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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백' 의자왕자의 슬픔, 노영학의 미친 연기력 본문

종영 드라마 분류/계백

'계백' 의자왕자의 슬픔, 노영학의 미친 연기력

빛무리~ 2011. 8. 9. 1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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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화황후(신은정)의 죽음을 목격하고 구사일생 살아남아 궁으로 귀환한 뒤, 의자 왕자(노영학)는 허랑방탕한 바보 흉내를 내며 아버지인 무왕(최종환)에게조차 십수년간이나 속마음을 감추고 살아왔습니다. 그러던 그가 드디어 5회에서 본색을 드러냈군요. 극적으로 재회한 무진 장군(차인표)을 살리기 위해서였습니다.

"죽은 사람은 죽은 사람일 뿐인데, 왜 살아있는 제가 그 참담한 기억을 안고 살아야 한단 말입니까?" 의자는 생모 선화황후의 제를 모시지 않겠다고, 위패는 그저 나무쪼가리일 뿐 사람이 아니라고, 자기가 효와 예를 다해 모실 분은 오직 사택황후(오연수) 뿐이라고 외치는데, 이복동생 교기(서영주)는 차갑게 비웃으며 "그 말이 진심이라면 저 나무쪼가리를 불태워 버리시라"고 말합니다.

주변의 만류를 뿌리치고, 의자는 기어이 선화의 위패를 불구덩이에 던져넣고 마는군요. 그 모습을 본 사택비는 의자의 독하고 깊은 심기에 두려움을 느끼며 자기 아들 교기에게 말합니다. "만약 네가 의자였다면, 오래 전에 목숨을 잃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미 사택비는 위제단에게 의자의 암살을 명해놓은 상태였지요. 그 명을 최종적으로 전달받은 살수는 무진이었습니다. 지시받은 대로 호랑이(중요 인물)의 목을 취해야만 위제단에 잠입할 수 있다는 생각에 무진은 궁으로 돌아가던 의자의 말 앞을 가로막고 그를 살해하려 합니다. 헤어질 때 7~8세의 꼬맹이였던 왕자는 이미 성년이 되었으니 무진으로서 알아보지 못하는 것도 당연했지만, 생각하면 참 어처구니 없는 일이네요. 그가 지금껏 구차한 목숨을 부지해 온 이유가 바로 의자왕자를 보필하여 사택가문에게 원수를 갚으려는 목표 때문이었는데, 하마터면 그 왕자의 목숨을 자기가 취할 뻔한 셈이니 말입니다.

하지만 마침 무진의 아들 계백(이현우)이 그 장면을 목격하고, 아버지의 살인을 막기 위해 달려들었습니다. 아들을 옆으로 밀어내고 의자에게 칼을 휘두르려던 무진은 갑자기 아들이 "왕자님!"이라 부르는 소리를 듣고 멈칫합니다. 얼굴을 드러내며 "저를 알아보시겠습니까?" 하고 묻는데, 어리둥절하던 의자는 곧바로 무진 장군의 얼굴을 알아보는군요. 그 순간 왕자의 얼굴에 떠오르던 진심어린 반가운 표정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하지만 의자는 무진에게조차 본색을 숨기려 합니다. 친아비조차 믿지 못하고 살아온 세월의 무게가 쉽사리 그로 하여금 속마음을 드러낼 수 없게 했던 것이지요. 힘이 있어야 복수도 하는 것인데 어찌 계란으로 바위를 치겠느냐며, 내가 무사히 살아남아 건강하게 천수를 다하는 것이 죽은 어머니께 대한 효도라 생각한다고, 의자는 헤벌쭉 웃으며 무진에게 말했습니다. 그러나 모후의 처참한 죽음을 눈으로 보았으면서도 스스로 모든 기개를 버리고, 제 목숨 하나 부지하기에 급급한 왕자의 모습은 무진에게 크나큰 실망을 안겨 주었습니다.

"부여의자, 잘 듣거라. 너의 말이 진심이라면 너는 내가 모시던 왕자가 아니다. 그리고 나 또한, 이 삶이 허망한 꿈이었을 뿐이다." 그리고 무진은 서슬 퍼런 칼을 뽑아 자기 자신의 목을 겨누며 말합니다. "마지막으로 묻겠다. 나에게 한 말이 진심이더냐?" 왕자의 눈에 서서히 눈물이 고이기 시작합니다. 그 누구도 믿을 수 없었던 지난 십여년의 세월... 아침저녁으로 자기를 죽이려 기회만 엿보는 세력들 틈바구니에서 그저 외롭게 홀로 버텨야만 했던 나날들... 그런데 이제 힘없는 자기를 위해 목숨까지 버리려는 충신과 재회하니, 단단히 쌓았던 성벽도 삽시간에 허물어지고 맙니다. 

"벌써 오래 전의 일입니다. 그 세월이면 어머니의 얼굴마저도 희미할 겁니다. 그런데 저는 더더욱 뚜렷해지기만 합니다, 어머니의 얼굴이... 그 날 밤도 오늘처럼 달이 밝았지요. 그리고 제가 장군께 말씀드린 것을 단 한 번도 잊은 적이 없습니다. 나는 도망가지 않겠습니다. 지금 도망치면 다시는 돌아가지 못합니다. 그리고 꼭 돌아가야 할 이유들이 있습니다. 첫째는 가엾은 어머니를 제 손으로 거두는 것입니다. 둘째는 돌아가 기필코 황제가 될 것입니다. 셋째는 황제가 되어 저들을 모두 내 손으로 도륙할 것입니다!"

비분강개한 고백을 들은 무진은 스르르 칼을 내리고, 의자는 비로소 얼굴 한가득 미소를 띠며 말합니다. "이렇게 살아 계셔서, 고맙습니다!" 드디어 믿고 의지할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을 만났으니, 그 기쁨과 반가움을 어찌 형언할 수 있을까요? 이렇듯 성장한 어린 주군을 감개무량한 시선으로 바라보는 무진의 표정에도 오만가지 상념이 스치는데, 의자는 문득 한켠에 서 있는 계백을 보며 "아들입니까... 그 때 뱃속에 있던?" 하며 무진에게 묻습니다. 함께 도망치던 무진의 아내가 임신중이었던 것조차 왕자는 생생히 기억하고 있던 것입니다.

계백은 아버지의 부름에 따라 가까이 다가와 예를 갖추었지만 그저 시큰둥할 뿐입니다. 왕자를 보는 이 소년의 눈빛은 별로 호의적이지 않군요. 오래 전의 사연과 내막을 모르는 그에게 있어 의자는 아버지의 애틋한 주군이 아니라, 자기 때문에 목숨이 경각에 달린 사람을 모른척 했던 몰염치한 작자일 뿐이었습니다. 의자는 진심으로 미안해하며 "내가 하마터면 아우를 죽일 뻔 했구나, 용서해 다오" 라고 사과하지만, 계백은 "정말 잘못을 알긴 아십니까?" 하며 쏘아붙입니다. 

그 때 왕자 살해 계획이 무사히 이루어졌는지를 감시하러 온 위제단의 졸개들이 주변을 급습하는데, 무진의 하얀 칼날이 몇 번 번뜩이자 모조리 죽어 넘어집니다. 무진은 그들 중 한 명의 얼굴을 못 알아보게 망가뜨린 후, 의자가 두르고 있던 왕자의 머리띠로 위장합니다. 그것을 들고 위제단에 잠입하려는 것입니다. 천신만고 끝에 어렵게 만난 장군을 다시 위험한 사지로 보낼 수는 없다면서 의자는 간곡히 만류하지만, 무진은 오랫동안 별러 오던 기회가 왔으니 놓칠 수 없다면서 선화황후께 드린 약속을 지키겠다고 말합니다.

나약한 술주정뱅이로만 알았던 아버지의 무서운 실체를 보고 계백은 경악하지만, 그럼에도 "아버지가 나쁜 사람처럼 보이느냐?" 하는 무진의 질문에는 세차게 고개를 가로젓습니다. "믿어줘서 고맙구나. 때가 되면 모든 것을 이야기해 주마... 왕자님을 집으로 모시고 가서 아침까지만 기다리거라."

그렇게 이별한 부자(父子)는 아마도 다시 만나지 못할 것입니다. "몸에 지니고 있거라. 너를 지켜줄 것이다" 하면서 아버지가 쥐어준 마지막 정표(情表)만이 아들의 손에 남아 두고두고 그리움을 더하겠지요. 젊은 어머니와 어린아이의 모습이 새겨진 그 조각상은 아직 계백이 명주의 뱃속에 있을 때, 태어날 아이와 아내의 평화로운 앞날을 간절히 바라는 마음으로 무진이 직접 깎아 만들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명주는 이미 세상을 떠났고, 계백의 앞날도 결코 평온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홀로 위제단에 잠입하면서 무진은 과연 자신이 살아 돌아올 수 있으리라 믿었을까요? 비록 사택비를 인질로 잡고 살생부를 빼앗았으나, 현재 그의 노력으로는 아무것도 바꿀 수 없습니다. 살생부는 사택가문의 엄청난 범죄와 비리를 담고 있는 증거자료이지만, 그것을 무왕의 손에 넘겨준다 해도 지금의 상황에서는 별다른 효과가 없을 것입니다. 사택가문을 기반으로 탄탄하게 자리잡은 백제의 권력구도를 뒤집기에는, 현재 무왕은 너무도 힘이 없기 때문입니다.

철저한 강약의 논리로 좌우되는 것이 정치와 권력의 속성이건만, 아직도 정치에 옳고 그름이 있다고 믿는 무진의 순박함을 보며 사택비는 안스러운 눈빛을 보냅니다. 무진에 대한 짝사랑을 접지 못한 사택비는 그와의 재회를 진심으로 기뻐하며 어떻게든 살려주고 싶어하거든요. 자기를 인질삼아 끌고 다니는데도 그저 둘이 함께 있다는 사실만으로 달콤한 추억에 젖어드는 그녀입니다. 하지만 시종일관 냉담한 무진은 사택비의 제안을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고, 그의 눈앞에는 이미 죽음의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습니다.

무왕이 아직 즉위하기 전, 왕자 부여장의 호위무사 무진을 보고 사택적덕의 딸 금영은 첫눈에 반하고 말았지만, 무진은 처녀 시절부터 잔인하기 이를 데 없던 금영의 성품에 진저리를 쳤을 뿐 한 번도 그녀를 마음에 담지 않았습니다. 지극히 일방적이고 집착적인 사택비의 짝사랑에 비록 공감할 수는 없었지만, 오래 전 추억 속의 장면들은 나름 애틋하게 연출되었더군요. 조금이라도 공감이 되었다면 '계백' 5회에서 가장 인상적인 장면이 되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수십년 세월에 걸친 사택금영의 짝사랑이 아무리 애달파도, 드디어 본색을 드러낸 의자왕자의 존재감에는 비할 수 없었습니다.

노영학 군은 5회에서 그야말로 미친 연기력을 보여주었습니다. 무진에게 모든 속내를 털어놓으며 "살아 계셔서 고맙습니다" 라고 말하던 애틋한 표정... 계백을 친동생처럼 바라보던 자애로운 눈빛... 어떻게든 무진 장군을 구해야 한다고 부왕에게 무릎꿇던 결연한 얼굴... 그 모든 순간에 노영학은 천오백년의 세월을 거슬러 비운의 왕자인 '부여의자'가 되어 있었습니다. 모든 내막을 알고 있는 의자는 은인의 아들 계백을 진심으로 아끼려 하지만, 아무것도 모르는 계백은 "저는 왕자님의 아우 하기 싫습니다!" 라고 싸늘하게 돌아서 버리는군요.

이대로 무진이 돌아오지 못한다면, 계백은 의자왕자가 자기 부친을 사지로 몰아넣었다 생각하겠지요. 의붓어머니 을녀(김혜선)가 죽고 집안이 풍비박산된 것도 의자 때문이라 여기겠지요. 아버지가 목숨 바쳐 지키려던 주군이건만, 아들은 오히려 그를 철천지 원수로 삼게 생겼습니다. 이 살벌한 오해가 풀릴 때까지, 그래서 계백을 수하에 거두어 들일 때까지, 의자는 또 한참이나 뼈저리게 외로운 시간을 견뎌야 할 것입니다. 재회의 기쁨을 마음껏 누리지도 못한 채 다시금 무진을 잃어버리고, 그의 아들에게 오해까지 받으며 홀로 가슴앓이할 의자의 슬픔이 벌써부터 가슴에 사무쳐 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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