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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무리의 유리벽 열기
참 기이하게도 '아이리스2'는 주인공을 비롯한 주요 인물들보다 상대적으로 비중이 낮은 조연들에게 시선이 끌리는 드라마입니다. 지금까지도 비슷한 경우가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이렇게까지 주인공들의 존재감이 미약하고 조연들의 존재감만 커다랗게 부각된 케이스는 없었지 않나 싶을 정도인데요. 정유건(장혁)과 지수연(이다해)의 사랑놀음은 식상할 뿐만 아니라 오히려 스토리의 진행에 방해만 될 뿐으로 전혀 몰입감이 없고, 지수연을 짝사랑하며 정유건의 강력한 연적으로 떠올라야 할 서현우 역할의 윤두준은 가뜩이나 연기 경력도 짧은 데다가 너무 어린 마스크 때문에 도통 캐릭터와 어울려 보이질 않습니다. 이 세 사람 다음으로 언급되었던 주요 인물이라면 북측을 대표하는 유중원(이범수)과 김연화(임수향) 정도가 되겠는데, 아직..
"우리의 경쟁작은 동시간대의 타사 프로그램이 아니라 전작인 '아이리스1'이다!" 라고 야심차게 밝혔던 출연진들의 인터뷰가 무색할 만큼, '아이리스2'의 출발은 별로 산뜻하지 못했습니다. 몰입을 방해하는 산만한 전개, 초반부터 과도한 남녀 주인공의 러브라인, NSS 정예요원이라는 설정이 창피할 만큼 기본적인 총기 사용법도 모르는 배우들의 모습 등, 작정하고 꼬집어 내자면 정말 수없이 많은 헛점을 드러내고 있었거든요. '아이리스1'은 평소 액션이나 첩보물을 즐기지 않는 저같은 시청자도 몰입해서 볼 수 있을만큼 초반부터 강렬한 포스를 뿜어내는 작품이었는데, '아이리스2'의 초반 전개는 솔직히 실망스러웠습니다. 좀 심하게 말하면, 전작을 따라잡기는 고사하고 전작의 명성에 누를 끼치지나 않으면 다행이겠다 싶을 정..
'각시탈' 후속으로 시작된 KBS 수목드라마 '차칸남자'의 제목에 대해 논란이 끊이질 않네요. 나날이 확산되는 속어와 인터넷 용어들로 인해 국어 파괴 현상이 심각해지고 있는 이 때, 바른 말 고운 말 쓰기에 앞장서도 모자랄 공영방송에서 드라마 제목에 굳이 틀린 맞춤법을 사용했다는 이유로 비판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심지어 한글 학회와 국립 국어원 등에서는 KBS에 제목 수정을 요청하는 항의 공문을 보내기까지 했다더군요. 하지만 결국 이경희 작가를 비롯한 '차칸남자' 제작진은 극의 흐름을 반영한 창의적 표현이니 이해 바란다는 입장을 밝히며 제목 수정 없이 첫 방송을 내보냈습니다. 거센 비난에 맞서는 제작진의 갖가지 해명들은 구차스러울 지경이네요. 기억을 잃고 뇌손상을 입게 된 여주인공이 남주인공을 보며 자신..
이장일이 김선우의 뒤통수를 내리치고 벼랑에서 밀어 바다로 떨어뜨리던 그 충격적인 명장면은, 두 명품 아역들이 마지막으로 남기고 간 선물이었습니다. 저는 그 장면을 보며 정말 소스라치게 놀랐었지요. 임시완의 눈빛이 갑자기 정신나간 것처럼 변해서 몽둥이를 들고 이현우의 뒤를 바짝 쫓아갈 때만 해도 "설마... 설마..." 했는데, 한 번도 모자라 두 번씩이나 선우의 머리를 몽둥이로 있는 힘껏 내리치는 장일의 모습이 너무도 뜻밖이었던 이유는, 첫 회의 프롤로그에 등장했던 선우와 장일의 모습을 생생히 기억하기 때문이었습니다. 프롤로그에서 이장일(이준혁)은 마치 절대악을 응징하려는 정의로운 검사처럼 진노식(김영철) 회장을 찾아가 총구를 겨누었습니다. 두 사람이 나누는 대화를 들어보면 진노식은 이미 김선우(엄태웅)..
어느 덧 7회까지 이르른 현재, 김선우(엄태웅)와 한지원(이보영) 사이에 흐르는 달콤하면서도 치명적인 멜로는 자칫 이 드라마가 복수극이라는 사실까지도 잊어버리게 만듭니다. 그 어떤 멜로드라마에서도 이보다 더 설레고 짜릿하고 감동적인 사랑은 본 적이 없는 듯하군요. 언제나 저는 감성 위주의 리뷰를 쓴다고 공공연히 말하지만, 솔직히 털어놓는다면 드라마나 영화 속의 사랑에 진짜로 푹 빠져들어 본 적이 별로 없습니다. 몇 걸음 떨어진 채 관조하듯 보고 나서, 글을 쓸 때는 의도적으로 몰입한다고나 할까요? 극도의 감정 몰입을 요구하는 편지 형식의 리뷰를 쓸 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일부러 한 캐릭터에 초점을 맞추고 그 감정을 느끼려고 집중하다 보면, 실제로 드라마를 시청할 때보다 훨씬 더 깊게 느껴지곤 했거든요. ..
비장한 복수극에도 사랑은 필요하지요. 무려 6회만에 남녀 주인공인 김선우(엄태웅)과 한지원(이보영)의 사랑이 본격화되었습니다. 오래 전, 진노식(김영철)의 차창을 깨부수는 과정에서 잠깐 마주쳤던 한 번의 인연을 제외하면 이 두 사람은 좀처럼 엮일 기회조차 없었죠. 물론 그 한 번의 마주침이 한지원에게는 매우 강렬한 인상으로 남았지만, 김선우는 그녀의 존재를 기억이나 하고 있었을지 모르겠습니다. 그에 비해 이장일(이준혁)은 지난 몇 년 동안 한지원을 지켜보며 사랑을 키워 왔습니다. 그녀의 미지근한 반응에도 굴하지 않고 꾸준히 관심을 표현하며, 어떻게든 다가서려는 노력을 멈추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공을 들였는데 이제껏 침대에 누워만 있다가 갑자기 깨어난 눈 먼 녀석이 그녀의 사랑을 가로채 버렸으니, 이장일의..
복수극의 지존이라는 엄태웅의 칭호는 지극히 당연한 것임이 입증되었습니다. 차가운 복수심에 불타는 남자의 내면을 이보다 더 리얼하게 연기하는 배우가 있을까요? 특히 이번에는 처음으로 맹인 연기에 도전함에 있어 많은 연구와 노력을 했음이 엿보입니다. 눈을 뜨고 있되 앞을 볼 수 없는 사람들의 공허한 눈동자를 얼마나 실감나게 표현했는지, 각종 포털의 인기 검색어에는 '엄태웅 동공연기'라는 단어가 떠올랐군요. 엄태웅은 눈동자뿐만 아니라 표정과 몸짓과 언어 등, 사용할 수 있는 모든 수단을 이용하여 갑작스레 눈이 멀어버린 사람의 절망과 공포를 나타냈고, 차츰 기억이 떠오르면서 가슴 속 깊은 곳에 싹트기 시작하는 통렬한 분노와 복수심을 형상화시켰습니다. 엄태웅의 명품 연기와 더불어 '적도의 남자' 5회는 방송 시간..
주인공 김선우와 라이벌 구도를 이루는 역할이니, 이장일이라는 캐릭터가 근본적으로 아주 선한 인물일 수는 없었습니다. 김선우의 선량함이 부각되면 될수록, 상대적으로 이장일은 악역일 수밖에 없었지요. 하지만 요즘의 악역은 예전과 달리 무척이나 매력적이지 않습니까? 나쁜 짓을 하더라도 충분히 납득할만한 이유가 있고, 어쩔 수 없는 상황에 몰려 고뇌하는 모습은 연민을 불러 일으킵니다. 언제나 흔들림 없이 선량한 주인공보다, 오히려 야누스적인 내면과 역동적인 변화를 보여주는 악역 캐릭터에 많은 시청자는 열광하곤 하지요. 이장일은 분명 그런 캐릭터일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드라마 '적도의 남자'에서 동정의 여지가 없는 '악의 축'은 따로 있었습니다. 중견탤런트 김영철이 연기하고 있는 진노식 회장이 그 인물이죠. 그러..
2012년 3월21일 수요일, 공중파 3사에서 일제히 새로운 수목드라마가 방송되며 제2차 대전이 시작되었습니다. 제1차 대전에서는 MBC의 '해를 품은 달'이 싱거울 만큼 큰 편차로 경쟁작들을 따돌리며 압승을 차지했는데, 저는 개인적으로 2차 대전의 결과가 더욱 궁금합니다. 제가 선택한 1순위는 KBS '적도의 남자'이고, MBC '더킹 투하츠'가 그 뒤를 잇습니다. '더킹 투하츠'도 놓치기는 너무 아까운 생각이 들어서 꼬박꼬박 볼 생각인데, 아무래도 SBS '옥탑방 왕세자'까지 욕심내기는 힘들 것 같군요. '적도의 남자'는 김인영 작가가 2008년 화제작 '태양의 여자'를 남성 버젼으로 재탄생시킨 작품이라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막상 첫방송을 볼 때는 '태양의 여자'보다는 김지우 작가의..
이미 왕으로 즉위했으니 '세조'라 호칭하는 것이 맞겠으나 그대로 '수양(대군)'이라 칭하겠습니다. 이 드라마의 분위기에 몰입하여 주인공들의 시각으로 보았을 때, 세조는 결코 적법한 왕이 아니니까요. "치욕스런 공주 따위는 하지 않을 것입니다. 이 나라의 공주는 오직 경혜공주마마 한 분뿐이십니다!" 라고 외치던 세령(문채원)의 피맺힌 절규가 귓가에 아른거리니, 저는 이 가련한 여인을 공주라 칭하지 않을 것입니다. 김승유(박시후)와 인생을 함께 할 수 있을지도 알 수 없으나, 설령 가능하다 해도 사랑하는 사람 앞에 평생 고개 못 들 죄인으로 살아야 하는 것이 그녀의 운명입니다. 한동안 가슴에 칼을 품고 앉은 채로 선잠을 자야 했던 김승유는, 이제 모처럼 세령의 어깨에 기대어 깊은 잠에 빠져듭니다. 아무도 믿..