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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답하라 1994' 나는 모두를 이해했다. 놀랍게도! 본문

종영 드라마 분류/응답하라 1994

'응답하라 1994' 나는 모두를 이해했다. 놀랍게도!

빛무리~ 2013. 12. 31. 0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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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말연시에 생일과 결혼기념일까지 촘촘하게 몰려있다 보니 경황이 없어 자주 글을 쓰지 못하였다. 그래도 2013년의 마지막 포스팅은 해야 할 것 같아 새벽같이 노트북을 켜고 생각에 잠긴다. 무엇을 쓰면 좋을까? 가장 최근에 방송된 MBC 연기대상 이야기를 써 볼까? 하지만 그러면 도저히 좋은 말을 할 수가 없다. MBC는 총 50부작의 대장정 중 이제 겨우 18회를 마쳤을 뿐이라 2013년에 달려온 길보다 2014년에 달려가야 할 길이 훨씬 많이 남은 '기황후' 팀의 하지원에게 2013년 연기대상을 주었다. 게다가 최우수 연기상을 무려 일곱 명에게, 우수 연기상을 여섯 명에게 주고도 모자란지 황금 연기상이라는 것을 만들어서 또 6명에게 골고루 나눠 주었다. 수상자들의 기분은 어땠을지 모르나 보는 입장에서는 씁쓸함만 남았던 그 시상식을 미주알 고주알 비판해 봐야 무슨 소용일까? 괜히 그런 것에 신경쓰면서 소중했던 한 해를 마무리하고 싶지는 않았다.

 

 

결국 나는 화제작 '응답하라 1994'의 최종회를 2013년 마지막 포스팅 소재로 선택했다. 솔직히 이 드라마의 엄청난 인기에 비한다면 나의 감상은 미지근한 편이었다. 칠봉이(유연석)를 사랑하긴 했으나, 지난 여름 '너목들'의 박수하(이종석)를 보면서 거의 미쳐 있었을 때의 감정과  비교한다면 그 정도가 아주 미약했다. 이 드라마에서 가장 좋았던 부분, 그 시대를 생생히 추억하며 그리움에 잠길 수 있도록 가장 효과적으로 어필한 요소가 무엇이었는지를 꼽으라면 나는 '사람보다 스토리보다 OST'라고 대답할 것이다.

 

어려서부터 노래 듣기를 무척 좋아했던 나는 가요 중에서도 발라드 장르에 심취하여 학창시절을 보냈는데, 1990년대에 유행했던 발라드를 순차적으로 듣다 보니 마치 꿈을 꾸듯 아련한 기분이었다. 그 외에는 뭐 그냥... 개인적으로 깊이 공감하거나 빠져들 수 있는 캐릭터가 없었고, 스토리나 구성도 특별히 매력있게 느껴지지는 않았다. 하지만 '응답하라 1994'는 내면을 돌아보고 성장의 깊이를 헤아리는 계기가 되어 주었다.

 

 

나는 드라마를 볼 때 캐릭터에 대한 호불호가 명확하고 리뷰에서 그런 감정을 솔직히 표현하는데, 그것을 거북하게 여기는 독자들이 있었다. 캐릭터를 편애하기 때문에 나의 리뷰가 싫다는 의견도 적지 않았다. 하지만 나는 이해할 수가 없었다. 도대체 왜 모든 캐릭터를 공평한 시선으로 봐야 하는 거지? 나는 언제나 좋으면 좋다고, 싫으면 싫다고 속시원히 말하는 게 좋았다. 최근 드라마 '미스코리아'에서 오지영(이연희)이 고화정(송선미)에게 물었다. "언니, 내가 싫어요?" 고화정은 망설임 없이 대답했다. "응. 싫어!" 그러자 오지영은 기분 좋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언니만 나한테 정직해. 거짓말 안 하고!"

 

물론 실생활에서 타인에 대한 감정을 그렇게 표현해서는 안 될 일이다. 하지만 드라마 속 인물을 보면서까지 꾹꾹 참아야 하나? 진상짓을 하면 노골적으로 콕 짚어서 박박 긁어줄 수 있다는 게 얼마나 통쾌하고 속 시원한데(실생활에선 못 그러니까), 특히 친구나 가족과 함께 드라마를 볼 때는 그게 얼마나 쫀득한 재미이고 스트레스 풀리는 일인데!!! 난 앞으로도 솔직한 감정을 숨기지 않을 생각이다. 하지만 '응사'의 경우는 좀 달랐다. 초반에는 호평 일색이던 일부 캐릭터들이 후반으로 가면서 대다수 시청자들의 거센 비난과 비판에 직면했는데, 다소 편협하고 경직된 시각을 지닌 내가 놀랍게도 그 모든 캐릭터를 이해하며 끝까지 애정어린 눈으로 볼 수 있었던 것이다. 어쩌면 깊이 빠져들지 않아서 가능했겠지만, 아무튼 그랬다.

 

 

성나정(고아라), 중반까지 화통한 순정녀의 자세를 고수하며 인기몰이를 하던 나정이는 후반에 들어 갑자기 변절(?)하는 바람에 평생 밥 안 먹어도 배가 부를 만큼 욕을 먹었다. 가족처럼 지내 온 소중한 시간들이 망가질까봐 두려워하던 쓰레기(정우)를 사랑이란 이름으로 잡아끌고 들이대서 결국 허물어뜨리더니, 결혼을 앞두고 청첩장까지 돌린 상태에서 갑자기 해외 파견 근무를 하겠다며 떠나버린 성나정을 사람들은 이해하지 못했다. 이제껏 쓰레기의 사랑을 얻는 것 외에는 별다른 자아실현의 욕심조차 보이지 않던 나정이였기에 더욱 그러했다. 2년쯤 눈에서 멀어졌다고 매듭이 풀릴만큼 가벼운 사이가 아닌데, 어영부영 헤어진 것도 사람들은 모두 나정이의 탓으로 돌렸다. (하긴 나정이 쪽의 책임이 좀 더 크기는 했다) 아프다고 힘들다고 한 번도 말하지 않는 쓰레기의 배려심이 이별을 부추겼다는 식으로 말한 후, 나정이는 돌이킬 수 없는 나쁜년이 되었다.

 

잘못했다고 보면 다 그렇게 생각할 수 있는 일들이다. 하지만 나는 이해할 수 있었다. 자아실현에 대한 큰 꿈은 없었어도 대학 졸업하자마자 전업주부가 되고 싶지는 않았을 것이다. 얼마든지 직장과 결혼 생활을 병행할 수 있을 줄 알았는데 하필 IMF가 터지는 바람에 취업은 하늘에 별따기가 되었고, 모처럼 취직이 되었는데 해외 파견 명령이 떨어졌다. 고작 스물 셋의 어린 나정이는 결혼이 급하다는 생각을 안 했을 것이고, 2년쯤의 해외 근무가 쓰레기와의 견고한 사랑에 걸림돌이 될 줄은 꿈에도 상상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 와중에 쓰레기의 모친이 별세했고, 나정이는 머나먼 곳에서 한 뼘의 위로도 전해줄 수가 없었다. 인생 최대의 아픔을 겪으면서도 "괜찮다, 오빠 괜찮다"만 연발하는 쓰레기의 목소리를 전화기를 통해 들으며 나정이는 무엇을 느꼈을까?

 

 

사랑하는 사람에게 마땅한 도리를 하지 못했을 때, 고지식한 사람일수록 죄책감과 미안함은 겉잡을 수 없이 커지게 마련이다. 사랑이 깊을수록 죄책감도 깊어진다. 그게 얼마나 사람을 미치게 하는 건지는 겪어 본 사람이 아니면 절대 모른다. 너무 미안해서 죽을 것처럼 괴로워지는 그 심정을, 너무 견딜 수 없어 차라리 안 보며 살고 싶어지는 그 고통을... 서로 바빠서 연락이 뜸해진 것 정도는 문제가 아니었겠지만, 일생 중 가장 위로가 필요할 때 쓰레기의 곁을 지켜주지 못했다는 사실은 오랫동안 나정이의 피를 말렸을 것이다.

 

만약 쓰레기가 "나정아... 힘들겠지만 그래도 와줄 수 있겠니?" 라고 말했다면, 설령 회사에서 쫓겨나는 한이 있어도 나정이는 달려갔을 텐데 "형이 너한테는 절대 알리지 말라고 하더라. 괜히 걱정한다고... 혹시 알게 되더라도 그 먼데서 올 생각은 절대 말라고 하더라" 이렇게 타인을 통해서 전해 들은 심정은 어땠을까? 한국에 돌아와서도 아무렇지 않은 듯 친구들과 하하호호 떠들며 지낸다는 이유로 나정이는 또 욕을 먹었지만, 성격상 표현을 안 했을 뿐 속마음까지 그랬을까?

 

쓰레기는 거의 욕을 먹지 않은 호감형 캐릭터지만, 때로는 답답한 머저리라며 욕하는 사람도 있었다. 그런데 몸에 밴 습관을 어떻게 바꿀 수 있을까? 그는 어려서부터 친오빠 이상으로 나정이를 배려하며 거두어 왔는데, 갑자기 대등한 연인으로서 그녀를 대하는 것이 어찌 쉽게 되는 일이었을까? 아픔도 슬픔도 내색하지 않고 오직 든든한 오빠로서 지내 온 세월이 얼만큼인데, 그녀의 어깨에 기대어 눈물을 펑펑 쏟을 수 없었던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개인적으로 쓰레기에게 끌리진 않았지만, 정우의 연기에는 여러 번 감탄했다. 사랑하는 나정이를 볼 때, 부모처럼 여기는 성동일과 이일화를 볼 때, 강아지라 부르며 귀여워하는 빙그레(바로)를 볼 때, 시시각각으로 달라지면서도 따뜻함을 유지하는 그 눈빛이 특히 좋았다. 연적 칠봉이의 철없는 도발마저 어른스런 미소로 부드럽게 감싸안는 쓰레기가 나도 참 좋았더란다. 남자보다는 끝내 오빠나 아빠처럼 느껴지긴 했지만.

 

나정이가 자기를 사랑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그녀를 붙잡으려 했던 칠봉이는 이해받지 못할 캐릭터일까? 꼭 한 번 이상하게 굴었던 적은 있었다. 쓰레기와 나정이가 이제 막 연애를 시작했을 때, 얄밉게 초를 치는 것처럼 쓰레기에게 야구공을 건네주면서 언젠가 그녀를 빼앗아 오겠다는 식으로 도발하던 모습은 정말 유치했고 평소 칠봉이의 성격답지도 않았다. 하지만 그건 제작진의 실수였던 것 같다. 칠봉이는 한 여자를 향한 사랑에 20대 초반의 황금같은 5~6년을 오롯이 쏟아부을 만큼 보기드문 순정파 남자였을 뿐, 자기 욕심만 챙기자고 타인의 감정을 무시하는 이기주의자는 아니었다. 혹시라도 열애설이 터져서 나정이를 힘들게 할까봐, 제발 기사를 쓰지 말아 달라고 기자에게 부탁했을 만큼 배려심 깊은 녀석이 칠봉이였다.

 

야근하는 나정에게 케이크를 사다주고 돌아오는 길에 교통사고를 당해 가뜩이나 안 좋던 오른쪽 어깨를 부상당한 칠봉은 야구선수로서의 생명이 위태로울 만큼의 위기에 처하고 만다. 그 와중에도 자기 몸의 회복보다 나정에게 더욱 마음을 쓰는 칠봉의 모습이 어찌나 가슴 아프던지! 나정이는 바쁜 와중에도 매일처럼 노트북을 가지고 병실을 찾아와 칠봉이를 돌보며 일을 하는데, 같은 병원에 레지던트로 있는 쓰레기가 독감으로 앓아 누웠다는 소식을 전해들은 날에는 울적함을 감추지 못한다. 혹자는 말한다. 그녀의 마음을 안다면 그녀의 행복을 위해 보내주는 것이 진짜 사랑 아니겠느냐고, 계속 이런저런 약속을 하면서 자기 곁에 붙잡아 두려는 건 이기심이자 욕심이 아니겠느냐고. 하지만 선뜻 그럴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쓰레기를 향한 마음을 아직 갖고 있다 해도 어쨌든 현재 나정이는 혼자인데, 그녀가 직접 "난 아무래도 쓰레기 오빠한테 돌아가야겠어. 칠봉아, 날 보내줘!" 라고 말하지도 않았는데, 그녀를 사랑하면서 자기가 먼저 보내준다는 게 쉬운 일일까? 결국 칠봉이는 그렇게 했다. 다만 그 힘든 결심을 하기까지 아주 약간의 시간이 필요했을 뿐이다. 안 될 줄 알면서도 그녀를 붙잡아 보려 했던 최선의 노력은, 어쩌면 끝내 응답받지 못한 자신의 가여운 첫사랑에 대한 마지막 예의였을지도 모른다. 그 정도면 20대 초중반의 어린 청년으로서는 더할 수 없는 성숙함이라고 해도 무방하지 않을까?

 

작은 부분에서는 이해 못할 설정들도 있었다. 예를 들면 '응사' 최고의 웃음 폭탄이라고 평가받는 해태(손호준)와 포청천의 에피소드가 그러했다. 아무리 술 취한 여자 선배가 자기를 집에 끌어들이는 이유는 원나잇을 위함이라고 철석같이 믿었다지만, 현관 밖에서부터 허리를 풀고 바지를 벗는 그 행동이 내가 볼 때는 너무 황당했던 거다. 기승전결도 없이 현관을 들어서면서 곧바로 시작(?)하려 했던 건가?;;; "개작두를 대령하라~" 포청천의 고함이 터지고 여자 선배의 가족이 지켜보는 앞에서 해태의 바지가 속절없이 내려갈 때 남들은 미친듯이 웃었다는데, 나는 "도대체 왜 벌써 바지를??" 하며 어리둥절하고 있었다.

 

 

십여 년 후, 쓰레기와 성나정 부부는 칠봉이의 아파트에 세들어 살고 있다. 의사로 일하는 쓰레기의 수입이 적지는 않겠으나 세 명의 아이를 키우다 보니 살림이 쪼들리는 모양이다. 그래도 웬만하면 친구라는 이름으로 빌붙을 생각 말고 정당한 값에 들어와 살면 좋을텐데, 시세보다 무려 5천만원이나 싸게 집을 내어준 칠봉이가 당최 고마운 줄은 아는 건지, 나이도 마흔줄에 접어든 나정이는 절대 전셋값을 올리지 말라고 칠봉이를 윽박지르기까지 한다. 더욱이 와이프가 그 문제를 거북해한다고 칠봉이가 분명히 말했는데도!!! 더 이상 어리지도 않고 나이도 들 만큼 든 나정이가 칠봉이한테 끝내 치사하고 뻔뻔하게 구는 그 모습은 내가 볼 때 '응사' 최악의 장면이었다. 뭐 제작진은 중요하게 생각 안 하고 그냥 웃음 포인트로 넣었겠지만.

 

어쨌든 나는 불완전하나마 모든 캐릭터를 이해했다. 삼천포(김성균)와 조윤진(도희) 커플은 거의 완벽하니 걸고 넘어질 부분도 없었고, 진로 문제로 고민하다가 부모님의 기대에 따르기로 선택한 빙그레의 입장은 특히 완벽하게 이해할 수 있었다. 쓰레기와 칠봉이와 나정이의 삼각관계가 무리한 낚시로 점점 흥미를 잃어가며 지루하게 진행된다고 타박을 많이 받았으나, 나는 풋풋한 만큼 부족하고 어리석었던 그 시절을 실감나게 떠올릴 수 있어서 오히려 인간적으로 느껴지기도 했다. 마냥 행복했던 것 같아도 막상 떠올려 보면 오해와 실수와 맘고생들이 얼마나 많았던지... 진짜 추억은 달달한 기쁨과 그리움보다 오히려 알싸한 아픔과 후회 속에 존재하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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