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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못난이 주의보' 공준수 최후의 선택, 실망스러웠던 이유 본문

종영 드라마 분류/못난이 주의보

'못난이 주의보' 공준수 최후의 선택, 실망스러웠던 이유

빛무리~ 2013. 10. 5. 06: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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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대체 공준수(임주환)는 죽은 이경태의 아버지(안석환)를 만나서 무슨 말을 하려는 건지 궁금했었다. 사과나 변명도 아니라면서 그토록 간절히 하고 싶은 말이 무엇일까? 가뜩이나 원한과 고집으로 가득찬 노인의 마음은 어떤 말도 듣지 않으려 하는데... 드디어 96회에서 그 말의 정체가 드러났다. 한편으로는 놀랍고 가슴 아팠지만, 한편으로는 실망스러운 내용이었다. 공준수는 남동생 공현석(최태준)을 보호하기 위해, 그 살인 사건의 진실을 영원히 꽁꽁 묻어두기 위해 스스로 목숨을 버릴 결심을 했던 것이다. 그 마음의 본질 하나만 놓고 본다면 참으로 숭고하다. 타인을 위해 자기 목숨마저 아낌없이 내놓는다는 것은 결코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니까, 인간의 본능적인 이기심을 완벽히 억누른 사랑의 고결함에 대해 왈가왈부할 수는 없다.

 

하지만 아무리 숭고한 사랑의 선택이었다 해도 공준수의 결심은 잘못된 것이었다. 그가 죽음으로써 수많은 사람이 겪어야 할 고통에 비하면, 죽음의 대가로 얻는 것은 지극히 미미한 까닭이다. 아니, 고통이나 대가를 운운할 필요도 없다. 자기 목숨을 버림으로써 타인의 생명을 구할 수 있는 경우라면 모를까 (이를테면 날아오는 수류탄을 자기 몸으로 막아 부하들을 구한 장교처럼), 단지 동생의 실수를 덮어주기 위해서 죽는다는 것은 희생이라기보다 자살에 가깝기 때문이다. 아무리 의도가 좋았다 해도 자살은 옳지 않은 선택이다.

 

 

더구나 지금 공준수에겐 그를 사랑하는 가족들과 연인이 있다. 이제 스스로 목숨을 버린다면, 자기를 믿고 사랑해 주었던 그 많은 사람들의 아픔에는 또 어찌 속죄할 것인가? 공준수가 그렇게 떠나면 동생들은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을까? 그에게 인생을 걸었던 연인 나도희(강소라)는 과연 망가지지 않고 다시 일어설 수 있을까? 이건 아니다. 만약 감옥에 있을 때였다면 (물론 그것도 안 되는 일이지만) 지금의 상황보다야 좀 나았겠지만, 지금은 절대로 생각조차 해서는 안 되는 일이다. 공준수의 선택은 그래서 실망스러웠다.

 

게다가 이경태 부친의 성품에 따라서는 개죽음이 될 가능성도 있다. 그가 인간 이하의 잔인함과 비열함을 지녔다면, 공준수가 죽은 후에도 여전히 공현석의 사건 관련 여부를 계속 캐내려 할 수도 있다. 그가 정상적인 인간의 성품을 지녔다면, 벌써 10년이나 옥고를 치르고 나와서 진심으로 사죄하는 사람에게 "내 아들이 죽었으니 너도 똑같이 죽어라!" 하지는 않을 것이다. 설령 홧김에 그렇게 외쳤다 해도, 정작 눈 앞에서 사람이 죽으면 충격받아 제정신이 아닐 것이고 또 한 번 큰 상처를 입게 될 것이다. 평소 영민한 그답지 않게 어쩌면 이리도 단순하고 미련한 생각을 했을까? 따지고 보면 공준수의 결심은 그 누구를 위한 것도 아니었다.

 

 

이경태의 부친을 만나 편지를 전달하고 돌아온 후, 공준수는 신변 정리를 시작한다. 음식 솜씨를 발휘하여 동생들에게 마지막으로 진수성찬을 차려 주고, 태어날 조카를 위해 아기 용품을 잔뜩 선물하고, 평생 친구처럼 아버지처럼 의지해 온 만돌 아저씨에게도 멋진 옷을 선물한다. 사랑하는 도희와는 애끓는 속마음을 숨긴 채 행복한 데이트를 즐기며 다정히 말한다. "나한테 넌 이미 집이야. 너 때문에 쉴 수 있고, 너 때문에 따뜻하고, 너 때문에 잠들 수 있으니까... 그러니까 많이 기다려야 해도 안타까워하지 마. 내가 보이지 않는다고 찾아 다니면서 불안해하지도 마... 아무데도 갈 수 없다는 거 잘 알잖아. 아무데도 가지 않고 꼭 네 옆에 있을 거야...

 

아, 이것은 내가 사춘기 시절에 그토록 열광하던 영혼의 사랑이다. 그 당시 나는 진짜 사랑한다면 곁에 있지 않아도 상관없고 심지어는 죽어도 상관없을 거라고 생각했었다. 사랑한다면 그 영혼이 항상 곁에 있을 것이기에, 그 영혼의 사랑만으로 넘치고 충분할 것이기에, 요즘 '주군의 태양' OST에 나오는 가사처럼 "만질 수가 없어도 돼. 안을 수도 없어도 돼" 라고 진심으로 생각했던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인간의 사랑이 어떤 것인지를 전혀 몰랐던 어린 시절의 환상이었다. 그런데 느닷없이 30대의 어른 남자 공준수가 저렇게 유치하고 낯 간지러운 소녀적 감성의 대사를 읊어대다니! 만약 불가항력적인 죽음을 맞이해야 하는 상황이라면 큰 감동으로 다가올 수도 있었겠지만, 의지적으로 죽음을 선택한 상황에서는 또 다른 형태의 배신일 뿐이었다.

 

누가 봐도 죽음을 앞두고 신변 정리를 하는 모습이었지만, 그래도 나는 설마 아니겠지 하면서 애써 부인하려 했다. 도대체 어쩌자고 그런 선택을 한다는 건지 이해할 수가 없었고, 무엇보다 이제껏 보아 온 공준수의 성품과 어울리지도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내가 부인한다 해서 이미 정해진 스토리가 바뀌는 것은 아니었다. 공준수는 이경태 부친의 분노를 잠재우고 현석을 보호하기 위해 죽음을 선택했다. 이경태의 부친은 공준수를 고층 건물 옥상으로 불러내, 이 편지에 쓴 말들이 진심이라면 난간에 올라서라고 명령한다. 죽을 생각도 없으면서 용서받기 위해 얄팍한 수를 쓴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정작 공준수가 난간에 위태롭게 올라서자 이경태 부친의 얼굴은 새하얗게 질렸다.

 

 

하지만 이 노인은 휠체어에 앉아 벌벌 떨면서도 참 독하기 이를 데 없었다. "내 아들의 죽음에 네 동생놈은 정말 죄가 없단 말이냐? 정말 너 혼자 한 일이란 말이지?" 하고 다그쳐 묻더니 공준수가 맞다고 대답하자 "그럼 네가 원하는 대로 내 아들한테 가서 용서를 빌어!" 라고 명하는 것이었다. 난간에 올라서는 것까지는 할 수 있어도, 설마 뛰어내리지는 못할 거라고 믿었던 모양이다. 그런데 공준수는 눈물을 흘리면서도 한 발을 성큼 앞으로 내딛었고, 노인은 소스라치게 놀라며 당혹스런 표정으로 손을 뻗었다. 그것이 96회의 엔딩이었다.

 

물론 공준수가 이대로 죽지는 않을 것이다. 작품성을 위해서는 분량을 줄여도 시원찮을 판에 13회 연장이 결정되었으니 앞으로도 40회 가까운 분량이 남아 있는데, 주인공이 여기서 죽을 수야 없지 않겠는가? 어떻게 살아날지는 모르겠지만, 이 사건은 공준수에게 큰 이익으로 돌아올 것이다. 이제 이경태의 부친은 죽음으로써 자기 아들에게 사죄하겠다는 공준수의 말이 진심이었음을 알게 되었다. 일단 믿음이 생겼으니, 공현석이 무죄하다는 공준수의 말도 자연스레 믿어 줄 가능성이 높다. 결국 공준수의 무리한 선택은 이 노인의 깊은 원한을 풀어주기 위해서 필요했던 것이다. 물론 이경태 부친의 원한은 꼭 풀고 넘어가야 할 매듭이었다. 하지만 이렇게 억지스럽고도 안일한 방법이라니, 역시 이건 좀 실망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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