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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답하라 1994' 칠봉이의 반격, 가능성이 있을까? 본문

종영 드라마 분류/응답하라 1994

'응답하라 1994' 칠봉이의 반격, 가능성이 있을까?

빛무리~ 2013. 11. 9.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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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제의 드라마 '응답하라 1997'을 나는 안 봤다. 일부러 안 본 것은 아니고 그냥 어쩌다 보니 안 봤다. 결혼 전이었던 작년이나 결혼 후인 지금이나, 내가 사는 집은 이상하게 케이블과는 친하지 않은 편이라서 시청이 번거로웠던 이유도 있다. 하지만 올해는 일부러 맘 먹고 '응답하라 1994'를 1회부터 꾸준히 보는 중이다. 물론 사정상 본방사수는 불가능하지만..;; 포괄적인 결론부터 말하자면 재미는 있다. 나 또한 그 시절을 온 몸으로 관통하며 살아왔던 세대인지라, 나름 추억돋는 장면들이나 OST도 꽤 많았다. 중간 중간 미심쩍은 부분들도 있지만 대충 그러려니 넘기면 될 일이고... 무엇보다 나에게 중요한 것은 '몰입'이었다. 책을 읽을 때도 영화나 드라마를 볼 때도, 나는 몰입이 되지 않으면 도통 재미를 느낄 수 없었다. 내가 여자라고 해서 반드시 몰입의 대상이 여성 캐릭터로 한정되는 것은 아니다. 가장 거친 남성 캐릭터라 해도 그 인물의 감정에 내가 공감만 할 수 있으면 몰입은 얼마든지 가능했다. 그런데 참 이상도 하다. 분명 그립고도 익숙한 시대를 다루고 있건만, '응답하라 1994'에는 내가 몰입할만한 캐릭터가 없었던 것이다.

 

 

나름 재미있게 보면서도 푹 빠져들지 못한 이유는 그 때문이었다. 같은 시대를 지나 온 사람이라고 해서 다 똑같은 경험을 하는 것은 아니다. 중고교 시절 나는 한 번도 운동선수나 가수들의 빠순이 노릇을 해 본 적이 없었고, 대학에 간 후에도 그 흔한 단체미팅 한 번 해 본 적이 없었다. 나이가 든 지금은 오히려 대중문화에 친숙하고 호의적인 편이지만, 십대 후반부터 이십대 초반의 그 무렵 나는 지독한 책벌레로서 카프카와 윤대녕의 소설에 심취해 있었고, 연예인에게 열광하는 친구들의 심리를 절대 이해 못하는 고집스런 소녀였다. 이것은 결코 잘난 척 하려고 하는 말이 아니라, 오히려 씁쓸한 자조적 발언이다. 생각해 보시라. 평범하게 남들 좋아하는 거 같이 좋아하면서 그 시절을 보내는 것과, 나처럼 독특한 청춘을 보내는 것 중 어느 편이 더 바람직하겠는지를... 하여튼 그래서인지 나는 여주인공 성나정(고아라)의 캐릭터에 전혀 몰입할 수가 없었다.

 

어린 시절 이야기가 나왔으니 이 참에 한 가지 드라마와 무관한 내용을 잠시 언급하고 지나가 볼까? 인기 예능 '아빠 어디 가'에서 최근 '하룻밤 동안 아빠 바꾸기' 프로젝트를 진행했는데, 성동일 아들 준이는 지아 아빠 송종국과 짝이 되었다. 준이는 유난히 책을 좋아하고 의젓한 성품 때문에 '성선비'라는 별명까지 얻은 아이였다. 그런데 송종국과 하룻밤을 지내면서 준이의 숨겨졌던 진면목이 드러났다. 사실 준이는 그 또래의 다른 남자아이들과 마찬가지로 펄쩍펄쩍 뛰어노는 것을 좋아하며, 책 읽기는 그닥 즐기지 않는 아이였다. 다만 부모님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서 놀고 싶은 것을 꾹 참고 열심히 공부하며 책을 읽는 효자였을 뿐이다. 알고 보니 '성선비'는 준이의 본래 모습이 아니었다. 8살 어린 나이에도 두 명의 여동생을 거느린 장남이라는 책임감과 아빠 성동일의 엄한 교육 방식이 만들어낸 일종의 캐릭터였을 뿐이다.

 

 

성동일은 일일아빠 송종국에게 동화책을 읽어주라고 당부했지만, 송종국이 준이에게 "책 읽을래, 줄넘기 할래?" 하고 묻자 준이는 쏜살같이 인터셉트로 대답했다. "줄넘기요! ... 줄넘기 되게 재밌는데!!!" 그러자 송종국은 성동일의 당부를 깨끗이 묵살한 채 준이를 데리고 마당으로 나갔다. 그리고 8살 아이에겐 좀 벅찬 미션이다 싶게 무려 1000번의 줄넘기를 제안하며, 성공하면 멋진 사인을 해주겠노라 약속했다. 준이는 결국 1000번의 줄넘기를 해냈고, 전 국가대표 축구선수인 송종국 삼촌의 사인을 받아내는데 성공했다. 땀범벅이 된 준이의 얼굴은 무척 힘들어 보였지만, 표정에서는 만족과 행복감이 묻어났다. 송종국의 사인을 받아들고 다음날까지 자랑하고 싶어 어쩔 줄 모르며 팔짝팔짝 뛰는 준이가 어찌나 낯설던지... 그것은 지난 10개월 동안 익히 알고 있던 준이의 모습이 아니었다. 많은 시청자들은 그런 준이를 안타깝게 여겼다. 속으로는 놀고 싶은데도 꾹 참고 책 읽는 줄은 꿈에도 몰랐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의 감상은 좀 달랐다. 나는 '아빠 어디 가'에 출연하는 아이들 중 유독 준이에게 특별한 애정을 갖고 있었는데, 그 이유는 어린 시절의 내 모습과 가장 비슷하기 때문이었다. 물론 다른 부분도 많이 있지만, 조용하고 얌전하고 책을 좋아한다는 점에서는 매우 비슷했다. 그런데 내 경우는 준이와 달리 100% 자발적인 책벌레였다. 나는 뛰어노는 것보다 책이 더 좋았고, 인형놀이보다도 책이 더 좋았다. 어른이 되고 인터넷에 푹 빠진 이후부터는 거의 책을 읽지 않게 되었지만, 나의 독서 역사는 한글을 대충 깨쳤던 유치원 시절부터 이십대 중반까지 싫증도 모르고 지칠 줄도 모른 채 엄청난 양으로 줄기차게 이어져 왔던 것이다. 나는 내 어린 시절이 썩 평범하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으며, 평생 고독을 숙명처럼 여기고 살아왔다. 나는 이제껏 준이를 보면 살짝 동질감이 느껴져서 더 애틋한 심정이었는데, 진실은 그게 아니었다. 우습지만 나는 배신감을 느꼈다. 준이가 무슨 죄라고..ㅎㅎ

 

거의 모든 여성 시청자들이 열광하는 쓰레기(정우) 캐릭터에 도통 매력을 느끼지 못하는 것도 나의 독특한 취향 탓으로 돌리면 별 문제가 없을 듯 싶다. 솔직히 나는 처음부터 쓰레기보다 칠봉이(유연석)에게 훨씬 더 많이 끌렸다. 쓰레기는 그냥 참 좋은 오빠, 편한 오빠, 믿음직한 오빠로만 느껴질 뿐 매력적인 남자로는 느껴지지 않았던 것이다. 나는 서울 태생이고 친구들도 다 서울 아이들이었고, 22살부터 활동했던 성가대에는 지방 출신 오빠들이 꽤 있었지만 모두 표준어를 구사했기 때문에 사투리와 친해질 기회가 없었다. 그래서인지 나는 지금도 사투리를 들으면 정겹거나 친숙한 느낌보다 이질적이고 생소한 느낌을 받는다. 그리고 나는 다정한 속마음을 숨긴 채 겉으로 무뚝뚝한 남자보다, 대놓고 달콤하게 친절떠는 스타일을 더 좋아한다. '파리의 연인'에서도 나는 모두가 열광하는 까칠왕자 박신양보다 신사다운 매력의 이동건이 더 좋았다.

 

 

쓰레기보다 비중이 훨씬 적었는데도 불구하고, 게다가 나정이의 마음은 이미 쓰레기에게 기울었음에도 불구하고, 내 심장은 칠봉이가 나정이에게 다가설 때마다 조용히 쿵쾅거렸다. "근데 난 너만 보면 왜 이렇게 웃음이 나지?" 누구에게나 그렇듯 하숙집 딸 나정에게도 깔끔한 매너를 지켜오던 칠봉이가 처음으로 개인적 관심을 표현한 말이었다. 음식 때문에 앙숙이 되어버린 삼천포(김성균)와 조윤진(도희)을 화해시키기 위해서 벌어졌던 술자리 게임... 하지만 그 자리의 주인공은 따로 있었다. 저도 모르게 그녀에게 기습 키스를 하며 마음을 드러내버린 칠봉이, 그런 두 사람을 지켜보면서 생각지도 않았던 감정의 동요를 느끼고 심각해지는 쓰레기, 그리고 술에 취해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도 모르는 나정이... 그 날 밤의 주인공 세 사람은 바로 이 드라마의 주인공 세 사람이다.

 

집에서는 헐렁한 쓰레기지만 밖에 나가면 촉망받는 천재 의대생... 반듯한 외모와 눈부신 운동 실력으로 어느 덧 교내의 전설적 존재가 되어버린 90학번 형님... 어릴 적 세상을 떠난 친구의 추억을 잊지 못한 채 가슴에 품고, 어린 환자들 하나 하나를 애틋하게 보살피는 미래의 슈바이처... 죽은 친구의 여동생 나정이를 자기 동생으로 삼아 지극히 아껴주며 지내 왔지만, 어느 사이엔가 마음 속에 여자로 자리잡기 시작한 그녀의 존재로 인해 당혹스러워하는 순수 청년... 비록 내 가슴을 흔들지는 못했지만, 지금까지 쓰레기의 매력적인 캐릭터는 충분히 어필되었다. 그리고 7회에 이르러, 한참 뒤로 미뤄졌던 또 한 명의 주인공이 본격적으로 소개되었다. 고교 시절부터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야구 실력으로 명성을 날렸던 칠봉이가 바로 그였다.  

 

 

사실 내가 칠봉이에게 깊은 매력을 느낀 것은, 이혼한 엄마의 두번째 결혼식에 참석하러 가던 중 성동일의 차 안에서 벌어진 에피소드에서였다. 오줌이 마려워서 어쩔 줄 모르며 계속 길을 잘못 드는 성동일의 코믹 연기는 그야말로 일품이었지만, 실제 상황이라 가정하고 보면 민폐도 그런 민폐가 없었다. 대중교통으로 가겠다는 아이들을 굳이 붙잡아서 차에 태웠는데, 결국은 남의 중요한 약속을 저버리도록 만들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칠봉이는 단 한 번도 언짢은 내색을 하지 않고 오히려 성동일의 방광 상태만을 걱정했다. 빙그레(바로)는 엄마가 아니라 이모 결혼식이었으니 부담이 좀 덜했겠지만, 칠봉이 입장에서는 매우 신경쓰이고 마음 불편한 상황이었을텐데 말이다. 그 심지 깊고 배려심 돋는 모습이 내 마음을 사로잡았다. 7회에서 보여준 초콜릿 복근도 멋지긴 했으나, 엄마에게 보내던 그 날의 공중전화 메시지보다는 임팩트가 훨씬 떨어졌다. 어쨌든 칠봉이는 참 멋진 녀석이라는 게 나의 결론이다.

 

칠봉은 나정에게 소소한 내기를 걸어 자신의 야구시합에 초대하고, 경기가 끝난 후 한적한 관중석에 남아있던 그녀에게 가볍게 공을 던진다. 그 야구공은 마치 큐피드의 화살처럼, 나정을 향한 칠봉의 마음을 대변하고 있는 것이었다. 칠봉이는 강남 대치동의 삐까뻔쩍한 자기 집을 놔두고, 오늘도 비좁아 터진 신촌하숙의 마루바닥에서 각양각색의 인간 군상과 섞여 새우잠을 잔다. 설마 그 좋은 집에 에어컨이 없을라고, 칠봉이가 이 곳에 머무는 이유는 오직 하나다. 그저 사람 냄새가 그리워서라고 말했지만 어쩌면 처음부터 성나정, 그녀 때문이었을 게다. 이제 칠봉이는 조금씩 용기를 내어 그녀에게 다가서려는 듯한데, 과연 쓰레기의 견고한 아성을 무너뜨릴 수 있을까? 성나정 남편 김재준의 정체는 아직도 오리무중이다. 하지만 결과가 어떻게 되든 상관없이, 나는 칠봉이의 사랑을 응원해 주련다. 왜냐하면... 쓰레기의 팬층은 굳이 내가 숟가락을 들이밀지 않아도 벌써 차고 넘치니까!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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