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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자별' 고경표, 인생을 살다 보면 물러설 수 없는 싸움이 있어! 본문

종영 드라마 분류/감자별 2013QR3

'감자별' 고경표, 인생을 살다 보면 물러설 수 없는 싸움이 있어!

빛무리~ 2013. 10. 1.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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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 꿈이었던 완구회사 '콩콩'에 무급 인턴으로 취직한 나진아(하연수)는 첫 출근을 하던 날 아침부터 불길한 기운에 휩싸인다. 엄마한테서 옮은 감기몸살 때문에 컨디션도 최악이었고, 던져주는 음식을 입으로 받아먹는 데는 한 번도 실패한 적 없던 '물개' 나진아가 놀랍게도 인절미를 받아먹지 못하고 떨어뜨렸던 것이다. 결코 순탄치 않을 그녀의 회사 생활을 암시하는 장면이었다.

 

젊은 사장 노민혁(고경표)은 신입사원들에게 강연을 한답시고 줄줄이 자기 자랑을 늘어놓는다. "내가 하버드에 있을 때 말이야. 두 번이나 전액 장학금을 받게 된 적이 있었지. 하지만 두 번 다 내가 거절했어? 왜냐고? 내가 내 점수에 만족을 못했거든. 스스로 만족할 수 없는 점수를 가지고 장학금을 받는다는 건 용납할 수가 없었어. 자존심은 그런 거야. 늘 혹독하게 자신을 채점하고 돌아보는 것..." 모두들 간신히 역겨움을 참고 있는데, 한켠에는 어른이 된 미달이(김성은)와 의찬이(김성민)가 서 있다. 몸살 때문에 속이 좋지 않던 나진아는 결국 참지 못하고 그 자리에서 구토를 하는데, 남들 눈에는 사장의 잘난척에 대놓고 시위하는 것처럼 보인다.

 

 

"나진아씨는 나에게 모욕감을 줬어. 왜 토를 한 거야? 내가 그렇게 역겨웠나? 당신을 뽑아준 나를 순식간에 빙구로 만들었어!" 이렇게 말은 했지만, 뜻밖에도 노민혁은 별로 화난 기색이 아니었다. 진짜로 모욕감을 느끼고 불쾌하게 여겼다면, 오이사(김광규)의 제안을 받아들이지도 않았을 것이다. 오이사는 고졸 학력에다가 동종 업계의 경력도 없는 나진아를 오직 포트폴리오만 보고 채용한 노민혁의 혁신적 인사 방침에 반기를 들고, '학력이 곧 실력이다'라는 주장을 펼치며 대졸 신입과 고졸 신입의 대결을 제안했다. 노민혁은 선뜻 받아들인 것은 정말 나진아의 실력을 믿어서였을까? 노민혁은 말했다. "사람이 말이야. 인생을 살다 보면 물러설 수 없는 싸움이 있어. 이건 나한테도 나진아씨한테도 그런 싸움이라고!"

 

하지만 결과는 3:0의 무참한 패배였다. 열정과 의욕만으로 가능한 미션은 하나도 없었던 것이다. 상대방은 명문대 출신에 최고 스펙을 지녔고, 돈 많은 이웃과 부자 친척들도 많았다. 미국인 바이어와의 대화에서 나진아의 초라한 영어 실력은 상대방의 유창한 회화 실력에 처음부터 잘근잘근 밟혔고, 백화점 완구 코너 영업에서는 인맥을 총동원해 친척과 친구를 불러모은 상대방에게 턱없이 밀렸다. 저건 반칙이라고 나진아가 펄펄 뛰며 항의하자 노민혁이 말했다. "영업의 핵심은 '얼마나 파느냐'야. 누구한테 팔든 그게 왜 반칙이지?" 진아는 고개를 숙였다. 그녀의 친구와 친척들은 백화점의 비싼 장난감을 사기엔 모두 가난했던 것이다.

 

 

마지막 힘을 짜내어 박스 나르기 미션에 도전하던 나진아는 몸살 기운이 악화되어 쓰러지고 말았다. "왜 아프다는 말을 안 했어? 보기보다 멍청하네.." 민혁의 말에 진아가 대답했다. "죄송합니다.." 하지만 민혁이 가로막았다. "죄송하다는 말 하지 마. 애초에 싸우질 말든지, 아픈 몸인데도 잘 싸웠다고 박수쳐 줄 사람 없어. 싸워서 지면 그뿐이야!" 그러고는 쌩하니 돌아서 가버린다. 나진아를 대하는 노민혁의 태도는 시종일관 차갑고 딱딱했으며, 한 번도 그녀의 입장을 배려하거나 위로해 준 적이 없었다. 특히 두번째 대결에서 패배한 후, 민혁은 진아에게 말했다. "살면서 한 번도 진 적이 없는 내가 나진아씨 덕분에 처음으로 패배를 경험하는군... 무능하면 열정도 민폐야!" 상처받은 진아는 그 자리에 주저앉아 한참이나 눈물을 흘렸는데...

 

하지만 나는 이상하게도 민혁에게서 따뜻함이 느껴졌다. 서툴고 열정만 가득한 그녀에게 냉혹한 사회의 법칙을 가르쳐 주며, 행여 넘어질까 몰래 그녀의 등을 단단히 받치고 있는 듯한 느낌이었다. 사실 진아가 꿈을 향해 달려갈 수 있도록 실낱같은 희망과 기회를 준 사람도 민혁이 아니었던가! 어차피 그녀의 학력과 스펙으로는 뚫을 수 없는 관문이었는데, 무급 인턴으로나마 들어올 수 있었던 것은 100% 민혁의 은혜였다. 어쩌면 노민혁은 면접장에서 처음 그녀를 본 순간부터 사랑에 빠지고 말았던 게 아닐까? 자기가 앞에서 한창 연설하고 있는 도중에, 자기 사진이 실린 브로셔에다가 누군가 구토를 했다면, 잘난척 대마왕 노민혁의 자존심엔 적잖은 스크래치가 생겼을 법한데, 불쾌함에 멀리하기는 커녕 오히려 계속 자기 옆에 붙여두고 있으니 말이다. 물론 아직은 사랑임을 깨닫지 못하고 있겠지만.  

 

 

1~2회에서 어필된 홍혜성(여진구)의 존재감이 워낙 대단해서 노민혁이 완전히 밀릴 줄 알았는데, 3회에서 보니 의외로 노민혁도 상당히 매력적인 캐릭터임을 알 수 있었다. 시도 때도 없는 그 잘난척만 빼면 '지붕킥'의 시크남 이지훈(최다니엘)을 연상시키는 부분도 있다. 캐릭터의 크기에 비해 연기자 고경표의 카리스마가 좀 부족한 느낌은 들지만, 계속 몰입하다 보면 조금씩 나아질 거라고 기대한다. 하연수와의 투샷도 생각보다 잘 어울리며 설레는 듯 예쁜 그림을 만들어 내고...

 

그러나 막판에 등장한 여진구의 불꽃 카리스마는 고경표의 그림자를 삽시간에 지워 버렸다. 누가 봐도 3회는 노민혁의 것이었는데, 제 밥상에서마저 객식구에게 밀린 셈이다. 역시 홍혜성은 어릴 때 납치 실종되었던 노씨 집안의 막내아들 준혁이가 맞는 듯하다. (노민혁의 친동생인데 어쩌면 그리도 안 닮았을까?) 네 살 준혁이는 납치범이 한눈 파는 사이에 어디론가 도망쳐 버렸고, 그래서 범인은 잡았지만 끝내 준혁이는 찾을 수 없었다. 오열하는 아빠 노수동(노주현)과 엄마 왕유정(금보라)... 침통한 표정의 할아버지 노송(이순재)... 그 비극이 일어난 시기는 19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에서 황영조 선수가 마라톤 금메달을 획득하던 때였다. 그래서 지금도 자식 잃은 엄마는 TV에 황영조의 얼굴만 비치면 경기를 하는가 보다.

 

 

노준혁의 이름으로 입영통지서가 날아왔으니, 이제는 더 이상 실종 신고를 미룰 수 없게 되었다. 실종 신고 후 6개월이 지나도록 소식이 없으면 사망한 것으로 간주하여 실종 선고가 내려진다는데, 그렇다고 산 사람이 진짜 죽는 것도 아니건만 실종 신고서를 써 내려가는 엄마의 눈에선 하염없이 눈물이 뚝뚝 떨어진다. 노송이 아끼는 강아지 철민이가 집을 나가 노수동이 온 동네를 "철민아~ 철민아~" 부르며 찾아다닐 때, 애타게 "준혁아~ 준혁아~" 부르며 찾아다니던 20년 전의 모습이 흑백 사진처럼 오버랩되던 장면은 매우 인상적이었다. 혜성이(준혁이) 혼자서도 아주 멋지게 잘 자랐는데......

 

3회에서는 노민혁의 대사 중에 인상적인 것이 많아서, 그 중 한 문장을 리뷰의 제목으로 빌려왔다. 누구나 인생을 살다 보면 물러설 수 없는 싸움이 있는데, 과연 나는 그 싸움에서 승리할 수 있을까? 여주인공 나진아는 일단 패배하고 말았지만, 그것이 영원한 패배는 결코 아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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