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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적자' 박근형에게 비수를 꽂는 세 명의 자식들 본문

종영 드라마 분류/추적자

'추적자' 박근형에게 비수를 꽂는 세 명의 자식들

빛무리~ 2012. 7. 4. 1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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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생각에 요즘 '추적자'에서 가장 매력적인 인물은 서회장(박근형)입니다. 주인공 백홍석(손현주)의 비중이 낮아지면서 상대적으로 강동윤(김상중)의 존재감이 강해지긴 했지만, 아무리 몸부림쳐 봐야 서회장이 살아있는 동안에는 절대 그를 이길 수 없을 거라는 느낌이 소록소록 전해지는군요. 거의 표정 변화 없이 냉철하고 강인한 남자의 기상을 풍기는 강동윤의 얼굴도, 늘 여유로운 미소를 잃지 않는 서회장의 능글맞은 얼굴과 마주치면 삽시간에 그 빛을 잃고 맙니다. 게다가 연륜과 통찰력이 묻어나는 서회장의 기막힌 대사들이라니, 요즘은 박근형이 입만 뗐다 하면 저절로 명언 퍼레이드가 되고 마네요. 분명히 악역이라는 사실을 알면서도, 저는 회를 거듭할수록 서회장의 캐릭터에 푹 빠져들고 있습니다.

 

하지만 서회장에게도 부인할 수 없는 두 가지의 커다란 약점이 있으니, 첫째는 팔순에 가까운 나이입니다. '선덕여왕'의 미실(고현정)도 어린 김춘추(유승호)의 패기를 보며 자신의 시대가 길게 남지 않았음을 깨달았죠. 유한한 육체의 장벽은 인간이라면 누구나 언젠가는 맞닥뜨릴 수밖에 없는 것이니, 손에 움켜쥔 것이 많을수록 쇠잔해가는 육신이 원망스러울 것입니다. 어쩌면 서회장은 가장 욕심많은 캐릭터의 전형입니다. 한 나라에서 제일가는 부와 권력을 가졌으면서도 어떻게든 더욱 더 많은 것을 움켜쥐려고 눈을 휘번덕거리죠. 자기 손에 쥐고 갈 수 없다면 끔찍히 사랑하는 자식들의 손에라도 쥐어주고 떠나려는 것입니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 자식들은 서회장의 치명적인 두번째 약점이 되고 말았군요.

 

서영욱(전노민), 서지수(김성령), 서지원(고준희)... 이들 세 명의 자식들은 이제 모두 서회장의 심복지대환이 되었습니다. 타인에게는 냉혹하고 제 식구에게만 극진했던 서회장의 인품이 결국은 부메랑처럼 돌아와 제 살을 깎아먹는 독이 되고 만 걸까요? 세 명의 자녀는 저마다의 다른 목표와 제각각의 다른 방식으로 백홍석의 딸 백수정 사망 사건에 개입하는데, 공교롭게도 그 화살은 모두 아버지인 서회장을 겨냥하고 있으니, 세상 모든 것을 다 가졌어도 자식들의 진정한 사랑과 존경을 얻지 못한 이 노인은 참으로 불쌍한 사람입니다.

 

1. 서지수 : 사랑

 

자식들 중에서도 가장 먼저 아비의 가슴에 칼을 겨눈 것은 큰딸 서지수였습니다. 그 이유는 단 하나, 사랑 때문이었지요. 가난한 이발소집 아들 강동윤을 만나 걷잡을 수 없는 사랑에 빠진 서지수는 아비의 반대를 무릅쓰고 그와의 결혼을 강행했는데, 이것은 훗날 서회장의 가문과 한오그룹을 무너뜨리게 될지도 모르는 커다란 파문의 시작이었습니다. 강동윤이 자기를 꼭 닮은 호랑이 새끼라는 걸 첫눈에 알아본 서회장은 시종일관 그를 경계하며 긴장을 늦추지 않았으나, 갑자기 굴러 들어온 이 녀석의 능력과 당돌함은 예상했던 그 이상이었지요. 급기야 강동윤은 서회장이 가장 애틋한 심정으로 아끼는 외아들 서영욱을 특검에 넘겨 옥살이까지 하도록 만들었고, 서회장과 강동윤의 관계는 돌이킬 수 없는 악화일로를 걷게 됩니다.

 

강동윤이 호시탐탐 노리는 것은 대통령의 자리가 아니라 바로 한오그룹의 주인인 자신의 자리라는 것을 일찌감치 눈치챈 서회장은 어떻게든 강동윤의 날개를 자르려고 애썼지만, 번번이 서지수가 막아서는 바람에 실패했습니다. 나중엔 너무 커져버린 호랑이를 제거하기 위해 이를 악물고 딸과의 인연까지 끊을 결심을 했으나, 강동윤을 없애기는 커녕 딸만 잃어버리는 결과를 낳고 말았지요. 결국에는 서지수뿐만 아니라 나머지 자식들인 서영욱, 서지원과의 관계도 강동윤 때문에 악화되고 말았습니다. 강동윤을 향한 서지수의 비뚤어진 집착이 올바른 사랑의 방식은 아니었지만, 어쨌든 사랑의 힘은 위대했군요. 서지수가 사랑의 이름으로 휘두른 칼날은 누구도 감히 건드릴 수 없었던 난공불락의 서회장에게 최초로 심각한 상해를 입혔고, 아직도 아물지 않은 그 상처가 덧나고 곪게 되면 결국 서회장은 무너지고 말 것입니다.

 

2. 서영욱 : 자존심

 

시인이 되기를 소망했던 낭만청년 서영욱은 아비에게 맞설 힘도 용기도 없었기에 맥없이 꿈을 포기하고 아비의 뜻에 순종했습니다. 하지만 기업 경영은 적성에 맞지도 않고 능력도 없었으니 날마다 스트레스에 시달렸지요. 게다가 청춘을 다 바쳐 6년이나 사랑했던 한 여자는 평범한 집안의 딸이라는 이유로 서회장에게 단호히 내처지고, 서영욱은 가차없이 정략결혼의 희생양이 되고 말았습니다. 그 때는 서영욱도 1년 가량 아비의 얼굴을 보지 않음으로써 어설픈 반항을 해보았지만, 워낙 강단이 부족한 그의 심성으로는 오래 버틸 수도 없는 일이었습니다.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고작 아버지의 종이인형이 되는 것뿐, 선택의 여지가 없었던 거죠.

 

오랫동안 내색을 안 했을 뿐, 속으로는 끝없는 자괴감에 시달렸을 서영욱입니다. 그 무엇 하나 자기 뜻대로 할 수 없는 인생... 한오그룹의 후계자라고 아무리 남들이 떠받들어 봤자, 약하고 무능한 자신에 대한 자괴감은 날마다 더욱 깊어져만 갔겠지요. 이제 50을 바라보는 중년의 나이가 되었지만, 한심하게도 아직까지 그가 처한 상황은 어린 시절과 다를 바가 없으니 말입니다. 그런데 강동윤은 바로 그 부분을 건드렸습니다. "처남은 언제나 장인어른의 등 뒤에 숨었지요. 말씀해 보세요. 지금까지 자기 뜻대로 결정한 일이 뭐가 있습니까? (냉소) 하지만 언제까지 장인어른의 뒤에 숨을 수만은 없을 겁니다... 장인어른께서 내년에 팔순이시던가요?"

 

 

상대의 아킬레스건을 정확히 강타함과 동시에, 상대가 의지하는 보호막이 생각보다 튼튼한 것이 아닐 수도 있음을 암시함으로써 수치심과 불안감을 동시에 격발시키는 강동윤의 수법은 놀라웠습니다. 과연 심약하고 허술한 서영욱은 한 방에 걸려들었는데, 그가 야심차게 뽑아 겨눈 화살은 강동윤보다도 제 아비 서회장을 향한 것이었습니다. 서회장이 든든한 무기로 간직하라고 건네준 PK준의 휴대폰을, 서영욱은 자의적인 판단으로 검사 최정우(류승수)에게 넘겨주고 말았던 거죠. 더 이상 아버지의 뜻에 꼭두각시처럼 따르지만은 않겠다고, 이번 일만은 자기 뜻대로 처리하겠다는 결심으로 저지른 일이었는데, 결과적으로는 서회장은 강동윤을 상대함에 우위를 점할 수 있었던 최고의 카드를 날리게 되었습니다.

 

물론 백홍석과 그를 돕는 사람들의 입장에서 보면 서영욱의 이번 행동이 차라리 고맙고 반가울 뿐이나, 서회장의 입장에서는 이보다 더 황당한 일이 없겠지요. 자존심이란 미친 여자의 머리에 꽂힌 한 송이 꽃과도 같아서 아무 쓸모도 없는 허울일 뿐이니 그런 것에 얽매이지 말라고, 서회장은 다시 한 번 명언을 풀어놓으며 아들을 살살 달래어 휴대폰의 행방을 알아내려 했지만, 서영욱은 고집쟁이 황소처럼 상한 자존심의 썩은 연기를 내뿜으며 아비의 방을 나가버렸습니다. 이로써 서회장은 가장 아끼던 도끼에 제 발등을 찍힌 셈이니 그 타격이 만만치는 않을 것으로 보입니다.

 

3. 서지원 : 순수

 

서회장이 내년에 팔순이면 올해 79세인데, 막내딸 서지원의 나이는 28세로 설정되어 있습니다. 나이 쉰을 넘겨서 보게 된 늦둥이니, 그러잖아도 딸바보 기질이 있는 서회장이 그녀를 어떻게 키웠을지는 안 봐도 훤하군요. 손 안의 작은 새처럼 불면 날까 쥐면 꺼질까 귀히 보듬으며, 마치 손녀를 보는 할아버지처럼 흐뭇한 미소로 막내딸의 성장을 지켜보았을 것입니다. 사회부 기자가 되어 나풀나풀 뛰어다니는 모습도, 젊은이다운 정의감을 내세우며 곧이 곧대로 기사를 쓰는 모습도, 서회장의 눈에는 그저 세상 물정 모르는 철부지 어린애의 귀여운 앙탈에 불과했습니다.

 

그녀가 쓴 기사는 언론에 실리지 않도록 번번이 막았으나, 한 번도 딸을 야단친 적은 없었습니다. 서회장이 볼 때는 어린 것이 아비의 사업에 해를 끼치려 한다고 괘씸하게 생각할 수도 있었는데 말이죠. 서회장은 공사다망한 중에도 지원의 귀가가 늦어지면 걱정스런 마음에 10분마다 전화를 걸어서 안부를 확인했고, 딸이 무사히 돌아온 것을 직접 눈으로 본 다음에야 잠자리에 들었습니다. 그는 굴지의 재벌그룹 회장이면서, 딸네미가 코 묻은 월급에서 한 조각 떼내어 용돈 쓰시라고 내미는 푼돈을 매달마다 큰 즐거움으로 기다리는 아버지였습니다. 그만큼 막내딸 서지원을 향한 서회장의 애정은 참으로 극진했습니다.

 

 

그런데 이제 그 귀여운 막내딸이 정색을 하고 "아빠는 어떤 사람이냐?"고 묻습니다. 잔뜩 토라진 기색이라 조근조근 달래려 해봤지만 소용이 없습니다. "이번 달 용돈은 왜 안 주노?" 슬쩍 말을 돌려 보았지만, "미워서... 아빠가 미워서..." 라고 돌아온 대답은 뜻밖에 날카로운 비수가 되어 서회장의 가슴을 찔렀습니다. 늘 여유로운 미소를 띠고 있던 서회장의 얼굴이 갑자기 딱딱하게 굳어지며, 얼굴의 주름살 하나마다 서글픔이 가득해지는 모습을 저는 보았습니다. (그 순간 하마터면 울 뻔 했다는..ㅜㅜ 그 얼굴을 본 이상, 저는 이 드라마가 끝날 때까지 서회장을 미워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아빠의 슬픈 표정을 보고 마음이 약해진 서지원은 다정한 포옹으로 저녁 인사를 마치고 방을 나갔지만, 서회장의 굳은 얼굴은 한참 동안 풀어지지 않았습니다.

 

그럴 가능성은 없어 보이지만, 만약에라도 서회장이 막내딸 서지원의 사랑을 되찾기 위해 그녀의 환심을 사려 한다면... 설마 그럴 사람으로는 안 보이지만 그래도 혹시 지원이를 위해서, 그 아이가 원하는 대로 백홍석 사건의 진상이 명백히 세상에 밝혀지도록 도와준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이런 제 소망은 세상의 정의를 위한 것이기도 하고, 백홍석과 그를 돕는 착한 사람들을 위해서이기도 하지만, 그보다 더 큰 이유는 어떻게든 서회장을 용서해 주고 싶어서, 그의 잘못을 조금이나마 속죄하게 해주고 싶어서입니다.

 

 

도대체 왜 이렇게 푹 빠져 버렸는지... 어쩌면 냉혹한 악마같은 노인네의 캐릭터를 찬양한다고 또 저를 욕할 사람이 있을지 모르겠네요. 저렇게 자애로운 모습은 모두 치밀히 계산된 위장술에 불과한데, 멍청하게 속아넘어간다고 흉볼 사람도 있을지 모르겠네요. (지난 번 리뷰에 그런 댓글들이 달렸었다는..;;) 하지만 어쩔 수 없습니다. 누가 뭐래도 저는 제 느낌대로, 제 마음이 끌리는대로 사랑하며 지켜볼 뿐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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