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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적자' 손현주, 사람 미치게 하는 바보스런 선량함 본문

종영 드라마 분류/추적자

'추적자' 손현주, 사람 미치게 하는 바보스런 선량함

빛무리~ 2012. 6. 26. 0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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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적자 THE CHASER' 제9회는 정말 슬펐습니다. 이 드라마는 1회부터 지금까지 한 회도 빼놓지 않고 슬픔으로 가슴을 후벼팠지만, 9회는 특히 더 슬펐습니다. 차라리 백홍석(손현주)이 조금이라도 얍삽한 인간이었다면 보는 사람이 이렇게까지 속상하진 않을텐데, 어떤 상황에서든 정면돌파를 고집할 뿐 요령이라고는 전혀 피울 줄 모르는 그 우직함이 저는 너무도 슬펐습니다. 우직하기만 하면 그래도 좀 나으련만, 지나치게 선량하기까지 한 백홍석이 망가져 가는 모습을 보는 것은 못 견디게 괴롭더군요. 주위를 살펴보면 백홍석 같은 사람들이 분명히 있거든요. 가진 것도 없으면서 퍼주기 좋아하고 너무 착해서 만날 손해만 보면서도, 남들이 안타까워하면 자기는 그렇게 사는 것이 좋다며 씨익 웃는 사람들... 백홍석은 바로 어제 동네 골목길에서 마주쳤던 것만 같은 평범한 이웃이고, 그 평범한 사람들 중에서도 제일 착한 사람이었습니다.

 

사람의 목숨을 두고 할 말은 아니지만, 백홍석이 강동윤(김상중)을 권총으로 쏘아 죽이고 자신도 죽는다면 손해보는 일은 아닐 거라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벌써 모든 것을 다 잃고 세상에 미련을 두지 않게 된 백홍석과 달리, 강동윤은 이 세상에 미련이 아주 많은 인물이니까요. 이루고 싶은 것, 갖고 싶은 것이 세상 가득 널려 있는데, 한 고비만 넘기면 모두 손에 넣게 될 그것들을 눈앞에 두고 어이없이 죽어야 한다면, 강동윤으로서는 참으로 억울하겠지요. 물론 그렇게 되면 드라마가 더 이상 진행될 수 없기 때문에 그럴 리가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저는 차라리 그렇게 결론이 났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차피 이길 수도 없는 싸움이고 근원적으로 해결할 수도 없는 문제인데, 차라리 이쯤에서 백홍석의 모든 고통이 끝났으면 하는 마음이었어요.

 

 

아내와 딸의 유골이 담긴 납골당을 바라보며 "수정아, 아빠도 갈게... 아빠도 갈게.." 하고 눈물로 다짐한 후, 실탄이 장전된 권총을 움켜쥐고 걸어나가는 모습이 하도 결연해 보여서, 그 순간에는 잠시나마 기대를 걸기도 했습니다. 살짝 빗나가서 강동윤의 목숨까지 뺏지는 못한다 해도, 어쨌든 원수를 향해 시원스레 한 방 정도는 갈겨줄 거라는 기대 말입니다. 하지만 상대가 아무리 극악무도하고 파렴치한 악인이라 해도, 차마 사람을 향해 총을 쏘기에는 백홍석은 너무나 선량한 사람이었습니다. 법정에서 PK준(이용우)을 쏘아죽이게 된 것도 서로 붙잡고 드잡이질을 하다가 우발적으로 발사된 것일 뿐, 일부러 겨냥하고 쏜 것은 아니었죠. 실내에서 벽시계를 쏘아 깨뜨렸을 때는 한껏 공포 분위기를 조성하는 파급효과라도 있었지만, 넓은 야외에서 하늘을 향해 쏘아올린 한 발의 공포탄은 아무런 효과없이 그저 처량하고 허무할 뿐이었습니다.

 

기껏 그 악마의 눈앞에 총구를 들이밀고 한다는 소리가 "단 한 번이라도, 단 한 번만이라도 진실을 말해!" 라니, 이 바보를 어쩌면 좋을까요? 아무리 진심이 가득 담겨있다 한들, 꾸짖어 선도할 수 있는 비행청소년도 아니고, 천하의 강동윤이 그런 도덕교과서 같은 말을 귀담아 들을 인간입니까? 그럴 거면 차라리 안전하게 숨어있기나 할 일이지, 뭣하러 그 장소에 나타나 위험을 자초한단 말입니까? 아마도 총을 장전하고 나갈 때는 정말 쏠 생각이었겠지요. 하지만 막상 사람을 겨누고 방아쇠를 당기려니 평생토록 착하게만 살아온 그의 팔이 말을 듣지 않았겠지요.

 

 

여우처럼 눈치빠른 강동윤은 백홍석의 눈빛을 보고 그가 절대 자기를 쏘지 못하리라는 것을 확신했습니다. 그래서 과감히 경호원들의 무기를 내려놓게 하고, 홀로 백홍석의 권총과 마주하는 의연함을 과시할 수 있었던 것이죠. 강동윤의 입이 열리고 기름칠을 한 듯 매끄러운 혀가 움직이는 순간, 말주변 없고 우직한 백홍석은 속절없이 그 세치 혀에 놀아나기 시작했습니다. "쏘세요, 백홍석씨! 나를 죽일 수는 있어도 진실을 숨길 수는 없을 겁니다!" 눈썹 하나 까딱하지 않고 진실의 주객을 전도시킨 강동윤은, 삽시간에 백홍석을 더러운 정치꾼들의 하수인으로 만들어 버렸네요. 이 순진한 아빠는 오직 딸의 죽음에 관한 진실을 밝히고 싶었을 뿐인데 말입니다. 억울해서, 너무 기막히게 억울해서 제가 다 미쳐버릴 지경이었어요.

 

백홍석 말고도 9회에서는 마음에 깊이 상처받은 인물이 한 명 더 발생했습니다. 바로 한오그룹 서회장(박근형)의 막내딸 서지원(고준희)입니다. 여태까지 아버지와 형부의 무서운 실체를 모른 채, 그저 사람좋은 노인네와 성실한 정치인으로만 알고 있었다는 사실은 그녀의 뿌리깊은 순수함을 증명하고 있었죠. 그러나 강동윤은 노골적으로 처제의 순수함을 비웃었습니다. "이건 어른들의 싸움이야. 처제는 민성이랑 놀아 줘!" 올곧은 신념과 용기를 고작 열 두 살짜리 어린아이의 치기와 맞먹는 것으로 폄하한 셈이죠. 짐작도 못했던 가족들의 잔혹한 실체에 눈물 흘리는 서지원의 모습은 가슴 아팠지만, 그녀는 온실 속 화초답지 않게 퍽이나 강단있는 아가씨입니다. 처제를 과소평가한 것은 뼈아픈 실수였다고, 언젠가 강동윤은 후회할 날이 있을 거예요.

 

 

그런데 10회 예고편을 보니, 서지원보다 먼저 강동윤에게 직격탄을 날릴 사람이 등장했군요. 서지수(김성령)를 대신하여 검찰에 자수했다가, 완전히 잘린 꼬리 신세가 될 뻔했던 신혜라(장신영)가 바로 그 인물입니다. 사랑이 뜨거울수록 식어버린 후에는 더욱 차가워지는 법이죠. 횡령 혐의까지 덮어 씌우고 몇 년 동안이나 옥살이를 하라는 강동윤의 말은, 상황이 여의치 않으니 그녀를 버리겠다는 뜻을 명백히 전한 것이었습니다. 신혜라는 그제서야 깨달았겠죠. 그를 사랑하는 여자로서, 그의 일을 돕는 보좌관으로서, 자기는 강동윤을 위해 아낌없이 모든 것을 바쳤지만, 강동윤에게 자기는 언제라도 잘라버릴 수 있는 꼬리에 지나지 않았다는 것을요. 자기를 취조하던 검사 최정우(류승수)의 말이 사실로 드러나는 순간, 신혜라의 마음속에서는 강동윤을 향한 배신감이 폭발했습니다.

 

겉보기에는 조용했지만 그것은 화산 폭발처럼 세차고 위력적인 변화였습니다. 신혜라는 강동윤과 서지수에 대해 너무나 많은 것을 알고 있을 뿐 아니라, 문제의 동영상까지 확보하고 있으니까요. 오죽하면 아버지의 원수로 여기며 자나깨나 복수를 꿈꾸던 서회장의 편에 가서 붙었을까요? 그녀의 놀라운 선택은 마음의 깊은 상처를 느끼게 합니다. 처절히 버림받은 후, 신혜라의 가장 큰 원수는 서회장이 아니라 강동윤으로 바뀌어 버린 것입니다. 단숨에 백수정 사건의 진실을 밝히고 강동윤의 숨통을 끊어놓을 무기가 그녀의 손아귀에 있으니, 본인이 인식조차 못하는 사이에 강동윤의 운명은 풍전등화의 신세가 되었군요. 강동윤의 몰락을 지켜보는 것은 좋은데, 너무 착하고 순진해서 바보같은 백홍석을 생각하면 가슴이 쓰립니다. 이제 그에겐 남은 희망조차 없는데, 무엇을 바라고 하루를 또 살아야 하는 걸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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