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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밀의 문' 영조와 사도세자의 싸움은 현재 진행중이다 본문

드라마를 보다

'비밀의 문' 영조와 사도세자의 싸움은 현재 진행중이다

빛무리~ 2014. 9. 24. 11: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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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찔하도록 매력적이었던 '뿌리깊은 나무'의 세종 이후 3년만에 임금의 모습으로 다시 돌아온 한석규를 브라운관에서 볼 수 있다는 감사한 사실만으로도 '비밀의 문'을 향한 기대는 한껏 높을 수밖에 없었다. 더욱이 월화드라마 라인의 폭망으로 지루함에 시달려 온지가 벌써 수개월째라 '믿고 보는 한석규'의 귀환은 더욱 반가울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아무래도 기대가 지나치게 컸던 모양이다. 나는 원래 김영현 작가의 사극 매니아이며 상대적으로 윤선주 작가의 작품을 선호하지는 않는 편이지만, 그래도 '불멸의 이순신' 등 높이 평가받는 작품을 많이 쓴 작가이니 한석규와의 호흡을 기대할만 하겠다 생각했는데 뚜껑을 열고 보니 솔직히 기대에는 못 미친 느낌이었다.

 

 

'비밀의 문' 초반 전개는 영조의 즉위와 관련된 비밀 문서 '맹의'를 둘러싸고 벌어지는 일련의 사건들로 채워졌다. 소론의 지지를 받던 선왕 경종이 젊은 나이에 석연찮은 죽음을 맞이한 후, 경종의 이복 아우 영조(한석규)는 노론의 비호를 받아 왕위에 올랐다. 드라마에서는 당시 노론파 수장 김택(김창완)이 영조를 협박하여 '맹의'라는 문서에 수결을 하도록 강요했고, 그렇게 약점을 잡힌 영조는 강력한 왕권을 확립하지 못한 채 노론파 대신들의 눈치를 보는 것으로 상황을 설정했다. 필시 '맹의'의 내용은 선왕 경종의 죽음과 연관이 있을 것이며, 그것이 세상에 발표되는 순간 영조의 왕위 계승은 정통성을 잃게 될 것이다.

 

일각에서는 이와 같은 설정을 두고 역사 왜곡이라 지적하기도 한다. 영조는 조선시대 왕들 중 가장 강력한 왕권을 지녔던 임금 중 하나인데, 그가 노론에 휘둘리며 정사를 뜻대로 펼치지 못하는 모습은 고증에서 다소 멀어져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50년이 넘는 영조의 긴 치세 동안 후반에는 강력한 왕권을 확보했을지언정, 무수리 출신 후궁의 아들로서 노론의 비호를 받아 즉위했던 초반에는 왕권이 약할 수밖에 없었을 터이니 그와 같은 초반의 상황을 약간 확대시켰다고 해서 역사 왜곡이라고까지 우려할 필요는 없지 않을까 싶다. 그리고 사도세자 캐릭터 역시 기록과 다르다는 이유로 역사 왜곡 논란이 있지만, 그것도 심각한 문제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극 중 사도세자 이선(이제훈)은 순진무구한 열혈 청년으로 등장한다. 숙종의 서자도 아닌 얼자로 태어나 왕위에 오르기까지 갖은 풍파를 몸소 겪으며 정치적 모략과 술수를 익혔던 부왕 영조와 달리, 태어나면서부터 적통 후계자였던 사도세자는 권력에 도전을 받아 본 적이 없어 상대적으로 매우 순수하다. 갓 스물에 부왕의 명으로 대리청정을 맡게 된 사도세자는 젊은이다운 열정으로 백성을 위한 유토피아를 꿈꾸며 개혁 정책을 펼치려 하지만, 정치와 권력의 속성을 알지 못했던 청춘의 무모한 패기는 비극의 시작일 뿐이었다. 드라마에서는 사도세자가 이처럼 긍정적으로 그려졌으나, 역사의 기록에는 수많은 인명을 살상한 미치광이로 남아 있음에 왜곡의 지적이 발생한다.

 

기록 속 사도세자는 어린 나이 때부터 광기를 보여 왔다고 하지만, 오직 그것만이 사도세자의 전부였을까? 영조가 신하들과의 기싸움에서 즐겨 사용한 무기는 바로 '선위 선언'이었으니, 자신의 정통성을 약점삼아 쥐고 흔드는 신하들에게 정면으로 맞대응하는 방식이었다. "나의 정통성이 불만이라고? 좋다. 내가 물러나겠다!" 그러나 영조가 '선위 선언'이라는 무기를 휘두를 때마다 가장 상처받는 사람은 신하들이 아니라 아들 사도세자였다. 부왕이 선위 선언을 할 때마다 그 화살은 왕위 계승자인 세자에게로 향했고, 어린 세자는 마치 고래 싸움에 등 터지는 새우처럼 부왕과 신하들 틈에서 모진 고초를 겪어야 했다.

 

 

극적 설정이긴 하겠으나, 불과 5세의 나이로 한밤중에 잠자다가 끌려나와 대전 앞 돌바닥에 무릎 꿇려지는 세자의 모습은 그야말로 참혹했다. 상궁이 세자에게 말했다. "부왕께서 선위할 뜻을 펴시면 한여름은 물론이거니와 엄동설한이든 언제든 시와 때를 막론하고 대죄를 하셔야 하며, 뜻을 거두시기 전까지는 먹어서도 잠들어서도 읍소를 멈추어서도 아니되옵니다!" 그렇게 죄없는 세자는 코흘리개 어린 시절부터 20대 후반의 청년 시절에 이르기까지 수없이 대전 앞에 엎드려 통곡하며 외쳐야 했다. "선위할 뜻을 거두어 주시옵소서!" 그와 같은 성장 환경에서 정신이 온전하다면 오히려 이상한 일 아닐까?

 

훗날 조선의 마지막 부흥기를 이끌었던 그 아들 정조의 재능과 인품을 생각해 볼 때, 사도세자 역시 처음부터 포악한 미치광이는 아니었을 것으로 판단된다. 정치 술수에 능한 사람이었다면 결코 부왕의 손에 죽지도 않았을 것이다. 그러니 현재 '비밀의 문'에서 순수하고 긍정적으로 그려지는 사도세자의 모습이 실제와 완벽히 다르다고 확신할 수도 없다. 어려서부터 부왕으로부터 정신적 괴롭힘을 당하며 성장한 사도세자의 마음속에는 부왕에 대한 반발심이 싹텄을 것이고, 영조는 자신과 달리 너무 순진해서 실속없는 아들이 못마땅했을 것이다. 광증의 기록을 이유만으로 사도세자의 긍정적인 모습을 그려내는 것 자체가 역사 왜곡이라 한다면 너무 융통성 없는 주장이 아닐까?

 

 

좀 빗나간 이야기지만, 영조의 거듭되는 선위 선언과 그 때마다 "명을 거두어 주시옵소서!" 하고 울부짖는 신하들의 모습을 보며 나는 기가 차서 실소했다. 현대적인 시각으로 볼 때는 이해할래야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광경이었다. 아무리 군왕(君王)은 무치(無恥)라지만 실천할 생각도 없이 수시로 '빈말'을 내뱉는 임금의 꼬락서니는 무엇이며, 그 때마다 죽을 힘을 다해 그 '빈말'과 맞서 싸우는 신하들의 쇼쇼쇼는 대체 무슨 한심한 짓거리란 말인가? '빈말'이 무기가 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난 참으로 어이가 없었다. 정상적으로 생각할 때, 선위한다고 말했으면 진짜로 선위를 해야 체통이 서는 것 아닌가? 자기가 한 말을 스스로 책임지지 않는 군주에게 무슨 위엄이 있단 말인가?

 

그러나 우습게도 당시 임금의 선위 선언을 그대로 받아들였다가는 당장 역적으로 몰려 죽임을 당할 것이 뻔한 현실이었다. "선위를 받아들이겠다고? 옳지, 네가 역심을 품고 이 때만 기다렸던 게로구나! 네 이놈, 과인이 죽기를 바랐더냐?" 빈말을 하고도 뭘 잘했다고 오히려 큰소리를 탕탕 칠 수 있으니 왕의 자리가 좋기는 좋은 거였나보다. 아무튼 정치 9단의 노련한 영조와 순진무구한 '정치바보' 사도세자의 첨예한 대립은 그리 새로운 구도가 아님에도 가슴 찡한 울림을 주었다. 특히 부왕과 신하들의 틈바구니에서 자신이 얼마나 위태로운 지경에 놓였는지도 모른 채, 그저 순수한 열정만으로 평등한 세상을 꿈꾸는 사도세자의 모습은 눈물겹기까지 했다.

 

 

떨어져 짓밟힌 목련 꽃잎을 보며 슬픔을 느낀 적이 있는가? 젊음의 순수와 열정은 봄날의 목련을 닮았다. 눈부시게 아름답고 깨끗하지만 결코 오래 지속되지 못하기에, 살아남은 자는 어쩔 수 없이 기성세대에 동화되어 가고, 끝내 거부하는 자는 핏빛 장미처럼 산화하기도 한다. 어쩌면 영조와 사도세자의 싸움은 지금 이 순간도 계속되고 있다. 기성세대를 대표하는 영조와 대신들은 지식의 보급을 철저히 통제함으로써 제 손에 움켜쥔 권력을 사수하려 하지만, 젊음의 정신을 대표하는 사도세자는 민간 출판을 허용함으로써 백성의 자유와 권리를 확대시키려 한다. 사리사욕 없는 그 순백의 열정도 결국은 뒤주 속에서의 처참한 죽음으로 꺾이리니 어찌 슬프지 않을소냐.

 

'뿌리깊은 나무'의 세종과 얼핏 비슷한 것 같으면서도 냉혹하고 악랄한 영조의 모습을 은근한 차별성으로 확립해서 보여주는 한석규의 연기는 레전드의 명성이 헛되지 않음을 입증하고 있으며, 영조의 숙적인 김택 역할의 김창완 역시 노련한 내공으로 차분한 악역의 진수를 보여주고 있다. 한편으로는 노회한 김택과 대립하고 한편으로는 풋풋한 사도세자와 대립하며 드라마를 이끄는 힘은 역시 영조 한석규에게서 나온다. 그러나 '맹의'의 행방이라든가 '살인 사건' 등의 개별 에피소드는 예상 외로 크게 흥미를 끌지 못하고 있다. 묵직한 중심에 녹아들지 못한 채 곁가지처럼 맴도는 느낌이다. 개인적으로는 역시 대본의 문제가 아닐까 생각하는 중이다.

 

 

'뿌리깊은 나무'에서 광평대군으로 분하여 인상적인 연기를 보여 주었던 서준영이 화원 신흥복으로 등장하여 사도세자 이제훈과의 우정 케미를 뽐내기에 썩 볼만하다고 느꼈는데, 불과 1회만에 죽음을 맞이했으니 안타까울 따름이다. 하지만 그보다 더 안타까운 것은 여배우들의 캐스팅이다. 여주인공 서지담 역할을 불과 16세의 청소년 배우 김유정에게 맡겼다기에 과연 옳은 선택일까 반신반의했는데, 막상 보니 연기는 훌륭하지만 아직은 나이가 너무 어려서 역부족임이 드러난다. (역할과 당최 안 어울린다..;;) 게다가 혜경궁 홍씨 역의 박은빈도 23세의 성인이지만 역시 아역 이미지가 강한 데다가 목소리 톤이 너무 어려서 이제훈과의 케미가 살아나지 않는다.

 

남자 주연과 조연 배우들은 황금 라인업으로 캐스팅해 놓고 어째서 여자 주연 배우들은 채 여물지도 않은 아역 쪽으로 눈을 돌렸는지 선뜻 이해할 수가 없다. 명품 아역 김유정의 연기에 매번 대중이 열광하니 이번에도 그 효과를 노렸던 것일까? (설마 유정이한테 묻어 가려고? ;;;) 하지만 결코 무시해서는 안 될 나이의 장벽을 가뿐히 무시해버린 제작진의 안일한 캐스팅은 아무래도 실패로 돌아간 것 같다. 배우가 아무리 연기를 잘 해도 제 나이에 맞지 않는 옷을 입고는 훨훨 날 수 없다는 사실만 입증되었을 뿐이다. 이런 몇 가지 부분이 안타깝지만 그래도 요즘 방영되는 드라마 중에는 이만한 작품도 없으니 응원하는 맘으로 지켜볼 수밖에... 부디 행운과 건투를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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