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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가의 서' 이승기의 비극적 운명, 이미 시작되다 본문

종영 드라마 분류/구가의 서

'구가의 서' 이승기의 비극적 운명, 이미 시작되다

빛무리~ 2013. 4. 9. 06: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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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가의 서'(九家의 書) 제1회에서 주인공 최강치(이승기)는 아직 태어나지도 않았지만, 그의 비극적 운명은 이미 시작되었습니다. 최강치는 아직 이 세상에 첫 숨결을 내뱉기도 전이건만, 아비 구월령(최진혁)의 마음속에 어미 윤서화(이연희)에 대한 사랑이 싹트는 순간, 이미 그의 모진 운명은 잉태되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어쩌면 이는 태초부터 미리 계획된 일이었는지 모릅니다. 가장 뜨거운 용기와 긍정의 힘으로 절대 금기를 넘어 사랑을 이루는 최강치의 모습을 통해, 신은 이 땅의 나약한 인간들을 깨우치려 했던 것일지도 모른다는 이야기지요. 이 세상의 어떤 금기(禁忌)도 장벽도 사랑보다 강한 것은 없음을, 신분의 고하도 남녀의 차별도 심지어 인간과 짐승의 구별조차도 사랑보다 우선할 수는 없음을, 이 세상에 태어난 모든 생명은 궁극적으로 사랑을 위해 존재한다는 것을 말입니다. 그렇게 본다면 최강치의 삶 자체를 비극이라 할 이유는 없겠지요. 하지만 인간도 아니고 짐승도 아닌, 반인반수(半人半獸)로 태어난 그의 운명에서 어찌 비극이라는 단어를 제외할 수 있을까요? 앞으로 그가 사랑을 얻기 위해 넘어야 할 험난한 장벽들은 수없이 많고도 높습니다.

 

 

구월령은 인간이 아니라 짐승입니다. 물론 평범한 짐승이 아니라 지리산의 수호령으로서 구미호보다도 영험한 신수(神獸)이지만, 역시 인간이 아니라 네 발 달린 짐승인 것은 어쩔 수 없는 현실이죠. 인간과 짐승 사이의 경계, 이를 넘어서는 행위는 대자연의 섭리를 거역하는 것으로서 크나큰 화를 자초할 수 있음을 구월령은 분명히 알고 있었습니다. 호기심 많고 자유로운 영혼의 구월령이 무려 천 년 동안이나 인간 세상을 엿보면서도 그저 묵묵히 구경만 했을 뿐 감히 인간의 일에 관여하지 않았던 것은 바로 그 때문입니다. 하지만 단 한 번의 사랑에 빠지는 순간 천 년의 경계는 무너지고 말았군요. 윤서화가 절체절명의 위기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는 순간 온 천지는 푸른 불빛으로 휩싸이고, 정신을 잃은 그녀는 구월령의 품에 안겨 있었습니다.

 

 

윤서화는 양반의 딸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녀의 아비 윤참판은 벗으로 여겼던 조관웅(이성재)의 모함을 받아 역모의 누명을 쓰게 되었고, 조관웅은 윤서화의 눈앞에서 그 아비를 살해하고 말았네요. 아비의 목에서 솟구친 뜨거운 피가 열 여덟 살 가녀린 윤서화의 얼굴과 옷깃에 뿌려졌습니다. 곧이어 조관웅은 윤서화를 기생으로 만들어 그 몸을 능욕하려 하니 이보다 더 극악한 인물은 고금을 통틀어 찾아보기 어려울 듯한데요. 조관웅이 지닌 악랄함의 한 가지 원인은 그의 신분이 통인(通引) 출신이라는 자격지심에서 찾아볼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통인이란 조선시대 각 지방 수령 휘하의 사환(使喚)에 해당하던 낮은 직책의 관리인데, 때로는 가까이하는 수령에게 뇌물을 주고 그 힘을 최대한 이용하여 신분을 개선하는 경우가 있었다는군요. 사정이 그렇다 보니 조관웅은 자기가 통인 출신이라는 이유로 늘상 윤기수에게 무시를 당한다 여겼고, 여기에 눈 먼 출세욕까지 더해져 오랜 벗과 그 가족에게 못할 짓을 저지르고 말았습니다.

 

 

사대부가의 규수였다가 관기 신분으로 떨어진 윤서화는 열 다섯 살 남동생 윤정윤(이다윗)과 몸종 담이(김보미)와 함께 기생집 춘화관으로 끌려옵니다. 기생 행수 천수련(정혜영)은 죽어도 기녀가 될 수 없다고 버티는 윤서화의 기를 꺾기 위해 그녀의 옷을 벗기고 춘화관 앞 대로변에 위치한 '수치목'이라는 나무에 사흘 동안이나 묶어 놓지만, 물 한 모금 안 마신 채 혼절할 때까지 버티면서도 끝내 기생의 운명을 거부할 만큼 윤서화의 기개는 꼿꼿했습니다. 하지만 관노가 된 남동생이 눈앞에서 멍석말이를 당해 피투성이가 되고 숨을 거둘 지경에 이르자 혈육의 정을 이길 수 없어 굴복하고 말았지요. 그러나 모든 것을 체념하고 운명을 받아들이려던 찰나, 자신이 초야(初夜)를 치를 상대가 바로 아비의 원수 조관웅임을 알게 되어 자결하려 하는데, 때마침 몸종 담이의 희생으로 옷을 바꿔 입고 남동생과 함께 탈출을 감행합니다.

 

 

하지만 어린 남매의 운명은 가혹했습니다. 며칠씩 계속된 굶주림과 매질로 녹초가 된 몸을 이끌고 달아나기에, 지리산의 산세는 너무 험준했고 추노꾼의 추격은 너무도 거세기만 했으니까요. 발목을 접질린 윤서화는 함께 도망칠 수 없음을 깨닫고 남동생 정윤을 설득해 후일을 기약하며 헤어지는데, 동생을 보내 놓고 다시 자결하려던 그녀는 구월령의 도움으로 목숨을 건졌지만, 홀로 도망치던 윤정윤은 채 날이 밝기도 전에 추노꾼들에게 붙잡히고 말았습니다. 도망친 관노의 본보기로 저잣거리 한복판에서 가차없이 교수형을 당하는 정윤...
 
 

 

그 모습을 보고 처참히 울부짖으며 도련님을 외쳐 부르던 담이는 가엾게도 잠시 후 스스로 목 매달아 죽고 말았습니다. 윤서화를 대신하여 조관웅에게 능욕을 당하고도 꿋꿋이 살아남았던 담이를 끝내 자결로 이끈 것은, 아마도 정윤 도련님에 대한 깊은 사모의 정이 아니었나 싶군요. '추노'의 대길(장혁)과 언년(이다해)처럼, 정윤과 담이는 서로 사랑을 했던 것 같아요. (여기서 한 마디 언급하자면, 담이 역을 맡은 여배우 김보미의 연기가 무척 좋더군요. 배역과 분량이 아쉬울 정도로... 솔직히 이연희는 물론 정혜영보다도 훨씬 나았습니다.)

 

 

정윤과 담이의 안타까운 희생을 딛고 살아난 윤서화는 이제 자신을 구해 준 은인이자 신비로운 눈빛을 지닌 구월령과 사랑에 빠지게 될 것입니다. 하지만 그의 정체가 인간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고서도 굳건히 사랑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군요. 윤서화는 좋게 보면 맑고 깨끗하고 대쪽같은 여인이지만, 다른 방향에서 보면 모든 사람과 사물을 편견 없이 공평한 마음으로 대할 수 있는 인물은 아니거든요. 자기의 양반 신분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한 만큼, 인간도 아닌 짐승과 한때나마 사랑에 빠졌던 것을 소스라치며 구월령을 배신하고, 머지않아 낳게 될 아이 최강치마저 버리게 될 가능성이 농후합니다.

 

 

과연 구월령과 윤서화는 어떠한 운명의 소용돌이를 맞이하게 될까요? '구가의 서' 1회는 깊은 산을 배경으로 한 신비로운 분위기 속에서 매우 긴박감 넘치고 역동적인 전개를 보여주었습니다. 조관웅이 담이를 겁탈하는 장면이라든가 너무 적나라한 교수형 장면 등, 자극적인 씬들로 인해 논란의 여지가 없지는 않겠지만 짜임새나 완성도 면에서는 충분히 훌륭했다고 생각합니다.

 

 

'구가의 서'는 수천 년 동안 구미호 일족에게 전해 내려오는 밀서로, 환웅이 내려오던 당시 이 땅을 지키던 많은 수호령에게 인간이 될 수 있는 기회를 주고자 만든 언약서라고 합니다. 이 언약서를 받기 위해서는 세 가지 금기 사항을 백일 동안 지켜야 하는데 (첫째, 살생을 해서는 안 된다. 둘째, 인간이 도움을 청할 때 모른 척해선 안 된다. 셋째, 인간에게 수호령이라는 정체를 들켜선 안 된다.) 무슨 까닭인지 실제로 '구가의 서'를 본 사람은 아무도 없다는군요. 1회 엔딩에서는 사랑에 빠진 구월령이 인간이 되려는 열망으로 '구가의 서'를 찾기 시작했지만 절대 이룰 수 없을 것이고, 그 못 다한 뜻은 후대의 최강치에게로 이어지겠지요. 앞으로의 전개와 더불어 '더킹투하츠' 이후 1년만에 안방극장에서 감상하게 될 이승기의 연기도 무척이나 기대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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