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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무리의 유리벽 열기
운명의 그 날 이후, 많은 것이 달라졌다. 지구를 향해 돌진해 오던 소행성 2013QR3은 다시 경로를 바꾸어 지구의 위성이 되어 버렸고, 밤하늘에는 거짓말처럼 두 개의 달이 떠올랐다. 지구의 종말과 죽음을 예감하며 공포에 떨던 사람들은 저마다 치열한 감정의 동요를 느끼게 되고, 그 색다른 내면적 체험들은 더 이상 지구가 위험하지 않다는 사실을 알게 된 후의 삶에도 영향을 미쳤다. 내일이 없으리라 여기며 숨겨왔던 사랑을 고백한 사람들 중 몇몇은 상대방의 적극적인 호응을 얻어 그 날부터 꿈 같은 연애를 시작했는데, 그 중에는 8살난 규호와 혜림이 커플도 있었다. 사랑하고 뽀뽀하는 것은 어른이 되고 나서 해도 늦지 않다고 규호 엄마 노보영(최송현)은 타이르지만, 염세적 종말론자(?)인 규호는 어른이 되기 전..
드라마 '못난이 주의보' 내에서 나인숙(이일화)의 캐릭터는 꽤나 독특하다. 현실에서는 오히려 흔한 인물일지도 모르지만, 드라마 속에서는 눈꼴이 실 정도로 열심히 튀는 중이다. 매사에 명철하면서도 너그러운 아버지 나상진(이순재) 회장, 수도승에 가까울 만큼 소탈하고 인내심 깊은 오빠 나일평(천호진) 사장, 부드럽고 순박한 성품으로 주변 사람들의 마음을 배려하는 남편 신태일(김일우) 전무... 경제력으로 대한민국 상위 1%에 속할 사람들이 인품까지 고결하니 나인숙의 가족들은 굉장히 비현실적인 무결점 캐릭터들이다. 그 와중에 나인숙 홀로 지독히 속물적이고 계산적인 데다가 머리까지 나쁘고 참을성 없는 다혈질성격이니 대체 어찌 된 일일까? 같은 피를 나누어 받고 수십년 동안이나 함께 살아가는데 어쩌면 그렇게도 다..
글쎄, 잘 모르겠다. 그저 사람마다 타고난 운명과 팔자가 제각각이라는 말 밖엔 할 수가 없다. 분명 머리로는 바람직하지 않은 일이라고 생각하는 중이다. 이제 17세, 고등학교 1학년이라면 분명히 미성년자다. 만으로 15세~16세일 것이다. 나는 아무리 연예인이라도 미성년자들이 성인 컨셉으로 등장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아이들의 행복한 인생을 위해서는 너무 일찍 어른이 되는 것보다 제 나이에 걸맞는 체험이 중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유승호가 고등학교 2학년의 나이로 8세 연상의 서우와 부부 연기를 선보이며 치정 멜로에 출연할 때도 나는 심한 거부감을 느꼈고, 갓 중학교에 입학한 14세 소녀 김유정이 성인 컨셉의 섹시 화보를 찍었을 때는 깊은 한숨을 쉬었다. 섹시 댄스를 추는 아이돌 걸그룹을 바라볼 ..
노인정 같은 곳에서 홀로 되신 남녀 노인분들이 만나 교제를 한다는 이야기를 들으면, 젊은 사람들은 흔히들 가볍게 생각한다. 답답한 일상을 달래주는 하나의 취미 생활처럼, 그저 무료한 대낮에 만나서 쌍화차를 마시며 손주들 이야기나 주고받는 그런 관계일 거라고 여긴다는 말이다. 청운의 꿈을 간직하거나 미래를 설계할 시기도 아니고 체력도 약해져 버린 나이에 연애를 시작한다 해서, 어찌 젊은 날처럼 뜨겁고 열정적인 사랑을 나눌 수 있겠는가 하는 선입견 때문이다. 하지만 사실은 전혀 다르다고 한다. 늦은 나이일수록 일단 사랑을 시작하게 되면 '이것이 내 삶의 마지막 사랑'이라는 생각 때문에 걷잡을 수 없이 빠져든다는 것이다. 가족과 전재산을 버릴 만큼 올인할 수도 있으며, 간혹 삼각관계가 형성되면 거친 몸싸움이나..
도대체 공준수(임주환)는 죽은 이경태의 아버지(안석환)를 만나서 무슨 말을 하려는 건지 궁금했었다. 사과나 변명도 아니라면서 그토록 간절히 하고 싶은 말이 무엇일까? 가뜩이나 원한과 고집으로 가득찬 노인의 마음은 어떤 말도 듣지 않으려 하는데... 드디어 96회에서 그 말의 정체가 드러났다. 한편으로는 놀랍고 가슴 아팠지만, 한편으로는 실망스러운 내용이었다. 공준수는 남동생 공현석(최태준)을 보호하기 위해, 그 살인 사건의 진실을 영원히 꽁꽁 묻어두기 위해 스스로 목숨을 버릴 결심을 했던 것이다. 그 마음의 본질 하나만 놓고 본다면 참으로 숭고하다. 타인을 위해 자기 목숨마저 아낌없이 내놓는다는 것은 결코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니까, 인간의 본능적인 이기심을 완벽히 억누른 사랑의 고결함에 대해 왈..
오로라(전소민)과 황마마(오창석)의 결혼이 확정되자, 이른바 '욕하면서 보던' 막장 러브라인이 일단은 종결된 셈이라 급격히 흥미가 떨어진 느낌이다. 원래대로 120회에서 마무리될 예정이었다면 더 이상의 변수는 기대하기 어렵겠지만, 무려 30회나 연장하는 바람에 앞으로도 50회를 넘기는 분량이 남아 있으니, 이제부터 새로운 이야기가 시작된다 해도 이상할 게 없다. 아무리 드라마 속 일이라도 행복한 결혼식을 보면 덩달아 입가에 미소가 지어지는 게 인지상정이거늘, 신랑 신부가 행복하게 웃을수록 못마땅해지는 까닭은 무엇일까? 그 동안 이 신혼부부의 염치없는 행위들을 바라보며 꼬여버린 심정은 저절로 또 다른 태풍을 기대하게 된다. 메인 스토리가 제1막을 내리며 한숨 돌리는 요즘, 주변인들의 이야기가 한창 물이 올..
감옥에 있는 동안 공준수(임주환)는 죽은 이경태의 부친(안석환)에게 3통의 편지를 보냈다. 하지만 이경태의 부친은 그 편지들을 뜯지도 않고 반송시켰다. 그 어떤 변명도 사과도 듣지 않겠다는 완강한 태도였다. 공준수는 이경태 부친에게 꼭 하고 싶은 말이 있어서 편지를 보냈지만, 상대가 거부함으로써 전달되지 않았던 것이다. 할 수 없이 공준수는 출소 후 반드시 이경태 부친을 직접 찾아가 만나야겠다고 결심했다. 도대체 무슨 말을 그토록 간절히 하고 싶었던 걸까? 물론 변명을 하려는 것도 아니고, 살인의 진실을 밝히려는 것도 아니다. 자기 목숨보다 소중한 동생들을 지키는 것이 공준수 일생 최대의 목표인데, 살인 사건의 진실은 남동생 공현석(최태준)과 긴밀히 얽혀 있기 때문에 공준수로서는 절대로 말할 수 없는 것..
오랜 꿈이었던 완구회사 '콩콩'에 무급 인턴으로 취직한 나진아(하연수)는 첫 출근을 하던 날 아침부터 불길한 기운에 휩싸인다. 엄마한테서 옮은 감기몸살 때문에 컨디션도 최악이었고, 던져주는 음식을 입으로 받아먹는 데는 한 번도 실패한 적 없던 '물개' 나진아가 놀랍게도 인절미를 받아먹지 못하고 떨어뜨렸던 것이다. 결코 순탄치 않을 그녀의 회사 생활을 암시하는 장면이었다. 젊은 사장 노민혁(고경표)은 신입사원들에게 강연을 한답시고 줄줄이 자기 자랑을 늘어놓는다. "내가 하버드에 있을 때 말이야. 두 번이나 전액 장학금을 받게 된 적이 있었지. 하지만 두 번 다 내가 거절했어? 왜냐고? 내가 내 점수에 만족을 못했거든. 스스로 만족할 수 없는 점수를 가지고 장학금을 받는다는 건 용납할 수가 없었어. 자존심은..
"얼굴 안돼 보이진 않아요?" 설설희(서하준)의 입에서 이 한 마디가 나오는 순간, 나의 눈시울이 세번째로 젖어들었다. 얼마나 사랑했는지, 얼마나 절실했는지, 이제껏 오로라(전소민)을 향해 왔던 설설희의 마음은 그 한 마디에 모두 담겨 있었다. 그토록 모질게, 진심어린 사과 한 마디 없이, 끝내 그의 이해와 배려만을 요구하며 이별을 통보한 그녀였다. 그도 사람인데 어찌 분노가 치밀지 않았으랴! 오로라는 무례한 이별 통보를 끝낸 후 잽싸게 먼저 차에 올라탔고, 설설희가 칼에 찔린 가슴을 채 봉합도 못한 상태로 운전석에 들어오자 "불편하면 따로 갈게요" 라고 말했다. 남자의 인내심을 테스트라도 하는 것처럼, 더 이상 뻔뻔할래야 그럴 수 없는 정도였다. 아무리 몰락했어도 '공주'는 이래서 '공주'인 것일까? ..
'감자별' 2회까지 시청한 느낌이 매우 좋다. 개인적으로는 '하이킥' 시리즈나 그 이전의 명작들보다 출발이 훨씬 좋은 듯하다. 각각의 캐릭터 구축이 확실함은 말할 나위도 없거니와, 내가 김병욱표 시트콤에서 유난히 즐기는 그 뭐랄까, 아련하고 애틋한 느낌이 초반부터 여실히 살아나고 있기 때문이다. 보통의 경우 스텐레스 김은 청춘남녀의 러브라인을 복잡하고 아리송하게 꼬아서 중반을 넘기도록 예측 불가하게 만들곤 하는데, 이번에는 어찌 된 셈인지 단 2회만에 두 남녀의 러브라인이 아주 또렷한 선을 그리며 급물살을 타기 시작했다. 물론 이대로 확정이라고 볼 수야 없겠지만, 어쨌든 김병욱의 다른 작품에서는 거의 본 적 없는 독특한 전개인 것만은 확실하다. 아, 그런데 미처 감정이 무르익을 새도 없이 초고속으로 진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