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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가의 서' 공감에 실패한 조관웅, 이성재 정신과 상담 이해된다 본문

종영 드라마 분류/구가의 서

'구가의 서' 공감에 실패한 조관웅, 이성재 정신과 상담 이해된다

빛무리~ 2013. 6. 25. 0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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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관웅(이성재)은 '구가의 서'에서 유일하고 절대적인 악역입니다. 그와 손잡고 악한 일을 꾸미는 기타 등등의 작은 악역들이 있긴 하지만 존재감이 미약해서 거의 눈에 띄지도 않죠. 그런데 드라마 자체가 지나칠 만큼 선악의 구분을 뚜렷이 정해 놓은 탓에, 가만히 살펴보면 캐릭터들이 촌스럽기 이를 데 없네요. 그 옛날 콩쥐팥쥐 식으로 착한 애 못된 애가 처음부터 구분되어 있으며, 아무 이유도 없이 착한 애는 원래 착한 애고 못된 애는 원래 못된 앱니다. 더불어 권선징악의 메시지도 거의 동화 수준으로 명백하게 제시되고 있지요. 그러나 과도한 명확함에서 비롯되는 이 촌스러움이 나쁘지는 않습니다. 현실적 리얼리티를 살린답시고 선악의 구분을 모호하게 해놓은 캐릭터들은 보면 볼수록 머리가 아파지거든요. 그런 인물들이 등장하면 원수를 눈앞에 보면서도 복수를 할까 용서해 줄까 망설이다가 시간 다 놓치고 시청자들 복장 터지게 만들기 일쑤입니다.

 

하지만 악역의 경우는 입장이 다릅니다. 선한 행동은 특별한 이유가 없어도 감동과 공감을 일으키지만, 악한 행동은 타당한 이유와 근거가 없으면 절대 공감을 얻을 수 없고, 시청자의 공감을 얻지 못한 캐릭터는 낙동강 오리알 신세가 되거든요. 매력적인 악역이 탄생하려면 악인이 될 수밖에 없었던 과거의 사연이 뒷받침 되어야 하고, 어둠의 에너지로 상대를 압도할 수 있는 강한 카리스마가 필요합니다. 그렇게 잘 만들어진 악역은 때때로 주인공의 존재감마저 위협하며 대세로 떠오르곤 하는데요. '구가의 서'와 같이 명확하고 단선적인 캐릭터들로 구성된 드라마에서는 솔직히 매력적인 악역이 탄생하기 어렵죠. 동화에선 늘 그렇듯 나쁜 놈은 그냥 나쁜 놈일 뿐이고, 착한 주인공은 절대 나쁜 놈에게 지지 않으니까요.

 

'나 혼자 산다'에 출연 중인 배우 이성재는 '구가의 서'의 악역 조관웅때문에 후유증이 크다며 정신과를 찾아 상담을 받았습니다. 극악무도한 조관웅을 연기하려면 모든 정신적 에너지를 쏟아 몰입해야 하는데, 그러다 보니 현실에서도 조관웅의 모습이 쭉 이어진다는 거였죠. 특히 매니저를 대할 때 극 중 하인처럼 대하게 되므로 더욱 미안해진다고도 했습니다. 극 중 캐릭터와 현실 속 자신의 경계가 무너지는 느낌인데, 이성재는 예전에도 영화 '홀리데이'의 악역 지강헌을 연기할 때 이와 비슷한 경험을 한 적이 있다고 말했지요. 
 

 

그런데 제가 보기에는 이성재가 정신과 상담까지 받은 것이 그런 이유 때문만은 아닐 듯 싶었습니다. 배우가 연기를 하려면 무엇보다 자신이 맡은 캐릭터를 깊이 이해하는 과정이 필요한 법인데요. 배우 자신조차 이해할 수 없는 캐릭터라면 그것을 표현하기가 얼마나 어렵겠습니까? 불행히도 조관웅은 보면 볼수록 '그냥 나쁜 놈'일 뿐, 시청자의 마음속에 털끝만치의 공감대도 형성할 수 없는 단순 악역이었습니다. 초반에는 통인 출신이라는 이유로 무시당하며 살아 온 시간이 있었다기에 과거의 그 경험이 어느 정도의 설득력을 확보해 줄 수 있을까 싶었죠. 하지만 수십 년이 지나도록 멈추지 않고 지속되는 악행을 설명하기에 그 이유는 너무도 하찮은 것이었습니다. 악행을 저지르다 보니 점점 가속도가 붙어서 이제는 발을 뺄 수도 없는 지경에 이르른 사이코패스... 조관웅 캐릭터를 표현하기엔 이런 정도의 표현이 꼭 적당하다 싶었어요.

 

23회에서 이순신(유동근)이 조관웅에게 물었습니다. "왜 사시오? 그 숱한 사람들의 피눈물을 뿌려가며 대체 거기서 영감이 지키고자 하는 게 무엇이오? 권세요, 재물이오, 아니면 다른 무엇이오?" 그러자 조관웅은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이렇게 대답하더군요. "바로 나요. 나는 오로지 나 자신만을 위해 존재하는 사람이오. 내가 하고 싶으면 하고, 갖고 싶으면 갖고, 죽이고 싶으면 죽여 없애고, 내가 원하고, 내가 취하고자 하는 그 모든 것에 충실할 뿐이오!" 참 뻔뻔하도록 솔직한 선언이었죠. 심지어 나라를 팔아먹는 큰 범죄를 저지를 때에도 조관웅의 이유는 그저 '자기 자신' 뿐이었습니다. 공의와 충심 따위는 허무맹랑한 이상이라 치부해 버리고, 인간 본연의 이기심만이 순수한 것이라 강조하며 조관웅은 발버둥쳤지만, 저런 대사에 그 누가 공감을 할 수 있을까요? 결국 조관웅 캐릭터는 대중과의 소통에 실패한 것입니다.

 

'장옥정, 사랑에 살다'에서 얼마 전에 죽음을 맞이한 악역 장현(성동일)과 비교해 보면, 상대적으로 조관웅 캐릭터가 얼마나 빈약한지를 뼈저리게 실감할 수 있습니다. 장현은 원래부터 야욕에 불타는 인물이었고, 외동딸 장홍주(민지아)를 궁녀로 들여보낸 것도 딸을 이용하여 출세의 발판을 마련해 보려는 속셈에 지나지 않았죠. 딸이 살아있을 때는 그토록 비정한 아비였건만, 외로운 궁궐 생활을 못 견딘 홍주가 종친 복선군(이형철)과 금지된 사랑을 나누다가 발각되어 비참한 죽음을 맞이하자, 딸의 싸늘한 시신을 감싸안으며 애끓는 부정이 용솟음치기 시작합니다.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조카딸 장옥정(김태희)을 중전의 자리에 앉히려 한 것이나 자신이 반드시 국구(임금의 장인)의 자리에 오르려 한 것도, 사실은 죽은 딸의 한을 풀어 주려는 마음에서였죠. 죽은 홍주가 그런 것을 원했을 리는 만무하지만, 장현은 뒤늦게나마 딸자식을 위해 자기의 방식대로 최선을 다했던 것입니다.

 

 

딸의 무덤 앞에서 칼을 맞고 죽어가는 장현의 모습은 차라리 편안해 보였습니다. 딸을 위한 계획을 모두 이룬 후였으니까요. "홍주야~" 입술에서는 딸의 이름이 새어 나오고 힘 잃은 눈동자에서는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릴 때, 비록 밉살스런 악역이었지만 장현의 최후를 보며 함께 눈물 흘린 시청자가 아마도 적지는 않았으리라 생각됩니다. 하지만 조관웅이 죽는다면?? 그런 슬픔을 느껴 줄 시청자가 한 명이나마 있을까요? 너무 전형적이고 촌스러운 악역으로서 설득력을 전혀 확보하지 못한 조관웅을 볼 때면, 수많은 선역들과 혼자 외로이 맞서고 있는 그 모습을 볼 때면, 공감할 수 없는 그 배역에 애써 몰입하고 있을 배우 이성재의 고충이 절로 느껴져 안스럽기만 합니다.

 

게다가 불행히도 이성재의 상대역은 수십 년 동안 임금의 카리스마를 떨쳐 온 유동근입니다. 아직 어린 최강치(이승기)를 상대할 때는 괜찮은 편인데, 선배 이순신과 맞붙는 장면에서는 조관웅이 여지없이 기세에서 밀리며 빛을 잃더군요. 스토리가 어필되지 않아서 가뜩이나 설득력도 없는데, 어둠의 카리스마로 상대를 제압하지도 못하니, 이래저래 조관웅 캐릭터는 진퇴양난이네요. 그래도 정말 수고 많았습니다. 비록 캐릭터는 실패했지만, 배우 이성재의 성실한 노력만은 충분히 빛났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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