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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무리의 유리벽 열기
수목드라마 대전이 시작되기 전부터 내가 선택하고 잔뜩 기대하던 작품은 '별에서 온 그대'였다. 하지만 높은 시청률과 화제성에도 불구하고 '별그대'는 나에게 큰 실망을 안겨 주었다. 강경옥 작가의 만화 '설희'와의 저작권 분쟁도 가볍게 생각할 수 없었지만, 그보다는 부실한 스토리가 훨씬 더 큰 문제였다. 메인 스토리의 갈등 구조와 에피소드가 지나치게 단조로움을 느끼며 계속 지루해하던 나는 새로 시작한 김현중 주연의 '감격시대 : 투신의 탄생'에도 살짝 눈길을 돌려 보았지만 또 실패였다. 10여년 전에는 '야인시대'를 매우 즐겨 보았던 기억이 있는데, 그와 비슷한 '감격시대'에는 왠지 집중이 안 되는 것이었다. 그래서 절대 내 취향이 아니라고 생각하며 처음부터 눈길도 안 주던 '미스코리아'를 중간쯤부터 보기..
연말연시에 생일과 결혼기념일까지 촘촘하게 몰려있다 보니 경황이 없어 자주 글을 쓰지 못하였다. 그래도 2013년의 마지막 포스팅은 해야 할 것 같아 새벽같이 노트북을 켜고 생각에 잠긴다. 무엇을 쓰면 좋을까? 가장 최근에 방송된 MBC 연기대상 이야기를 써 볼까? 하지만 그러면 도저히 좋은 말을 할 수가 없다. MBC는 총 50부작의 대장정 중 이제 겨우 18회를 마쳤을 뿐이라 2013년에 달려온 길보다 2014년에 달려가야 할 길이 훨씬 많이 남은 '기황후' 팀의 하지원에게 2013년 연기대상을 주었다. 게다가 최우수 연기상을 무려 일곱 명에게, 우수 연기상을 여섯 명에게 주고도 모자란지 황금 연기상이라는 것을 만들어서 또 6명에게 골고루 나눠 주었다. 수상자들의 기분은 어땠을지 모르나 보는 입장에서는..
'상속자들' 후속으로 방송될 '별에서 온 그대'(이하 '별그대')에 대중의 관심과 기대가 크다. 단연 화제의 중심에는 '해를 품은 달' 이후 명실상부한 최고의 대세남으로 떠오른 김수현의 이름이 있다. 최근 '도둑들'과 '베를린'의 연이은 흥행에 힘입어 스크린의 여왕으로 화려하게 복귀한 전지현의 이름도 그 곁에 있다. '넝쿨째 굴러 온 당신'의 박지은 작가와 '뿌리깊은 나무'의 장태유 감독이 뭉쳤다는 사실도 기대감을 더하는데, '별에서 온 그대'라는 제목은 또 얼마나 로맨틱하고 달콤한가? 별에서 온 사람과 사랑에 빠진다는 몽환적 스토리는 어린 시절 탐닉했던 순정만화의 낭만적 향수를 불러 일으킨다. 온통 하얀 눈으로 뒤덮인 이 추운 겨울 날, 따뜻한 코코아 한 잔을 마시는 듯한 기분으로 볼 수 있는 드라마가..
'원더풀 마마'와 '금 나와라 뚝딱'이 동시에 종영하면서, 그 후속작들도 동시에 포문을 열었다. 지난 주까지는 '금 나와라 뚝딱'이 전해주는 나름의 감칠맛에 빠져 있었지만, 새로운 출발에는 왠지 공평해야 할 것 같은 의무감(?)을 느끼면서 두 작품 모두를 시청했다. 일단 첫 느낌을 솔직하게 말해 본다면, 내 생각에는 '열애'가 단연 우세하다. 물론 이는 지극히 개인적인 판단 기준에 의한 생각이므로, 앞으로의 시청률 추세는 가늠하기 어렵다. 각설하고, 나는 지금부터 내 판단의 이유를 순차적으로 설명해 보려 한다. 나는 우선 캐릭터의 이름이나 작품의 제목이 너무 유치하게 설정되면 보기가 싫어진다. '금 나와라 뚝딱'은 그 제목 때문에 처음부터 보기가 싫었다. 차츰 재미있다는 호평이 들려오면서 호기심이 발동하..
작품의 완성도 면에서 보자면 많이 허술했음을 부인할 수 없습니다. 무엇보다 악역 조관웅(이성재)의 너무 쉬운 몰락과 최후는 실소를 금할 수 없을 만큼 허탈했다죠. 이제껏 그 놈 하나 때문에 얼마나 긴 세월 동안 수많은 사람이 모진 고통을 받아 왔는데, 막상 이순신(유동근)이 좌수영 군사들을 이끌고 백년객관으로 들이닥치자 속수무책, 저항다운 저항 한 번 못 해보고 꽁지가 빠져라 도망치기 바쁘더군요. 물 건너 일본에서 왔노라며 마치 끝판왕이라도 되는 양 온갖 폼을 다 잡던 궁본 사람들, 재령과 가케시마 노조도 별 수 없었습니다. 분노한 이순신의 한 방에 강아지처럼 겁 먹고 짐 싸서 다시 물 건너 도망쳐 버렸죠. 이렇게 쉬운 거면 왜 그토록 오랫동안 상처입고 피 흘리면서 그들의 온갖 악행을 견디어 왔던 건지...
인간의 딸을 사랑하여 인간이 되고자 했던 신수(神獸) 구월령(최진혁)의 간절한 소망은 '구가의 서' 제2회에서 꺾이고 말았습니다. 전설의 여주인공으로는 너무도 현실적이었던 윤서화(이연희)의 사랑은 구월령의 정체를 알게 되자마자 무너져 내렸고, 그녀의 배신은 절망의 또 다른 이름이었죠. 만일 윤서화의 뱃속에 잉태된 생명이 없었다면, 구월령이 담평준(조성하)의 칼에 찔리는 그 순간 모든 희망은 사라져 버렸을 것입니다. 구월령은 '구가의 서'를 얻어 인간이 되기 위해 꼬박 90일 동안이나 무사히 금기를 지켜 왔지만, 경솔하게도 혼자 나물을 캐러 나갔던 윤서화는 관군에게 붙잡혀 버렸고, 그녀를 구하기 위해서는 금기를 깨지 않을 수 없었죠. 꿈을 이룰 수 있는 100일을 불과 열흘 앞둔 시점이었지만, 처참히 끌려..
'구가의 서'(九家의 書) 제1회에서 주인공 최강치(이승기)는 아직 태어나지도 않았지만, 그의 비극적 운명은 이미 시작되었습니다. 최강치는 아직 이 세상에 첫 숨결을 내뱉기도 전이건만, 아비 구월령(최진혁)의 마음속에 어미 윤서화(이연희)에 대한 사랑이 싹트는 순간, 이미 그의 모진 운명은 잉태되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어쩌면 이는 태초부터 미리 계획된 일이었는지 모릅니다. 가장 뜨거운 용기와 긍정의 힘으로 절대 금기를 넘어 사랑을 이루는 최강치의 모습을 통해, 신은 이 땅의 나약한 인간들을 깨우치려 했던 것일지도 모른다는 이야기지요. 이 세상의 어떤 금기(禁忌)도 장벽도 사랑보다 강한 것은 없음을, 신분의 고하도 남녀의 차별도 심지어 인간과 짐승의 구별조차도 사랑보다 우선할 수는 없음을, 이 세상에 태어..
엔딩은 점점 다가오는데, 제가 생각했던 것과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진행되어가는 스토리를 보고 있자니 당혹스러웠습니다. 자존심이 아무리 소중해도 사랑보다 앞선 가치는 아니라고 생각했기에, 저는 이서영(이보영)이 한 번쯤은 자존심을 꺾어야 한다고 생각했거든요. 너무 자기 방식대로 강압적이었던 강우재(이상윤)의 사랑 방식도 올바른 건 아니었지만, 어쨌든 속임수 없고 진실했던 강우재에 비한다면 시종일관 엄청난 비밀을 숨긴 채 그를 기만하며 살아왔던 이서영이 훨씬 더 잘못한 거라는 생각만 했습니다. 게다가 이서영은 남편과의 상의도 없이 3년 동안이나 몰래 피임약을 먹으며 임신을 거부해 왔던 잘못까지 있습니다. 엎친 데 덮친 격, 속이고 또 속인 셈이니 강우재가 어떻게 분노하지 않을 수 있으며, 어떻게 그녀를 이해..
김은희 작가 특유의 방식에 따라 '유령'은 두 갈래의 사건 진행을 동시에 보여주고 있습니다. 한편에서는 최초의 사건과 관련된 난제를 계속해서 풀어나가며 드라마의 큰 줄기를 잡고, 한편에서는 자잘한 사건들을 옴니버스 형식으로 나열해서 보여주는 것이죠. 전작인 '싸인'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최초의 사건은 가수 서윤형 살해사건으로 듀스 김성재의 실화를 연상케 하는 에피소드였는데, 그 사건의 범인이었던 강서연(황선희)의 배경이 워낙 거대했기 때문에 그녀를 쉽게 체포할 수 없었지요. 그 사건이 해결되지 않은 채로 점점 복잡하게 꼬여가는 와중에 직접적 연관이 없는 다른 사건들이 발생했고, 주인공 윤지훈(박신양)과 고다경(김아중)은 그 사건들을 순차적으로 해결해 나가면서도 첫번째 사건을 놓지 않고 있었습니다. 결국 윤..
'유령'은 상당히 특이한 드라마입니다. 보통 새로 시작하는 드라마는 1회에 총력을 기울이고 2회부터는 슬슬 힘을 빼는 법이죠. 그래야 첫방송에서 시청자를 사로잡기가 수월하니까요. 최근 시작된 '추적자'와 '각시탈'도 예외는 아니었습니다. 숨막힐 듯 진행이 빠르고 역동적이던 1회에 비해, 2회는 현저히 늘어지고 약간은 지루한 느낌마저 들었지만 그래도 실망하지는 않았어요. 원래 그게 당연한 거니까요. 그런데 '유령' 만큼은 예외였습니다. 1회는 첫방송치고 임팩트가 부족하다 싶을 만큼 평이하고 잔잔하더니만, 오히려 2회가 상상초월 대박이군요. 저는 편안히 누워서 보다가 중반 이후부터는 벌떡 일어나 가슴을 졸이며 손에 땀을 쥐고 시청했습니다. 드라마든 영화든, 이렇게까지 완벽 몰입해 본 것이 얼마만인지 모르겠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