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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못난이 주의보' 나인숙(이일화)은 왜 지옥문을 열었을까? 본문

종영 드라마 분류/못난이 주의보

'못난이 주의보' 나인숙(이일화)은 왜 지옥문을 열었을까?

빛무리~ 2013. 10. 22. 07: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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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못난이 주의보' 내에서 나인숙(이일화)의 캐릭터는 꽤나 독특하다. 현실에서는 오히려 흔한 인물일지도 모르지만, 드라마 속에서는 눈꼴이 실 정도로 열심히 튀는 중이다. 매사에 명철하면서도 너그러운 아버지 나상진(이순재) 회장, 수도승에 가까울 만큼 소탈하고 인내심 깊은 오빠 나일평(천호진) 사장, 부드럽고 순박한 성품으로 주변 사람들의 마음을 배려하는 남편 신태일(김일우) 전무... 경제력으로 대한민국 상위 1%에 속할 사람들이 인품까지 고결하니 나인숙의 가족들은 굉장히 비현실적인 무결점 캐릭터들이다. 그 와중에 나인숙 홀로 지독히 속물적이고 계산적인 데다가 머리까지 나쁘고 참을성 없는 다혈질성격이니 대체 어찌 된 일일까? 같은 피를 나누어 받고 수십년 동안이나 함께 살아가는데 어쩌면 그렇게도 다를 수 있을까?

 

오빠에 대한 경쟁심이라든가, 회사 경영권에 대한 집착과 탐욕은 인간적인 차원에서 이해할 수도 있었다. 지고 싶지 않은 마음과 더 많이 갖고 싶은 마음은 사람이면 누구나 갖고 있는 거니까. 하지만 딸 신주영(신소율)에 대한 병적인 집착은 아무리 이해해 보려 해도 불가능했다. 아무리 자식이라도 엄연히 자기 생각과 감정을 지닌 인격체인데, 마치 사이보그를 훈련시키듯 딸의 인생을 자기 마음대로 조종하려는 엄마의 태도는 정말 끔찍했다. 덕분에 신주영은 서른 살 가까운 나이가 되었음에도 무엇 하나 독자적으로 결정할 줄 모르는 마마걸로 성장했다. 그러다가 공현석(최태준)을 만나 사랑에 빠지면서 난생 처음 자기 주장이라는 것도 해보고 눈물겹게 엄마와 맞서는 중이지만, 그게 도통 쉽지가 않다. 나인숙의 비뚤어진 아집과 탐욕은 예상보다 훨씬 강렬했고, 자기 내면의 악마에 굴복한 그녀는 결국 지옥문에 발을 들여놓고 말았던 것이다.

 

 

이한서(김영훈)는 명백한 악역이다. 어느 인터넷 신문 기사에서 이변호사를 악역이 아니라고 주장하는 내용을 읽고 아연실색했던 기억이 있는데, 아무리 탐욕이 인지상정이라 해도 자기 욕심을 위해 그렇게까지 남의 인생을 짓밟는다면 두말할 나위 없는 악역이 맞다. 그 기사를 쓴 사람의 기준에서 보면 대체 어느 정도가 되어야만 악역인 걸까? 나는 솔직히 방정자(송옥숙)도 악역의 범주에 포함시키고 있었는데, 최근 개과천선한 이후로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어 버려서 좀 당혹스러워하는 중이다. 다른 건 몰라도 며느리의 뱃속에 잉태된 자신의 첫 손주를 반가워하기는 커녕, 너희는 아직 준비가 되지 않았으니 낙태를 시키라고 종용했던 사실만큼은 좋게 포장해서 생각할 수가 없는 까닭이다. 올바른 인격을 지닌 사람이라면, 행여 실수로도 그럴 수는 없는 일이다. 어쨌든 갑자기 딴 사람이 되어버린 방정자를 제외한다면 '못난이 주의보'의 악역은 두 사람이 남았다.

 

105회까지는 (내 기준에서) 나인숙의 캐릭터가 악역에 포함되지 않았지만 106회부터는 악역으로 돌아섰다. 포악스럽긴 하지만 가끔은 귀엽다는 생각이 들 만큼 단순한 성격이라 별로 경계하지도 않았던 게 사실이다. 태어나면서부터 길들여진 딸 신주영이나 그녀에게 쩔쩔 맬 뿐, 아무리 나인숙이 혼자 앙탈을 부려봐야 다른 사람들은 눈 하나 깜박이지 않을 거라고 믿었다. 그런데 이 단세포 아줌마가 제대로 뒤통수를 쳤다. 설마 이렇게까지 할 거라고는 아무도 예상치 못한 일이었다. 이로써 지옥문이 열렸고, 나인숙이 자기 목숨보다 아끼던 딸 신주영의 인생은 수렁 속으로 빠져들게 되었다. 이변호사를 사위로 맞고 싶은 욕심을 자제할 길 없던 나인숙은 자기 딸에게 관심없는 그의 마음을 돌리기 위해 끝내 해서는 안 될 제안을 하고 말았던 것이다.

 

"더 구미가 당기는 제안을 하라고 했던가요? 열 손가락 깨물어서 안 아픈 손가락 없다고 하죠? 하지만 꼭 그런 것만은 아니에요. 부모한테 못난 자식은 더 아픈 법이죠. 우리 엄마한텐 제가 그런 자식이었어요. 똑똑한 오빠 그늘에 가려져셔 기도 못 펴고 대학도 못 나오고 눈치꾸러기인 제가 눈에 밟혀서 병석에 누워서도 애달파 하셨죠. 그래서 돌아가시기 전에 저한테 아무도 모르게 유산을 좀 남겨 주셨어요. 저를 생각해 주신 어머니의 마음이 지극해서였던지 저는 그 돈을 꽤 유용하게 굴렸고 제법 큰 돈이 됐어요. 예전엔 우리 회사 주식이 별로 비싸지 않았죠. 그 때부터 우리 주영이를 위해서 조금씩 사 모으기 시작했어요. 그 주식이 몇 주나 되는지 궁금하지 않아요?"

 

 

늙은 아버지와 반백의 오빠가 평생토록 피땀 흘려 일구어 온 기업을 나인숙은 이토록 쉽게 악마의 손에 넘기려 하고 있었다. 이한서와 신주영이 결혼하면 막강한 남편의 도움을 받아 신주영의 위상이 올라갈 거라고 나인숙은 생각하는 모양이지만 그건 착각이다. 철없고 나약한 신주영은 독하고 음흉한 이한서를 결코 감당해낼 수 없기 때문이다. 혹시 이들이 결혼하게 된다면, 신주영은 철저히 남편에게 짓밟히고 이용당한 후 버림받을 것이다. 그보다 더 불행한 삶이 있을까? 사랑하는 공현석과 강제로 이별하고, 치를 떨도록 싫어하는 이한서와 결혼해서 몸과 마음을 짓밟히게 된다면 신주영의 약한 멘탈로는 미쳐 버릴지도 모를 일이다. 그런데 아무래도 낌새가 좋지 않다. 나인숙의 제안에 솔깃한 이한서가 본격적으로 신주영에게 마수를 뻗치기 시작한 것이다. 그는 얼마 전 나도희(강소라)를 향한 마음을 접겠노라 선언했는데, 마침 시기도 절묘하게 맞물렸다.



나도희에게는 약간이나마 진심이었기에 그녀의 호감을 얻으려고 노력도 했었지만, 신주영에게는 처음부터 달랐다. 어차피 이용해 먹으려는 목적이기 때문에 그녀의 호감 따위는 전혀 필요 없었던 것이다. 순순히 자기 말을 듣게 하기 위해서는 약점을 틀어쥐면 그뿐이었다. 불행히도 이한서는 신주영의 목숨줄이 공현석이라는 사실과, 공현석의 숨겨진 과거가 치명적인 약점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아주 잘 알고 있었다. 신주영은 이한서가 내민 한 장의 서류를 보고 삽시간에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그것은 10년 전의 살인사건을 해부학 전문가들이 분석한 자료였고, 거기에는 공준수(임주환)의 단독 범행이 아니라 공범이 있었을 가능성이 농후하다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공범이라면 당연히 그 자리에 함께 있었던 공현석을 지목하는 것이었다.

 

사실 여부가 어떻든 그 사건이 다시 들취지고 공범의 혐의를 받아 피고인이 되면 공현석의 처지는 난감해질 수밖에 없다. 불미스런 사건에 연루되었다는 것만으로도 검사복을 벗어야 할지 모르고, 만약 수사 과정에서 새로운 증거가 나오기라도 하면 (조작이든 뭐든) 꼼짝없이 공범으로 체포되어 인생의 오점을 남기게 될지도 모르는 일이다. 난생 처음 사랑한 남자 공현석을 자기 목숨보다 아끼는 신주영으로서는 그런 불행을 지켜볼 수가 없을 것이다. 더욱이 악랄한 이한서는 그 결정권이 신주영한테 있다고 하질 않는가? 자기 때문에 공현석의 삶이 힘겨워지는 것을 견딜 수 없을 만큼 신주영의 사랑은 깊어질 대로 깊어진 상태다. 과연 그녀는 악마의 청혼을 받아들이고야 말 것인가? 신주영에게 얻어맞은 뺨을 어루만지며 씨익 웃는 이한서의 표정이 섬뜩했다.

 

 

도대체 나인숙이 생각하는 행복은 무엇일까? 딸 신주영을 사랑하고 아끼는 그녀의 마음은 분명 진심이다. 하지만 누구보다 신주영의 인생을 망가뜨리며 불행하게 만들고 있는 사람이 바로 나인숙이다. 이와 같은 모순은 어디에서 비롯된 것일까? 평범한 사람의 기준에서 본다면 나인숙은 지금 행복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 굳이 오빠와 조카를 제치고 BY 그룹의 경영권을 빼앗아 오지 않아도 이미 그녀의 돈방석은 천정까지 닿은 수준이다. 그녀에겐 자상하고 너그럽고 다정한 남편이 있으며, 순진하게 말 잘 듣는 귀여운 딸이 있으며, (만약에 순리를 따른다면) 얼마 후 인품 반듯하고 능력있고 잘 생긴 청년 검사를 사위로 맞이하게 될 것이다. 이쯤이면 중년 여인으로서 더 이상 바랄 게 없는 최상의 행복이라 할만하지 않은가? 그런데 무엇이 부족하길래 나인숙은 아직도 갈증에 시달리며 불만에 가득차 있는 것일까?

 

한 때는 그녀도 사랑에 올인하는 순정파였다. 대학도 포기하고 갓 스물의 나이에 주영을 임신해서 결혼할 만큼, 젊은 날의 나인숙은 신태일을 진심으로 사랑했었다. 그토록 사랑해서 결혼을 했으면 마땅히 행복했어야 할 일이다. 하지만 나인숙은 행복하지 않았던 모양이다. 사랑해서 결혼한 자기 인생이 행복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녀는 딸 신주영이 사랑하는 사람과 결혼하지 못하도록 막아서고 있는 것이다. 나인숙은 왜 불행했을까? 착하고 다정하지만 무능하고 야망없는 남편에게 싫증이 난 것일까? 아니면 가난한 시집 식구들이 툭하면 콩고물이라도 얻어 먹으려고 손을 내밀어 오는 모습에 질리고 만 것일까? 나일평이 제안한 부사장 자리를 신태일이 거절한 이유도 바로 거기에 있었다. 자기가 더 높은 자리에 오르면 자기 식구들이 더 달라붙을 것이고, 아내는 그 성화를 견뎌내지 못할 거라면서 말이다.

 

 

그도 아니라면 똑똑한 오빠의 그늘에서 눈치보며 자라왔던 어린 날의 기억이 너무도 생생하여, 뒤늦은 자존심과 승부욕을 야망이라는 껍질 속에서 불태우고 있는 것일까? 젊은 날에는 분명 사랑의 가치를 알고 있었던 이 순진한 여자가, 이제는 온 힘을 다해 사랑을 거부한다. 악마에게 반해버린 그녀의 미친 질주로 수많은 사람이 다치겠지만, 가장 큰 상처를 입게 될 사람은 사랑하는 딸 신주영이다. 이건 너무 비극적인 운명인데, 그 정확한 이유를 알 수가 없으니 더욱 답답해진다. 나인숙, 그녀는 왜 지옥문을 열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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