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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시탈' 콘노 고지의 죽음이 더욱 쓰라린 이유 본문

종영 드라마 분류/각시탈

'각시탈' 콘노 고지의 죽음이 더욱 쓰라린 이유

빛무리~ 2012. 8. 9. 08: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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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사리(전노민)의 공개처형과 관련되어 수많은 사람이 죽었습니다. 정작 담사리 본인은 각시탈 이강토(주원)을 비롯해 수많은 동지들의 비호를 받으며 무사히 위험에서 탈출할 수 있었지만, 가짜 각시탈로 분장했던 독립군 장동지는 몸에 폭약을 묶은 채 장렬히 산화했고, 기무라 슌지(박기웅)의 총에 맞아 체포되었던 적파(반민정) 역시 고문 끝에 혀를 깨물고 자결하였습니다. 서커스단의 여장부였던 오동년(이경실)은 현장에서 슌지의 총에 치명상을 입고 사망했지요.

 

 

극에서 비중있게 다뤄지지는 않았지만, 그들 외에도 수많은 사람이 죽었습니다. 조선인은 물론이고 일본인도 예외는 아니었습니다. 각시탈이 사용하는 무기(쇠퉁소, 깃대 등)는 웬만해서 사람을 죽이지 않지만, 장동지의 다이너마이트 폭발 당시에는 근처에 있던 일본 순사들 중에도 치명상을 입은 자가 적지 않았을 테니까요. 하지만 국내외로 전쟁통에 휩싸여 있던 그 시절, 사람 목숨도 파리 목숨보다 나을 게 없던 그 시절, 국적 불문하고 이름없이 죽어간 자들을 어찌 헤아릴 수나 있었을까요? 그 수많은 죽음을 마치 별 일 아닌 것처럼 대수롭지 않게 넘겨버린 드라마의 설정은 오히려 현실적으로 보이기까지 했습니다.

 

오동년의 죽음에는 서커스단의 동료들이 진심어린 눈물을 흘려 주었고, 장동지와 적파의 죽음은 담사리를 비롯한 독립군 동지들이 뜨겁게 애도해 주었습니다. 특히 여자의 몸으로 인두질을 비롯한 온갖 고문을 받는 동안 단 한 번도 서릿발같은 기개를 꺾지 않고 도리어 상대를 조롱하다가, 끝내 우렁찬 목소리로 자기의 신념을 선언하며 죽어갔던 적파의 최후는 마치 연극의 한 장면처럼 오버스러웠지요. (너무 극적으로 꾸민 듯해서 약간은 거부감이 들었을 지경..;;) 그런데 각시탈 19회에서 제 마음을 가장 아프게 한 죽음은 따로 있었습니다.

 

 

총독부 경무국장 콘노 고지(김응수)는 이제껏 드라마의 진행 속에서 결코 작지 않은 비중을 담당해 왔는데, 막상 그의 죽음은 어처구니 없게도 하나의 설정으로만 취급되고 말았군요. 일본인이라는 이유 때문인지, 최소한 극 중에서는 아무도 그의 죽음을 진심으로 애도하지 않았고, 뜨거운 눈물 한 방울 흘려주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그 동안 여러 차례 콘노에 의해 기용되고 보호받았던 이강토는 물론 그의 죽음을 안타까워 했지만, 그것도 인간적인 슬픔이라고 하기는 어려웠지요. 고위층 간부 중 유일하게 힘이 되어주던 콘노가 죽었으니, 앞으로는 그의 도움을 받을 수 없어 경찰서 내에서의 처신이 더욱 어려워질 것을 염려하는 마음이 훨씬 컸을 것입니다. 사토 히로시와 각시탈이라는 두 개의 이름으로 아슬아슬한 이중생활을 하고 있는 그로서는 당연한 일이고요.

 

하지만 조선인이고 일본인이고를 떠나서, 제 마음 속에는 콘노 고지의 죽음이 가장 아프게 다가왔습니다. '각시탈'은 엄연한 시대극으로서 그 당시의 아픔을 그리고 있기에, 적파를 비롯한 독립군들의 죽음은 모두 그 시대 배경 속에서 이해되는 것이지요. 하지만 콘노 고지의 죽음은 시대와 상관없는 것이었습니다. 수천년 전의 옛날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인류의 삶 속에 그런 죽음은 꾸준히 발생해 왔고, 지금 이 순간에도 마찬가지입니다. 콘노 고지처럼 객관적이고 합리적이며 자기 소신에 따라 올곧게 처신하는 사람은 발 붙이고 설 자리가 없는 세상이기 때문이죠. 

 

 

 

어쩌면 콘노와 같은 사람이 경무국장이라는 높은 자리에 앉을 수 있었던 게 오히려 신기한 일입니다. 이렇다 할 뒷배경도 없이 홀홀단신 자기의 능력만으로 그 자리까지 올랐을 것을 생각해 보면 정말 대단한 인물이네요. 하지만 언제나 원칙을 준수하고, 권력을 두려워하지 않으며, 태생이나 핏줄 따위로 사람을 차별하지 않는 콘노 고지의 대쪽같은 성품으로는 어차피 그 자리를 지킬 수 없는 것이 현실이었습니다. (지금도 그게 현실이죠) 총독을 비롯한 고위층 인사들에게도 콘노는 언제나 눈엣가시였고, 키쇼카이 집단이 가장 껄끄러워하며 제거대상 1순위로 손꼽는 인물이기도 했으니까요.

 

따지고 보면 그에게는 아무 잘못도 없건만, 슬프게도 너무 거대한 적들을 많이 갖게 되었습니다. 바보가 아닌 이상, 콘노도 분명히 인식하고 있었겠지요. 그렇게 처신하면 자기의 안위와 출세에는 결코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말입니다. 하지만 그는 언제나 부패한 권력자들을 대놓고 비웃었습니다. 그토록 용감하고 의연한 모습은 아무리 일본인이라도 진정 존경스럽고 감탄스러운 것이었어요. 하지만 독야청청하던 콘노 고지는 결국 키쇼카이의 더러운 칼날 아래 처참히 피를 뿌리며 쓰러지고 말았습니다. 그렇죠. 위험은 항상 그의 주변을 맴돌고 있었는데, 어쩌면 생각보다 오래 버틴 건지도 모르겠네요.

 

 

키쇼카이의 두목인 우에노 회장(전국환)을 보면, 최근 종영한 드라마 '추적자'의 서회장(박근형)이 살짝 떠오르곤 합니다. 한밤중에 전화 한 통으로 국무총리를 움직이던 거대한 힘... 그 힘의 원천도 역시 '돈'이었죠. 채홍주(한채아)가 자신의 양부인 그를 총독에게 소개할 때 "아스카 호텔을 운영하고 계신 우에노 회장님이십니다!" 라고 말하는 것을 들으니, 이미 그 당시부터 세상 최고의 권력은 정치가 아니라 경제를 장악한 쪽으로 넘어갔음을 실감할 수 있었습니다. 총독 역시 그 동안 통치자금 명목으로 적잖은 돈을 받아먹은 터라, 아무리 맘에 들지 않아도 우에노 회장의 압력을 순순히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지요.

 

마치 손가락 하나를 접듯, 콘노 고지를 간단히 제거해 버린 우에노는 그 빈 자리에 키쇼카이의 심복인 기무라 타로(천호진)를 앉혔고, 원래 경찰서장이었던 타로가 콘노에 의해 경질당한 후 공석으로 남아 있던 서장 자리에는 '무라야마 요시오'(김명수) 라는 새로운 인물을 불러다 앉혔습니다. 무라야마 오시오의 이름을 듣자마자 '천하의 골통 군인'이라며 치를 떠는 총독의 모습을 보니 왠지 예사롭지가 않더군요. 아니나 다를까, 무라야마는 일본 군국주의 정신을 대표하는 인물로서 그 어떤 합리적 사고도 통하지 않는 뼛속까지 골통이었습니다. 여담이지만, 김명수씨는 제가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배우인데 요즘 너무 찌질한 악역으로 많이 나오시는 듯..;; '닥터 진'에서는 김경탁(김재중)의 한심한 이복형 '대균'으로 등장하는데, 여기서는 골통 군인이네요.  

 

 

무라야마는 경찰서장으로 부임하자마자, 단지 조센징이라는 이유로 이강토를 단칼에 해임해 버렸습니다. 그냥 맘에 안들면 자르고 죽이는 거지, 무슨 합리와 논리 따위는 필요치 않은 인간이었던 거죠. 콘노 고지처럼 올곧고 합리적인 인물은 여지없이 제거되고, 그 자리엔 권력에 빌붙는 골통이나 자리잡는 세상... 아주 오래 전부터 변함없이 그런 식으로 유지되어 온 세상... 결코 아름답다고만은 할 수 없는 인간 세상이 저는 슬픕니다. 조선인 독립군들의 죽음은 특수한 시대 배경 속에서 이해되지만, 콘노 고지의 죽음은 너무나 현실적으로 느껴지기에 저는 더욱 쓰라렸습니다.

 

하지만 당시의 상황을 생각해 보면, 조선으로서는 잘 된 일인지도 모르겠군요. 모든 일본인이 콘노와 같은 자세로 조선인을 대했다고 가정해 볼 때 (물론 있을 수 없는 일이지만) 어쩌면 조선은 광복을 맞이할 수 없었을지도 모르니까요. 일본 통치권자들이 그토록 공정하고 합리적이고 진실하게 백성을 다스렸다면, 아무리 조선인의 고집과 자존심이 강하다 해도 꺾이지 않을 수 있었을까요? 시간이 지날수록 일본에 감탄하며 동화되어 버리지 않았을까요? 그랬다면 우리나라의 반만년 역사는 거기서 끝장났을지도 모르는데..;; 다행히도(?) 현실에는 무라야마 요시오 같은 골통들이 훨씬 많았죠. 덕분에 조선인들의 광복 의지는 갈수록 더욱 뜨겁게 불타올랐고... 이렇게 생각하면 허탈한 심정이 조금은 위로될까요? 하지만 지금 이 순간에도 세상 어딘가에서 더러운 권력에 의해 속절없이 죽어가고 있을 콘노 고지들을 생각하면 제 가슴은 여전히 쓰리고 아파 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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