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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도의 남자' 임시완, 소름끼치는 악역 변신에 숨이 멎을 뻔! 본문

종영 드라마 분류/적도의 남자

'적도의 남자' 임시완, 소름끼치는 악역 변신에 숨이 멎을 뻔!

빛무리~ 2012. 3. 29. 08: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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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공 김선우와 라이벌 구도를 이루는 역할이니, 이장일이라는 캐릭터가 근본적으로 아주 선한 인물일 수는 없었습니다. 김선우의 선량함이 부각되면 될수록, 상대적으로 이장일은 악역일 수밖에 없었지요. 하지만 요즘의 악역은 예전과 달리 무척이나 매력적이지 않습니까? 나쁜 짓을 하더라도 충분히 납득할만한 이유가 있고, 어쩔 수 없는 상황에 몰려 고뇌하는 모습은 연민을 불러 일으킵니다. 언제나 흔들림 없이 선량한 주인공보다, 오히려 야누스적인 내면과 역동적인 변화를 보여주는 악역 캐릭터에 많은 시청자는 열광하곤 하지요. 이장일은 분명 그런 캐릭터일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드라마 '적도의 남자'에서 동정의 여지가 없는 '악의 축'은 따로 있었습니다. 중견탤런트 김영철이 연기하고 있는 진노식 회장이 그 인물이죠. 그러니 굳이 이장일을 아주 나쁜 놈으로 만들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프롤로그에서 잠시 등장했던 성인 역할의 김선우(엄태웅)과 이장일(이준혁)은 어린 시절과 별다를 것 없는 친구 사이로 보였습니다. 두 젊은이는 오랜 세월 동안 마음을 합해 진노식 회장을 향한 복수를 꿈꾸어 온 것 같았지요. 그런데 불과 2회만에, 아직은 파릇한 아역 배우들이 연기하는 중인데, 벌써부터 이장일은 돌이킬 수 없는 악역의 길로 접어들었습니다. 아, 이건 너무나 잔인했어요.

김선우(아역 이현우) 아버지 김경필의 죽음은 자살로 종결되고, 수개월이 흘렀습니다. 이장일(아역 임시완)은 서울의 명문 법대에 진학하고, 진노식 회장의 지원으로 풍족한 살림까지 하게 됩니다. 이것은 물론 장일의 아버지 이용배(이원종)가 진노식의 하수인이 되어 김경필의 마지막 숨통을 끊고 시체를 처리해 준 대가였지요. 이장일은 고향 부산에서부터 마음에 두었던 한지원(아역 경수진)이 같은 대학 영문과에 다니고 있음을 알고 반가워하며 적극적인 대쉬를 시작합니다. 그러나 한지원의 마음은 진노식의 승용차 창문을 박살내던 밤, 스치듯 짧고도 강렬한 인상으로 마주쳤던 김선우의 모습을 잊지 못하고 있군요.

한편 김선우는 의문 투성이인 아버지의 죽음에 고민하다가 진정서를 넣기로 결심합니다. 문제의 가짜 유서는 분실되었지만 그 사진이 경찰서에 남아있음을 알고, 아버지 생전의 흔적이 남아있는 다른 서류들과 함께 가능한 증거 자료를 모아서 끝까지 진실을 밝혀내기로 마음을 굳힌 것입니다. 짬을 내어 김선우를 만나러 부산에 내려온 이장일은 기꺼이 물심양면으로 도울 것을 약속하는데, 든든한 빽을 소개해 준답시고 연결해 준 인물이 바로 진노식입니다. 김선우는 아버지 김경필이 진노식, 문태주와 함께 찍었던 오래된 사진을 본 데다가, 시체로 발견되기 전날 아버지를 진노식네 공장 앞까지 태워다 주었다는 택시 기사의 증언을 들었기에, 몇 가지 사실을 확인할 겸해서 이장일을 따라 진노식 회장을 만나러 갔지요.

제 손으로 죽인 자의 아들이 찾아와 사건의 진상을 밝히겠다며 도움을 요청하는데, 그 충격적인 상황에서도 진노식의 얼음같은 포커페이스는 한 치의 흔들림이 없습니다. 사진을 함께 찍은 김경필과 문태주(정호빈)는 오래 전의 직원이었을 뿐 기억나지 않는 사람이라며 시치미를 떼고, 사건 당일에 자기는 이 곳에 없었노라며 깨끗이 발뺌을 하는군요. 그래서 김선우는 소득없이 돌아갔지만, 허를 찔린 진노식의 울화통은 이용배를 향해 폭발합니다. 살인 공범의 행적을 들키기 싫거든 어린 녀석들이 도발하지 못하게 단속하라고 이용배를 마구 몰아붙이는데, 하필 문 밖에서 이장일이 그 모든 이야기를 듣고 말았군요. 선우 아버지를 죽인 사람이 다름아닌 자기 아버지였음을 알게 된 장일은 미친듯이 울부짖으며 선우에게로 달려갑니다.

보통 사람 같으면 극심한 혼란에 빠져 어쩌면 좋을지 몰라 우왕좌왕 했으련만, 이장일은 독하고 냉철한 성격답게 아주 짧은 시간에 자신의 노선을 결정했습니다. 김경필 죽음의 진상을 파헤치려는 김선우를 적극 만류해서 이대로 덮게 만들자는 것이었죠. 그래야만 자기 아버지도 무사하고, 자기 앞에 펼쳐진 탄탄대로의 앞날도 무사할 테니까요. 이장일은 가구 공장에 취직하려는 김선우를 만류하며, 자기와 서울에서 함께 지내며 대학 입시를 준비하자고 설득합니다. 진정서 따위는 포기하고, 어차피 자살로 판명된 아버지의 죽음에 집착해서 허송세월을 보내지 말고, 너 자신의 앞날을 위해 힘쓰라는 그럴듯한 핑계였죠.  

하지만 당연히 김선우는 말을 듣지 않고, 이장일은 무릎까지 꿇으며 애원합니다. "내가 너희 아버지를 죽였다! 내 실수로 너희 아버지가 돌아가셨다고 치자. 그러니 제발 나를 용서해 줘. 경찰서에 가지 마라!" 장일의 입장에서는 자기 아버지의 죄를 대신 덮어쓰려는 발언이었지만, 선우가 듣기에는 미친 놈 횡설수설하듯 이상한 소리였을 뿐이죠. 그래도 선우는 차분하고 의연하게 대답하는군요. "네가 우리 아버지를 실수로 돌아가시게 했다면, 나는 너를 인간적으로 용서할거야. 하지만 밝힐 건 밝혀야 해. 어떤 말로도 나를 설득할 수 없어!"

 

결연히 돌아서 걸어가는 선우의 뒷모습을 바라보던 장일의 눈에, 각목으로 써도 좋을만큼 길쭉하고 두툼한 나무줄기가 들어옵니다. 왜 하필 그런 것이 바닷가에 떨어져 있었는지... 천연 몽둥이를 집어들고 선우의 뒤를 따르는 장일의 눈빛은 이미 좀전과 달라져 있습니다. 악마에 홀린 듯 몽롱하면서도 기이하게 번뜩이는... 그 차가운 눈빛을 보는 순간 제 온 몸은 얼어붙고 말았네요. 아직 신인에 불과한 임시완의 괴물같은 연기력이 그 장면에서부터 폭발하기 시작합니다.

아무 대가도 없이 자기를 구하려 사채업자들과 싸워준 선우... 자기가 저지른 장파열 상해죄를 대신 덮어쓰고 정학을 당하면서도 꿋꿋이 비밀을 지켜준 선우... 자기 아버지가 팔에 인두질을 당할 때도 용감히 나서서 구해준 선우... 몇 번이나 자기 때문에 다치고 누명쓰고 곤경에 처하면서도 천금같은 우정으로 자기 편이 되어준 친구... 그런 김선우의 뒤통수를 향해 이장일은 가차없이 몽둥이를 후려칩니다. 친구의 무릎이 꺾이고 상체가 휘청이는 것을 보며, 이를 악물고 다시 한 번 후려칩니다. 쓰러진 선우의 흐릿한 시선이 장일의 얼굴을 올려다보는데...

 

이장일은 김선우의 몸을 질질 끌고 낭떠러지로 다가가, 깊은 바다 속으로 밀어 떨어뜨리는군요. 이것은 결코 실수 따위가 아닙니다. 경찰서에 진정서를 내지 못하게 막으려고 잠깐 기절시키려던 것도 아닙니다. 이것은 명백히 죽이려는 의도를 가지고 저지른 살인미수입니다. 야심으로 가득찬 이장일에게, 자기 앞날을 가로막는 김선우의 존재는 더 이상 친구가 아니라 제거해야 할 장애물에 불과했던 거죠. 이렇게 되면 이장일은 진노식보다 나을 게 하나도 없는 악역입니다. 이 극악한 행위를 어떤 말로 변명할 수 있겠어요?

어쩌면 김선우에게 있어, 이용배와 이장일 부자는 진노식보다 더욱 끔찍한 원수입니다. 김경필은 진노식에 의해 목이 졸렸지만 아직 살아 있었는데, 그 때 치료만 받았더라면 얼마든지 천수를 누릴 수도 있었던 사람인데, 이용배가 그 마지막 숨통을 끊고 나무에 매달았습니다. 김선우가 가족처럼 진심으로 아끼던 친구 이장일은, 자기 야욕을 위해 우정을 배신하고 그를 죽음의 바다에 몰아넣었습니다. 훗날 죽지 않고 살아난 김선우가 시력을 잃게 되는 이유도, 어쩌면 그 때 머리에 가해진 충격 때문인지 모르겠군요. 도대체 얼마나 착한 사람이면, 서릿발같은 이 원한을 용서하고 이장일을 다시 친구로 받아줄 수 있을까요? 

 

김선우만 죽여서 입을 봉하면 진실은 영원히 파묻힐 거라고 이장일은 믿었겠지만, 정작 불씨는 엉뚱한 곳에서 살아남아 훨훨 타오를 준비를 갖추고 있었습니다. 그 날 밤, 김경필 살인사건 현장을 두 눈으로 목격한 박수무당 최광춘(이재용)과 그의 딸 최수미(아역 박세영)였죠. 최광춘은 그 일을 빌미로 이용배를 협박하여 돈이나 뜯어내려던 허접한 인간성의 소유자이고, 최수미는 제 아비보다 훨씬 독한 성품의 야심만만한 여자입니다. 더구나 최수미는 이장일을 짝사랑하다가 사정없이 자존심을 짓밟히며 걷어채이고 복수심을 불태우는 중이니, 때마침 그녀의 손에 들어온 엄청난 비밀의 열쇠는 이장일의 목을 죄기에 더없이 좋은 도구가 되겠군요.

이렇게 해서 둘도 없는 친구를 죽이면서까지 간절히 출세를 원했던 이장일은 헛되이 살인자가 되고 말았습니다. 이제 그의 인생에 남은 것은 어둠과 죄악과 절망뿐입니다. 한편으로는 김선우에 대한 죄책감에 시달릴 것이고, 한편으로는 최수미의 끝없는 도발을 견제해야 할 것이며, 그 과정 중에 또 다른 범죄가 발생할 가능성이 매우 높습니다. 아무리 발버둥쳐도 깊은 수렁에서 빠져나오지 못할 것이고, 그 어느 곳에도 마음의 평안과 행복은 없을 것입니다.

 

한 순간에 돌이킬 수 없는 나락으로 떨어진 스무 살 청년 이장일의 캐릭터를, 임시완은 더 이상 바랄 것 없는 완벽한 연기로 120% 형상화시켰습니다. 악령에 조종당하듯 희번덕거리는 눈빛... 무의식 중에 흘러내리는 악어의 눈물... 부들부들 떨리는 온 몸의 경련... 몽둥이를 들고 김선우의 뒤를 따라오는 장면부터, 그의 뒤통수를 2차례 내리친 후 낭떠러지로 끌고 가 떨어뜨리는 장면까지, 그 몇 분의 시간은 완벽히 임시완에게 압도되어 숨이 멎을 듯한 긴장의 연속이었습니다. 이장일이 설마 그렇게까지 할 줄은 몰랐기에 충격받은 탓도 있지만, 임시완의 훌륭한 연기가 아니었다면 불가능했을 일이죠.

어린 김선우 역할을 맡은 이현우는 어린 시절부터 아역배우로 활약해 온 터라 이미 십여년의 탄탄한 내공을 갖고 있는 베테랑 연기자죠. 그래서 상대적으로 임시완의 연기가 조금은 뻣뻣해 보였던 것도 사실입니다. 하지만 2회 후반에 제대로 포텐이 터지면서, 임시완은 단숨에 자신의 존재감을 이현우와 동급으로 올려놓았군요. 앞으로는 누군가 저에게 "아이돌 출신 중 최고의 연기자가 누구라고 생각하느냐?" 묻는다면, 고민할 것도 없이 임시완의 이름을 말하게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이제 바통을 이어받을 이준혁은 '아역의 저주'에 걸리지 않도록 철저한 준비와 노력을 거듭해야만 할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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