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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무리의 유리벽 열기
담사리(전노민)의 공개처형과 관련되어 수많은 사람이 죽었습니다. 정작 담사리 본인은 각시탈 이강토(주원)을 비롯해 수많은 동지들의 비호를 받으며 무사히 위험에서 탈출할 수 있었지만, 가짜 각시탈로 분장했던 독립군 장동지는 몸에 폭약을 묶은 채 장렬히 산화했고, 기무라 슌지(박기웅)의 총에 맞아 체포되었던 적파(반민정) 역시 고문 끝에 혀를 깨물고 자결하였습니다. 서커스단의 여장부였던 오동년(이경실)은 현장에서 슌지의 총에 치명상을 입고 사망했지요. 극에서 비중있게 다뤄지지는 않았지만, 그들 외에도 수많은 사람이 죽었습니다. 조선인은 물론이고 일본인도 예외는 아니었습니다. 각시탈이 사용하는 무기(쇠퉁소, 깃대 등)는 웬만해서 사람을 죽이지 않지만, 장동지의 다이너마이트 폭발 당시에는 근처에 있던 일본 순사..
정말 고마웠습니다. 끝까지 기운을 잃지 않고 꿋꿋이 버텨 주어서 정말 고마웠습니다. 우리나라 대부분의 드라마가 용두사미꼴의 아쉬운 결말을 면하기 힘든 현실인데, 그 열악한 상황에서도 끝까지 초심을 밀고 나가며 실망스럽지 않은 최고의 결말을 마련해 주어서, 가장 현실적이면서도 우리 가슴 속 희망의 불씨를 되살릴 수 있는 내용으로 마무리해 주어서 정말 고마웠습니다. 이로써 대중적 인기를 끄는 톱스타 한 명 없이 조촐하게 출발했던 '추적자'는 놀랍게도 한국 드라마 역사에 찬란히 빛나는 금자탑을 세우게 되었군요. 정신도 멀쩡했고 법에 어긋난다는 것도 잘 알고 있었지만 그것 밖에는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노라고, 잘못이라는 건 알지만 또 다시 그런 상황에 닥친다 해도 자신은 같은 행동을 할 수밖에 없을 거라고 진술..
'각시탈' 13회에서는 완전한 악역으로 돌변한 슌지(박기웅)가 각시탈의 정체를 이강토(주원)라고 의심하기 시작했습니다. 의심이 시작된 과정을 단편적으로 서술해 본다면 다음과 같습니다. 목단(진세연)은 자기가 번번이 각시탈을 잡기 위한 미끼가 되니, 각시탈의 안전을 위해서라도 조선을 떠나 아버지 담사리(전노민)와 함께 상하이의 독립운동본부로 가겠다는 결단을 내렸었죠. 그녀가 조선을 탈출하려 한다는 정보를 입수한 슌지는 다급히 경찰을 이끌고 잡으러 가는데, 겉으로는 각시탈을 잡기 위한 좋은 미끼를 놓칠 수 없다는 이유였지만 속으로는 그녀를 향한 마음이 여전히 상당 부분 남아있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목단을 체포하려는 순간 느닷없이 각시탈이 나타나서 그녀를 구했고, 각시탈과의 격투에서 슌지가 잠시..
한동안 본의 아니게 민폐녀로 찍혔던 여주인공 목단(진세연)의 캐릭터가 드디어 제 역할을 찾기 시작했습니다. 처음으로 터뜨린 한 방이 무척이나 시원했던지라, 앞으로 그녀의 활약을 기대해 볼만하다는 생각이 드는군요. 따지고 보면 이제껏 별로 잘못한 일이 없는데도 목단이 민폐녀처럼 보였던 것은 그녀 때문에 남자 주인공들이 수차례씩이나 위험에 처했기 때문이죠. 여인으로서도 용감무쌍한 것은 얼마든지 좋으나 스스로 자신을 지킬 능력도 없으면서 걸핏하면 대책없이 튀어서 위험에 빠지니, 그녀를 사랑하거나 정의감에 넘치는 조선 남자들은 별 수 없이 위험을 무릅쓰고 나서서 목단을 구해주지 않을 수 없게 되는 겁니다. 이를테면 이공의 장례식에서 다짜고짜 영정에 돌을 던진 목단은 요령있게 달아나지도 못하고 즉시 체포될 위기에..
제 생각에 요즘 '추적자'에서 가장 매력적인 인물은 서회장(박근형)입니다. 주인공 백홍석(손현주)의 비중이 낮아지면서 상대적으로 강동윤(김상중)의 존재감이 강해지긴 했지만, 아무리 몸부림쳐 봐야 서회장이 살아있는 동안에는 절대 그를 이길 수 없을 거라는 느낌이 소록소록 전해지는군요. 거의 표정 변화 없이 냉철하고 강인한 남자의 기상을 풍기는 강동윤의 얼굴도, 늘 여유로운 미소를 잃지 않는 서회장의 능글맞은 얼굴과 마주치면 삽시간에 그 빛을 잃고 맙니다. 게다가 연륜과 통찰력이 묻어나는 서회장의 기막힌 대사들이라니, 요즘은 박근형이 입만 뗐다 하면 저절로 명언 퍼레이드가 되고 마네요. 분명히 악역이라는 사실을 알면서도, 저는 회를 거듭할수록 서회장의 캐릭터에 푹 빠져들고 있습니다. 하지만 서회장에게도 부인..
진실을 깨닫기 전까지 나는 아무것도 몰랐다. 그저 고생하는 어머니에게 번듯한 집 한 칸이나 마련해 주고, 불쌍한 형을 좋은 병원에서 치료받게 해줄 수만 있으면, 내가 나쁜 놈이라고 욕먹는 것쯤은 아무렇지 않다고 생각했을 뿐이다. 슌지(박기웅)와 절대 친구가 될 수 없는 운명이란 것도 몰랐다. 내지인이건 반도인이건 그게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항상 내 편을 들어주는 착한 녀석이니까 평생 친구로 지낼 수 있을 줄만 알았다. 그런데 나의 출세길을 막는 원수같은 놈이라고 생각했던 각시탈이 바로 형이었다. 바보가 되고 폐인이 된 줄만 알았던 나의 형 이강산(신현준)이 바로 각시탈이었다. 그런 줄도 모르고 나는 형에게 총을 쏘았다. 내가 쏜 총에 맞아 피흘리고 죽어가면서도 형은 바보같이 미안하다고 말했다. 나에게 ..
고래 싸움에 새우등 터졌다는 속담이 이렇게나 절묘하게 들어맞는 상황이 있을까요? 한오그룹 총수 서회장(박근형)과 그의 사위로서 차기 대권을 노리는 강동윤(김상중)의 대결구도에 정말 우연찮게 소시민 백홍석(손현주)이 휘말려들면서 그의 가정은 완전히 파탄나고 말았습니다. 두 사람의 목숨이 억울하게 스러져갔지만 아무도 책임지지 않습니다. 그야말로 당한 놈만 억울하고 약한 놈만 서러운 격이라, 절대 다수의 소시민에 속하는 시청자들은 모두 백홍석에게 감정을 이입하며 그와 함께 울고 웃습니다. 그가 우발적 살인과 계획적 납치 등의 범죄를 저질러도 시청자는 언제나 백홍석의 편이 되어 그를 응원하고 있지요. 성경 속에서는 다윗이 골리앗에게 승리했지만 이 시대의 현실 속에서는 그럴 가능성이 거의 없음을 알기에, 죽은 아..
'추적자' 5회의 내용은 굵직하게 '혜라의 활약' 과 '창민의 배신' 으로 요약될 수 있겠군요. 강동윤(김상중)이 그토록 막아보려 했지만, PK준(이용우)이 촬영한 동영상은 결국 서회장(박근형)의 아들인 서영욱(전노민)의 손에 들어가고 말았습니다. 백수정(이혜인)의 죽음의 진실에 대해 영원히 함구할 것을 명하는 강동윤의 모습과 음성이 생생히 담긴 그 동영상이 공개될 경우, 강동윤은 모든 것을 잃고 파멸할 수밖에 없습니다. 꿈에 그리던 대선 출마와 대통령 당선은 커녕, 살인교사죄가 발각되어 옥살이를 하게 될지도 모르는 일이지요. 수년 전에 강동윤에게 된통 당했던 서영욱은 이번 기회에 그를 짓밟아 버리기로 작정하고, 그 동영상을 강동윤의 정적(政敵)인 유태진(송재호) 의원에게 전달하려 합니다. 위기 일발의 ..
방영 전부터 이런저런 문제로 꽤나 시끄러웠던 드라마 '각시탈'의 첫방송이 드디어 전파를 탔습니다. 보조출연자의 석연찮은 죽음과 그 배상문제를 둘러싼 잡음들, 그리고 지나치게 애국심을 내세우는 듯한 자극적인 홍보 마케팅 등으로 인해, 마음 속에는 얼마간의 꺼림칙함이 자리잡고 있었지만, 저는 새로 시작된 수목드라마 전쟁에서 결국 이 작품을 선택하고 말았네요. 물론 저의 성향상, 앞으로의 진행과정이 실망스러울 경우는 중간에 '유령'이나 '아이두아이두' 쪽으로 갈아탈 가능성도 얼마든지 있지만, 일단은 '각시탈'의 분위기가 가장 끌리고 마음에 들더군요. 이 글의 초점에서는 약간 빗나가는 이야기지만 '각시탈' 1회를 보면서 저는 한 가지 깨달은 것이 있습니다. 어째서 초반에 제가 그토록 애정하던 드라마 '적도의 남..
무진(차인표)이 자기 목숨을 바쳐 의자왕자(노영학)을 살리려 한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다 해도 의자가 스스로 몸을 날려 무진의 몸에 칼을 찔러넣는 순간, 의자왕의 캐릭터는 돌이킬 수 없을 만큼 망가졌다고 저는 생각했습니다. 아무리 주군과 신하의 관계이지만 자신의 위기를 벗어나기 위해 둘도 없는 충신을 제 손으로 죽이는 임금이라니, 너무나 배은망덕하고 비겁해 보였거든요. 아역들이 퇴장하고 성인 연기자들이 등장하면서, 너무 급격히 늙어버린 계백과 의자의 모습은 역시 제가 보기에도 당황스러웠습니다. 의자(조재현)와 은고(송지효)가 함께 있는 장면에서는 영락없는 아버지와 딸의 분위기가 흘렀고, 한껏 시커멓게 생구(전쟁포로) 분장을 하고 있는 계백(이서진)의 모습에서는 뭐랄까 쿤타킨테의 향기가 났습니다. 하지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