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ISTORY 2014 우수블로그
TISTORY 2012 우수블로그
TISTORY 2011 우수블로그
TISTORY 2010 우수블로그
Recent Posts
Recent Comments
Link
관리 메뉴

빛무리의 유리벽 열기

'계백' 매력을 되찾은 의자왕, 되살아나는 드라마 본문

종영 드라마 분류/계백

'계백' 매력을 되찾은 의자왕, 되살아나는 드라마

빛무리~ 2011. 8. 24. 09:30
반응형


무진(차인표)이 자기 목숨을 바쳐 의자왕자(노영학)을 살리려 한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다 해도 의자가 스스로 몸을 날려 무진의 몸에 칼을 찔러넣는 순간, 의자왕의 캐릭터는 돌이킬 수 없을 만큼 망가졌다고 저는 생각했습니다. 아무리 주군과 신하의 관계이지만 자신의 위기를 벗어나기 위해 둘도 없는 충신을 제 손으로 죽이는 임금이라니, 너무나 배은망덕하고 비겁해 보였거든요.

아역들이 퇴장하고 성인 연기자들이 등장하면서, 너무 급격히 늙어버린 계백과 의자의 모습은 역시 제가 보기에도 당황스러웠습니다. 의자(조재현)와 은고(송지효)가 함께 있는 장면에서는 영락없는 아버지와 딸의 분위기가 흘렀고, 한껏 시커멓게 생구(전쟁포로) 분장을 하고 있는 계백(이서진)의 모습에서는 뭐랄까 쿤타킨테의 향기가 났습니다. 하지만 이제 와서 외모 때문에 캐스팅을 탓하고 싶지는 않았습니다. 아직은 처음이라서 더욱 어색하고 적응 기간이 필요할 뿐, 연기력은 받쳐 주는 배우들이니까 머지않아 극중 인물과 자연스럽게 일치해갈 거라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문제는 좀처럼 살아나지 못하는 의자의 캐릭터였습니다. 무진을 죽이면서 어차피 망가지긴 했지만, 수년의 세월이 흘러 저렇게 늙도록 나이가 먹었는데도 불구하고(;;), 아직도 제 머리로는 계책 하나 짜내지 못하고 사사건건 은고의 영특함에만 의존하고 있는 모습은 한심하기 짝이 없더군요. 의자왕자의 캐릭터는 '비겁함'과 '멍청함'이라는 두 마디의 단어로 표현하면 꼭 알맞겠다 싶었습니다.

그렇게 죽어 있던 의자의 캐릭터가 비로소 10회에서 살아나기 시작했습니다. 다행히 작가가 뒤늦게나마 정신을 차렸는지, 이제껏 풍겨 오던 그 비겁하고 멍청한 느낌을 만회하기 위해 무척이나 애쓴 흔적이 엿보이더군요. 그 노력은 어느 정도 성공을 거두었습니다. 하마터면 흥미를 완전히 잃을 뻔했는데, 이제야 드라마가 조금씩 볼만해집니다.

의자를 죽여 아버지의 원수를 갚겠다는 일념으로 살아왔던 계백은, 밤중에 가잠성(신라 진영)을 탈출하여 백제 군사의 진영으로 숨어듭니다. 마침 의자는 위제단의 습격을 받고 독화살에 맞아 사경을 헤매다가, 은고의 도움으로 목숨을 건진 상황이었습니다. "왕자님, 왕자님!" 하고 은고가 부르는 소리를 밖에서 들은 계백은 그 곳이 의자의 막사인 것을 확신하고, 은고가 잠시 자리를 비운 틈에 번개같이 뛰어들어 의자의 목에 칼을 겨눕니다. 바로 이 장면에서 10회가 시작되었죠.

자객의 정체가 계백임을 알게 된 의자는 외칩니다. "계백아, 네가 살아 있었구나!" 그 눈빛과 표정과 말투에서는 진심어린 희열과 반가움이 느껴졌습니다. (얼굴은 너무 늙었지만 확실히 조재현, 연기는 잘하는군요!) "너는 죽어서도 지옥불에 떨어질 것이다!" 계백의 눈 속에는 활활 타오르는 원한의 불꽃이 가득한데, 의자는 그 눈길을 피하지도 않고 담담히 말합니다. "그래, 내 목숨을 거둘 자격이 있는 사람은 너 뿐이다. 베거라."

이건 상당히 뜻밖이었습니다. 의자는 앞으로 해야 할 일이 참 많습니다. 왕위에 올라 사택가문을 비롯한 귀족들의 세력을 몰아내고 생모 선화황후의 복수를 하는 것이 그가 살아 온 목표였습니다. 온갖 어려움 속에서도 은고와 더불어 차근차근 준비를 하며 지금까지 버텨 왔는데, 그 모든 것을 포기하고 여기서 죽는다면 적잖이 억울할 것입니다. 더구나 무진의 죽음에 관해서는 분명 할 말이 있었지요. 무진이 스스로 원했던 일이라고... 상황을 그렇게 만든 것은 저 나쁜 사택비였다고... 자기는 정말 원치 않았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고, 변명을 줄줄이 늘어놓을 수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제껏 비굴하고 비겁해 보였던 의자는, 이 절체절명의 순간에 더없이 초연하고 의연한 모습을 보여 주었습니다.
계백이 의자를 향해 칼을 내리치려는 순간, 막사로 들어오던 은고는 그 모습을 보고 반사적으로 계백을 향해 독침을 발사하려 하는데, 그것을 본 의자가 소스라치게 놀라며 황급히 만류합니다. "안 된다!" 자기의 죽음 앞에서는 더없이 초연하더니, 계백이 위기에 처하자 안색이 확 변하며 심하게 당황하는 모습... 그런 의자의 모습이 제게는 무척이나 멋지게 느껴졌습니다.

은고 역시 계백의 정체를 알고는 그가 살아있었음에 진심으로 기뻐하고 반가워하지만, 온통 복수심으로 가득찬 계백의 가슴에는 그 진심들을 받아들일 여유가 없습니다. 여전히 의자의 목에 칼을 겨누는 계백을 보고 은고는 간곡히 만류하며, 당신이 모르는 사연이 있었노라고, 그 사연을 모른 채 왕자님을 해친다면 그것은 무진 장군을 두 번 죽이는 일이라고 말합니다. 하지만 의자는 오히려 그런 은고를 만류합니다. "그리 애쓸 필요 없다" 그리고는 계백에게 시선을 돌리고 말합니다. "네가 살아있는 모습을 봤으니, 나는 더 이상 원이 없다."

그 때 자객의 기척을 알아차린 호위무사들이 장막 안으로 뛰어들고 한바탕 싸움이 벌어집니다. 몇 명을 때려눕힌 계백은 의자의 뒷덜미를 움켜쥐고 밖으로 뛰쳐나가는데, 이 두 사람의 동행이 참 기묘하고 웃깁니다. 계백의 입장에서는 원수를 납치하여 죽이려고 끌고 나가는 것인데, 의자는 탈출하기 쉬운 길까지 계백에게 알려 주며 적극적으로 그에게 협조하고 있으니 말입니다. 둘이 한참을 달려 한적한 곳에 이르자, 계백은 다시 의자의 목에 칼을 겨누고 묻습니다. "말해, 왜 그랬어?" 자기가 모르는 사연이 있다던 은고의 말이 마음에 걸렸던 탓입니다.

하지만 계백이 대놓고 변명할 기회를 주는데도, 의자는 아랑곳없이 이렇게 대답합니다. "내가 살려고..." 하긴 자기가 살려고 무진을 죽인 것은 사실이었지요. 의자는 구차한 변명으로 목숨을 부지할 생각이 전혀 없어 보였습니다. 차라리 계백의 손에 죽음으로써 무진에게 사죄하고, 그 오랜 세월동안 자신을 짓눌러 왔던 죄책감에서 벗어나고 싶은 듯 했습니다. "말해! 무슨 사연이 있다고 했잖아!" 계백이 다시 한 번 기회를 주었지만, 의자는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내가 한 짓이다. 계백아... 난 너한테 무엇으로도 용서받을 수 없다. 어서 베거라." 무척이나 홀가분하고 편안한 표정이었습니다.

이렇게 자신의 잘못을 깊이 뉘우치고 목숨 바쳐 사죄하려는 모습 때문에, 무진을 죽인 의자의 죄는 용서받을 수 있었습니다. 구구절절 변명을 늘어놓으며 계백에게 목숨을 구걸했다면 정말 최악이었을 테지만요. 역시 죄를 용서받기 위해서는 진심으로 뉘우치는 길 밖에 없습니다.

늦지 않게 은고가 도착했고, 그녀는 의자를 대신하여 계백에게 모든 사정을 말해 주었습니다. 계백은 그 내용을 다 듣고 나서도 억하심정이 완전히 풀리지는 않았으나, 부친이 스스로 원했던 일이라 하니 어쩔 수도 없는 일이었습니다. 의자는 "네 마음이 편해질 수만 있다면 지금이라도 나를 베거라" 했지만, 계백은 "처자식보다 더 아끼시던 왕자님을 죽인다면, 나중에 아버지한테 혼날 겁니다" 라고 대답했습니다. 왕자를 위해 처자식마저 버리고 그런 개죽음을 선택한 아버지에 대해, 은은한 원망까지 깃들어 있는 처절한 대사였습니다. 이에 의자는 더욱 미안한 생각이 들었는지 풀죽은 표정으로 "그렇게 말하지 마라..." 하는군요. (그 생생한 감정 표현이라니..!^^)

계백은 의자와 은고의 만류를 뿌리치고 가잠성으로 돌아갑니다. 생구(포로) 중의 한 명이라도 탈출하면, 남아 있는 생구들은 모두 연대책임을 지고 죽게 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고 돌아가면 다른 동료들은 살릴 수 있지만 자기 자신이 죽게 될 터인데, 정말 대단한 의리입니다. 계백의 고집을 꺾지 못하고, 오랜만에 재회한 그를 다시 사지로 들여보낸 의자는 전전긍긍하다가, 자기가 직접 승려로 분장하고 가잠성에 침투하여 그를 구하려는 계책을 세웁니다.

성공하기만 한다면 계백을 구할 뿐만 아니라, 난공불락이던 가잠성마저 함락시킬 수 있는 일석이조의 계책이었습니다. 다만 위험성이 크고 실패 확률이 높다는 게 문제였지요. 은고가 기꺼이 여승으로 분장하고 의자를 따라 나섰습니다. 의자는 이제껏 은고의 머리에만 의존해 왔는데, 계백이 위험에 처하니 비로소 자기 머리를 쓰기 시작했군요. 이 또한 참으로 멋진 변화입니다.

모진 고문을 받고 성문 앞에 매달려 있는 계백을 보니, 의자와 은고의 가슴이 무너져 내립니다. 그의 앞으로 은밀히 다가가 자기들이 구하러 왔음을 알리고, 어떻게든 정신을 잃지 말고 버텨야 한다고 계백에게 당부하는군요. 바짝 마른 계백의 입술에 젖은 솜을 물려 주며 "꼭 살아야 합니다!" 하고 간절히 다짐하는 은고의 모습... 그런 그녀를 바라보며, 계백의 흐릿하던 눈매에도 조금씩 빛이 되살아납니다.

의자의 캐릭터를 확 살려주는 에피소드가 하나 더 있었습니다. 계백과 함께 생활하던 동료 생구 중에는 성충(전노민)이라는 인물이 있는데 그 능력이 실로 대단했습니다. 박학다식하고 지혜로우며, 상황 파악이 빠르고 정확하며, 사람을 보는 눈도 있고 게다가 수맥까지 찾아낼 줄 아는, 일종의 제갈량 같은 캐릭터입니다. 그는 원래 백제에서 가장 낮은 관직에 해당하는 '극우'라는 벼슬을 하고 있었는데, 그가 꾸며낸 계책을 상관이 받아들이지 않아서 패전 포로가 되었던 것입니다. 이 성충이라는 인물은 훗날 계백, 흥수와 더불어 백제 말엽의 3대 충신으로 일컬어진다 합니다.

의자는 승려로 분장하고 가잠성에 침투했으나, 성충은 한 눈에 그 수상한 인물이 승려가 아님을 알아차리고 슬며시 접근합니다. 죽을 위기에 처한 동료 계백을 구하는 데 도움이 될 사람이라는 것까지 알아볼 만큼 혜안이 있습니다. 그런데 성충에게 위장한 신분을 들키고 살짝 당황하던 의자는, "해수장군이 내 말만 들었어도 이런 고생은 안했을텐데..." 라고 성충이 중얼거리는 소리를 듣고는 즉시 그의 정체를 꿰뚫어 봅니다. "혹시 네가 극우 성충이냐?" 이번에는 성충이 깜짝 놀라 묻습니다. "어찌 아느냐?" 의자가 대답합니다. "네가 누군지 만나보고 싶었다. 나는 의자다."

성충이 비록 낮은 벼슬아치였지만 그는 수차례 탁월한 계책을 상부에 제안했었고, 비록 받아들여지지는 않았으나 그것들 중 일부는 의자왕자에게까지 전달되었던 것입니다. 의자는 그 계책들을 유심히 눈여겨 보았고, 성충이라는 인물에 대해 관심을 가졌습니다. 어쩌면 신경쓰지 않고 무심히 넘겨버릴 수도 있었을 일인데, 그 훌륭한 재간을 알아보고 아무런 편견 없이 말단 관리의 이름까지 머릿속에 담아 두고 있는 모습은 과연 제왕다운 자세였습니다. 의자왕, 갑자기 이렇게 멋있어져도 되는 건가요? ㅎㅎ

이리하여 의자는 성충의 도움을 받아, 계백 구출작전과 가잠성 함락 작전에 본격적으로 돌입합니다. 중간에 독개(윤다훈) 일행에게 정체를 들켜 위기에 처하지만, 어쨌든 결과적으로는 성공이었습니다. 왕자가 인질로 잡혀 있음에도 아랑곳없이 백제군의 공격은 시작되고, 분노한 가잠성주는 의자를 죽이라고 명령하는데, 평소 계백이 의자에게 깊은 원한을 품고 있었음을 아는 김유신(박성웅)은 그의 손에 칼을 쥐어 주며 직접 의자를 처단하라고 합니다. 계백의 재능을 아깝게 여긴 김유신은 그를 죽이기보다 어떻게든 설득해서 자기 부하로 만들려는 욕심을 아직도 버리지 못하고 있었거든요. 원수 갚을 기회를 주면 감복해서라도 자기를 따르지 않을까 기대했던 것이지요.

하지만 계백은 오히려 그 칼로 의자의 포박을 끊어내고, 옆에 있던 무사의 장검을 탈취하여 극렬한 저항을 시작합니다. 아버지가 목숨까지 바쳐 가며 지키려 했던 왕자인데, 그 사실을 알게 된 이상 여기서 의자가 죽임을 당하도록 내버려 둘 수는 없었지요. 더구나 왕자는 위험을 무릅쓰고 여기까지 자신을 구하러 온 것이 아니겠습니까? 오해와 미움으로 점철되었던 의자와 계백의 관계가 이제는 신뢰와 우정으로, 그리고 충성과 의리로 차츰 변해가고 있음이 보입니다.

한편 성충의 지도하에 생구들이 반란을 일으키고, 온천수를 차단했던 말뚝을 뽑아내니 성 안에는 온통 물줄기가 솟구칩니다. 어수선한 와중에 성 안의 생구들은 바깥쪽의 백제군과 호응하여 성문을 열어젖히니, 백제군의 정예부대가 물밀듯이 쳐들어오면서 삽시간에 전세는 백제 쪽으로 기울었습니다. 김유신은 분한 표정으로 계백을 바라보며 "반드시 다시 보게 될 것이다, 반드시!" 이렇게 다짐하고는 퇴각 명령을 내리고 물러갑니다.

드디어 가잠성을 정복한 백제군은 승리자가 되어 입성하는데, 아무도 기쁨의 환호성을 지르지 않습니다. 숨막힐 듯한 정적 속에서 여기저기 널려 있는 시체들을 둘러보던 사택비(오연수)는 비로소 입을 열어 나직히 묻습니다. "의자는? 못 찾았느냐?" 그 질문을 받은 장수가 채 대답하기도 전에, 어디선가 쉰 목소리가 들려옵니다. "의자... 여기 있습니다." 그러더니 바로 앞의 시체더미 속에서 뭔가 꿈틀거리며 일어나는데, 바로 피투성이 의자왕자입니다. 그 옆에서 몸을 일으키는 또 한 사람은 과연 계백이군요!

노심초사하던 은고의 얼굴에는 가득한 기쁨의 빛이 떠오르지만, 반드시 의자가 죽었을 거라고 믿었던 사택비와 교기(진태현)의 표정은 당혹스럽기 이를 데 없습니다. 이제 의자는 가잠성 함락의 최고 영웅이 되었으며, 무왕의 후계자로서 급부상하게 될 테니까요. 교기는 원래 쥐도새도 모르게 의자를 죽이려고 이 험한 곳까지 데려왔던 것인데, 오히려 사상 최악의 사태를 초래하고 말았습니다.

'계백' 10회는 오랜만에 참으로 재미있었습니다. 특히 매력을 되찾은 의자왕의 캐릭터가 얼마나 반갑던지요! 은인의 아들 계백에게는 왕자의 위엄조차 챙기지 않고 그지없이 겸손한 태도로 대하지만, 적군 앞에서는 포로가 된 입장에서도 언제나 당당함을 잃지 않던 의자의 모습이 참으로 왕자답고 멋있었습니다. 이제 계백은 의자와 함께 백제로 돌아갈 테니, 다음 주부터가 본격적인 드라마의 시작이라고 보아도 좋지 않을까 싶군요. 또 어떤 흥미진진한 일들이 벌어질지 기대가 큽니다.


반응형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