식 투입되기 전에 지금 이 정도까지만이라도 연습을 하고 나왔더라면 그토록 호된 비난에는 직면하지 않았을텐데 아쉽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작가와 제작진도 시청자의 반응을 꼼꼼히 모니터링하고 있는 듯, 문제점을 개선하려고 노력한 흔적이 엿보였습니다. 우선 무녀 월의 캐릭터가 많이 달라졌더군요. 천한 무녀의 신분으로 눈을 동그랗게 뜨고 임금의 얼굴을 마주본다든가, 양명군의 도움을 받고서도 고맙다는 인사는 커녕 까칠하게 호통을 치는 등, 그렇게 건방졌던 월이 몰라보게 다소곳해졌습니다. 9회 후반에는 왕 앞에서 고개를 푹 숙인 채 눈을 내리깔고 있으니 고개를 들라는 어명을 내려야만 얼굴을 볼 수 있는 지경이 되었고, 다시 마주친 양명에게도 공손히 진심어린 감사 인사를 전하면서 비호감을 떨쳐낼 수 있었습니다. 천방지축 어리광쟁이였던 성격도 훨씬 차분하고 성숙해졌군요. 밀실에 갇혔을 때 소리소리 지르면서 호들갑을 떠는 장면은 좀 깬다 싶었지만, 관 속에 갇혔던 트라우마가 무의식중에 되살아났기 때문이라고 이해할 수 있는 정도였지요. 

특히 액받이 무녀가 아무렇지 않게 왕의 몸에 손을 대는 설정이 무척이나 황당했었는데, 은근슬쩍 넘어가지 않고 호된 경을 치게 되니 나름의 설득력을 확보할 수 있었습니다. '옥체를 범한 대역죄인'이라는 죄목을 얻고 벌겋게 달구어진 인두로 이마를 지져 글자를 새기는 자자형(刺字刑)에 처해질 뻔했으니까요. 애초부터 그 황당한 설정이 없었더라면 "주무시는 동안만이라도 심간의 고통과 분노를 내려놓으시고 편히 쉬시길 바라는 마음에서... 전하께서 잠결에 부르신 여인의 이름이 전하의 고통과 닿아있는 듯하여 위로해 드리고픈 마음에..." 어쩌고 하면서 구차한 변명을 늘어놓을 필요도 없었겠지만, 어쨌든 간신히 수습에는 성공한 셈입니다.

그런데 7~8회에서 벌여놓은 엄청난 실수들을 뒷수습하는 데만도 벅찼던 탓인지, 정작 9회의 내용은 별로 볼만한 것이 없더군요. 처음으로 '해품달'이 지루하다고 느꼈을 정도입니다. 1~6회까지는 너무 재미있어서, 그리고 7~8회는 너무 화가 나서 지루할 틈이 없었는데 말이죠..;; 옥체를 범한 죄로 자자형에 처해질 뻔했던 월이 임금 이훤(김수현)의 특은으로 사면되어 다시 액받이 무녀의 직분으로 복귀하게 된 내용이 9회의 절반 가량을 차지했고, 기타 등등의 상황도 별로 달라진 것은 없습니다. 조정에서의 이훤은 여전히 윤대형(김응수)을 비롯한 간신배들과의 첨예한 대치상황에 놓여 있고, 중전 윤보경(김민서)은 고대하는 원자를 잉태하기는 커녕, 이훤의 눈길 한 번 사로잡지 못하는 제 신세가 처량하여 날마다 한숨과 질투심만 늘어갑니다.

한동안 이훤의 압도적인 존재감에 크게 밀리던 양명군(정일우)이 9회에서는 비로소 예전의 위상을 약간 회복한 느낌입니다. 특히 대왕대비 윤씨(김영애)와 대립하는 장면에서 상당한 매력을 발산하더군요. 대왕대비의 머릿속을 지배하는 생각은 친정인 윤씨 가문의 세력을 지키고자 하는 것뿐입니다. 아들 성조대왕(안내상)도 정치적 의견을 달리했기에 적으로 돌렸고, 현재의 임금인 손자 이훤도 못마땅하긴 마찬가지입니다. 지금 대왕대비는 오직 윤보경에게서 태어날 원자에게만 희망을 걸고 있는데, 그건 아무래도 가능성이 없어 보이니 좀 딱하기도 하군요. 

이훤의 건강을 염려한 양명군은 모처럼 인사를 여쭈러 입궐했으나, 훤보다 먼저 대왕대비와 마주치고 맙니다. 현재 왕위 계승서열 1순위로 떠오른 양명군의 존재는 대왕대비에게 있어 가장 위험한 인물이며 눈엣가시라 할 수 있지요. 할머니는 손자에게 노골적인 경계심을 드러내며 모욕하는데, 도무지 표정관리가 안 되는 것을 보면 잔인한 성품에 비해 수단은 별로 높지 않습니다. 윤대형의 포커페이스 정도는 되어야 고단수라 할 수 있을텐데요. 양명군의 반항심을 어설프게 건드린 대왕대비는 손자에게 제대로 한 방을 얻어맞고 마는군요. "참으로 걱정이옵니다. 아무래도 할마마마보다는 소손이 이승에 더 오래 남을 듯하니, 사는 동안 얼마나 근심이 크시겠습니까? 할마마마의 만수무강을 위하여 소손, 가끔 입궐하여 재롱을 떨어드리겠습니다.."

아무리 뒷방 늙은이 신세라지만 아직은 그 위세를 결코 얕볼 수 없는 대왕대비인데, 한치의 겁도 없이 정면으로 도발하는 양명군의 모습은 그 자유로운 캐릭터의 매력을 한층 더하는군요. 하지만 실제로 그는 왕이 되는 것 따위에 관심이 없습니다. 불가에 귀의한 생모 희빈(김예령)를 찾아가 털어놓는 진심을 들으니 알 수 있었지요. "어머니는 윤회를 믿으십니까? 저는 마음을 비웠습니다. 권력에도, 부귀 영화에도, 그 어떤 것에도 욕심이 없습니다. 그저 단 한 사람... 환생이란 것이 있다면 다시 만나고픈 한 사람이 있을 뿐입니다. 그 사람이 저를 못 알아볼까봐, 이번에도 저 아닌 다른 이를 선택할까봐, 또 다시 놓치게 될까봐 그것이 근심일 뿐입니다!" 와... 감동적인데요. 멋진 두 남자 이훤과 양명군의 사랑을 동시에 받는 허연우가 부러울 뿐입니다..^^ 

여러가지 문제점이 대충 수습되긴 했는데, 여전히 남아있는 것은 '기억상실증'이라는 함정입니다. 원작에서와 달리 허연우를 기억상실증으로 설정한 이유를 저는 아직도 잘 모르겠지만, 그놈의 기억상실증이 여주인공의 매력을 야금야금 갉아먹고 있다는 사실만은 분명합니다. 일단 자신이 누군지를 모르니까 사람이 어벙벙해 보이고, 기억이 없으니까 이훤을 향한 애절한 사랑도 충분히 표현될 수 없습니다. 많이 나아지긴 했어도 한가인의 대사는 여전히 아슬아슬 불안한 수준이라, 멋진 대사처리를 통해 총명한 매력을 발산하려는 시도도 여의치 않습니다. "사서오경을 읽는다더니 언변이 제법이구나!" 라고 이훤은 칭찬했지만, 제가 듣기에는 그저 그랬을 뿐이라 도통 공감이 되지 않더군요.

어렴풋이 되살아난 양명군과의 기억을 단번에 자신의 신기라고 치부해 버리는 모습도 정말 답답했습니다. 물론 지난 8년 동안 장녹영(전미선)의 신딸로서 무녀의 인생을 살아왔으니 착각할 수도 있긴 하지만, 기억이 되살아나는 것과 신기가 발현되는 것에는 아주 큰 차이가 있을텐데, 전혀 구분도 못하고 의심도 못하는 모습은 무척 단순하고 아둔해 보이더군요. 누구보다 섬세하고 민감하고 현명한 여인이어야 할 월의 캐릭터가 이토록 둔하게 표현되고 있으니, 그녀의 모습에서 누차 어린 연우의 그림자를 발견하며 홀로 속태우는 이훤과 양명군만 점점 더 안스러울 뿐입니다.

제 생각에 기억상실증의 설정은 아무래도 한가인의 부족한 연기력을 커버하기 위한 고육지책이 아니었을까 싶은데요. 기억을 잃었다는 것은 매사에 훌륭한 면죄부가 되어줄 테니까요. 현명했던 어린 시절과 달리 좀 어리버리해도 용서되고, 성숙했던 어린 시절과 달리 좀 어리광을 피워도 용납되는 등 편리하게 빠져나갈 구멍들이 많이 생겨난 것도 사실입니다. 하지만 이제 와서는 그것이 오히려 커다란 함정이 되어 작품의 발목을 잡고 있는 느낌입니다.

기억이 완전히 돌아오면 지금과 달라질까요? 하지만 이제껏 표현해 온 캐릭터가 있는데 갑자기 180도 변할 수는 없을 듯하고, 설령 가능하다 해도 그게 최선일지 모르겠습니다. 일관성을 잃은 캐릭터는 역시 매력적일 수 없는 법이니까요. 초반부터 큰 애착을 지니고 시청해 온 드라마인데, 각종 사고 후 뒷처리에 급급한 나머지 시원스레 쭉쭉 뻗어나가지 못하고 이렇게 정체되어 있는 모양새는 오늘도 그저 안타깝기만 합니다. 아직도 메꾸지 못한 큰 구멍이 남아 있는데, 이걸 어떻게 처리할지는 또 두고 볼 수밖에 없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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