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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무리의 유리벽 열기
'자이언트'가 60부의 대장정을 마치고 종영했습니다. 단순히 해피엔딩이라거나 새드엔딩이라는 말로 규정지을 수 있는 종류의 마무리는 아니었습니다. 그저 격동의 세월을 지나며 그들은 이렇게 살아왔고 그렇게 죽어갔구나... 하는 감개무량함만이 남았습니다. 저의 예상과는 좀 달랐던 그들의 운명을 바라보며, 각자의 삶과 죽음에는 어떤 의미가 있는지를 대략 정리해 보았습니다. 1. 이성모(박상민)의 죽음 개인적으로 가장 안타까웠던 죽음입니다. 이렇게 속절없이 세상을 떠날 바에는, 차라리 머리에 총을 맞던 그 날 바로 죽는 편이 나았을 거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숨을 거두기 직전에 이성모는 지연수에게 비자금 장부와 녹음 테이프를 전달하고, 지연수는 조필연의 마수를 피해 숨어 살다가 나중에 이강모(이범수)를 만나 그의 ..
'자이언트' 58회을 지배한 감정은 미칠듯한 궁금증이었습니다. 이성모(박상민)가 과연 어떻게 되었을까 하는 의문이었죠. 조민우(주상욱)에게서 테이프를 빼앗아 결정적 증거를 확보했으나 그 때 쫓아온 고재춘(윤용현)과 마주쳐 총격전이 벌어졌고, 이성모는 방탄조끼를 입었으나 머리 뒤쪽에 박힌 총알은 어쩌지 못했습니다. 그런 줄도 모르고 증거를 확보했음에 신이 나서 차를 운전해 가던 이성모는 마침 동생 이강모(이범수)에게서 걸려 온 전화를 받습니다. 드디어 조필연(정보석)을 무너뜨릴 수 있게 되었다고 의기양양하게 소식을 전하던 이성모는 갑자기 시야가 뿌옇게 흐려져 오는 것을 느끼는데, 뒤통수에서 뜨거운 피가 흘러내립니다. 정말 가슴이 철렁한 장면이었습니다. 결정적 증거를 확보하지 못했음에도, 계속해서 조필연의 ..
'자이언트'는 정말 대단한 드라마입니다. 영화는 감독의 예술이고 드라마는 작가의 예술이라는데, '자이언트'를 보면 볼수록 느끼는 것은 끝까지 뒷심을 잃지 않는 작가의 놀라운 뚝심입니다. 이제 드디어 악마 조필연(정보석)의 몰락이 눈앞에 다가왔군요. 그 동안 '자이언트'에 대한 기사가 나면 그 밑에 주루룩 달린 댓글들의 내용은 "대체 복수는 언제 하냐? 조필연 늙어 죽겠다..ㅜㅜ" 이런 것들이 많았지요. 그런데 이제 드디어 모두가 그토록 기다리던 복수의 끝이 다가온 것입니다. 그런데 작가는 끝까지 긴장을 풀 수 없게 합니다. 계속해서 이성모(박상민)를 의심하던 조필연 쪽에서도 드디어 그의 정체를 확신할 실마리를 잡았거든요. 황태섭(이덕화)과 은밀히 만나는 장면을 찍힌 사진에 이성모의 얼굴은 나오지 않았으나..
저는 일전에 포스팅한 '이성모에게 다가오는 죽음의 그림자' 편에서, 이성모(박상민)의 캐릭터에는 차라리 새드엔딩이 더 나을 것 같다는 의견을 제시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아무래도 시청자들 중에는 저와 같은 생각을 지닌 사람보다, 해피엔딩을 바라는 마음으로 이성모가 죽지 않았으면 하는 사람이 더 많은 듯 싶더군요. 제발 이성모를 살려달라고 작가에게 애원하는 글들도 시청자게시판을 비롯해 여기저기서 발견할 수 있었지요. 요즘 제작진들은 시청자 의견을 적극적으로 수렴하는 경우도 꽤 많은 편이라, 그런 절대 다수의 입김이 영향력을 발휘했을 가능성은 충분히 있습니다. 드라마가 처음 출발할 때부터 이성모의 죽음은 이미 예정된 것으로 보였었는데, 지금의 추세로는 끝까지 살아남을 듯 싶군요. 불사신 수준의 놀라운 생..
'자이언트'라는 드라마 속에서 조민우(주상욱)라는 인물은 마치 전신마비 환자와도 같습니다. 정신은 살아 있으나 형체없는 쇠사슬에 몸이 묶여 있기에 자기 뜻대로 움직일 수 없는 사람... 그래서 조민우를 보면 굉장히 마음이 불편해집니다. 이미주(황정음)를 대할 때 외에는 하는 짓이 꼭 제 아비를 닮아서 새끼악마처럼 나쁜 놈인데, 차마 미워할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렇다고 무작정 가엾어만 하자니, 점점 더 냉혹해지는 그의 모습은 소름이 끼칠 지경이라서 중간중간 혐오감이 치밀기도 합니다. 절대악 조필연(정보석)의 아들로 태어났다는 것은 조민우에게 있어 천형(天刑)입니다. 엄마 뱃속에 잉태되는 순간부터 정해진 벌... 대체 그 어린 생명이 무슨 죄를 지었던 걸까요? 간악한 아비에게 모든 것을 통제당하며, 조민..
그들의 줄다리기는 이미 너무 오래 끌어 온 경향이 있었습니다. 총 60부작의 긴 호흡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는 일이었는지도 모르겠군요. 그러나 매번 비슷비슷한 상황이 반복되다 보니 언제부턴가 긴장감도 살짝 떨어지고 지루한 느낌마저 들기 시작했습니다. 이성모(박상민)를 대략 20년 동안이나 최측근으로 데리고 있었지만 그를 진심으로 믿지 않는 조필연(정보석)은 바늘 끝만큼의 꼬투리라도 있으면 언제나 의심의 눈초리를 번뜩이며 이성모의 목을 조여 왔고, 그럴 때마다 이성모는 극도의 영민함으로 빠져나갔습니다. 조필연이 단 한 번, 이성을 잃고 흔들린 적이 있었지요. 이성모가 자기의 정적인 민홍기(이기영)와 결탁한 것을 눈치채고, 그 현장을 덮치기 위해 차를 몰아 달려갈 때 조필연은 마치 다른 사람 같았습..
'자이언트' 44회에서 이강모(이범수)는 '남자가 여자를 사랑할 때'라는 제목으로 영화를 만들어도 좋을만큼 감동적인 모습을 보여 주었습니다. 어려서부터 한 번도 변함없이 지속되어 온 이강모의 황정연(박진희)을 향한 사랑은 거의 신앙이라 해도 좋을 만큼 숭고합니다. 백파의 사후, 유경옥(김서형)은 그의 유언에 따라 사채업자들에게서 원금을 회수하여 사회에 환원하려 하지만, 사채업자들의 반발은 예상대로 거칠기 짝이 없습니다. 급기야 차부철(김성오)은 사채업자들과 결탁하여 황정연을 납치했지요. 황정연이 유경옥의 친딸이라는 것을 알기에, 그녀의 목숨을 담보로 유경옥에게서 차용증서들을 빼앗으려는 것이었습니다. 이런 비상사태를 맞아 황태섭(이덕화)과 유경옥, 이강모는 대책을 강구하지만 황정연이 있는 장소를 찾아내는 ..
사채업계의 대부 백파(임혁)가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가 살아 온 방식을 옳다고 할 수야 없겠지만, 최소한 드라마 상에서는 절대악 조필연(정보석)과 맞서 싸우는 인물이었기에 우리는 마음 속으로 그를 응원해 왔지요. 백파와 조필연의 싸움은 말 그대로 돈과 권력의 싸움이었습니다. 확신할 수는 없었지만 그래도 상대적으로 조필연의 힘이 더 막강해 보였는데, 결과는 백파의 승리였습니다. 그 동안 대부업은 어둠의 시장으로 불렸습니다. 사채업자들은 정당한 세금을 내는 대신 정권의 실세들과 야합하여 정치자금을 제공하는 댓가로 모든 편익을 제공받으며 사업을 해 왔지요. 악어와 악어새 같은 그들의 관계는 너무 단단하고 역사가 길어서 결코 깨뜨려질 수 없을 것처럼 보였습니다. 조필연 뿐만 아니라 다른 누구도 그들의 공생관계가..
걸그룹 '슈가'의 멤버로 활동할 당시, 황정음은 지금보다 약간 동그스럼한 얼굴에 아주 귀여운 가수였습니다. 저는 2003~2004년 무렵에 '도전 1000곡'을 굉장히 즐겨 보았었는데, 출연할 때마다 황정음이 보여주던 노래 실력에 무척 감탄하곤 했습니다. 아직 나이도 어린데 오래된 노래까지 두루 섭렵했을 뿐 아니라, 가사조차 한 번도 안 틀리고 끝까지 청아한 목소리로 완창하는 그 모습은 호감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했지요. 어떤 대선배 여가수는 귀엽다는 듯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자기는 이 조그만 머릿속에 어쩜 그렇게 많은 가사를 집어넣고 다니니?" 라고 물었던 적도 있습니다. '슈가' 해체 이후 황정음은 연기자로 데뷔했으나 한동안 부진의 늪에서 시달렸지요. '사랑하는 사람아', '겨울새' 등의 작품에 ..
'자이언트' 33회를 보면서 가장 섬뜩했던 장면은 전신마비가 되어 누워 있는 황태섭(이덕화)을 두고 그의 아내 오남숙(문희경)이 벌이는 범죄행각이었습니다. 이제껏 '드라마 속의 지극히 평범한 재벌 사모님'일 뿐 별다른 활약이 없던 오남숙은 최근 들어 눈부신 활약을 보여주고 있지요. 황태섭은 적자인 황정식(김정현)을 외면하고 서녀인 황정연(박진희)를 후계자로 삼았으며, 죽은 줄 알았던 이강모(이범수)가 살아 돌아오자 그에게 전재산의 반을 주겠다고 몰래 유언장을 수정했습니다. 시청자들의 눈에야 합당한 결정이었지만 오남숙의 입장에서는 남편을 증오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지요.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죽이려고까지 할 줄은 몰랐는데, 충격이었습니다. 오남숙이 이처럼 부각되니, 그와 비견되어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인물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